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96화
천세은의 복수(3)
“단둘이서요?”
당희령은 화들짝 놀라며 장운을 다시 돌아보았다.
아무리 무림의 율법이 자유롭다고 하나 과년한 남녀가 둘만 만나는 것은 아무래도 겸연쩍은 면이 다분했다.
“네, 특히 본 금옥관 내부에는 만철당이라는 곳이 있는데 암기술의 달인이신 귀섬옥수 당희령 당주님께서도 좋아할 것 같아서요.”
장운은 영악하게도 그녀에게 구미가 당기는 제안을 하였다.
혹시라도 의심을 품거나 둘이서 만난다는 부담감을 지우기 위한 의도였다.
‘이게 꿈이야, 생시야?’
그 말을 듣자마자 당희령은 애써 표정 관리를 하였으나 입가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걸렸다.
장운이 천세은의 복수를 위해 위험한 덫을 던지고 있을 무렵, 당희령은 반대로 달콤한 꿈을 꾸고 있었다.
동상이몽(同床異夢).
현 상황을 표현하는 데 있어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이 또 있을까?
“장운 소협의 뜻은 고맙지만 단둘이서 만나는 것은 좀 그렇고…… 우리 철암당 무인 몇몇만 대동해도 될까요?”
“아…….”
그녀의 말에 장운이 아쉬움을 표현하려는 찰나!
“너무 서운하게 생각지는 마셔요. 우리 당문 내부에서도 욕탕까지 쫓아오는 호위 무인들이기에 그렇습니다.”
당희령은 혹시라도 장운의 마음이 변할세라 서둘러 부연 설명을 하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당희령은 장운과 독대하고 싶었다.
그것은 비단 황금표국의 영약이나 만철당의 암기 제작뿐만이 아니라 장운이라는 남자에게 호감이 커져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이제 나도 혼기가 꽉 찬 나이다.’
물론 무림인으로서 야욕이 커서 여인의 평범한 행복을 좇는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장운 정도의 남자라면 황금표국의 재산과 배경으로 자신에게 큰 도움을 줌과 동시에 무림인과 여인의 삶을 모두 충족시키리라 믿었다.
“아, 이해합니다.”
장운은 못내 아쉬웠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으며 환하게 웃었다.
당희령이 장운에게 얼마나 홀렸느냐 하면 지금 장운이 짓고 있는 환한 미소에 완전히 푹 빠져 있었다.
“이해해 주시니 감사하네요. 게다가…… 만철당이라면 천하제일의 대장장이이신 만철야장 공야월 장인을 뵐 수 있겠군요.”
당희령은 장운의 훤칠한 모습과 함께 공야월로부터 암기를 제작해 달라고 할 생각에 한껏 부풀어져 있었다.
“물론이지요. 안내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장운은 당희령과 그녀의 호위 무인들, 철암당에서도 실력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열 명의 무인을 함께 대동하여 계획된 장소인 만철당으로 유인하였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당희령, 혼자만 유인해야 했다.’
장운은 여전히 흔들림 없는 표정을 유지하며 생각에 잠겼다.
현재 흐르는 광경이 최고의 상황만은 아니었다.
철암당의 저 열 명은 상대하기가 무척이나 까다로워 자그마한 소규모 문파 하나 정도는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앨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황금표국 금옥관도 만만치 않았다.
혹시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던 것이다.
“정말로 기대되는군요. 약재와 영약이 있는 창고만 해도 어마어마했는데…… 만철당이라니요.”
당희령은 너무나도 기뻐하며 두 손을 모았다.
‘이렇게 행복한 기분이 드는 것은 천수관음 나화연을 처치한 이후 처음이야.’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장운을 휘어잡아 벌써부터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쟁취하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사이.
“오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장운은 순조롭게 그들을 금옥관 만철당의 대장간으로 안내를 마쳤고, 사전에 계획을 모두 전달받은 공야월이 환대를 하며 그녀를 반겼다.
“말로만 듣던 공야월 장인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당희령은 자신답지 않게 예의를 차렸다.
물론 이는 그에게 얻어내야 할 것이 있기에 본성을 감추고 있었다.
그것은 공야월도 마찬가지였다.
‘두 눈에 탐욕과 표독이 감춰지지 않고 흐르는구나.’
본래의 만철야장 같았으면 당희령과 같이 노골적으로 무기 제작을 요구하는 부류와 대면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장운의 부탁이 아니었다면 이 자리에 오지도 않았을 터.
