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86화
증명하다(2)
“뭐, 뭐라고?”
종남무객 천종도는 아득히 어린 종남파 이대제자의 말을 듣고서는 놀라는 얼굴로 되물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 것인가?
“전해 들으신 그대로입니다. 금령공자 장운이라는 오만방자한 놈이 감히 장로님에게 대련을 요청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 말에 천종도 옆에 있던 종남파의 여러 장로들은 물론이오, 종남파의 장문인 태을검군(太乙劍君) 유진종마저도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이런 고얀 놈을 봤나?”
다시 생각해봐 도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우리 종남이 황금표국을 찾아가 친선 대련을 요청하였다고 하지만 이건 너무한 일이 아닌가?’
종남파의 장문인인 유진종은 평소에 약간은 약삭빠르고 이기적인 면이 있었다.
그 때문에 자신이 행한 짓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종남파의 시각에서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 유진종 탓만 하면 안 될 것이 명문 정파인 우리는 되고 너는 안 된다가 바로 정파 특유의 아집이었던 것이다.
“참으로 세상 말세로다.”
“아무리 우리 종남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고 하나 한낱 표국 무인 주제에 뭐?”
“금자로 무공을 사고파는 장사치가 미쳤나?”
특히 천종도보다 어린 후배들이나 사제인 장로전 고수들은 펄쩍 뛰면서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있었다.
이들은 보수적인 과거의 무인들이었기에 금령공자 장운은 물론이고 심지어 사파십대고수마저 꺾은 금령검객 장천호마저 인정하지 않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당장이라도 처죽이고 싶지만 그는 장천호의 아들이자 정식 후계자이니 죽일 수는 없고…… 종남사검(終南四劍)을 보내 적당히 손을 봐주거라.”
유진종은 냉랭한 목소리로 외쳤다.
더 생각할 것도 없었다.
자신의 아들뻘 되는 놈이 어찌 종남 최고의 어른이자 강호 최고의 배분을 가진 천종도와 붙을 수 있단 말인가?
바로 그때였다.
“잠깐.”
혼란스러운 종남파 수뇌부들 사이로 진중하면서도 오랜 연식이 느껴지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음성은 녹슬거나 오래되어 진이 빠진 소리가 아니라 가볍게 말하였음에도 묵묵히 울려 퍼지는 미묘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겉으로 볼 때는 인상 좋은 시골 할아버지 같은 이 사람.
머리카락은 호호백발이 되었어도 여전히 두 눈은 소년과도 같은 남자.
이자가 바로 종남 영광의 세대 유일, 그리고 최후의 생존자인 종남무객 천종도였다.
“천 장로님. 더 두고 볼 것도 없습니다.”
천종도가 의외로 화를 내지 않고 차분히 경청을 하며 급기야 잠깐을 선언하자 부랴부랴 유진종이 나섰다.
유진종은 천종도의 성정을 잘 알았다.
‘아마 장로님께서는 지금쯤 굉장히 무료하고 심심하셨을 것이다.’
실제로 천종도는 평생을 종남 바깥에서 떠돌다가 삶의 마무리를 준비하기 위해 종남산으로 온 만큼 좀이 쑤시고 심심하던 차였다.
그런데 웬 장운이라는 아이가 관심을 끄니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다.
“장로님께서 직접 나서면 이 장운이란 놈은 본 파 알기를 우습게 알 것입니다.”
따라서 유진종은 천종도에게 뭐라 말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지 않고 종남파에서 가장 강하다는 네 명의 고수, 종남사검을 호출하려던 그때였다.
“종아, 많이 컸구나. 네가 검을 처음 잡을 때부터 업어서 키웠거늘…….”
“헉! 장로님. 그게 아니라…….”
“이제 장문인이 되었다고 내 말을 무시하는 게 분명하도다.”
“아닙니다. 정말 아닙니다.”
유진종은 손사래를 치며 펄쩍 뛰었다.
종남파에서 가장 높은 장문인조차 천종도에게 감히 반항할 수 없었다.
사부의 사부들이며 항렬로만 따져도 할아버지와 손자뻘이니 말이다.
“그럼 내가 몇 마디 말 좀 해도 되겠느냐?”
