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40화
객잔시비(客棧是非)(2)
은전상단은 황금표국에 기대어 수익을 올리는 상단에 불과하다. 반면 황금표국은 그들과 거래를 끊어도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은전상단과 같은 중소규모 상단은 서안에서 널리고 널렸던 것이다.
“푸하핫! 은전상단 이름을 들으니 오금이 저린가 봐?”
은전상단주인 이정만은 상대가 원했던 반응을 보이자 통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적어도 이 근방에서는 은전상단의 위세가 대단하였기에 이정만은 두려울 것이 없었다.
“이봐, 젊은 친구. 이제 내가 누군지 알겠어? 보아하니 그럭저럭 먹고살 만한 집의 자제 같은데 철 좀 들라고. 내 조언이 도움 되었다면 여기 와서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 술이나 한잔 따라봐.”
장운이 자신의 위세에 완전히 짓눌렸다고 착각한 이정만은 거듭해서 고약한 심보를 표출했다.
“저분의 심기에 거슬렸다간 큰 낭패를 보게 될 겁니다. 저희도 어쩔 수가 없어요.”
애꿎은 점소이만 발을 동동 구른 채 어찌할 바 모르고 있었다.
까딱, 까딱!
급기야 이정만은 퉁퉁하고 짧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어서 오지 않고 뭘 하고 있느냔 신호를 보내었다.
일이 점점 더 커지자 은전상단과 황금표국 간의 사이를 모르는 천세은만이 두 눈을 멀뚱멀뚱 뜨며 방황할 뿐이었다.
저벅저벅!
장운은 애써 웃음을 참으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조금 전 주문한 여아홍을 들고 그에게 다가갔다.
“옳지. 그럼 그렇지.”
굴복하는 듯한 장운의 모습에 이정만은 만족스럽다는 듯 염소수염을 쓰다듬었다.
이 근방에서 그는 금자가 많았고 뛰어난 무인을 고용했기에 겁날 것이 없었다.
유흥마저도 무료해진 그는 결국 타인을 괴롭히며 즐거움을 얻곤 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제대로 임자를 만나게 된 것이다.
“자, 한 잔 올려봐!”
이정만은 곁에 다가온 장운을 향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잔을 내밀었다.
그를 호위하는 다섯 명의 무인들은 히죽 웃으면서 주인을 엄호하였다.
호위 무사들이 보기에 장운은 약해 보이는 샌님이자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일반인으로 보였다.
따라서 제대로 긴장하거나 호위하지 않은 채 주인과 함께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주르르륵!
마침내 장운이 여아홍을 들어 그에게 부었다.
물론 술잔이 아니라 덥수룩한 그의 정수리에다 호쾌하게 부어버렸다.
“자아, 이 단주. 술이 입에 맞으시나?”
장운은 지금부터 참지 않았다.
천세은의 치료를 앞두고 어지간하면 참으려고 했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이는 자신이 모욕당해서가 아니었다.
‘감히 내 휘하의 사람을 모욕해?’
천세은은 괜찮다 하지만 장운이 괜찮지 않았다.
“이, 이런 미친놈!”
채앵, 챙!
장운이 다짜고짜 머리에 술을 퍼부어버리자 이정만은 펄쩍 뛰며 당황하였고, 다섯 명의 호위 무사들은 그제야 상황을 알아차리고는 주인을 부축하였다.
동시에 두 사람은 장운의 앞을 가로막으며 그의 목에 검을 겨누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무례냐?”
“이분께서는 서안 명운산 일대를 주름잡는 은전상단의 대 단주이시다!”
그러고는 임자 제대로 만났다는 듯 장운의 주변을 휘감으며 퇴로를 차단했다.
“이런, 쯧쯧!”
“하필이면 젊은 청춘들이 저 심술 맞은 놈에게 제대로 걸렸군.”
“그냥 참지 그랬나.”
그 모습에 객잔 내부에 있던 많은 이들이 혀를 찼다.
이정만은 주로 세상 물정 모르고 무공을 익히지 않은 사람들만 골라 일부러 시비를 걸며 자신의 즐거움을 챙겨왔다.
이번에도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타인을 괴롭히며 재미나게 놀 수 있으리라 믿었다.
바로 그때였다.
-무염지(無炎指)!
파아아앗!
