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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31화 (31/173)

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31화

불문(不問) 표행을 떠나다(3)

장운이 여태껏 해오던 육지행이 아니라 강줄기를 따라 이동해야 하며, 익숙해진 녹림의 산적이 아닌 장강수로채(長江水路寨)의 수적(水賊)을 상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여러모로 변수가 많겠군.’

불문 표행에 수로행의 표행까지.

처음 겪어야 하는 일들이 참 많다고 느끼는 장운이었다.

“이번 표행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지만 극복한다면 장운, 너에게 어마어마한 경험이 될 것이며 네가 표두 선발전에 곧바로 향하더라도 반박하는 자는 없을 것이다.”

장천호는 아들을 타이르며 말했다.

혹시라도 이번 시련을 겪으며 자신을 원망하고 그 속에 담긴 뜻을 모를까 봐 던진 말이었다.

과거의 장운이었다면 아버지가 나를 괴롭힌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장운은 다르다.

아비의 깊은 속내를 잘 알았다.

‘표두 선발전은 이 불문 표행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까다롭고 어려울 테지.’

장천호는 이번 불문 표행조차 극복하지 못한다면, 장운이 표두 선발전에 참가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장운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이번 표행은 정체 모를 표물을 산서 길현의 나루터까지 안전하게 운송하면 되는 일이다.”

불문 표행에 수로까지 이용해야 하는 이번 표행은 성공 조건이 비교적 수월했다.

배를 타고 수로를 따라 올라가 길현 나루터까지 표물을 운반하면 끝이었다.

‘아마 아버지께서는 여러 공작을 준비하셨을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금령검객 장천호가 직접 의뢰한 불문 표행이니만큼 쉽지 않을 게 분명했다.

하나 장운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욱 불타오르는 사내였다.

“반드시 성공시키겠습니다.”

* * *

“이거 한 방 먹었습니다.”

노련함의 끝을 달리는 상수 노관이 말했다.

실제로 장운 일행은 전날까지 모두 모여 인근에 존재하는 육지의 지름길과 더불어 녹림의 산채와 그 정보를 요약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수로행을 지시할 줄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감우량 표두도 난색을 표하였으나, 그는 어려운 황금표국 표두 선발전에서 비교적 젊은 나이에 뽑힌 인물이었다.

그는 수로를 이용한 표행도 경험이 많은 인물이었다.

그것은 노관도 마찬가지였다.

“배를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본 표국이 직접 담당하는 나루터에 상선이 언제나 상시 대기하고 있으니까요.”

황금표국의 나루터로 이동하기까지 장운 일행은 혹시 배를 구하는 일부터 어렵지 않을까 염려를 하였다.

다행히도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장운 일행은 총 열여섯 명이 모두 타고도 자리가 남는 커다란 상선을 곧바로 구할 수 있었다.

더 고무적인 것은 노관과 쟁자수들은 모두 수영은 물론, 잠영(潛泳)에도 능한 자들이며 노질까지 할 줄 아는 재주꾼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따로 선원을 구할 필요는 없겠군요. 곧바로 표물을 옮기도록 하죠.”

배를 구했으니 서둘러 표물을 내부에 옮겨야만 출발할 수 있었다.

이번 표행에서 형식적인 우두머리는 표두 감우량이었으나, 장운의 표두 선발전이 걸린 표행이니만큼 전체적인 관리는 장운이 맡았다.

“네, 표물은 어디에 놔둘까요?”

노관이 물었다.

제법 큰 상선인 만큼 내부 공간이 존재했다.

내부 공간은 총 세 곳으로 일반 짐이나 화물을 탑재하는 갑판 아래 지하 공간이 있었고, 갑판 위에는 사방이 목재로 가려져 사람들이 편히 쉴 수 있는 자그마한 방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방 바깥에는 선원들이 움직이는 공간이자 이동로가 자리하였다.

노관의 질문에 장운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본래 평범한 표행 같았으면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지하 공간에 적재했을 것이다.’

일반 표행이라면 그것이 정석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위험도가 많이 따르는 불문 표행이며 장천호가 직접 의뢰한 만큼, 돌발 상황이 일어날 것이 분명했다.

“갑판 위에 있는 방에 표물을 놔두도록 하십시오.”

장운은 고심 끝에 결정을 내렸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다 지하에 내려갈 수 있는 구조인 만큼, 차라리 믿을 만한 표사들이 쉬는 공간에 표물을 적재함으로써 철통 경계를 펼치고자 마음먹었다.

“알겠습니다.”

노관은 서둘러 쟁자수들에게 지시를 내렸고, 아홉 명의 쟁자수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검은색 천으로 여러 번 꽁꽁 싸매어진 의문의 표물을 짊어졌다.

“겉으로 볼 때는 거대한 항아리처럼 보입니다.”

감우량이 검은색 천 위로 드러나는 표물의 굴곡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말에 장운도 동의했다.

“저도 그렇게 보이는군요.”

