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37화
불문(不問) 표행을 떠나다(9)
이 역시 장운의 기량과 잠재력에 감탄한 광표의 선물이었다.
동시에 아직 어릴 때 친분을 맺어둔다면 산서수채에 있어서도 큰 이득이라 믿었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장운은 다시 한번 정중히 포권을 하고는 옥으로 장식이 된 뿔 소라, 옥라를 받아들었다.
처음 이들이 나타났을 때는 당황했지만 결국 완벽한 승리와 더불어 여러 전리품을 챙겼다.
이보다 더 만족스러울 수 있을까?
“모두 끝났으니 우리는 물러가도록 하겠네. 드넓은 수로에서 다시 한번 장운 소협과 마주하기를 기대하도록 하지.”
광표는 소문과는 달리 제법 예의를 알았다.
이는 장운이 자신에게 끝까지 예를 표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광표와 산서수채는 갑자기 등장한 것처럼 갑자기 퇴장을 하였다.
그리고 광표는 떠나기 전.
“아마 이 이후로 자네를 습격하는 이들은 없을걸세.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라네.”
씨익 웃으며 무언가 의미심장한 말을 하였다.
‘무슨 뜻이지?’
장운은 이에 궁금증이 생겼지만 감히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찌 됐건 치열한 승부가 끝났으니, 남은 것은 그 승리를 만끽하는 일이었다.
“자, 수적들이 모두 물러갔으니 모든 표사들과 쟁자수들은 오늘 딱 하루만 편히 쉬며 음주를 허하도록 한다.”
* * *
산서수채와 치열한 대결을 뒤로하고, 장운의 불문 표행은 순풍을 이루고 있었다.
이틀 동안 별 탈 없이 지나갔으며 점점 습하고 더워지는 기후가 느껴지는 게 산서성 길현 나루터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감지했다.
장운 일행이 표행을 성공리에 완수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광표의 말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이후에도 몇몇 얼뜨기 수적과 만나긴 했지만, 그때마다 산서수채의 수적들이 나타나 보호를 해주었던 것이다.
안전이 해결된 장운은 끝까지 방심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광표의 말이 마음에 걸린 까닭이었다.
따라서 그는 불침번을 여전히 유지하였고, 걱정은 기우에 불과한 것처럼 별 탈 없이 흘러 이제 길현 나루터까지 하루를 앞두었다.
“자, 자. 모두 모여 표물 점검이 있겠습니다.”
장운이 외쳤다.
내일이 도착인 만큼 모든 표사들과 표두가 모여 표물을 점검하던 그때였다.
잘그락!
불문 표행이니 봉인을 풀어 직접 확인하는 것은 무리였고 항아리를 흔들어 그것이 잘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뿐이었다.
항아리 속 표물을 흔들어 본 장운.
한데 기이하게도 장운의 안면이 굳어지고 말았다.
“항아리 속 표물이…… 줄어들었습니다!”
불쑥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몹시 기이하게도 항아리 속 의문의 표물, 그 수량이 명백히 줄어든 것이 아닌가?
“……!!”
장운의 말에 사색이 된 것은 감우량 표두와 다른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저도 확인해 보죠.”
감우량은 얼른 뛰쳐나와 직접 항아리를 슬쩍 흔들었다.
출발 전에 알아둔 항아리 내부의 물건 소리와 수량으로 되새겨 보았을 때 그 결과는 너무나 명확했다.
‘정말로…… 줄어들었어!’
감우량은 등 뒤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항아리 내부 무수히 많던 의문의 물건들은 어느새 몇 개가 사라져 잘그락거리는 소리가 작아졌다.
화들짝 놀란 장운과 감우량은 서둘러 수색하였지만, 표물이 개봉된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스윽!
그에 따라 감우량과 장운의 시선은 다른 파벌로 이루어진 삼조, 당랑수사 거일기와 비웅표 좌담을 향했다.
그들은 불침번의 마지막 조였고 그 말인즉 그들이 표물 주변을 마지막으로 점검하고 서성인 조라는 뜻이었다.
“아, 아닙니다!”
“저희는 표물을 건드린 적도 없습니다.”
감우량과 장운뿐만 아니라 여러 쟁자수들과 표사들의 시선이 모이자 두 사람은 펄쩍 뛰며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거짓말을 하면 혀를 잘라 버릴 테다!”
