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76화
파란을 일으키다(1)
‘반드시 보답을 하리라.’
두길준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비단 대금 문제만이 아니라 장운과 황금표국의 일행들은 가진 것도 없는 자신에게 몹시도 잘해주었으며 무엇보다도 그들 때문에 무공 실력이 훨씬 향상된 게 아닌가?
“좋은 자세입니다.”
장운은 그런 두길준의 자세를 칭찬하고는 두길준의 일행 자격으로 소림사 내부까지 진입할 수 있었다.
넓디넓은 천년 소림의 광활한 내부에 감탄할 틈도 없이 발 디딜 틈 없이 북새통을 이루는 인원 탓에 놀랄 따름이었다.
많은 이들이 입구부터 모이는 이유는 간단했다.
“용봉지회 개최에 앞서…… 무림맹의 맹주이신 천운학검 남일산 대협의 선언이 있겠습니다!”
현 무림에 있어 최강이자 검신 장인랑이 사라진 이후, 명실상부 천하제일검으로 추앙받는 사나이 남일산이 와 있었기 때문이다.
우와아아아!
그가 모습을 선보이자마자 장내는 열기로 인해 완전히 들끓고 말았다.
남일산은 현 무림에 있어 가장 인기가 많은 무인이자 온화한 성격과 공명정대(公明正大)한 인품으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오오, 저분이 바로 그…….”
“무림맹주의 용안을 드디어 보게 될 줄이야.”
“무림맹주께서는 무공뿐만 아니라 인품도 훌륭하시다지?”
실제로 많은 이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디 그뿐인가?
심지어 황금표국 내부 사람들도 칭찬을 거듭하였다.
장운은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답답한 심정이었다.
‘저 비겁한 놈이 추앙을 받고 있다니…….’
장운 입장에서는 그럴 만도 했다.
검신이었던 전생 시절, 저 비겁한 놈이 무림맹의 절정 고수들을 모두 이끌어 격돌한 결과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나?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도 모자랄 판에 인격자로서 추앙받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심사가 뒤틀리는 기분마저 들었다.
“……하여, 안타깝지만 저는 무림맹의 일이 바빠 바로 물러가야 하니 양해의 말씀을 구하면서…… 무림 동도 여러분들께서도 오늘을 열심히 즐겨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와아, 와아아아!
장운이 남일산을 향해 눈을 부라린 지 얼마나 지났을까?
그의 개최 선언이 끝나자마자 열띤 환호와 호응이 쏟아졌다.
장운은 그 모습을 보며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 참고 있지만…… 천운학검 남일산, 너는 네 죗값을 수십 배로 치르게 될 것이다.’
그의 결심은 절대로 거짓이 아니었다.
장운은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마음먹은 것을 모두 이루었으며 특히나 복수 부분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기에 남일산의 말로는 정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럼 용봉지회 개최를 공식적으로 선언하겠소이다!”
소림의 사대금강(四大金剛)들의 외침과 동시에 마침내 용봉지회가 개최되었다.
용봉지회가 시작된 이후, 남일산 때문에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던 장운이었으나 마음을 조금이나마 풀게 되는 계기가 있었다.
“예선 첫 번째 대결! 극쾌검문의 두길준 소협 대 정검파(正劍波)의 진정검객(眞定劍客) 곤유 소협은 앞으로!”
예선은 본선과 마찬가지로 일대일 비무로 되어 있었는데 두 사람이 호명되자마자 사람들은 극명하게 갈린 반응을 보였다.
“음? 어느 문파라고?”
“극쾌검문? 그런 곳도 있었나?”
“문파 이름만 보자면 살수 집단 같은데?”
“푸하하하! 예끼 이 사람아!”
두길준의 호명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비웃거나 딴짓을 하고 있었다.
이들의 반응은 당연했다.
극쾌검문은 이제 거의 잊혀진 이름이었기에 노련한 중진 고수가 아니라면 제대로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반면 두길준이 상대해야 하는 인물은 달랐다.
“와아아아! 정검파!”
“와, 곤유 소협! 다들 정검파 아시는구나. 그리 크진 않아도 배출하는 검객마다 모두 종전에는 절정의 경지에 도달하였다지!”
“진정검객 곤유 소협 정도면 오히려 본선에 어울릴 만한 무인이거늘.”
하필이면 두길준은 첫 대결에서 무척이나 유명한 유망주와 맞닥뜨리고 만 것이다.
