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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95화 (94/173)

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95화

천세은의 복수(2)

“당주님!”

장운과 천세은이 복수심을 불태우고 있을 무렵, 사천 당문의 철암당 건물에는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분주하였다.

“답장이 왔나?”

높고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만 듣고도 그녀의 성정이 어떠한지 충분히 유추할 수 있을 정도였다.

철암당 건물 내부 호화스럽고 사치스러운 장식이 놓인 의자에 거만한 자세로 착석하고 있는 위인.

그녀가 바로 철암당주이자 천세은의 원수인 귀섬옥수 당희령이었다.

당희령은 천세은과 결이 다른 미녀였는데 선이 곱고 얇은 천세은과는 달리 키도 남자 못지않은 장신에다가 이목구비고 시원시원하였다.

무엇보다도 암기술의 달인에게 있어 중요한 손바닥과 손가락도 무척 길고 커서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네, 여기 있습니다.”

철암당의 인원은 정중히 서신을 내밀었다.

다름 아니라 황금표국 측에서 은밀히 날아온 서신이었다.

[우리 표국에 대한 사천 당문의 관심과 애정은 잘 알았습니다.

본 표국 역시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사천 당문을 무척이나 존경하고 우러러보며……(중략)…… 그런 관계로 철암당주님의 제안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워낙 중대한 일이기에 지금 당장 영약과 약초 거래에 관해 승낙을 내릴 수는 없는 노릇이고 무엇보다도…… 국주님께서 수익 때문에 약선문(藥仙門), 만독문(萬毒門) 등등에 거래 품목을 팔아치우고자 의견을 주장하고 계십니다.

저는 철암당주님을 밀고 있기는 하나 쉽지 않은 실정이니 본 표국에 은밀히 오셔서 한번 제대로 이야기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흐으음.”

서신을 모두 읽은 당희령은 턱을 어루만지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솔직히 사천 당문은 약선문과 만독문처럼 엄청난 금액을 제시할 여건은 없었다.

그들보다 나은 것은 결국 뛰어난 명성뿐이니 그것을 이용하여 설득해야 할 것이다.

“당주님, 어떻게 하실 계획입니까?”

수하의 질문에 당희령은 기다렸다는 듯이 답하였다.

“당연히 가야지. 그것도 아무도 모르게 은밀히!”

당희령이 아무도 모르게 은밀히 가려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만약 이 소식을 독암당주가 알면 자신이 나서겠다고 떠들어댈 게 뻔해.’

역설적으로 당문의 인물인 당희령이 가장 꺼리고 경계하는 인물 또한 당문의 사람이었다.

그 장본인은 바로 독암당주 십보즉사(十步卽死) 당호륜으로 별호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무시무시한 독공의 고수이자 사천 당문의 순혈 중의 순혈이라 할 수 있었다.

동시에 사천 당문의 약초와 영약, 독초 수급은 당연히 독을 다루는 독암당주의 소관이었는데 당희령은 그들을 도외시한 채 공을 세우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던 것이다.

‘본 세가의 특성상 아무래도 독암당에 비해 철암당은 무시를 받거나 한 수 아래로 평가받곤 하였다.’

사천 당문하면 가장 유명한 것이 독공이다 보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당희령은 그것이 싫어 직계 혈통에 순혈인 당호륜과 앙숙 사이였다.

그를 뛰어넘어 바라고 바라던 부문주 자리에 먼저 도달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보다 더 많은 공을 세워야만 할 터.

“만약 적은 금액에 엄청난 양을 자랑하는 황금표국의 영약과 약초, 독초들을 수급할 수 있다면…… 문주님께서 크게 기뻐하실 겁니다.”

수하의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당희령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고말고. 그리고 장운의 뒤에는 그 유명한 만철야장 공야월과 만철당이 있다.”

그녀가 황금표국에서 장운을 고른 이유는 그것 때문이었다.

이번 거래가 잘 성사된다면 나아가 철암당의 암기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할 계획이었다.

남들은 최연소 당주다, 방계 혈통치고 엄청난 승진이다 말이 많지만 정작 당희령은 아직도 배고팠다.

‘난 이것들을 쟁취하기 위해 어린 나이 때부터 당문 바깥을 떠돌아다녀야 했다.’

어디 그뿐인가?

