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72화
용봉지회(龍鳳之會)가 열리다(1)
황금표국의 후계자 장운이 녹림과의 협상에서 매우 큰 공을 세우고 대략 한 달이 흘렀을까?
정파 무림은 크나큰 축제를 맞이하게 되었다.
-드디어 용봉지회(龍鳳之會)가 개최된다!
용봉지회란 각 명문 정파의 후기지수들이 참가하여 단 한 명의 우승자를 가리는 대회로 우승하였을 경우, 개최 문파에서 준비한 뛰어난 영약과 부상을 수여하게 된다.
용봉지회를 우승한다고 하여 모두가 천하제일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천하제일인들이 용봉지회를 우승했기에, 참가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영광이었던 것이다.
‘아쉽게 되었군.’
장운은 용봉지회로 들뜬 강호무림의 분위기를 느끼면서 일말의 아쉬움을 느꼈다.
현재 자신이 속한 황금표국은 정파 무림 소속이긴 하나 문파나 가문이 아닌, 표국이기에 용봉지회 참가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다.
그가 이토록 아쉬워하는 이유는 전생이었던 검신 시절에도 용봉지회에 참가하지 않았기에 궁금한 마음이 컸다.
“장운 도련님. 용봉지회는 우리 같은 표국이나 상단에게 있어 대목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바로 그때였다.
장운의 파벌끼리 회의를 하던 도중이었는데 노련한 상수 노관이 다가와 입을 여는 게 아닌가?
“대목?”
“네, 용봉지회는 정파 무림 전체의 축제나 다름이 없으니 자연스레 많은 물자와 사람들이 몰리게 마련입니다.”
장운은 이제야 그 의미를 깨달았다.
“옳거니, 용봉지회 개최를 위해 무림인뿐만 아니라 물자 조달 및 사람들을 상대로 이익을 만들어내려는 상인들이 모이겠구만.”
“바로 그겁니다. 물자가 모이는 곳에는 산적이 있게 마련이고 안전한 조달을 위해서는 우리 표국을 찾는 법이니까요.”
노관의 말이 옳았다.
용봉지회가 개최되는 년마다 표국과 상단의 이익이 널뛰기 뛰듯 오르곤 하였다.
특히나 황금표국은 사상 최고의 명성을 떨치고 있었기에 바쁠 것은 안 봐도 뻔한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용봉지회와 관련하여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구가상단의 호위 요청입니다!”
“이쪽도 용봉지회와 관련된 의뢰입니다. 개최지까지 물자를 안전히 조달해달라는 의뢰입니다!”
“이쪽은 만가장에서의 의뢰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운 파벌을 꼭 집어서 청탁하는 의뢰가 물밀 듯이 쏟아져 내렸다.
곧 대목인 반면 안전하게 호송할 믿음직스러운 인원은 한정되어 있으니 역으로 표사들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던 것이다.
게다가 금령공자 장운이라고 하면 이제 섬서성을 뛰어넘어 그 명성이 자자했기에 부르는 것이 값일 터였다.
“도련님, 신중히 고르셔야 합니다.”
“맞습니다. 용봉지회 기간에 목표치를 달성해야 남은 달이 편하니까요.”
많은 의뢰들이 쏟아져 오자 감우량과 여러 노련한 표두들이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반골 응운곤과 비옥수 천세은 역시 요즘 들어 심심한 의뢰만 행하였기에 몹시도 좀이 쑤시는 기세였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무엇이든 나서고 싶었다.
“으으음.”
신중히 골라야 한다는 말에 장운은 더 심사숙고(深思熟考)를 거듭하였다.
사실 재고 따지고 할 것도 없었다.
‘죄다 상단이나 가문의 물자 호송 요청이니, 원.’
재미있어 보이고 흥미를 끌 만한 것이 없어 의뢰 서찰을 골라보던 도중.
“어?”
장운의 눈길을 끄는 한 곳이 있었다.
[극쾌검문(極快劍門)의 후예로 이번 용봉지회에 참가하고자 하는데 저에게는 용봉지회가 개최되는 곳까지 갈 경비도, 지원하거나 안내해 줄 사람도 없습니다.
(중략) 하여…… 사정이 어렵습니다.
