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79화
변수의 변수(1)
“으하하하핫!”
“축하합니다!”
“최고였소이다!”
무림맹과 군사 경천지낭 제갈성천의 꿍꿍이도 모른 채 두길준의 승리 축하 연회가 한창이었다.
오늘 두길준의 승리를 축하하며 장운 일행들이 모두 모여 자리를 만든 것이다.
“이제 한 번만 더 이기면 십육인 확정입니다.”
두길준은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말하였다.
“십육인이라니.”
“그 이상을 보셔야 해요.”
“맞습니다. 우승을 바라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소박한 두길준의 바람에 응운곤과 천세은 등 여러 표사들이 펄쩍 뛰었다.
실제로 현재 일검일섬 두길준은 창천폭뢰 남궁벽에 이어 두 번째 우승 후보로 부각되는 중이었다.
이에 장운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광노인 일행과 본선 첫 대결에서 출자금 모두 걸고 내기를 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만약 오늘 분위기였다면 두길준에게 출자하는 이들이 많았을 테고, 그렇다면 장운은 오늘 만한 엄청난 이익을 보지 못하였을 테니까.
“여기 모인 분들의 말이 맞소, 두 소협. 이제 보다 더 높은 곳을 바라봐야 할 때요.”
장운도 두길준의 덕을 보아 단단히 한몫을 챙겼기에 그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두길준은 다른 일행과 달리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내일 본선 두 번째 대결이 열리니 최고의 몸 상태를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곧 연회 자리를 파할 테니 자기 관리에 힘을 써야 합니다. 외람된 말입니다만…… 이상하게 내 느낌이 좋지 않단 말이지. 그러니 두 소협께서는 굴러다니는 낙엽도 조심하셔야 하고 연회가 끝나는 대로 곧장 숙소에서 숙면을 취하시길.”
연회를 끝내기에는 아쉬운 시간이었지만 두길준을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
장운은 거듭 신신당부를 하였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두길준은 장운의 말을 철석같이 믿으며 연회가 마치자마자 발걸음을 돌렸다.
용봉지회 참가자인 두길준은 이들과 숙소가 달랐기에 혼자 가야 했던 것이다.
“같이 가는 것이 어떻소?”
장운이 제의를 하였다.
“에이~ 아무리 제가 어리숙해도 그 정도 바보 천치는 아닙니다.”
이에 두길준은 손사래를 쳤다.
그동안 받은 것만 해도 미안한데 배웅이라니, 황송할 지경이었다.
“좋소이다. 아마…… 내일 두 소협의 상대는 남궁벽이 될 것만 같단 말이지. 조심해야 할 것이오.”
두길준은 장운을 완벽하게 신뢰했기에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만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으나 장운의 말을 믿어 손해 본 기억이 없기에 신뢰는 맹신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네, 그럼 내일 뵙지요.”
그렇게 두길준은 장운을 보내고 홀로 숙소로 걸어갔다.
장운의 우려와는 달리 별일이 생기진 않았다.
‘하긴, 생각해 보면 이곳은 천년 소림의 내부인데 변고가 일어나려고?’
숙소의 건물이 눈에 들어오자 두길준의 마음은 다소 느슨해졌다.
그때 시각이 대략 저녁이 조금 지난 시간이었는데 아직도 해가 완전히 떨어지지 않아 숙소 바깥에서 돌아다니는 이들이 많을 지경이었다.
두길준은 마침내 숙소 내부로 들어왔다.
“휴~ 이제 한숨 돌렸군.”
숙소까지 안전하게 도착을 했으니 누군가의 기습이나 우려했던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을 공산이 컸다.
“끄응, 끄으응.”
바로 그때였다.
숙소 내부 가마솥이 있는 곳에서 낑낑대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음?’
두길준은 애써 무시하고 자신의 방에 가려다가 소리의 근원을 바라보니 어린 동자승과 나이가 지긋한 스님이 낑낑대며 커다란 무쇠솥을 옮기고 있었다.
보아하니 두 사람은 숙소 내부 식사 조리를 담당하는 인원 같았다.
용봉지회 참가자와 동행자만 해도 어마어마한 숫자이니 그 음식을 준비하느라 많은 인원이 필요했던 것이다.
흡사 손자와 할아버지 같은 동자승과 노스님은 땀을 뻘뻘 흘려가며 무거운 솥을 옮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저런! 제가 좀 도와도 되겠습니까?”
두길준은 다른 곳도 아니고 외부도 아니며 숙소 내부였기에 완전히 안심을 하며 다가갔다.
