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68화
장운 대 장룡(3)
장운은 거침이 없었다.
수준 차이는 명백했다.
장운의 검이 신묘한 조화를 일으키며 장룡의 전신을 쇄도하였다.
“흡!”
장룡이 할 수 있는 거라곤 미친 듯이 뒤로 물러서며 연거푸 방어를 시도하는 일뿐.
‘안 돼! 이건 아니야!’
장운이 공격을 펼치면 펼칠수록 장룡의 위기가 도래하였다.
장룡은 상황이 흐르는 것을 보며 패색이 짙어지는 것을 감지했다.
예상은 했지만 검을 맞대어보니 장운은 자신보다 훨씬 더 뛰어난 고수였다.
-풍룡이광(風龍二光)!
최고의 방어는 공격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장룡은 완벽히 피할 수 없다면 마주 공격했다.
사실 이것은 동귀어진에 가까운 공격이었기에 혈족끼리 친선 비무에서 사용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과묵공자가 어디까지 몰렸는지 잘 알 수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풍룡삼광검 그 두 번째 초식.
검을 수평으로 놓은 다음 거세게 휘두르는 풍룡이광의 초식은 완벽하였지만 장운은 그보다 더 높은 곳에 있었다.
-무영보법(無影步法)!
장룡의 필사적인 공격을 그저 발놀림 두어 번으로 완벽하게 회피하는 데 성공했다.
“실로 절묘하구나!”
그 발놀림에 장천호는 물론이오, 그것을 가르친 장본인 무영신투마저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무영문주를 상징하는 신물을 내어주는 것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으아아아!”
회심의 공격이 허공을 가르자 장룡의 마음은 완전히 부서지고 말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실컷 두들겨 맞는 악몽에 가까웠다.
부웅, 붕!
다시 장운의 일방적인 공격이 이어지는데 장룡은 공격당하는 족족 모두 정타를 허용하였다.
치이익!
장운의 검이 그의 어깨를 스치고 옆구리에 약간의 자상을 내었지만 장룡은 끝까지 항전하였다.
그런다고 장운이 봐주느냐?
그런 것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여태껏 울분을 풀어내듯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검으로 사람을 폭행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던가?
장운은 흡사 석상을 깎아내는 석공(石工)처럼 장룡을 두들겼고 그는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어버렸다.
그나마 수족이 멀쩡했던 이유는 장운이 혈육의 정으로 아량을 베풀었기 때문이리라.
“룡아, 그만 패배를 시인하거라!”
오죽했으면 아버지인 장천호조차 기권을 권장할 정도였다.
“으흐흐흑!”
심지어 장룡의 어머니인 조소윤은 평소 강철 같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여느 여인처럼 하염없이 흐느끼고 있었다.
‘나는, 나는 황금표국을 이대로 놓칠 수 없다.’
장룡이 이토록 항전하는 이유는 단 하나.
자신이 서 있는 이곳은 그에게 있어 삶의 터전이자 모든 것이었으며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자기가 물려받는 것이라 인식해서였다.
이대로 절름발이였던 동생에게 물려줄 수 없다고 여겼다.
일방적으로 얻어터져 머리마저 여기저기 잘려 나간 장룡은.
파아앗!
동생의 검풍을 차마 감당할 수 없어 급기야 무인의 자존심을 버리고 바닥에 처참하게 구르고 말았다.
무림인들은 이 동작을 비꼬는 의미로 나귀가 더러운 마굿간에서 뒹구는 것 같다는 뜻의 나려타곤(懶驢打滾)이라고 부르며 비하하곤 했다.
오오오!
한때 황금표국의 자랑거리였던 대공자 장룡이 나려타곤까지 펼치자 이를 지켜보고 있던 좌중들은 탄식을 터뜨리고 말았다.
동정이 가는 것과 별개로 장운의 비범함에 놀라는 것이 더 컸다.
‘이 치욕을 버텨내야 한다!’
장룡은 큰형으로서 대공자로서 모든 자존심을 버린 채 나려타곤을 사용하였고 그 효과는 확실했다.
위기의 절벽에서 단 한 번의 공격 기회를 획득한 것이다.
-풍룡삼광(風龍三光)!
끈질기게 버틴 이유는 풍룡삼광검 그 최후의 초식을 펼치려고 그랬다.
풍검문의 비기, 풍룡삼광검은 첫 번째 두 번째 초식도 훌륭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백미(白眉)는 단연코 최후의 초식, 풍룡삼광이었다.
