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80화
변수의 변수(2)
“두 소협!”
장운은 끝까지 그를 만류하려고 하였지만.
“용봉지회 참가자가 아니라면 이곳까지 올 수 없습니다!”
어느새 그의 주위에는 소림사의 무승(武僧)들이 가득 메워 포위하고 있었다.
장운이 조금만 더 소란을 피우게 된다면 무력을 행사할 기세였다.
“지금 몸 상태로는 절대 이길 수 없으니 돌아오시오!”
장운은 마지막으로 외쳤다.
두길준이 의지를 보였지만 결과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더욱이 창천폭뢰 남궁벽은 지난 일로 앙심을 품고 있기에 적당히 봐줄 위인이 아니었다.
“이기려고 가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최선을 다하기 위해 가는 겁니다.”
두길준은 마지막으로 그 말을 남기고 힘을 쥐어짜 내 벌떡 비무장 위로 올랐다.
와아아아!
이대로 오지 않을 줄 알았던 일검일섬 두길준이 비무장 위에 오르자 관중들은 환호를 내비쳤다.
앞서 장운이 잠깐 소란을 떨었다고 하나 워낙 많은 군중들이 밀집해 있었기 때문에 소란은 금방 묻히고 말았다.
“참가자를 호위하는 자격으로 왔나 본데 더 소란을 일으킨다면 퇴장 조치를 하도록 하겠소이다.”
소림 내부의 경비를 맡은 일대제자, 동명이 엄격한 얼굴로 고하였다.
“저는 섬서의 금령공자 장운이라고 합니다. 더 이상 소란을 피우지 않겠습니다.”
두길준이 결국 비무장 위에 오르자 장운은 단념하고는 양손을 들었다.
그 대신 하나를 부탁했다.
“대신…… 두 소협의 비무가 끝날 때까지 여기 머물도록 해주십시오.”
“뭐?”
“두 소협은 가족이나 문파의 어른도 없이 혼자 참가했습니다. 그러니 혹여 그가 잘못되거나 쓰러졌을 때 책임질 사람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장운이 논리적으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동명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볼 때에도 남궁벽의 승리가 확실해 보이니 뒷일을 감당할 사람이 필요하다 여겼다.
“알겠소이다. 대신, 두 소협의 비무가 끝나는 대로 곧장 퇴장해 주셔야겠습니다.”
“약속하지요.”
장운은 그렇게 말하며 노심초사한 심정으로 전방을 바라보았다.
아직 오감의 감각과 더불어 졸린 기운이 가지 않은 채 넋이 나간 두길준의 얼굴과 흥미롭다는 듯 어딘가 뒤틀린 미소를 짓고 있는 남궁벽이 보였다.
[그딴 꼴을 하고서 여기까지 기어왔군. 나는 봐주지 않는다. 죽고 싶지 않으면 내려가는 게 좋을 텐데?]
남궁벽은 비무 시작이 호명되기 전, 마지막으로 아량을 베풀었다.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길준은 전음을 못 들은 척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였다.
“비무 시작!”
결국 야속하게도 본선 두 번째 비무의 시작이 선언되었다.
파아아앗!
비무 시작이 떨어지자마자 두길준은 있는 힘껏 첫 일격을 휘둘렀다.
극쾌검문의 방식대로, 그가 여태껏 고수해 왔던 승리의 공식대로 쾌검을 휘둘렀는데 이게 웬걸?
“풋! 어딜 휘두르는 거야?”
남궁벽의 비웃음이 들려왔다.
두길준은 상징하는 폭이 좁고 길이가 긴 검은 남궁벽이 아니라 그가 서있는 자리에서 한 뼘이나 떨어진 곳을 허망하게 스쳤던 것이다.
한 뼘의 차이가 크지 않은 것처럼 보여도 이들과 같은 절정 고수에게 있어서 어마어마한 차이였다.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병신이 나를 이기겠다고?’
이런 두길준의 분전에 웬만한 사람은 감동을 받거나 온정을 베풀겠지만 남궁벽은 오만함의 결정체나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두길준의 열정이 자신을 우습게 보는 것이라 믿으며 분통을 터뜨렸다.
-창천낙뢰(蒼天落雷)!
남궁벽은 이를 갈며 창천벽뢰검법의 절초를 휘둘렀다.
오감의 감각이 쇠퇴하여, 특히나 시각이 절반도 돌아오지 않은 자에게 휘두르는 공격치고는 너무나 과한 검이었다.
채앵!
그래도 두길준은 두길준이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는다는 심정으로 검을 들어 간신히 방어를 해냈다.