“스님! 무림인께서 오셨습니다.”
“조용히 하거라.”
방방 뜬 어린 동자승과 달리 노스님은 괜찮다며 베적삼이 다 젖도록 무쇠 솥을 옮기려 했다.
‘아이고, 안타까워라.’
두길준은 두 사람을 보며 어린 시절 자신과 자신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그 때문에 인정을 베풀었다.
“이 정도는 제게 별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외치며 그들의 무쇠솥을 번쩍 들었는데!
솨아아아!
경악할 만한 일이 벌어졌다.
돌연 그 무쇠솥에서 어떤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억! 어어억!”
두길준은 그제야 자신이 꼼수에 당한 것을 알아차리고는 무쇠솥을 옆으로 치우고 얼굴을 비볐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이 무쇠솥에 풀어놨던 무언가가 자신의 얼굴을 덮쳤고 그것을 코며 입으로 빨아들였던 까닭이다.
휘청!
그 연기는 진정으로 지독했다.
두길준과 같은 절정의 고수마저도 한순간에 힘이 빠질 정도였다.
“이거 미안하게 되었군.”
노쇠해 보이던 노스님이 돌연 허리를 펴고 일어났다.
사실 그의 정체는 바로 경천지낭 제갈성천이었다.
그는 변장을 풀지 않고 정체를 탄로 하지도 않은 채 점점 기운이 빠지는 그를 향해 말했다.
“으으으, 아, 안 돼…….”
어지러움증과 동시에 점점 더 의식이 멀어져가자 두길준은 애써 발버둥을 쳤다.
아니, 발버둥을 치려했지만 그의 움직임은 잠꼬대에 지나지 않았다.
벌써부터 약의 기운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그으으으, 미, 미안, 자, 장운, 소……협…….”
두길준은 혼절하는 그 순간까지도 자신보다는 장운과 황금표국의 인원을 떠올리며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됐다!’
제갈성천은 자신이 직접 나선 일에서 성공을 거두자 쾌재를 내지르며 기뻐하였다.
이윽고 두길준이 완전히 정신을 잃은 것을 확인하고는 중얼거렸다.
“걱정 마시게. 자네가 마신 것은 독이 아니라 몸에 좋은 ‘무색약무(無色藥霧)’란 것이니.”
제갈성천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실제로 무쇠솥에 극독을 준비했다면 그 지독한 냄새와 성질 때문에 아무리 경험이 일천한 두길준이라 하더라도 낌새를 알아차렸을 것이다.
하늘을 놀라게 하는 꾀주머니, 경천지낭이 준비한 것은 독이 아니라 반대로 요즘 고관대작들에게 인기로 떠오르는 무색약무란 물건이었다.
‘이 무색약무는 형상도 냄새도 나지 않지만 몸의 긴장을 완화시켜 주고 한순간에 편히 잘 수 있도록 만들어진 연기다.’
냄새를 맡자마자 나른한 느낌과 동시에 불면증에 시달리는 많은 이들의 시름을 낳게 해준다고 하여 약의 구름이라는 약무가 붙었다.
대신 절정 이상 수준의 무인이 이 무형약무를 맡을 경우 부작용이 생기는데 그것은 바로…….
“오감(五感)이 둔해진다는 단점이 있지. 그래도 하루 이틀 잘 먹고 잘 자고 나면 본래의 상태로 돌아올 테니 편히 주무시게.”
제갈성천은 혼절하여 듣지도 못하는 두길준을 향해 연신 떠들어대고 있었다.
무색약무는 일반인에게는 몸의 긴장을 완화하고 편안히 해주는 좋은 효과가 있는 반면에 오감이 예민하여 극도로 긴장해야 되는 절정 이상의 무인에게는 반사신경과 오감의 민감도를 떨어뜨리는 부작용이 존재했다.
그리고 잠이 많아지며 심할 경우 이틀 연달아 자는 증상마저 보고되는 판이었다.
즉, 내일모레 바로 싸워야 하는 자에게는 극독 이상의 물건인 것이다.
“자아, 그럼 즐거운 마음으로 내일을 기다려볼까?”
제갈성천은 두길준을 숙소 침상에 내려다 주고는 환하게 웃으며 발길을 돌렸다.
* * *
“곧이어 용봉지회 본선, 두 번째 대결이 시작되겠습니다!”
마침내 본선 둘째 날이 밝았다.
“으음? 아직도 두 소협은 안 보이는데?”