풍룡삼광 초식은 특이하게도 앞의 두 초식에 최후의 방점으로 절대 쾌검의 찌르기를 합친 초식으로 연환의 초식에 가까웠다.
그 말인즉 제대로 걸린다면 역전하는 데 있어 이보다 더 적합한 초식은 없다는 뜻이었다.
‘이 초식에 내 모든 것을 건다!’
무려 나려타곤을 사용하면서까지 얻어낸 기회다.
그 좋은 기회를 헛되이 날릴 수 없었다.
“하아아압!”
장룡은 모든 내공을 폭발시켰으며 그 초식에 모든 기운을 집중했다.
파아아앗!
그의 공격은 정말로 빨랐다.
본래 연환의 초식은 다소 느리고 긴 것이 흠인데 풍룡삼광검은 그 단점을 상회하였기에 풍검문의 비기라고 불렸다.
씨익!
장운은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낸 장룡의 공격을 바라보며 좌절하기는커녕 오히려 반겼다.
그 역시 이날만을 기다려 온 것이다.
황금표국의 모든 인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절정 고수가 상급에 들어설 때 보이는 바로 그것.
우웅, 우우우웅!
검의 강기, 즉 검강을 말이다.
장운의 검이 황금빛 검강으로 넘실대자 황금표국의 인원들은 난리가 나고 말았다.
워낙 급박하고 짧은 사이여서 숨 쉬는 것조차 잊고 지켜보았기에 말을 하지 못했지, 그 짧은 순간에 하나 같이 입을 모으며 경악하였다.
하나 아직 놀라긴 일렀다.
장운은 금령풍운검법 중에서도 절초를 펼쳐 들었다.
-금령풍천비류(金靈風天沸流)!
이 초식은 얼마 전 금령검객 장천호가 사파십대고수, 천악귀오 엽공천을 상대로 펼친 바 있는 상승의 절학이었다.
절정의 영역에서도 검강을 다룰 수 있어야만 펼칠 수 있는 바로 그 초식!
콰아아아앗!
장운의 검은 과거 장천호의 검처럼 황금빛의 폭포로 물들었다.
어디 그뿐인가?
콰앙, 콰아아앙!
어마어마한 위력을 표국 내부 전체에 맹위를 떨치며 풍룡삼광검을 완벽하게 파훼하는 데 성공했다.
자신이 펼친 초식이 와해되고 급기야.
콰직!
자신의 검마저 부러지고 말았다.
즉, 장룡을 보호해 줄 수 있는 모든 수단이 부러진 것이다.
그러니 자연스레 장룡은 그 자리에서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장운의 아량이었다.
그는 자신의 검강이 장룡의 목을 베기 일보 직전, 그것을 아슬아슬하게 멈춰내었다.
이 장면이 시사하는 것은 금령공자 장운이 검강을 완벽하게 조절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을 증명하였다.
“내, 내가…… 졌다.”
울컥!
장룡은 무리를 했던지, 아니면 울화 때문인지 입가에 차오르는 핏물을 느끼며 간신히 말을 내뱉었다.
이에 장운은 검을 거두고는 정중히 포권을 하며 답하였다.
“형님의 검법은 실로 훌륭했습니다. 좋은 위력과 더불어 절대로 부러지지 않는 기백이 느껴졌지요. 그러나…… 형님께서는 풍검문의 비기가 아니라 오히려 금령풍운검법에 매진하셨어야 했습니다.”
장운은 칭찬에 그치지 않고 진심을 다해 조언하였다.
이는 장룡이라는 무인이 여기서 부러지거나 포기하지 않고 정진하길 바라는 측은지심(惻隱之心)에서 비롯되었다.
“뭐?”
그의 말에 장룡은 놀라며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 금령풍운검법은 아버님과 더불어 본 표국의 기상과 역사가 깃들어 있으며 풍검문 모든 검법을 통틀어 상위호환이기 때문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조언을 끝낸 장운은 정중히 포권을 하였다.
“그, 그런…….”
그의 말에 결국 장룡은 더 버티지 못하고 여러 차례 핏물을 토하더니 곧바로 쓰러지고 말았다.
뒤로 쓰러진 것이 아니라 앞으로 고꾸라졌는데 이는 기력이 모두 소진하였다는 방증이었다.
풀썩!
결국 장룡은 패배하였다.