하북성에서 정검파하면 크기는 작지만 배출하는 고수마다 믿고 보는 명문 중의 명문이었다.
대신 역사가 다소 짧은 관계로 예선부터 진출하게 되었다.
“불쌍하게 되었군.”
“누가 아니래?”
“첫판부터 진정검객이라니 말이야.”
백이면 백 모두가 다 두길준의 패배를 예상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자자, 혹시 저 비무 결과에 내기를 할 사람들이 있소?”
용봉지회가 인기가 많은 또 다른 이유.
그것은 비무 결과를 두고 삼삼오오 모여 내기가 가능하다는 점으로 술이나 여자 싫어하는 사람은 있어도 도박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고 그랬다.
예선전부터 내기와 도박이 횡행하고 있던 것이다.
“…….”
부유해 보이는 상인이 내기를 종용했지만 반응은 썰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무릇 내기란 것은 예측하기 어려워야만 인기가 끄는 법이다.
다들 진정검객 곤유에게 금자를 걸 것이 뻔하니 응하는 사람이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두길준의 승리에…… 금자 백 개를 걸지.”
믿을 수 없는 출자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당연히 금령공자 장운이었다.
웅성웅성!
다들 곤유의 승리만을 예견했기에 쭈뼛거리고 있다가 사람들은 이내 앞다투어 외쳤다.
“진정검객의 승리에 은자 열 개!”
“나도, 나도!”
“나는 곤유 소협의 승리에 금자 다섯 개를 걸지!”
그들은 장운처럼 한 방에 금자 백 개를 걸지는 못해도 소소한 양이나마 열심히 내기에 응하였다.
이들은 모두 노련한 노름꾼들로 장운을 향해 웬 호구가 왔냐는 눈빛이었다.
처음에는 다들 진정검객 곤유에게 걸 것이라 믿었기에 내기 자체가 성립되지 않으리라 잠잠했었다.
그러나 부잣집 호구가 금자 백 개를 출자한 순간 내기 성립은 물론이오, 배당 금자도 높아지기에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고 있었다.
“그, 금자 백 개? 그게 정말이오?”
용봉지회 내부에서 큰 줄기의 노름과 도박을 관장하는 흑방의 상인, 전광노인(錢狂老人)은 입을 떡하니 벌리고 말았다.
돈에 미친 노인이라 불리는 이자는 엄청난 금자를 현물로 보관하고 있었으며 이런 용봉지회나 다른 비무 대회를 전전하며 내기와 도박에 걸린 금자로 몸집을 불리는 인물이었다.
촤르륵!
장운은 더 말하지 않았다.
감우량에게 눈짓을 하자 감우량은 기다렸다는 듯이 금옥관의 재산에서 금자 백 개가 담긴 주머니를 제시하였다.
오오오!
주머니 사이로 황홀하게 비치는 황금빛에 많은 이들이 홀리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런 노름에서, 그것도 첫판에서 이렇게 큰 금액을 출자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분명히 말하지만…… 도중에 무르거나 다시 달라고 하면 안 되오.”
전광노인은 한참 어려 보이는 장운에게 당과를 파는 노인처럼 친절히 설명을 하였다.
혹시라도 뒤탈이 나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이곳은 삼엄한 소림사 내부가 아니던가?
“물론. 개평 달라는 소리도 안 할 테니 넉넉히 배당 금자를 계산해서 쳐주시오.”
장운의 말에 전광노인은 말없이 웃었다.
그 입꼬리가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
그 이후로 수십 명이 더 달려들어 두길준과 곤유의 대결 결과 내기의 판은 엄청나게 커지고 말았다.
‘어디서 큰 호구가 왔다!’
‘호구 냄새가 솔솔 나는군!’
‘보아하니 세상 물정 모르는 도련님 같은데 미안하게 되었소.’
전광노인을 비롯하여 날고 긴다 하는 모든 노름꾼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당연히 무명의 두길준이 아니라 진정검객 곤유에게 걸었다.
과연 결과는 어떻게 흘러갈까?
“비무 시작!”
비무장 아래서 이런 내기가 판을 치는 것을 모르는 두 사람, 두길준과 곤유는 마침내 비무에 응하였다.
뜻하지 않게 대형의 판이 되었고 많은 이들이 예선전 첫판부터 흥미로운 눈빛을 보내었다.
