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78화
파란을 일으키다(3)
동천은 파리한 안색과는 달리 다소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무시무시한 쾌검을 휘두르는 시주께서 손속에 아량을 베풀었다.’
동천도 직감했다.
두길준이 정녕 피를 보고자 하였다면 어깨가 아니라 자신의 가슴이나 머리를 노렸을 것이다.
한데 그러지 않고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며 승부만 갈랐다.
그러니 어찌 고마움을 모를 수 있으랴?
‘드디어 통했다!’
두길준은 그의 패배 선언에 뛸 듯이 기뻐하였다.
예선에서는 이겨도 무던하던 얼굴이었는데 처음으로 격한 감정을 표현하였다.
동천만 한 고수에게 자신의 단점을 극복하였으니 감개가 무량하였다.
“그, 극쾌검문의 일검일섬 두길준 소협 승리!”
이번 용봉지회를 진행하고 있던 소림의 관계자는 유망주이자 촉망받는 후기지수인 나한소검 동천이 패배하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어디 그뿐인가?
우와아아아아아!
수백여 명의 관중들로부터 환호성과 함성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비교적 무명 고수였던 두길준이 소림의 일대제자를 꺾었다는 것은 파란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기재다! 기재가 나타났다!”
“전혀 모르는 문파에서 이런 고수가 나오다니!”
“흥, 어린 친구들은 모르겠지만 극쾌검문은 매우 유서 깊은 전통의 명가였다고.”
“오! 극쾌검문 잘 아시는구려. 하긴, 아는 사람은 다 알지요.”
사람들은 이제 두길준의 사문과 별호를 연호하며 그 어느 때보다 격한 응원을 하고 있었다.
고집이 센 무림인들의 인정을 받게 되었으니 놀라운 변화였다.
‘뛰어난 고수를 상대로 내 단점을 극복했다!’
두길준은 자신의 이름과 문파를 알리는 것보다 성과, 즉 장운 일행과 비무를 벌이며 내내 연습하던 부분에서 빛을 발하자 크나큰 기쁨에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
더 고무적인 것은 따로 있었다.
‘이제 장운 소협과 약속했던 용봉지회 십육인에 들기 위해서는 단 한 걸음만 남았다.’
본선 대결에서 한 번만 더 승리를 거두게 된다면 본래의 목표였던 십육인에 확정이 되었다.
지금 일검일섬 두길준은 완전히 상승세였으며 나한소검 동천마저 꺾었으니 견제해야 할 대상은 오로지 단 한 명.
저 먼발치에서 두길준을 바라보고 있는 창천폭뢰 남궁벽 한 사람뿐이었다.
한편 그 시각.
“억!”
벌떡 기립한 채 그대로 굳어버리는 인물도 존재하였다.
그 인물은 당연히 전광노인과 그 일행들이었다.
특히나 전광노인은 어찌나 사색이 되었던지 송장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반면 장운은 여유가 넘쳤다.
“후후후, 이거 또 미안해서 어쩌나?”
장운과 그 일행들은 두길준의 성장과 성공에 기뻐하면서도 황금표국의 일원으로서 대목에 막대한 수익을 올려 가슴이 벅찬 상황이었다.
두길준도 두길준이지만 장운 일행에게 있어 수익은 곧 표국이 돌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럼…… 감사히 받겠소이다.”
장운은 받은 그대로 돌려주었다.
두길준이 만만찮은 소림 일대제자에게 걸렸을 때 전광노인이 약을 올린 것처럼 그대로 아니, 수십 배로 돌려주었다.
“개평은 필요 없다고 약조를 하셨고…….”
툭툭!
아버지인 장천호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전광노인의 어깨를 두드리며 지나가는 게 아닌가?
“남자답게 그대로 앞으로 가시면 되겠군.”
그와 동시에 한 곳에 쌓아놨던 내기 출자금을 모두 움켜쥐려는 그때였다.
“이런 젠장할!”
“다 멈춰!”
“내 금자에 손이라도 하나 까딱했다간 다 죽여 버리겠어!”
하류 인생, 인간 백정들만 모인다는 흑방 뒷 세계에서도 금자 놀이를 하는 놀이꾼이니 그 성정이 어디 갈 리 없었다.
자신들이 패배했음을 깨닫자 당장 품에 숨긴 단도와 단검을 들어 날뛰려고 하였다.