유진종은 좀이 쑤시던 천종도가 당장 장운의 호출에 응할 줄 알았는데 말을 하고 싶다고 요청하자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요.”
“먼저, 그 금령공자 장운이라는 아이가 여기까지 온 이유가 중요하다. 그 이유를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아니나 다를까?
천종도는 생각하는 것부터가 일반 종남파 범인들과는 달랐다.
“으음, 그, 그건…….”
“본 파를 미워해서?”
“본 파를 우습게 보고 섬서성의 이권을 위해 그런 것이 아닐까요?”
정말로 어리석은 몇몇은 자신의 수준에 걸맞게 어리석은 대답을 내어놓았으나 사실 대부분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내가 알기로 전대 장문인 시절부터 매 해마다 황금표국에 속가제자나 본 파에서 중책을 맡지 않은 제자들 위주로 황금표국에 대련 요청을 하러 보냈다더구나. 맞느냐?”
“맞습니다. 하지만…….”
“어허, 대답만 하거라. 맞느냐?”
“끄응, 맞습니다.”
“그리고 속가제자나 본파 어린 제자들이 황금표국의 고위 수뇌부들, 심지어 국주와 대련하자고 요청했다고 들었는데 그것도 맞느냐?”
그 말에 장내 분위기는 한순간에 뒤바뀌고 말았다.
종남을 오랫동안 떠나 있던 노쇠한 노장로가 어떻게 알고 있냐는 시선이 따라왔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본 파와 한낱 표국에 불과한 황금표국은 수준이 다르지 않습니까? 그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기어오르길래 최대한 배려하여 눌러준 것에 불과합니다.”
유진성 역시 결코 만만찮은 입심을 자랑하며 맞섰다.
“장로님께서는 본 파를 오랫동안 떠나 있어서 잘 모르시겠지만 때로는 타인을 누르고 공평하지 않은 방법을 행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무림이란 곳이 본래 그렇지 않습니까?”
태을검군의 말에 많은 이들이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뜻 들으면 매우 논리적이었던 것이다.
이에 사람들은 모두가 다 천 장로께서 화를 낼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네 말대로다.”
천종도는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여전히 소년과 같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네?”
그 말에 얼이 빠진 유진종이 묻자.
“이곳은 무림이다.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으며 때로는 자신을 위해서 남을 짓누르고 억압하는 일도 필요하지. 저 금령공자 장운이라는 청년도 그렇기에 나를 지목한 것이 아니더냐?”
“…….”
천종도는 그의 빈틈을 과감하게 찔렀다.
유진종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자신의 논리로 완벽하게 논파당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가 예의를 모른 채 다짜고짜 검을 휘두른 것도 아니고 오히려 제압하고자 나선 쪽은 우리 이대제자들이라고 들었다. 여기서 하나 묻겠다.”
“네, 장로님.”
“우리 제자들이 황금표국에 대련을 요청하러 왔을 때 강제로 막거나 억압했던 일이 있더냐?”
그 말에 유진종은 다시 한번 말문을 잃은 채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황금표국은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물론 이는 종남파와 척을 지기 싫었기에 그런 것이지만 적어도 황금표국은 대련이 끝나면 뒤끝도 없었다.
“여기 장문인 말고도 종남문도들은 들으라.”
내내 웃으며 말하던 천종도가 엄격한 목소리로 말하자 장문인인 유진종을 제외한 종남파 모든 문도들이 일제히 외쳤다.
“장로님의 말을 경청하겠습니다!”
“장로님의 말을 경청하겠습니다!”
지금 천종도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은퇴한 늙은이 입장이 아니라 종남파 최고의 어른으로서 건네고자 하는 말이었다.
“남에게 당하기 싫은 일은 나도 하지 말아야 하는 법이다. 무림에 발을 담갔다고 해서 그 지독한 악의(惡意)와 냉정(冷情)에 물들면 안 된다는 소리다. 그 순간 내면을 무림이라는 괴물에 빼앗기게 되니 말이다. 알겠느냐?”
“존명!”
“알겠습니다, 장로님!”
천종도가 하는 말은 여러 무인들의 폐부를 관통하는 것이었다.
이런 말이 설득력을 가지는 이유는 그의 말마따나 험난하고 고된 무림에서 반세기가 넘도록 활동을 해온 최고의 어른이 해주는 조언이기에 가능한 소리였다.