실제로 장천호는 모종의 물건을 항아리 내부에 넣은 다음, 그것을 단단히 밀봉하였다.

그런 뒤 검은 천으로 돌돌 싸매어 운송을 맡긴 것이다.

“조심히 다루도록 하라.”

노관의 신중한 목소리와 함께 힘이 좋은 쟁자수 다섯이 붙어야만 간신히 들리는 항아리는 겨우 배에 탑재될 수 있었다.

달그락, 달그락!

장운을 비롯한 표사들의 경계 아래 의문의 표물은 이동하며 약간의 소음을 내었는데 그 소리가 기묘했다.

항아리 내부에 있던 정체 모를 표물이 달그락거리며 금속성에 가까운 둔탁한 소리를 내었다.

‘안에 무언가 있다!’

장운과 일행들은 본능적으로 직감하며 표물이 무엇인지 유추해 보았다.

“소리만 들어서는 병장기 같은데요?”

“아니, 어쩌면 값비싼 붓이나 벼루일지도 모릅니다.”

“제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비취(翡翠)의 원석이 분명해요.”

여러 표사들과 쟁자수들은 그 소리를 들으며 저마다 각기 다른 의견을 내어놓았다.

그에 비해 장운은 신중했다.

‘아니야. 내부는 가벼우면서도 무언가 단단한 소리.’

이것은 장운조차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 소리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표물에 장운은 답답했지만, 그렇다고 표물을 개봉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불문 표행에서 가장 금기시되는 행동이 바로 표물을 확인하는 짓이기 때문이다.

“다 옮겼습니다.”

여러 이야기 끝에 마침내 항아리 속에 감춰진 표물이 상선 위의 조그마한 방에 자리하였다.

떠나기 전에 장운은 감우량과 노관을 불렀다.

“표두님을 포함하여 무공을 익힌 자는 총 여섯 명입니다. 두 명씩 총 세 조를 이루어 한 조는 표물이 있는 방을 지키고 한 조는 상선을 돌아다니며 아래위, 바깥의 정찰을, 그리고 남은 한 조는 잠을 취하며 불침번을 이루는 게 어떠할까요?”

장운의 제의는 나쁘지 않았다.

감우량은 이것이 정녕 열여섯의 일 처리가 맞나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의 나이를 감안하였을 때 놀라움이 컸다.

동시에 장운의 재주는 그저 탁월한 무공뿐만 아니라 그보다 훨씬 다재다능하다는 것을 느꼈다.

“나쁘지 않군요. 그런데…… 조는 어떻게 짜실 겁니까?”

“먼저 감 표두님과 비옥수 천세은 표사가 일 조, 저와 반골 응운곤 표사가 이 조, 당랑수사(螳螂秀士) 거일기 표사와 비웅표(飛熊慓) 좌담 표사를 삼 조로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장운의 조 편성에 감우량은 약간의 의문을 느꼈다.

‘반골 기질이 강한 응운곤을 상사인 내가 아닌 장운 도련님이 맡는 것은 이해한다. 그런데 삼 조는 전원 다른 파벌의 표사들이 아닌가?’

장운 또한 감우량의 의문 어린 시선을 느꼈는지 곧바로 답을 하였다.

“여섯 명의 인원 중 완벽하게 믿을 만한 인물은 저와 감 표두님밖에 없습니다. 그 말인즉 믿을 수 있는 조는 애초에 두 조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죠. 그러니 남은 한 조는 차라리 다른 파벌의 표사들로 몰아넣어 봤습니다.”

장운의 의도는 이러했다.

어차피 한 조는 필연적으로 미심쩍을 수밖에 없었다.

중립의 응운곤이나 천세은을 넣어 의문을 가중시키는 것보다 차라리 다른 파벌 소속의 표사를 한 조에 넣어버린 것이다.

“오호! 좋은 생각이십니다. 두 표사들도 자신들만 다른 파벌로 이루어진 조라는 것을 인식할 테니…… 자연스레 행동거지에 있어 조심스러워할 테니까요.”

노관이 장운의 계획에 감탄을 하며 외쳤다.

‘알면 알수록 놀라운 분이다. 결코 어린 소년의 심계가 아니야.’

혹자는 말한다.

이런 사소한 것이 뭐가 뛰어난 것이냐고.

하나 현재 장운의 나이는 불과 열여섯이었으며 또래들은 아직도 어미의 품이 편할 나이에 그는 최전선에서 진두지휘하며 두각을 드러내는 중이었다.

“탁월하신 계획입니다.”

이번엔 공식적인 표행이 아니라 장천호의 의뢰로 시작한 시험 표행이니만큼 감우량은 표두가 아닌 장운의 지지자로서 존대하고 있었다.

“그럼 배를 출발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장운의 첫 수로 표행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 *

산서는 섬서성의 오른편에 위치한 곳으로 파생된 강줄기를 굽이굽이 따라가다 보면 도착하게 되는 비교적 수월한 곳이었다.