둘째 동생도 아니고 절름발이라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던 셋째 동생, 장운에게 말이다.
와아, 와아아아아!
“이겼다! 드디어 이겼다!”
“금령공자 장운 도련님!”
“장운 도련님 만세! 금옥관 만세!”
장운의 완벽한 승리에 금옥관 사람들을 비롯하여 장운을 지지하고 아끼는 모든 사람이 환호를 내질렀다.
심지어 무뚝뚝하던 응운곤마저도 옆 사람과 껴안으며 격정적인 모습을 보일 정도였다.
그러니 감우량이나 노관, 천세은 같은 자들은 어떻겠는가?
몇몇 사람들은 눈물까지 보일 정도였다.
기뻐서 눈물이 난다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드디어, 드디어 장운 도련님께서 성과에 맞는 합당한 자리에 오르셨다!’
이들이 하나같이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는 이유는 바로 이럴 것이다.
저벅저벅
기절하여 쓰러진 장룡과 그에 비해 멀쩡한 모습으로 호흡을 고르게 하고 있는 장운.
그 두 사람 사이로 장천호가 걸어 나왔다.
솔직히 그는 장룡이 일방적으로 수세에 몰리면서 몇 번이나 개입하려 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끼어들지 않았던 것은 장룡의 절박함과 장운이라는 아들에 대한 믿음이리라.
“수고 많았다, 룡아. 너는 패배하였어도……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 기상은 본 표국에 있어 많은 귀감이 될 것이다. 멋진 실력을 보여주었기에 설령 국주가 되지 못할지언정 본 표국에 너의 자리는 반드시 있을 테지.”
장천호는 국주로서 아비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
패배한 큰아들을 포근히 일으켜 세워주는 것.
그리고 또 하나.
“내 막내아들 장운.”
장천호는 장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네, 국주님.”
이에 장운은 정중히 한쪽 무릎을 꿇고 진검을 거두었다.
장천호는 승자인 장운에게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오로지 꼭 필요한 말만 했을 뿐이었다.
“오늘부터 네가 나의 정식 후계자다.”
그 말을 들은 장운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장운으로 다시 환생한 이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났기 때문이다.
장운이 다리를 저는 절름발이 신세에서 정식 후계자로 발돋움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일 년 하고도 두 달이 지난 시간이었다.
* * *
“축하합니다, 장운 도련님!”
“정말 감축드립니다!”
장운이 비무에서 승리한 뒤, 금옥관으로 귀환하자 모든 사람들이 다가와 인사를 건네었다.
과거 장룡 파벌이었던 자는 물론, 장건 파벌이었던 자들도 한 명도 빠짐없이 다가왔다.
그들은 장운 인근에서 어찌 말을 걸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과거 자신이 그토록 무시했던 인물이 정식 후계자, 즉 차기 국주로 내정이 되었으니 앞길이 막막하다고 여긴 것이다.
그리고 여기 또 한 사람.
“우, 운아.”
그는 다름 아닌 둘째 형 장건이었다.
어찌 보면 장운을 지독하게 방해한 것은 장룡이 아니라 오히려 장건이 더 집요하게 괴롭혔다.
그는 쭈뼛대면서 다가왔다.
혹자는 그를 더러 손가락질하겠지만 천만의 말씀.
장건은 애초부터 정식 후계자 자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본래 차기 국주가 되는 사람의 오른팔이 되려고 하였고 그의 선택은 장룡이었다.
한데 장룡이 완벽하게 몰락하였으니 결국 장건은 장운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나는 저어…….”
장건이 어색하게 다가와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고민하던 그때였다.
터억!
장운이 다가와 그의 어깨에 손을 걸쳤다.
유교 사상으로 볼 때 동생인 그가 형의 어깨에 손을 얹는 것이 건방져 보일 수 있었지만 이곳은 야생의 세계나 다름이 없다.
약육강식(弱肉强食), 적자생존(適者生存)의 환경이었다.
그 흐름에 있어 형이니 아우니 하는 것은 보기 좋은 허울에 지나지 않았다.
“장건 형님. 제가 보기와 다르게 속이 조금, 아주 조금 좁습니다.”
장운은 너스레를 떨며 둘째 형에게 말했다.
부르르르!
장운은 전신을 부르르 떠는 장건을 보며 통쾌함을 느꼈다.
이보다 더 고소할 수 있을까?
“앞으로 고생 좀 하셔야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