이는 모두 천세은의 복수를 위해 공야월이 협조를 하고 있었다.
“허허허, 오히려 제가 더 영광이지요. 말로만 듣던 사천 당문의 철암당주를 이렇게 다 만나니 말입니다.”
애써 마음에도 없는 이야기를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을 무렵.
“외람된 말씀이오나 괜찮으시다면 제 암기를 만들어주십사 부탁을 드려도 될까요?”
당희령은 뻔뻔스럽게도 본성을 싸악 감춘 채 본심을 드러냈다.
본래의 인성대로라면 이렇게 부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들어주지 않는다면 죽이네 살리네 분란을 일으킬 것이 뻔했다.
“오! 때마침 얼마 전 영감이 떠오르는 것이 있어 암기 여러 구를 만들어놓은 게 있습니다.”
공야월은 분투했다.
이 웃기지도 않은 연극에 열심히 어울리며 열연을 펼쳤다.
“정말인가요? 세상에나!”
공야월의 연기에 당희령은 완전히 속아 넘어가고 말았다.
장운이라는 희대의 인물은 만나는 것에 이어 무림 최강의 대장장이인 공야월이 암기를 만들어주다니,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네. 이것은 오룡오지암(五龍五指暗)이라는 것인데…….”
공야월은 품에서 다섯 개의 암기를 꺼내 들었다.
말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암기를 만들었던 것이다.
물론 이는 당희령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 즉 비옥수 천세은을 위해서였다.
“사람의 다섯 손가락을 본떠 만든 암기들입니다. 이 가장 긴 대침은 길이가 긴 중지(中指)를, 날카롭고 폭이 좁아 암살에 용이한 이 암기는 가장 작은 소지(小指) 가리키는 물건입니다.”
황금빛으로 찬란히 빛내는 다섯 개의 암기, 오룡오지암을 보자 당희령은 어찌나 기뻤던지 체면조차 잊은 채 소리를 내지를 정도였다.
“어머나! 너무나도 예쁘고 또 날카로운 것이…… 딱 저를 위해서 만드셨군요!”
오룡오지암은 다섯 손가락에 제각각 용이 깃든다는 뜻을 가진 암기로 각 암기마다 이름이 따로 있었다.
더군다나 그 완성도와 날카로움이 더 말할 것도 없이 완벽하여 이 만철야장 공야월의 역작이나 다름이 없었다.
“헛! 허허허헛! 물론입니다.”
자신의 위해 만들었다 확신하는 당희령의 말에 공야월은 진심으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네년을 위해 만들었냐고? 천만의 말씀.’
이 오룡오지암은 오로지 천세은을 위한 것으로 그녀의 복수를 위해 공야월이 바치는 헌사이자 선물과도 같았다.
스윽!
당희령은 주인인 공야월의 허락도, 장운의 인정도 없이 제 마음대로 오룡오지암에 손을 대어 가지려고 하였으나 다행히도 장운이 더 먼저였다.
“이 암기는 그냥 소지하고 있는 게 아니라 공 대협께서 만드신 이 특수 장갑과 결합을 할 경우, 더 빛을 발하는 물건입니다.”
장운은 그녀가 손을 대기 전에 먼저 오룡오지암을 챙긴 다음, 그 효용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의 말이 옳은 것이 이 오룡오지암은 다른 여타 암기처럼 품 안에 숨기는 것이 아닌 장갑 위에 착용하여 언제라도 출수할 수 있도록 준비가 된 물건이었다.
“그런가요?”
장운의 설명에 아쉬움도 잊은 채 당희령이 관심을 보였다.
‘이것은 진정 무림 최강의 암기이자 전설이 될 암기다.’
그런 확신에 가득 찬 상태로 흥분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자자, 자세한 설명은 공 대협의 시중을 드는 시비에게 듣도록 하지요.”
장운은 마침내 최종 계획을 실행하였다.
그것은 바로 오룡오지암으로 당희령의 이목을 흐리게 만든 다음, 그것을 다름 아닌 천세은이 들고 와 기습을 날리는 작전이었다.
짜악
장운이 손뼉을 치자 검은색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던 천세은이 천천히 접근을 하였다.
‘드디어 네년을 다시 보다니!’
실은 당희령을 보자마자 천세은은 흥분을 감출 길이 없었다.
공야월도 그것을 알아채어 자신의 뒤편에서 감추고 있었는데 당희령이 장운과 오룡오지암으로 인해 안목이 흐려지지 않았다면 큰 사달이 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 얼른 설명을 해보…….”