와아아아아!
몸이 좋지 않음에도 분전을 펼치자 관중들은 환호를 내질렀다.
“역시 두길준은 자격이 있다.”
“맞아. 몸 관리를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실력은 진짜라니까.”
“앞서 취했던 행동들은 모두 연극 아니었나?”
이번 용봉지회 최고의 후기지수라 불러도 과언이 아닌 창천벽뢰 남궁벽을 상대로 일 합을 주고받자 두길준의 실력은 진짜배기라며 칭송이 자자했다.
심지어 몇몇은 장운과 두길준이 벌였던 일을 보고도 모두 연극이라 믿을 정도였다.
“…….”
반면 장운은 홀로 기뻐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 공격에 맞아 쓰러졌어야 했다.’
그의 기준은 조금 달랐다.
장운은 지난번의 일을 통해 남궁벽의 기질을 잘 알고 있었다.
첫 공격에 쓰러져 승패가 정해졌다면 오히려 더 다치지 않고 끝나니 두길준 입장에서는 행운이라 볼 수 있었다.
한데 어설프게 더 버텨서 억눌린 폭력성을 가진 남궁벽의 기질을 건드렸다간 이내 폭발하고 말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머저리 같은 놈이!”
남궁벽은 자신의 공격이 막히자 이내 분통을 터뜨리며 사정없이 검을 휘둘렀다.
-벽천광폭(碧天狂暴)!
-창천뇌우(蒼天雷雨)!
급기야 창천벽뢰검법 중에서도 위력이 강한 초식을 연달아 연환으로 펼치며 두길준을 압박해 나갔다.
“크으읍!”
제아무리 두길준이라고 해도 눈이 잘 보이지 않으며 전력의 절반도 되지 않은 힘으로 대항할 수 없었다.
-분광회천(分光回天)!
결국 그가 취할 수 있는 것이라곤 최후의 방어 수법밖에 없었다.
파바바밧!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며 몸을 회전시켜 욱여넣기로 남궁벽의 연환 초식에서 벗어났다.
주르륵!
그사이, 이미 두길준의 전신은 피투성이가 되었으며 머리와 옷은 넝마주이가 된 지 오래였다.
그대로 패배 선언이 떨어진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었다.
“감히 피해?!”
이번에도 자신의 공격이 빗나가자 남궁벽은 우악스러운 표정으로 두길준을 바라보았다.
한데 아직까지도 두길준의 두 눈은 죽지 않고 총명히 빛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두길준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급기야는.
“하아아압!”
최후의 역전을 위해 전력을 다한 공격을 펼쳤다.
-비천검광극(飛天劍光極)!
사력을 다한 두길준의 극상의 쾌검.
이는 이전의 상대인 나한소검 동천을 쓰러뜨린 강력한 일격이기도 했다.
파아아아앗!
두길준은 오히려 시야가 방해가 된다고 판단하여 두 눈을 감은 채로 오로지 감각만을 믿은 채로 검을 휘둘렀다.
그 검은 어찌나 빨랐는지.
움찔!
상대를 하고 있던 남궁벽조차 한 차례 몸을 움찔할 정도였다.
어디 그뿐인가?
나름의 성과도 달성하였다.
서걱!
두길준은 손에 느껴지는 감각에 찰나의 순간에도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손에 무언가 걸렸다는 것은 공격에 제대로 들어갔다는 뜻이었으니까.
하지만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이런 고얀……!”
안타깝게도 사력을 다한 두길준이 벤 것은 남궁벽의 무복 끝자락에 불과했다.
물론 어깨도 스친 까닭에 무복이 형편없이 잘려 나가고 어깻죽지에는 피도 흘렸지만 상처라고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였다.
즉, 도리어 남궁벽의 성질만 돋우는 형태가 되고 만 것이다.
파앗, 팟!
남궁벽은 잔뜩 흥분하여 맹렬히 검을 휘둘렀다.
두길준은 최후의 공격을 토해내느라 거의 탈진에 가까운 상태였고 그 사납고도 맹렬한 공격을 받아내기 역부족이었다.
투욱!
심지어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하고 남궁벽의 공격에 의해 검을 떨구기까지 했다.
안타깝게도 온몸에 힘이 다 빠진 이유였다.
무형약무에 취하지만 않았더라도 그의 일격은 남궁벽의 상체를 완벽히 초토화시켰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여기까지인가?”
“역시 창천폭뢰에게는 안 되는군.”
“그러게 말이야. 애초에 창천남궁에게 대적하는 것부터가 잘못된 일이었지.”