그러나 상대를 골라도 한참을 잘못 골랐다.
씨익!
장운은 환하게 웃더니 이윽고 일행들에게 눈짓을 했다.
이런 얼간이들에게 손을 쓰는 것 자체가 창피한 일이었기에.
파아앗!
다 나설 필요도 없이 천세은이 가볍게 암기를 뿌린 결과!
“끄아아악!”
“앗, 따거!”
“사, 살려주십시오!”
호흡 한 번 돌릴 시간에 곧바로 곡소리가 흘러나온 것이다.
이들의 무공은 전형적은 이류, 삼류들로 천세은이 아니라 일반 표사 한 명 제대로 감당하지 못할 실력이었기에 당연했다.
“도련님, 목을 칠까요?”
반골 응운곤이 물었다.
“히이이익!”
“허억!”
그 말을 들은 전광노인과 흑방의 양아치들은 기겁을 하며 어깨가 위축되고 말았다.
자기네들 세계에서는 제법 난다 긴다 하지만 무림인, 그것도 뛰어난 절정 무림인을 만나니 세상 무서운 줄 깨달은 까닭이었다.
“그럴까?”
더 무시무시한 것은 장운의 반응이었다.
응운곤의 말에 일리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니 전광노인과 그 일행들은 미칠 지경이었다.
“도련님! 소협! 살려주십시오!”
“저 같은 늙은이를 죽여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들은 울며불며 눈물 콧물까지 쥐어 짜내었다.
“무슨 소용이라니. 적어도 쓰레기 몇 개를 치웠으니 세상이 좀 더 깨끗해지지 않을까?”
장운은 무척이나 논리적인 말로 저들을 다시 한번 미치게 만들었다.
“그, 그런…….”
“크헝헝! 살려주십시오.”
말로 설득되지 않으니 남은 것은 사정을 봐달라며 떼를 쓰는 것뿐이었다.
그 모습을 한 차례 한심하게 바라보던 장운.
“그래, 개평이라고 치지.”
장운은 한숨을 내쉬며 손짓을 했다.
얼른 꺼지라는 신호였다.
사실 이들을 살려두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곳은 불가인 소림사의 한복판이다.’
소림의 한복판에서 피를 흘리며 살생했다간 반발이 있을지도 몰랐다.
물론 장운의 실력 정도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수 있지만 말이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들은 죽었다 간신히 살아났음을 직감하고는 미친 듯이 고개를 숙였다.
동시에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며 미친 듯이 앞만 보고 뛰어가 퇴장하였다.
“덕분에 잘 놀았네.”
장운은 멀어지는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든 다음, 일행들과 함께 이천 개에 가까운 금자를 쓸어담았다.
‘이 정도면 대목 특수를 누려도 아주 아주 제대로 누렸다.’
결국 장운의 판단은 대성공이었다.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저 평범하게 상단이나 가문을 호위하였다면 많이 벌어봤자 금자 이삼백 개에 불과했을 테니까.
이 엄청난 성과에 기뻐야 하는 게 당연한데 장운은 아직까지 비무장 위에서 환호를 받고 있는 두길준을 바라보았다.
“흐으음.”
두길준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자 모두가 기뻐하고 있는 반면에 장운 혼자서 무척이나 진지한 표정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세요?”
천세은이 다가와 물었다.
분명 일반인과 다른 비범한 시야가 존재하리라 믿은 것이다.
“조금 불길해서 그렇습니다.”
“네?”
“일이 너무 잘 풀리잖아요.”
장운의 당연한 말에 천세은은 약간 어이없어 하였다.
“잘 풀리면 좋은 거 아닌가요?”
“좋죠. 우리나 두길준 소협에게는 좋은데…….”
장운은 비무장 위에 누각, 그것도 가장 높은 상위의 층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명문 정파들에게는 좋지 않으니 문제란 말이죠.”
* * *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부재중인 무림맹주 천운학검 남일산을 대신하여 자리한 무림맹의 군사, 경천지낭(驚天智囊) 제갈성천이 분노로 인해 눈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의 분노는 합당해 보였다.
용봉지회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한 번씩 돌아가며 개최를 하나 결국 최종 관리 및 흥행을 시켜야하는 것은 무림맹의 소관이었다.