비무는 시작과 동시에 예상대로 곤유가 주도권을 잡는 흐름으로 이어졌다.
씨익!
곤유는 키가 그리 크지 않은 두길준을 내려다보며 씨익 웃었다.
‘이거 완전 애송이로군.’
곤유의 현재 수준은 일류 수준이었다.
자신의 기세에 위축이 되어 두길준이 움츠러든다고 생각했는지 벌써부터 승리를 예감했다.
채앵!
그리하여 가볍게 검을 뽑아 치명상은 입히지 말아야겠다는 아량을 생각하는 바로 그때였다.
투욱!
세상 요란하게 검을 뽑은 곤유와는 달리 산뜻하면서도 매우 간단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의 출처는 당연히 폭이 좁고 길이가 긴 두길준의 검이었다.
쾌검으로 유명한 극쾌검문의 오의를 그대로 따르는 두길준은 발검하자마자 잔뜩 방심한 곤유를 그대로 그어버린 것이다.
주르르륵!
순식간에 가슴팍의 옷이 잘려 나가고 피가 흐르자 곤유는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으악! 으아아아악!”
처음에는 갑자기 일어난 사태에 비명을, 그다음에는 서서히 몰려드는 거대한 고통에 비명을 지른 까닭이었다.
경악스럽게도 두길준은 뛰어난 고수인 진정검객 곤유를 단 일검 만에 패퇴시킨 것이다.
‘용봉지회에 참가하기 이전보다…… 내 실력은 일취월장하였다.’
두길준은 승리의 기쁨보다도 오히려 장운 일행에 대한 고마움이 먼저였다.
실전을 겪어보니 깨달았다.
자신은 이전과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하였으며 특히 실전 감각 부분에서는 걱정이 없겠노라고.
실제로 이전의 자신이었다면 노련해 보이는 진정검객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했으리라.
승부의 결과는 단순히 무공과 내공의 고하로 나뉘지 않기 때문이었다.
“으음? 내가 이긴 게 아닙니까?”
두길준은 아무리 이겨도 승리 선언이 떨어지지 않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말에 비무의 진행을 맡은 소림의 일대제자가 화들짝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그, 극쾌검문의 두길준 소협 승리!”
얼마나 검이 빠르고 단번에 승부가 갈렸던지 오죽하였으면 소림의 일대제자마저 경악하고 있었다.
“……!”
사람들의 반응 또한 마찬가지였다.
예선 첫 번째 대결부터 놀라운 결과가 나오자 사람들은 제대로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특히 두 사람의 비무에 내기를 건 사람들은 말은커녕 숨조차 쉬지 못하는 중이었다.
어안이 벙벙하다 못해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허억! 억!”
“안 돼!”
“내, 내 전 재산이…….”
“마누라 몰래 감춰둔 내 비자금이!”
여기저기서 패배자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으나 장운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심지어 기뻐하지조차 않았다.
‘두길준은 최소 십육인, 아니, 대운이 따른다면 우승까지도 바라볼 수 있는 실력자다.’
그러니 한낱 예선이 대수겠는가?
장운이 금자를 백 개나 출자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렇다고 너무 많이 출자하면 꾼들이 냄새를 맡고 판이 엎어질지 모르니 적당히 순진한 한량 도련님 행세를 했던 것이다.
“전광노인이라고 그랬나? 내가 이긴 것 맞지 않소? 배당 금자를 돌려주시오.”
장운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고.
처억, 척!
흑방의 소인배적 생리를 잘 알고 있는 장운은 응운곤과 천세은을 시켜 전광노인의 퇴로를 차단했다.
혹시라도 제대로 배당 금자를 치르지 않고 도망갈 경우 본때를 보여주리라 다짐해서였다.
“크, 크흑, 크흐흐흑! 첫판부터 이렇게 크게 망하다니!”
금자에 미쳐서 전광노인이라 불리는 흑방의 전주(錢主)는 눈물보다 진한 피눈물을 흘리며 금자가 담긴 주머니를 여러 개 내밀었다.
배당률이 엄청나게 높았던 결과, 무려 금자 오백 개로 되돌아왔던 것이다.
‘후후후, 이왕 왔으니 빈손보다는 제대로 한탕 벌어가야지.’
장운은 금자 주머니를 몽땅 챙기며 득의양양한 얼굴로 말하였다.
“한 판 졌다고 장사 접는 것은 아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