“맞아. 분전했지만 듣도 보도 못한 문파는 어쩔 수가 없는 거야.”
곧이어 사람들의 냉정한 반응도 이어졌다.
군중들은 냉정했다.
기세가 좋을 때는 그 누구보다 열렬히 응원하다가도 상황이 조금만 꺾이면 썰물 빠지듯 냉정해지고 만다.
심지어는 응원을 하다가 조롱을 하거나 욕을 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마치 지금처럼.
“크흑!”
두길준은 그 자리에서 자신을 덮치는 냉정한 말들을 애써 무시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두길준이 검을 놓치고 제대로 싸울 상태가 아님에도 남궁벽은 잔인하게 굴었다.
“이놈! 이놈아!”
일부러 바로 쓰러뜨리지 않고 검의 옆면으로 두길준을 여러 차례 가격하고 또 발로 복부를 걷어차기도 했다.
“어어억!”
그 공격에 두길준은 일어섰다 쓰러지기를 수차례.
더 이상 이것은 비무가 아니었다.
남궁벽의 화풀이 폭력에 지나지 않았다.
“잘한다, 창천폭뢰!”
“역시 남궁세가의 희망!”
“애초에 우리는 처음부터 널 응원했다고!”
“약한 놈은 죽여 버려!”
그런 두길준을 보고도 사람들은 동정하기보다도 남궁벽을 응원하며 소리를 높였다.
부르르르!
장운은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며 자신의 일처럼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두길준과 함께 이동하면서 그동안 그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장운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나?
-자신을 믿고 내 검을 믿으면 자연스레 천하가 달라진다!
두길준은 자신도 믿었고 자신의 검도 믿었다.
한데 천하는 달라지지 않았고 여전히 냉정하고 사납기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버티고 있는 두길준을 보고 있자니 장운은 화가 터질 지경이었다.
스윽!
급기야 화를 참지 못하고 비무장 위로 뛰어 올라가려는 찰나!
“그만! 용봉지회 본선 두 번째 비무는 남궁세가의 창천폭뢰 남궁벽 소협의 승리요!”
보다 못한 소림의 무인이 비무를 중지시켰다.
퍼억! 퍽!
남궁벽은 그 중지 선언을 들었음에도 태연하게 폭행을 자행하고 있다가.
“멈추지 않으면 실격패요!”
진행을 맡은 소림사 무인의 말에 그제야 행동을 멈추었다.
“아아, 비무가 워낙 격해서 안 들려서 말이지.”
남궁벽은 두길준의 피가 튀긴 뺨을 쓸어 만지며 너스레를 떨었다.
물론 이는 거짓말이었다.
그가 선을 넘은 탓에 두길준은 완전히 혼절해 있었으며 의원 행이 확정되고 말았다.
비무가 마침내 끝나자 남궁벽은 기절한 두길준을 향해 말했다.
“주제를 알아야지. 알겠어? 그러니까 네가 안 되는 거야.”
그 말은 곧 두길준을 넘어 장운에게 하는 말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게 비무는 일단락되었고 두길준은 의원으로 옮겨지는 중이었다.
“몸은 어떻습니까?”
“다행히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군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담당 의원으로부터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는 것이다.
장운은 두길준을 의원에서도 가장 좋은 자리에 눕히면서 함께 따라온 응운곤과 천세은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두 소협의 치료에 금자를 아끼지 말고 최선을 다해주십시오.”
두 표사는 장운의 분노에 공감했기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의문이 생겼다.
“도련님께서는요?”
“어딜 가시려고요?”
두 사람의 질문에 장운은 불같이 타오르는 눈으로 말했다.
“두 소협의 복수를 할 겁니다.”
이후, 용봉지회는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고 모두가 예상했던 대로 그리고 무림맹이 원했던 대로 창천폭뢰 남궁벽은 승승장구를 했다.
어차피 나한소검 동천과 의외의 실력자였던 두길준을 제외하면 실력자는 없었기에 정해진 수순이었다.
그렇게 남궁벽은 용봉지회 흥행가도를 달리며 마침내 결승전까지 진출하였고, 그 결승만을 앞둔 전날 밤이 되었다.
“계시오?”
매우 늦은 야심한 밤, 용봉지회 결승 진출자인 남궁벽의 숙소 근방까지 은밀히 다가오는 자가 있었다.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랄 법도 한데 남궁벽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예상했다는 듯이 태연하게 답했다.
“드디어 오셨나?”
남궁벽의 말에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 금령공자 장운이 말했다.
“받은 대로 돌려주러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