두 번째 대결이 시작되고 있는데 두길준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두길준의 이름이 호명되지 않고 있기에 다행이라 여겼고 장운 일행들이 조마조마하려는 찰나였다.
“다음 대결입니다. 남궁세가의 창천폭뢰 남궁벽 소협 대…… 극쾌검문의 일검일섬 두길준 소협!”
용봉지회 태풍의 눈과 같은 두 인물의 별호와 이름이 호명되자 장내는 또 한 번 뒤집어지고 말았다.
우와아아아!
“대단하군!”
“창천폭뢰 대 일검일섬이라니.”
“에이~ 아무리 그래도 남궁세가에는 안 되지.”
“모르는 말씀.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아는 법이라니까?”
관중들은 각자 저마다 관망을 내어놓으며 용봉지회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들의 머리 위로 높은 누각에서 즐거워하는 이도 존재했다.
“후후훗.”
그는 당연히 무림맹의 군사인 제갈성천이었다.
콧노래를 부르며 즐거워하는 게 아닌가?
급기야는.
“남궁세가는 제게 빚을 졌으니, 기억하셔야 합니다?”
남궁세가의 인원에게 다가가 슬쩍 피력하기까지 했다.
즉, 자신이 뒤에서 손을 썼음을 구태여 감추지 않았다.
적어도 무림맹 소속의 문파와 가문에게만큼은.
이 정도의 수완이 되는 작자기에 소림사 내부에서 과감한 행동을 취할 수 있던 것이다.
“허허헛, 여부가 있겠습니까?”
남궁세가도 완전히 깨끗한 입장은 아닌지라 군자처럼 웃으며 대꾸를 하고 있었다.
“흥, 저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이겼을 겁니다.”
의외로 창천폭뢰 남궁벽만이 발끈하며 비무장 위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떻게 보면 최고의 수혜자라 볼 수 있는데 그가 이렇게 발끈하는 것은 청렴결백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해해 주십시오, 군사님. 워낙 자존심이 강한 분이시라…….”
남궁세가 인원들의 말이 옳았다.
너무나도 콧대가 높고 자존심이 세었기에 하는 소리였다.
“암요. 무릇 창천남궁의 가주님이 되시려면 저 정도 포부는 있어야지요.”
남궁벽의 치기 어린 반응에도 불구하고 제갈성천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실실 웃으며 비무장을 연신 주목하고 있었다.
무형약무로 인해 완전히 곯아떨어진 두길준이 올까 안 올까 그거에만 초점을 맞춘 까닭이었다.
“일검일섬 두길준 소협? 안 계십니까?”
자신의 비무 차례가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두길준이 비무장 위로 올라오지 않자 소림의 인원이 계속해서 그를 찾았다.
반면에 남궁벽은 미리 올라와 그답지 않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팔짱을 끼고 있었다.
본래의 그였다면 자신이 겁나서 안 온 것이라 입을 털었겠지만 모든 연유를 알고 있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필시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해!’
한편 장운은 두길준이 계속 안 보이니 그를 찾아가야 하나 싶었는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으으, 으으으!”
반대편에서 오감의 감각이 떨어진 두길준.
특히 시각이 일시적으로 극도로 퇴화되어 벽을 짚고 올 정도였다.
그는 비틀거리고 휘청일지언정 절대로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깨문다는 심정으로 이 비무장까지 걸어온 것이다.
“두 소협!”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장운이 소리쳤다.
‘이 천벌 받을 새끼들!’
장운은 부들거리며 주먹을 꽉 쥐었다.
평소답지 않게 늦은 두길준과 왠지 모르게 의기소침한 남궁벽을 보며 대강의 전후사정을 유추할 수 있었다.
파아아앗!
장운은 출전 외인은 절대로 출입할 수 없는 공간을 뛰어넘었다.
오로지 두길준을 위해서였다.
“그만하시오. 지금 몸 상태는 절대로 출전을 해서는 안 되오.”
장운은 소림의 인원들이 달려들기 전에 두길준을 붙잡았다.
소란을 일으키는 것보다도 두길준의 안전이 우선이니 말이다.
“장운 소협의 말이 옳았습니다. 저는 너무나 철이 없고…… 무지하고 어리숙한 놈입니다.”
두길준은 스스로에게 잔뜩 실망하며 무형약무로 인해 잘 보이지 않은 눈을 감았다 떴다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저에게도 한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두길준은 자신을 만류하는 장운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가 장운을 다독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것은 바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