만인이 두려워한다는 천수관음 나화연에게 암기를 들이밀기까지 했으며 그녀가 죽은 이상 호접개화천수공의 유일한 전수자는 자신 혼자라고 믿었다.

비록 후반부 초식은 몰라 반쪽짜리이긴 하나 그 무공을 철암당으로 끌어들인 것만 하더라도 엄청난 성과였다.

‘두고 보자. 내가 문주가 되는 날…… 모든 당문 일원들에게 호접개화천수공을 익히게 할 터이니.’

당희령은 여인의 몸으로 태어나 야망이 많아 최정상만을 노렸다.

그렇기에 천수관음의 무공을 아무에게나 알려주지도 않았다.

그것은 오로지 문주와 자신만이 알고 있던 것이다.

“금령공자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당장 연락을 하여라. 지금 곧바로 출발하겠으니 약선문이나 만독문 따위에게 팔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장운과 천세은은 미끼를 던졌고 당희령은 미끼를 물었다.

과연 이 흥미진진한 상황은 어떻게 풀릴 것인가?

* * *

‘후후, 성공했군.’

장운은 당희령과 철암당 측으로부터 당장 오겠다는 회신을 받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일부러 약선문과 만독문을 열거하며 아버지께서 반대한다는 말을 한 효과가 탁월했습니다.”

장운의 말에 상수 노관과 만철야장 공야월이 웃고 있었다.

모처럼 공야월이 모습을 드러낸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아마 저들은 만철당을 방문하여 암기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할 겁니다. 그러니 공 대협께서 협조를 해주시겠습니까?”

장운의 부탁에 공야월은 특유의 털털한 미소를 보였다.

“물론이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 장운 소협의 부탁에다가 천 표사의 원수이니 어찌 돕지 않을 수 있겠나?”

공야월은 받은 만큼 돌려주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은혜든 원수든.

동시에 요즘 들어 호황을 누리는 황금표국 덕분에 원 없이 제련을 하고 망치질을 하며 입수하기 힘든 값비싼 금속을 만지는 중이었다.

천하제일의 대장장이이자 타고난 장인인 그에게 있어 지금처럼 행복한 시간이 또 있을까?

신선놀음이나 마찬가지이리라.

“이번 원수들이 처참한 죽음을 맞이해야 할 곳은 만철당입니다. 장인의 땀과 노력만이 있어야 할 성지에 이런 일을 벌이게 되어 송구스러운 마음뿐이니…….”

천세은의 말에 공야월은 고개를 저었다.

“따지고 보면 우리들이 있는 공간 또한 금옥관이니 성지라고 우러러볼 이유가 뭐가 있겠나? 오히려 표사들이 땀 흘리고 노력하는 공간이야말로 성지라네.”

공야월은 예나 지금이나 화통한 인물이었다.

이제 판은 완벽히 짜놓았으니 남은 것은 당희령과 철암당을 만나는 일뿐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을까?

“도련님, 그들이 왔습니다.”

일검일섬 두길준으로부터 조용한 전언이 들었다.

이 야심한 시각에 당희령과 철암당의 병력이 찾아온 까닭이었다.

이들이 이런 시간에 오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번 매입 건은 아무도 모르게 일사천리로 재빨리 진행해야 하기에 아는 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았다.

‘그 행동이 자신들의 목을 조이는 것이 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장운은 애써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나가지.”

저들이 은밀히 왔으니 장운은 일부러 황금표국의 정문이 아니라 아는 사람이 적은 후문으로 안내를 하였다.

특히 후문은 금옥관 내부로 가는 지름길이기도 하여 이보다 더 적합할 수 없었다.

“오셨습니까?”

장운이 다가오자 어둠에 기척을 숨기고 있었던 당희령과 철암당 인원들이 반색을 하며 반겼다.

그들에게 있어서 잘 보여야 하는 핵심 인물이 바로 금령공자 장운이었다.

특히나 당희령은.

‘어머나, 세상에!’

장운을 바라보자마자 두 눈이 환하게 뜨이는 신기한 체험을 하였다.

귀섬옥수 당희령의 나이는 어느새 서른에 육박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동안 가정을 이루는 것조차 잊은 채 오로지 출세욕으로만 불타올랐다.

그런 관계로 남자에게는 일절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한데 이게 웬걸?