한데 개최를 맡은 소림사의 후기지수, 나한소검 동천이 패배하고 그를 대신하여 올라온 이가 몰락한 극쾌검문의 무명 고수일 줄이야!
‘그러지 않아도 이번 용봉지회에 화산파의 그 아이가 나오지 않아 분통이 터지던 차였다.’
제갈성천은 지난 일을 회상했다.
이번 용봉지회는 이례적으로 소림이 맡은 만큼 그 어느 때보다 크게 판을 벌이려고 마음먹었다.
더군다나 자신이 무림맹 군사가 된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용봉지회였기에 흥행만이 자신의 평판을 올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미안하네. 이번 용봉지회에 관아는 불참할 걸세.
화산파의 최고 장로 중 하나인 소요자가 자신의 선에서 딱 잘라 거절한 것이다.
이에 무림맹과 제갈성천이 거의 빌다시피 성토하였지만 소요자를 설득할 수는 없었다.
시작부터 삐걱되었지만 제갈성천은 그러려니 했다.
최고의 유망 후기지수인 일검매향 예천관은 없어도 그에 준하는 창천폭뢰 남궁벽을 비롯하여 나한소검 동천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 화가 나는 건…… 앞으로 사람들은 우리 무림맹 소속의 고수를 응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듣도 보도 못한 놈을 응원하게 될 것이오.”
하늘이 놀랄 만큼의 꾀를 지녔다는 경천지낭 제갈성천은 암울하게 말을 하였다.
“게다가 나한소검이 졌으니 두길준, 그놈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창천폭뢰 남궁벽밖에 없다는 소리지요.”
현재 여러 모로 문제가 많았다.
무림맹의 이득과 조합원들의 이익, 그리고 용봉지회 전체의 흥행을 위해서는 두길준이 빠지고 무림맹 입맛에 맞는 후기지수들이 득세해야 하는데 정작 두길준을 이길 고수가 하나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군사님 말이 옳습니다. 남궁벽, 그 아이를 제외하고는 다들 동천만도 못한 자들이니…….”
무림맹의 일원들은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혹시라도 제갈성천의 심기를 건드릴까 봐 극도로 조심하면서.
“군사님, 뭘 그리 망설이십니까? 두길준의 다음 상대로 남궁벽을 붙이면 되지 않습니까?”
무림맹의 일원이 아니라 개최를 맡은 소림의 인원이 슬쩍 의견을 제시하였다.
확실히 나쁘지 않은 처방이었다.
그러나 맹점이 존재했다.
“그러다가…… 일검일섬 두길준 그놈이 급기야 남궁벽도 이기면 어떻게 될 것 같소?”
제갈성천은 흡사 짐승이 으르렁대는 목소리로 까칠하게 대답하였다.
그의 말이 옳았다.
만약 천의 하나 만에 하나 두길준이 남궁벽을 이긴다면, 그것도 결승이나 준결승이 아니라 초반 대전에서 그를 이기면?
“그때는 역대 최악의 용봉지회라 회자될 것이고 그 용봉지회의 개최를 떠맡은 소림은 물론이고 맹주님을 대신하여 총지휘하고 관할한 내 기량을 의심하게 될 것이오!”
제갈성천이 부들대며 외쳤다.
머리가 좋은 놈들 중 인성이 어긋난 자들의 공통된 특징이 있었다.
어떻게든 자신의 경력에 오점을 남기고 싶지 않으며 모든 이로부터 우러러 받들어져야만 직성이 풀린다는 점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옳거니!”
화를 내던 제갈성천이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 답은 간단했다.
‘어떻게든 남궁벽이 이길 수 있도록 만들면 되는 게 아닌가?’
매우 사악하고 비겁한 짓이었지만 역대 용봉지회 역사상 없던 일도 아니었다.
도리어 무림맹의 입김이 닿지 않은 용봉지회가 없을 지경이었다.
“다음번 대결에서 두길준과 남궁벽을 붙이게.”
제갈성천은 비무 진행을 맡은 소림의 인원에게 고하였다.
‘두길준,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네. 나를 원망하기보다는 몰락하여 명성도 인지도도 없는 네 문파를 원망하게나.’
두길준을 방해하기로 마음먹은 경천지낭 제갈성천.
과연 그는 자신의 뜻대로 모든 걸 관철시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