염치 불고하고 먼저 금령공자 장운 소협께 안내 의뢰를 부탁한 다음, 용봉지회 십육인 안에 선정이 되면 그때 대금을 치르고자 합니다.]
내용만 보자면 현재 선금을 치를 여력도 없으니, 용봉지회에서 부상을 받는 최소한의 조건인 십육인에 선정이 되면 주겠다는 매우 광오한 말이었다.
평소의 장운이라면 눈길조차 주지 않을 서찰이었지만 눈에 들어오는 이유가 있었다.
‘극쾌검문!’
어찌 그곳을 잊을 수 있단 말인가?
극쾌검문은 과거 명문 정파로 현재는 몰락했지만 일인전승의 비학을 펼치는 매우 뛰어난 곳이었다.
하나 몰락한 지 너무나 오래되어 제대로 아는 작자가 적은데 장운이 이토록 또렷이 기억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과거 전생의 검신 시절, 나를 고전하게 만든 몇몇의 고수가 있었다.’
대부분은 다들 아는 고수들이지만 뜻밖의 고수가 하나 있었는데 그가 바로 극쾌검문의 일인이었다.
처음에는 듣도 보도 못한 무명(無名)의 고수라 검신 장인랑은 방심을 했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자그마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전율적인 쾌검의 극치는…… 나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검신의 인생을 통틀어도 그만큼 놀란 경우는 드물 것이다.
물론 최후에는 검신이 이겼지만 그날 놀랐던 기억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런데 현생에서 극쾌검문의 서신을 보게 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극쾌검문? 흐음, 일단 본선 진출 문파 명단에는 없군요.”
장운의 눈치를 읽은 감우량이 슬쩍 말했다.
노련한 그도 잘 모르는 문파가 바로 극쾌검문이었던 것이다.
“후불, 더군다나 용봉지회 십육인에 선정되면 주겠다니. 너무 허황되지 않습니까?”
부정적인 견해를 펼치는 것은 노관도 마찬가지였다.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당연한 게 현 무림에 있어 극쾌검문은 무명 중의 무명이었으니 환영받지 못하였다.
게다가 용봉지회 참가자 중 십육인에 선정되는 것 또한 보통의 일이 아니었다.
수백 명의 후기지수가 참가하는데 열여섯 명안에 꼽힌다?
그것은 장원급제하는 일만큼 어려운 난이도였다.
“도련님. 감이 오십니까?”
감우량과 노관은 부정적인 데 비해 응운곤과 천세은은 오히려 호기심을 보이는 눈치였다.
끄덕!
이에 장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인정을 했다.
단순히 과거 극쾌검문의 고수를 견식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짧은 서신에서 느껴지는 단아한 필체와 더불어 무언가 감이 세게 왔기 때문이었다.
“일단…… 이 친구를 만나 봐야겠군.”
* * *
“정말로……. 저를요?”
정갈한 금옥관의 건물 사이에서 당황하는 한 인영이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키, 순박한 얼굴에 실눈을 가진 인물이었는데 기이하게도 그의 검은 길고 폭이 좁았다.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검을 제외하면 오히려 평범하디 평범하여 눈길조차 가지 않은 인물.
이 인물이 바로 극쾌검문의 현 계승자이자 후예인, 두길준이었다.
“네, 일단 도련님께서 한번 보자고 하십니다.”
그런 두길준의 안내를 맡은 이는 감우량이었다.
솔직히 말해 감우량은 대목을 앞두고 극쾌검문의 의뢰를 맡는 장운의 선택에 아쉬움이 컸지만.
‘기묘한 눈빛을 가진 작자군.’
두길준을 보고 있자니 그 역시 무언가 깊은 느낌을 받았다.
나이는 많아 봐야 이십 대 중반을 넘지 않았는데 요즘 젊은이들답지 않게 진중하면서도 깊이가 있던 것이다.
“하, 하핫! 만남이 성사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당연히 무시할 줄 알았는데…….”
장안의 화제인 금령공자 장운이 만나자고 하자 두길준은 당황한 상태였다.
무명 문파의 후예이자 그 자신 또한 무명이라 별호조차 없기에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한데 허황된 자신의 서찰을 버리지 않고 직접 대면하자고 요청까지 할 줄이야.