너무나도 준수하고 매끈하게 잘생긴 장운의 얼굴을 보니 어두운 주변이 밝아지는 기시감을 느낄 정도였다.

“금령공자 장운입니다. 철암당주가 어디 계시지요?”

장운은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너스레를 떨었다.

“제가 바로…….”

당희령이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여느 때와 달리 양반집 규수처럼 부끄러움과 쑥스러움이 공존할 정도였다.

“오, 이런! 무례를 범했군요. 너무 어려서 당주님이라 생각지 못했습니다.”

“오호호호!”

장운의 입바른 소리에 당희령은 소녀처럼 웃으며 너무나도 기뻐하였다.

가지런한 치아를 보이는 것이 진심으로 기뻐하는 게 눈에 선했다.

철암당의 인원들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본 당문 내에서도 철의 여인, 독의 여인이라 불리는 당주님께서 왜 저러실까?’

본래의 귀섬옥수였다면 당주를 못 알아보는 장운에게 큰소리를 치며 쏘아붙였을 것이다.

물론 지금은 그에게 잘 보여 거래를 성사해야 하니 그렇다 치더라도 많은 사심이 엿보였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었다.

그동안 많은 미남자 앞에서도 특유의 오만함과 도도함을 자랑하던 당희령이었다.

당황하는 것은 당희령 본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왜 이러지?’

맹세하건대 장운의 인물이 훤칠해서만이 아니었다.

전신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기운과 더불어 자신을 압도하는 엄청난 내공과 무공 솜씨는 피부 위로 와닿을 정도였다.

어쩌면 당희령은 이런 낭중지추(囊中之錐)의 걸출한 낭군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밤바람이 찹니다. 안으로 모시지요.”

장운은 당희령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것을 알고는 안으로 인도했다.

그녀에게 사심 따위는 없었다.

얼른 내부로 들여야 계획을 펼칠 테니까.

“네, 그럼…….”

당희령은 이례적으로 부끄러워하며 장운의 인도 아래 금옥관 내부의 창고를 순회하였다.

금옥관에는 그동안 장운이 노획 및 벌여놓은 여러 재화 재물이 어마어마하게 산재되어 있었기에 당희령을 비롯하여 냉정하게 중립 상태였던 철암당 인원들조차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이게 다…… 금옥관의 것입니까?”

“황금표국 전체의 자산이 아니라?”

오죽했으면 완전히 푹 빠진 듯한 당희령 뒤로 장운을 견제하고 있던 철암당 수뇌부들도 눈빛이 변할 지경이었다.

“당연한 말씀을.”

“본 표국의 창고는 금옥관 전체보다도 더 큽니다.”

황금표국을 몰라도 너무 모르며 한참 낮춰보는 사천당문의 오만한 질문에 노관과 감우량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하였다.

게다가 이들은 천세은의 원수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말이 고울 리 없었다.

“자자, 바로 이곳이 약초와 영약 분류의 창고입니다.”

장운은 까딱하면 문제가 일어날 것 같아 그들을 서둘러 원하던 곳인 약초와 영약이 있는 창고로 데리고 갔다.

오오오오!

아니나 다를까?

여기저기서 함성 소리가 터져 나왔다.

사천 당문도 약초와 영약에 일가견이 있는 곳이긴 하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금옥관 내부 창고를 빼곡하게 채우다 못해 몇몇 진귀한 약초마저도 짚더미처럼 대충 쌓아진 모습에 충격을 받을 지경이었다.

“장운 소협. 당장! 지금 당장 계약을 하고 싶어요. 안 될까요?”

그 엄청난 자산에 당희령은 눈이 핑핑 돌아 서둘러 입을 열었다.

양뿐만 아니라 질도 어마어마했던 것이다.

‘이런 엄청난 물량을 가지고 있는 곳과 거래를 트게 된다면 당문 내부에서 내 평가는 상승할 것이다.’

아니, 그것을 뛰어넘어 이런 막대한 재산을 가진 장운과 혼례를 치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당희령은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청사진을 그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지금 여기에서 일 이야기를 하는 것은 좀 그렇고…… 안에서 차분히 더 이야기하는 게 어떠십니까?”

물론 그것은 허황된 꿈에 불과했다.

장운은 그녀를 보다 더 깊은 늪으로 끌어들였다.

그 늪의 끝에는 원수에 눈이 불타고 있는 천세은이 존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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