바람만 따라준다면 목적지인 산서 길현 나루터까지 일주일이면 충분했다.

많은 고심 끝에 마침내 첫 불문 표행이자 수로 표행을 시작한 장운.

오늘 그 첫날의 밤을 보내는 중이었다.

“낮에 고지한 대로 노질을 한 쟁자수들은 숙면을 취하고, 표두인 나와 표사들은 불침번을 시행하도록 하겠다.”

감우량의 말에 드디어 선상에서 맞이하는 불침번이 도래했다.

장운이 예고했던 대로 첫 조는 감우량과 천세은이었다.

‘불상사가 일어나진 않겠지?’

장운은 걱정했지만 감우량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감우량은 다른 표두에 비해 무공이 약간 떨어질지언정 현명함과 인덕을 갖춘 인물이니 걱정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다음 차례인 이 조, 장운과 응운곤의 차례가 돌아왔고 다행히도 감우량과 천세은은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무더웠던 낮과 달리 밤에는 날씨가 제법 쌀쌀하더군요.”

감우량이 장운과 응운곤을 걱정하며 따뜻하게 입고 가라고 권하였다.

“감사합니다.”

그 배려에 장운은 정중히 포권을 하는 반면에 응운곤은 그저 묵묵부답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장운은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과연 소문대로군.’

응운곤의 현 직책은 이급 표사로 표두인 감우량과 비교하자면 그 격차가 현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중한 포권은커녕 대꾸조차 하지 않는 것은 상사의 비위를 상하게 할 확률이 높았다.

“응 표사님. 어서 갑시다.”

장운은 혹시라도 응운곤이 문제를 일으킬까 봐 그와 함께 이동했다.

불침번의 밤은 긴 법이다.

장운은 그와 나란히 서서 대화를 시도하였다.

“응 표사께서는 이번 표행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장운이 물었지만 응운곤은 시선을 슬쩍 주고는 짧게 대꾸했다.

“별생각 없소.”

과연 황금표국 내부에서 고립되어 가고 있는 표사답게 퉁명스러운 대답이었다.

실제로 응운곤은 장운이 이런저런 대화를 시도했으나 제대로 대답을 하지 않고 있다가 슬쩍 상선 위로 묶인 매듭을 정리할 뿐이었다.

그 모습에 장운은 화가 날 법도 한데 오히려 응운곤의 행동에서 무언가 깨달은 것이 있었다.

“응 표사님. 혹시…… 고향이 해남(海南) 아니십니까?”

장운의 말에 응운곤은 이례적으로 큰 반응을 보이며 눈을 크게 떴다.

“그것을 어떻게…….”

그가 놀라자 장운은 씨익 웃으며 말하였다.

“잘 드러나진 않습니다만 말투에서 약간의 억센 억양과 사투리가 느껴집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밧줄을 재정비하며 묶은 매듭. 그것은 배와 바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선원의 매듭과 유사합니다.”

장운은 그의 모습을 보며 전생에서 상대한 해남검파의 무인을 떠올렸다.

응운곤과 같이 말투도 거칠고 행동도 투박했지만, 속정이 많았으며 무엇보다도 친구를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 상남자였다.

장운은 짧은 시간이지만 응운곤을 보며 그를 연상할 수 있었다.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본 표국의 표사들은 대부분 섬서 서안 출신들이니…….”

장운은 이제야 모든 것을 깨달았다.

표사들은 대부분 섬서 서안 출신들이었고 비교적 세련된 이들과 달리 해남의 거친 파도 속에서 자란 응운곤은 기질이 맞지 않았다.

응운곤의 말투나 투박한 성정, 그리고 다혈질의 성격은 다른 표사들과 대면하는 데 있어 문제를 야기했을 것이다.

실제로 장운이 응운곤과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 결과, 말투가 거칠고 투박한 사내였지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아, 그렇지!’

장운은 갑자기 떠오른 것이 있어 자신의 쟁자수들이 들고 온 짐 더미를 찾았다.

그는 그 속에서 싸구려 술 중 하나인 홍주(紅酒)를 꺼내 들었다.

이는 노관의 것으로 두주불사(斗酒不辭)에 걸맞게 각종 술을 들고 다니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밤공기가 찹니다. 몸도 녹일 겸 딱 한잔하지요.”

장운은 해남 사나이를 대접하는 방법을 진정으로 잘 알고 있었다.

홍주는 섬서 인근에서는 잘 마시지 않는 지독하고 싸구려 술에 불과하지만, 해남의 뱃사람에게 있어 그 어떤 미주(美酒)보다도 값진 고향의 혼이 담긴 술이었다.

“크으으!”

응운곤은 장운이 내미는 술잔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담이 작은 자라면 혀조차 델 수 없다는 홍주를 그대로 들이키고는 장운을 바라보았다.

“고향 생각이 나는군요.”

응운곤이라는 완고한 사내의 마음이 장운에게 무장해제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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