얌전히 제압당할 것만 같았던 서생 차림의 장운이 돌연 손가락으로 지풍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은밀하면서도 신속하며 뜨거운 기운을 가진 무염지의 지풍이 장운의 목에 검을 겨눈 두 인물을 향했다.
“끄아아악!”
“내 눈! 내 누우우운!”
무염지의 뜨거운 지풍을 안면에 제대로 허용한 호위 무사들은 일제히 검을 떨구고는 바닥에서 누가 더 잘 비틀거리나 대결을 하였다.
은전상단의 호위 무사들 평균 실력은 이류 내지는 일류 초입 수준이었는데, 그 정도론 금령공자 장운을 막을 수 없었다.
“무, 무공을 익혔어?”
그제야 상대가 무림인, 그것도 뛰어난 무인임을 자각한 이정만은 한 줄기 식은땀을 흘렸다.
이런 불상사를 방지하고자 나름 철저히 상대를 파악하고 또 호위 무사들로 하여금 무공을 익혔는지 익히지 않았는지 물었는데 오늘 제대로 물려버린 것이다.
“어서 저놈을 제압해!”
하나 이정만은 아직 좌절하지 않았다.
바닥에 뒹구는 두 사람과 달리 남은 이들은 제법 뛰어난 실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어디서 무공깨나 배운 모양인데 우리 셋을 감당할 수 있을까?”
호위 무사들도 서안 명운산 일대에서 적수를 찾기 힘들 정도로 기운이 거세었기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짧은 순간에 호위 무사 세 명은 시선을 교환하였다.
상대가 만만치 않으니 한꺼번에 치자는 의도였다.
“하아압!”
“죽어!”
그렇게 세 명은 부끄러움조차 잊은 채 장운을 향하여 합공하였으나.
-금령일운(金靈一雲)!
장운은 마침내 검은색 천으로 휘감겨진 초령검을 꺼내 들고는 거침없이 실력을 발휘했다.
파아아아앗!
초령검은 순식간에 황금빛을 발하며 세 호위 무사의 검을 부러뜨리는 데 성공했다.
어디 그뿐인가?
거침없이 진격한 황금의 검기는 이들을 무력화시켰으며 어깻죽지를 베어 누가 위고 누가 아래인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으으윽.”
“이 신묘한 조화와 황금빛의 무공은 필시…….”
“금령풍운검법이다!”
고통보다도 앞서는 것이 있었다.
섬서 일대에서 이 검법을 모르는 무인이 존재할까?
그들은 이제야 눈앞의 잘생긴 소년이 누구인지 깨달았다
지금 어깨가 베인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황금표국의 인물이다!”
“저 앳된 모습의 어린 공자는 분명…… 금령공자 장운 소협이 틀림없다!”
“요즘 들어 황금표국에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금령공자!”
“곧 최연소 표두가 될 것으로 유력한 황금표국의 셋째 공자, 장운 도련님!”
그뿐만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장운의 참담한 모습을 예상하던 좌중들은 이윽고 장운의 정체를 알아차리고는 미친 듯이 환호를 내질렀다.
설마 이곳에서 유명하디유명한 장운을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그, 금령풍운검법? 황금표국?”
환호를 내지르는 좌중들보다 더 놀라는 사람이 있었으니, 다섯 명의 호위 무사를 눈 깜짝할 사이에 잃어버린 장본인.
은전상단의 단주인 이정만이었다.
그는 그제야 뒤늦게 자신이 누구를 건드렸는지 깨닫고 말았다.
“히이익! 아니, 아니야!”
사람이 과도한 충격을 받거나 놀라면 기이한 행동을 보이는 법이다.
당장 고개를 숙여 사과를 해도 모자랄 판국에 이정만은 파탄된 인성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어떻게든 지금의 상황을 빠져나고자 발버둥 치기 위해 근처에 있던 어린 점소이를 붙잡고는 그를 인질 삼아 탈출을 시도했던 것이다.
‘그래, 일단 도망간 다음, 그런 일이 없었다고 잡아떼는 거야.’
일단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었다.
점소이의 목에 단검을 겨누고 장운에게 협박을 하려던 그때였다.
파앗!
돌연 반대편에서 날카로운 무언가가 날아와 그대로 이정만의 손등을 관통해 버리는 게 아닌가?
“끄아아악! 아악!”
손등이 꿰뚫리는 고통에 이정만은 돼지 멱따는 비명을 내지르며 점소이를 타의로 놓치고 말았다.