“아직 귀측의 의뢰를 확정한 것은 아닙니다. 도련님께서 호기심을 보여서 말이지요.”
“흐으음.”
장운이 자신에게 호기심을 보인다는 말에 두길준 또한 호기심이 일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나보다 어리다고 들었다.’
그런데 자신은 여전히 무명인 반면 상대는 섬서성을 넘어 중원 전역에 명성을 퍼뜨리고 있었다.
잘나가는 그와 아직까지 무명인 자신의 차이점이 궁금했던 것이다.
“큰 기회라 여기고 만나 뵙도록 하겠습니다.”
인생에 있어 기회는 그리 많이 찾아오지도, 심지어 그것이 기회였다는 것을 나중에 깨닫기도 한다.
두길준은 오늘의 일이 기회라 판단하고 용기를 내었다.
저벅저벅
그렇게 금옥관 내부에 기다리고 있던 장운과 마주한 두길준.
흠칫!
장운은 두길준을 보자마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 자신이 꺾었던 극쾌검문의 고수와 너무나 닮은 모습에 흡사 그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은 기시감을 느껴서였다.
“반갑습니다. 저는 극쾌검문의 두길준이라 하옵니다.”
정중히 예의를 차리는 그와는 달리 장운은 정곡을 찔러 물었다.
“섬광분검(閃光分劍)과는 어떤 관계십니까?”
“허억!”
섬광분검이라는 별호에 두길준은 이례적으로 크게 놀라며 장운을 다시 바라보았다.
도대체 그 별호를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아니, 그것을 어떻게…….”
“아주 오래전, 방방곡곡 중원 전역을 누비는 어느 무인에게서 들었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무인인데 어마어마하게 빠른 검을 구사하는 검객이 있다고. 그분이 바로 극쾌검문의 섬광분검이라고 하던데요.”
물론 이는 장운의 전생 기억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제 친부 되십니다. 안타깝게도 제가 장성할 때쯤 지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저런.”
장운은 섬광분검의 소식에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이렇게 빛도 보지 못한 채 허망하게 갈 위인이 아니다.’
삶이란 진짜로 얄궂은 게 별 시답잖은 놈이 과분한 자리에서 으스대고 있는 반면, 정작 높은 자리에 올라야 할 인물이 빛을 보지 못한 채 저물고 마니, 어쩌면 세상사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은 진리일지도 모르겠다.
“그래, 용봉지회가 열리는 곳까지 안내 및 모든 지원을 원하시며 후불로 대금을 치르겠다고요?”
본격적으로 의뢰 이야기가 나오자 두길준은 잠시 위축되고 말았다.
어찌 보면 배짱으로 대금을 대신하는 것이니 부끄러움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용봉지회에 참가하는 비용부터 시작하여 전반적은 여정과 식비까지 더한다면 그것은 보통 비용이 아닐 터.
몰락에 몰락을 거듭하고 가장마저 잃은 채 오로지 무공에만 전념한 외골수 무인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네에……. 현재 본 극쾌검문 상황이 매우 좋지 않습니다.”
장운은 두길준의 말을 들으며 그의 행색을 살폈다.
그 말이 거짓이 아닌 게 겉모습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여기까지 온다고 제법 깔끔하게 단장을 했지만 단벌뿐인 무복은 이미 해질 대로 해져 있었고 신은 발가락이 발사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문 정파의 잘 단련된 후기지수와 같은 안광을 뿜어내고 있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상황은 이해하나 본래 우리 황금표국은 언제나 선불이오.”
“아아, 그렇습니까?”
선불이란 말에 두길준이 좌절하려는 그때였다.
“하나 항상 예외는 있는 법이지.”
고개를 떨구려는 그를 향해 장운이 말하며 웃었다.
실제로 예외는 존재하였으며 천하제일의 대장장이, 만철야장 공야월이 그런 경우가 아닌가?
“네?”
장운의 말에 그의 안색이 돌변하여 환해졌다.
“용봉지회 십육인에 들어 대금을 치르겠다는 원대한 포부는 들었소. 그러니…….”
장운이 초령검에 손을 가져다 대며 말을 이어나갔다.
“과연 십육인에 들 자격이 있는지 내 직접 시험해 봐도 되겠소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