그들의 말에 성격이 괄괄한 응운곤은 벌써부터 검을 뽑아 들 지경이었지만 장운이 만류하였다.
“진정하십시오, 응 표사님.”
장운이 그를 말릴 까닭은 다름이 아니었다.
‘당황하는 이들의 표정, 그것은 꾸며낸 거짓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장운은 오랜 경험상 그것을 어느 정도 판별할 수 있었는데, 조금 전 거일기와 좌담의 얼굴은 정말로 당황하고 억울해하는 것이었다.
주르륵!
실제로 삼조인 두 표사는 산서가 가까워짐에 따라 더웠던지 얼굴이 땀으로 흥건했다.
더운 것도 더운 것이지만 강물이 자욱한 곳이니만큼 습한 게 이루 말할 수조차 없었다.
“……어떻게 할까요, 도련님?”
감우량 표두가 다가와 물었다.
본래 이런 판단은 표두의 몫이었지만, 이번 표행은 장운이 주인공이었으니 그에게 맡기는 것이 최선이었다.
감우량은 그의 판단에 따를 요량이었다.
만약 장운이 두 사람의 짓인 것 같다고 판단을 하면 저 둘을 제압하여 비어 있는 지하의 공간에 가둘 마음도 있었다.
‘표행 완수 단 하루를 앞두고 이런 일이 생기다니.’
장운 역시 등줄기 뒤에 식은땀이 흘렀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았다.
그가 흔들린다면 쟁자수들부터 표두까지 모두 흔들리게 되니 말이다.
“일단…… 오늘 불침번에서 삼조는 표물 확인 절차를 제외한 나머지 선상 순찰만 해주십시오.”
장운은 냉정히 판단을 내렸다.
두 사람이 범인이든 아니든 표물에 마지막으로 접근했던 인물들이었기에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었다.
그 책임을 묻기 위해서라도 /표물 확인 절차에서 그들을 (추가)/배제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었다.
“……끄응.”
“알겠습니다.”
거일기와 좌담은 억울해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말았다.
애초에 자신들은 장운의 파벌이 아니었기에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는 걸 직감한 탓이다.
“이제 하루, 단 하루만 남았습니다.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말고 표물을 지키도록 합시다.”
장운이 목 놓아 외쳤다.
어떻게든 범인을 찾아 사라진 표물을 다시 채워 넣어야만 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종잡을 수 없지만 이제 와 표행을 실패할 순 없지 않은가.
“감 표두님. 오늘 하루만 같이 수고해 주십시오.”
장운이 감우량에게 다가와 말했다.
즉, 밤을 같이 새워 범인을 잡아낸 다음 표물을 다시 회수하자는 뜻이었다.
끄덕!
감우량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리하여 마지막 밤은 오로지 장운과 감우량만이 표물 근처를 지켰고 남은 인물들이 선상 위의 순찰을 하는 불침번을 하였다.
“아무도 오지 않았군요.”
뜬 눈으로 하루를 꼬박 새운 감우량이 말했다.
장운은 그의 말에 동의했다.
마지막을 앞둔 그 날 밤, 쥐새끼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얼씬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장운과 감우량이 지키고 있는데 누가 감히 접근할 수 있단 말인가?
“이건 필시 내부 소행입니다.”
감우량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부 소행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산서수채의 비호 아래 그 어느 누구도 표물이 있는 상선에 태운 적이 없었다.
그의 의견에 장운도 공감했다.
‘도대체 누구의 짓이지?’
급기야 장운은 응운곤이나 천세은의 짓이 아닌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째액 짹!
또다시 낮이 밝아오고, 길현 나루터 도착까지는 이제 반 시진도 남지 않은 상황!
‘이제 정말로 시간이 없다.’
장운은 애가 타는 심정이었다.
솔직히 말해 처음 표물이 몇 개 없어졌을 때 불문 표행은 실패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불문 표물의 봉인은 아무나 풀 수 없어. 반드시 개봉의 흔적이 남는다.’
그것은 초절정 고수가 나타나 열었다고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즉,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표물은 개봉되지 않았음에도 그 상태에서 사라졌다는 뜻이었다.
“마지막으로 표물 최종 점검이 있겠습니다.