그의 손등을 뚫어버린 것은 당연히 비옥수 천세은의 솜씨. 그녀는 기다란 젓가락을 던져 뛰어난 암기술을 선보였다.
오오오!
그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본 좌중들의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왔다.
그들은 장운뿐만 아니라 천세은 역시 뛰어난 고수였음을 깨달았다.
“은전상단의 이정만 단주.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는 법이다. 도망가면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장운은 괴로워하는 이정만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에게 은전상단과 황금표국 중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 제대로 알려줄 계획이었다.
“그, 그, 나는, 아니, 아니야! 저는…… 은전상단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입니다.”
급기야 이정만은 피가 줄줄 흐르는 와중에도 격하게 손사래를 치며 부정했다.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은전상단의 주인이라며 위풍당당한 모습은 어디로 가고 없었다.
‘젠장! 설마 황금표국의 셋째일 줄이야!’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었다.
혹자는 물을 것이다. 황금표국에 물건을 납품하면서 어찌 셋째 공자인 장운의 얼굴을 모를 수 있냐고.
하지만 천만의 말씀.
장운은 과거 남루한 자신의 방에서 두문불출하여 나서지 않았다.
가족인 장천호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외인이자 무수히 많은 거래처 중 하나인 소규모 상단 주인이 어찌 그를 대면할 수 있단 말인가?
실제로 이정만은 첫째인 장룡과 둘째인 장건의 얼굴은 알았지만 장운의 얼굴은 처음이었다.
“그래? 그럼 내 아버님께 말해 은전상단과 거래를 끊고 놈들의 자금줄을 모두 말려 버리라고 부탁을 드려도 하등 상관이 없겠군?”
타인을 추궁하는 데 있어 장운은 노련했다.
그는 받은 만큼 돌려줄 줄 아는 인물이었다.
“크윽, 그, 그건…….”
장운의 말에 이정만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입을 더 열 수 없었다.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도저히 감이 오지 않았다.
“내 본래 개인의 일로 표국의 일까지 확대하는 소인배는 아니지만…… 남보다 조금 더 부유하다고 해서 꼴불견의 모습을 보이는 은전상단을 결코 좌시할 수가 없구나.”
장운은 칼을 제대로 빼 들었다.
그는 제대로 엄포를 놓으며 이정만을 잘근잘근 씹어 먹을 기세였다.
“허어어억!”
그 서슬 퍼런 모습에 이정만은 자신의 조카뻘 되는 장운 앞에서 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급기야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그 모습이 어찌나 통쾌하던지 은전상단으로부터 많은 괴롭힘과 피해를 입어온 좌중들은 환호를 하고 웃음을 터뜨릴 정도였다.
“살려주십시오, 제발 살려주십시오.”
급기야 이정만은 장운 앞에서 싹싹 빌면서 애처롭게 울부짖었다.
이래서 사람은 언제나 조심하고 진중해야 하는 법이다.
언제 어느 때고 상황이 뒤바뀔지 모르니 말이다.
“제가 가진 것을 드리겠습니다.”
이정만은 서둘러 허리춤에서 여러 물건을 모조리 쏟아부었다.
금자 수십 개를 비롯하여 각종 진귀한 패물은 물론, 인근에서 진귀한 약재가 많이 났다는 명운산 일대의 유지답게 뛰어난 약초도 존재했다.
“이것을 내게 준다고?”
“네, 넵. 그렇습니다.”
이정만은 어떻게 해서든 장운을 말려야 했다.
장운이 오늘의 일을 장천호에게 보고한다면 황금표국과의 거래가 끊길 게 분명했다.
먼저 검을 겨누며 시비를 걸고 황금표국의 핏줄에게 해를 가한 쪽은 본인이니까.
이 일이 알려진다면 장운을 아끼는 장천호가 진노하여 은전상단을 향해 표두들을 보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평소 금령공자님을 존경해왔습니다. 존경의 의미로 드리는 것이니 받아주십시오.”
의외로 장운이 관심을 보이자 이정만은 생로를 발견했다 여겨 미친 듯이 말했다.
물론 이는 장운의 조롱에 불과했다.
애초에 놈에게 무엇을 받을 생각 따윈 없었다.
“내가 너에게 뭘 받을 것이라 믿었나? 상인은 말의 무게와 가치를 잘 알아야 하지. 당신은 내게 내뱉은 말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니 기다리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