“그리고 또 하나.”
천종도는 다시 특유의 개구쟁이 같은 눈으로 돌아와 말을 이어나갔다.
“그 장운이라는 아이의 입장에서 본다면 강자 입장은 본인이고…… 약자로 보이는 것은 본 파일지도 모르지, 후후훗.”
* * *
다짜고짜 먼저 검을 휘두르는 자를 제외하고는 장운은 일절 무공을 펼치지 않았다.
오히려 한바탕 소란이 정리된 이후, 종남파의 입구에서 수뇌부들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두고 봐라, 장운. 네놈은 반드시 큰코다칠 것이다.’
이미 한 차례 장운에게 낭패를 본 중천검 축사곤은 내내 이를 갈고 있었다.
축사곤은 지금쯤이면 외부인에게 냉랭한 장문인께서 종남파의 해결사인 종남사검을 보내리라 믿었다.
그러나 상황은 축사곤의 예상과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황금표국의 금령공자 장운 소협의 본 파 방문 허락이 내려졌다. 그를 장로전 앞으로 모시도록 하라!”
상부로부터 떨어진 명령에 축사곤을 비롯하여 이대제자들과 일대제자들은 넋이 나가고 말았다.
“네?”
“그, 그게 사실입니까?”
심지어는 자신이 들은 것을 의심하며 되묻기까지 했다.
위계질서가 엄격한 명문 정파의 일원들에게는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그렇다.”
“어째서 그런…….”
축사곤과 그의 동문사형제들은 일제히 반발을 하며 억울함을 피력하였다.
“천종도 장로님께서 직접 보시겠다 말씀하셨다.”
그것도 잠시,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려 문파 최고 어른이 하는 말에 일대제자들은 감히 입을 뻥끗할 수도 없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울분을 삼키는 일과 더불어.
‘그래, 분명 천 장로님께서는 저 애송이에게 예의를 가르치실 게 분명해.’
‘직접 상대하셔서 어딘가를 손봐줄 계획이시다.’
열심히 행복한 상상을 할 뿐이었다.
그렇게 장운은 이들의 안내를 받아 종남파 내부에서도 가장 비밀스러운 곳이자 젊은 제자들은 감히 들을 들이기도 어려운 곳, 장로전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호오?’
천종도는 장운을 멀찍이서 바라보고 싶은데 이내 눈 주변이 씰룩거리면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솔직히 약관이 되기도 전에 초절정 경지에 도달하였다고 해서 믿지 않았다.
왜냐하면 무림에서 오래 구른 자신의 경지가 초절정이었는데 증손자 뻘인 아이가 초절정을 주장하니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한데 그를 바라보는 순간 의구심은 완전히 녹아내렸다.
‘가히 군계일학(群鷄一鶴)이로다!’
천종도는 오랜 기간 살아오며 이루 셀 수 없이 많은 기재와 무골들을 만나왔다.
따지고 보자면 눈앞에 다가오는 장운보다 더 근골이 뛰어나거나 우수한 작자들은 만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종도가 거듭 감탄하는 이유는 장운의 눈빛이었다.
‘적지 한복판에 홀로 온 담력도 담력이거니와 저 눈빛을 좀 보라. 너무나도 태연하고 차분하지 않은가?’
천종도가 타고난 근골보다도 우선시 여기는 것이 정신이었다.
그런 점에 있어 장운의 정신력과 담대함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특히 천종도와 많은 종남파 고수들이 지켜보고 몇몇은 살기마저 쏘아대는 상황 속에서 장운은 여전히 태연하고도 편안했다.
오히려 이들을 좌시하기까지 했으니 천종도가 감탄을 자아낼 만했다.
“대단한 아해구나. 그 속에 능구렁이가 들었거나 천하제일인이 들었을 것이다.”
천종도가 멀찍이서 한마디를 하였다.
그 말은 담력만 큰 사기꾼이거나 아니면 어린 나이임에도 그 담력에 걸맞은 실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반면 장운도 그 말을 들으며 내심 놀라는 중이었다.
실제로 장운 속에는 천하제일검이자 천하제일인이었던 검신 장인랑이 깃들었으니 말이다.
“안녕하십니까? 제가 바로 황금표국의 정식 후계자, 장운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