당희령은 드디어 강호 제일의 암기를 가지게 되는 감격에 벅찬 상태로 말을 하려는 그때였다.
무공을 배우지 않은 시절부터 오로지 독기 하나로 천수관음 나화연에게 접근을 했고 방계 혈통으로 철암당주 직위에 오른 그녀.
귀섬옥수 당희령은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음?’
그녀는 시비가 천세은임을 곧바로 알아차리진 않았으나 곧 이상한 점을 포착할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굉장히 기상천외한 일이었다.
이 오룡오지암을 만든 장본인인 공야월이 있는데 왜 한낱 시비가 이 무구에 대해 설명을 한단 말인가?
또 하나 더.
당희령은 본능적으로 무언가 석연찮음을 포착할 수 있었다.
-독월보(獨月步)!
그녀는 당문의 뛰어난 보법이자 홀로 달을 보며 걷는다는 뜻을 가진 독월보를 시전하여 뒤로 빠졌다.
아니, 뒤로 빠지려고 했다.
덥썩!
한데 당희령보다 한 발자국 먼저 움직이는 이가 있었다.
그는 당연히 금령공자 장운이었다.
장운은 한눈에 무언가 일이 틀어졌음을 감지하고 당희령의 움직임만을 주시하고 있었고, 아니나 다를까?
눈치 빠른 당희령이 뒤로 빠지려는 그 순간 먼저 다가와 그녀의 퇴로를 차단한 채 물러서지 못하도록 앞으로 내민 것이다.
그 결과!
“이 악적!”
천세은은 마침내 얼굴을 가린 검은색 천을 벗어 던지고 본연의 아름다운 외모를 자랑하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호접만라변(胡蝶滿喇變)!
그와 동시에 자신의 사부인 천수관음 나화연으로부터 배운 뛰어난 무공이자 최강의 암기술인 호접개화천수공의 절초를 펼쳤다.
이는 가까운 지근거리에서 어마어마한 변화를 일으켜 상대를 사살하는 무시무시한 초식이었다.
파아아아앗!
당희령이 탐을 낸 오룡오지암을 들어 그대로 기습을 날린 천세은.
따지고 보면 완벽한 기습이 아니라 장운이 억지로 만들어 준 기습에 불과했으나 그 결과는 흡족하였다.
콰지직!
다섯 개로 이루어진 암기, 오룡오지암이 모두 들어맞지는 않았다.
하나 적어도 두 개는 적중하였다.
하나는 당희령의 복부에, 다른 하나는 당희령의 오른쪽 허벅지에 찔려 깊은 자상을 남기었다.
“네, 네년은 분명히…… 천수관음과 함께 불에 타 죽었을 텐데?”
당희령도 진정 독한 것이 아픔에 못 이겨 비명을 내지를 만도 한데 눈썹을 꿈틀거린 채 오히려 자신을 공격한 당사자가 누구인지 복기하고 있었다.
“흥! 사부님은 죽으면서까지 나를 구하셨다.”
천세은은 이 순간을 진정으로 즐기며 다 된 밥이나 마찬가지인 당희령을 압박하였다.
“당주님!”
“철암당주님을 구해야 한다!”
그 절체절명의 모습에 그녀의 호위 무인들, 철암당 열 명의 고수들이 일제히 뛰어들었으나 이곳은 공교롭게도 황금표국 금옥관의 숨겨진 마당과도 같았다.
“금옥관의 고수들이여!”
철암당의 암기 고수들이 나서자 장운은 곧바로 수하들을 호명했다.
처억!
그러자 일검일섬 두길준과 반골 응운곤, 감우량과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내는 공야월의 제자이자 절정 고수인 광룡쌍장 동곽까지!
그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천세은의 복수에 동참하였다.
“천 표사! 목적했던 바를 반드시 이루십시오!”
그들의 외침에 당희령을 전면에서 압박하고 있던 천세은이 달덩이처럼 환하게 웃었다.
‘더 이상 나는…… 혼자가 아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든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사부, 나화연을 죽인 장본인 당희령에게 복수만을 앞두고 있었다.
“사천 당문의 철암당주 귀섬옥수 당희령! 너는 이 자리에서 아주 참혹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며…… 너를 죽여 사부님의 원혼을 달랠 것이다!”
천세은은 아주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말을 내뱉으며 눈이 이글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