낮이 밝아오자 장운은 다시 한번 사람을 모았다.
표물을 보자마자 개봉 흔적부터 살폈지만 여전히 봉인은 완벽하였다.
잘그락!
장운은 떨리는 마음을 뒤로한 채 다시 한번 표물이 든 항아리를 흔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어제보다 더 줄었어!’
장운은 가슴이 철렁이는 기분이 들었다.
경악스럽게도 표물의 개수는 어제보다 더 줄어들어 잘그락거리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스윽!
이제는 기력이 빠질 정도라 장운은 뭐라 소리도 내지 못한 채 감우량과 서로 시선을 교환할 뿐이었다.
심지어 어제는 다른 파벌의 표사는 물론, 천세은과 응운곤마저 표물 근처 순찰에서 배제한 채 두 사람만 돌지 않았나.
‘설마…… 감 표두의 짓인가?’
당연히 그 가능성도 있었다.
이번 표행은 특별히 표국주가 의뢰하여 장운의 기량을 점검하기 위한 시험 표행이었으나 내부에 사람을 심어두어 변수를 만들 가능성은 농후했다.
장운의 시선이 감우량을 향했다가 이내 다시 허공을 돌 무렵!
“곧이어 길현 나루터에 상선이 정박합니다!”
야속하게도 시간은 덧없이 흘러갔고 반 시진은 훌쩍 지나 저 멀리서 길현 나루터가 보였다.
상수 노관의 외침에 장운이 고개를 돌려 전방을 주시하니 아니나 다를까.
“아, 아버님이 직접 나루터까지 오셨어!”
놀랍게도 길현 나루터에는 표국의 주인인 금령검객 장천호와 몇몇 수뇌부들이 직접 서 있었다.
그 일행 중에는 장룡과 장건도 있었다.
일행은 장운이 표두 선발전에 참가하는 것에 대하여 반대를 한 인물들이었고, 이들이 보는 앞에서 표행이 실패한다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이걸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감우량마저도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무렵!
‘표물은 개봉되지 않았고 약탈의 흔적은 하나도 없다. 마치 저절로 증발한 것처럼…….’
장운은 최후의 최후까지도 침착을 유지한 채 차분히 생각을 했다. 그때였다.
“……!!”
장운은 마침내 그 해답을 발견하였다.
* * *
“그래, 도착하였구나.”
마침내 표물을 실은 상선은 길현 나루터에 도착하였고, 거기에 모여 있는 장천호와 수뇌부들과 마주하였다.
한데 분위기가 묘했다.
감우량은 쩔쩔매고 있고 큰 공을 세운 응운곤과 천세은도 표정이 어두운 것이 아닌가?
오랫동안 멀미를 유발하던 수로에서 내려와 육지에 발을 디뎠으니 기뻐해야 정상이거늘, 사람들의 사기는 바닥을 쳤다.
‘그러면 그렇지.’
그 모습에 장룡과 장건은 서로를 마주 보며 씨익 웃었다.
산서수채와의 대결에서 승리했다는 소문이 돌 때만 해도 좌절하였는데 오늘 분위기를 보니 이건 완전 장례 치르는 분위기인 것이다.
“네, 아버님.”
장운은 전혀 흔들림 없이 자신이 직접 불문 표물이 담긴 항아리를 운반하였다.
스르륵!
항아리를 들고 가는데 조금 전까지만 해도 희미하게 들리던 잘그락거리던 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았다.
조용한 소음에 모두가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이번 불문 표행을 맡은 표사, 장운에게 묻겠다. 불문 표행의 표물은 무사한가?”
장천호의 엄격한 질문에 어지간한 사람들은 모두 주눅이 들며 표물을 잃었다고 실토했을 것이다.
하지만 장운은 달랐다.
“네, 물론입니다.”
그는 오히려 여유마저 보이고 있었다.
스윽!
그 자신감에 불문 표행을 직접 의뢰한 장천호가 직접 항아리를 흔들었고, 왜 표물의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고 장운에게 눈빛을 보냈다.
“표물이 뭔가 온전치 않은 것 같은데?”
그의 질문에 모든 것을 깨달은 장운이 답을 하였다.
“왜냐하면 이 표물의 정체가 경유암염(鯨油巖鹽)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