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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97화 (96/173)

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97화

천세은의 복수(4)

각인(刻印).

도장은 새긴다는 단순한 풀이의 해석 이외에도 다른 뜻이 있다.

육신과 영혼에 아로새겨지는 뚜렷하고도 선명한 기억.

‘눈을 감아도 내 마음속에는 언제나 사부님의 망령이 보였다.’

천세은에게 있어 천수관음 나화연의 죽음이 그러했다.

처참한 몰골로 타들어간 모습은 물론이오, 다정한 사부님이 순식간에 악귀가 되어가는 악몽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꾸었다.

그 말인즉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고 삶 자체가 지옥과도 마찬가지라는 뜻이었다.

그런 천세은에게 있어 한 줄기 빛이 된 인물이 바로 금령공자 장운이었으며 그가 오늘 자신의 오래된 숙원을 해결해 주기 위해 도움을 주었다.

“그럴 리 없어! 분명 그때 불타서…….”

반면 당희령은 정신이 없었다.

얼핏 다시 생각해 보니 나화연의 죽음에만 집중한 나머지 천세은에게 소홀했던 것도 같다.

‘그래도 불에 탔으니 화상 자국이 남았어야 정상이거늘…….’

천세은의 얼굴을 바라보니 이럴 수가!

화상 자국은커녕 천하에서 가장 어여쁜 외모를 자랑하고 있는 게 아닌가?

당희령이 굳이 화공을 선택한 이유가 바로 이 천세은의 뛰어난 미모 때문이기도 했다.

귀섬옥수 당희령은 본래 질투와 시기가 많은 여인이었고 천세은이 자신보다 더 뛰어난 미모를 자랑하자 구태여 불에 태워 버린 것이다.

“그래. 나는 얼굴과 상반신 대부분에 화상을 입었지. 여기 계신 장운 소협이 아니었더라면 악독한 네년의 뜻대로 나는 생의 의지를 잃었을 거야.”

천세은은 절망하는 당희령의 얼굴을 보며 더할 나위 없이 커다란 희열을 느꼈다.

스윽!

그리고 천세은을 지원하는 천군만마인 장운까지 있었으니 어찌나 기쁘던지.

“장운 소협!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분명 제게 호감이 있지 않았나요?”

당희령은 점점 더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천세은이 갑자기 나타난 것만 해도 절망적인데 자신이 은근히 흠모하던 장운이 보란 듯이 천세은 옆에 서자 미칠 지경이었다.

“호감? 태연한 얼굴로 사부를 죽이고 어린 사매에게 불을 지르는 미친 여자에게 어찌 호감이 생길 수 있단 말이지?”

장운의 적나라한 말에 당희령은 참지 못하고 악독한 모습이 무너지고 말았다.

거기다가 하나 더!

“당신에게 호감을 가지느니 차라리 저 나무 속 벌레에게 호감을 가지는 것이 더 빠를 것이오.”

그 말은 당희령의 마음을 적나라하게 후벼 팠다.

“아아아아아악!”

무시무시한 암기를 자랑하는 손속만큼이나 마음이 독하고 굳세어 독심(毒心)이라고도 불리는 당희령.

그녀는 생애 거의 처음으로 정신이 완벽히 무너지고 말았다.

‘죽일거야. 저 더러운 연놈들을 다 죽이고 말거야!’

이윽고 분노는 타인에 대한 원망으로 변질이 되었다.

당희령은 실로 인면수심(人面獸心)을 가진 인물이었다.

문제를 일으킨 것은 자신인데 문제점을 자신에게 찾지 않고 타인을 원망하고 있었으니 평소 성정이 어떠할지 보지 않아도 뻔하였다.

-호접공명각(胡蝶共命角)!

당희령은 복부에 피를 흘리면서도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그녀의 풍만한 전신을 지배하는 것은 오로지 증오와 시기심, 그리고 질투였다.

파아아아앗!

당희령의 솜씨는 솔직히 말해 너무나도 대단했다.

진정한 암기술의 고수는 손가락 하나로 구름을 불러일으킨다고들 한다.

유구한 독공과 암기술을 자랑하는 사천 당문의 삼인자, 철암당주 귀섬옥수 당희령의 솜씨는 그것에 준했다.

하나 다른 것이 있다면 그냥 구름이 아니라 새빨간 피구름이었다.

휘익!

천세은은 그녀의 공격을 피해내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사부님의 무공이 아니야!”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분명히 같은 사부로부터 호접개화천수공을 익힌 천세은과 당희령.

그러나 무공의 기운이나 색이 달랐다.

호접개화천수공을 제대로 익힌 천세은과는 달리 자신의 것이자 당문의 색으로 물들인 당희령의 암기는 좀 더 지독하고 독이 물들어 있었으며 악의(惡意)로 가득했다.

“오호호홋! 그럼 내가 그런 패배자의 무공을 오롯이 다 받아들일 줄 알았더냐?”

당희령은 엄청난 부상을 입은 와중에도 전혀 물러나는 법이 없었다.

솔직히 말해 부상을 입은 당희령을 두고 장운과 공야월이 합공을 가한다면 진즉 이기고도 남았지만.

[천 표사에게 일임하기로 하지요.]

장운은 공야월과 그 제자들에게 전음을 보내었다.

결자해지(結者解之)라고 결국 복수의 완성은 다른 누구도 아닌 천세은, 그녀의 손으로 마무리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끄덕!

그 말에 공야월과 그 제자들, 그리고 다른 표사들은 일제히 발걸음을 돌려 다른 철암당의 무인들을 향해 쇄도했다.

그들은 진정으로 천세은을 믿었다.

그리고 천세은의 뒤를 묵묵히 지키며 모두 다 지켜보고 있는 금령공자 장운을 믿었다.

금옥관의 핵심 인물인 이 두 사람이라면 능히 귀섬옥수 당희령을 쓰러뜨리는 것은 물론, 마음마저 완벽히 꺾으리라 의심치 않았다.

“패배자? 이 비열한 것 같으니. 사부님의 속도 모르고……!”

천세은은 지금 뒤를 돌아볼 여력이 없었다.

노련한 당희령의 말에 분노를 하며 열심히 손을 휘둘렀다.

채쟁, 채재재쟁!

두 암기술의 대가가 펼치는 현란한 암기의 폭풍.

암기술만큼이나 아리따운 외모를 자랑하는 두 여고수들의 격전이 이어졌다.

실력이나 숙련도로 따지자면 단연코 귀섬옥수 당희령이 훨씬 더 우월하였으나 그녀는 지금 몸에 크나큰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분노와 질투로 인해 눈이 멀어 자각은 못 했을지언정 몸은 솔직했다.

부상으로 인하여 제 기량을 마음껏 펼치지 못했고 그 결과 천세은과 동수를 이룬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음천귀독공(陰千鬼毒功)!

천세은은 나화연에게 배우지 않았던 무공마저 접하였고 장운에게서 받은 추궁과혈의 효과로 인해 실력이 일취월장한 상태였다.

-호접만라변(胡蝶滿喇變)!

급기야는 당희령을 압도하는 모습마저도 보이고 말았다.

지금 그녀가 펼치는 이 무공은 호접개화천수공 후반부의 초식으로 나화연이 죽어가는 와중에도 다급하게 뇌리에 각인시킨 무공이기도 했다.

파아아아앗!

천세은은 지금 일생일대의 실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당희령이 손가락으로 피 구름과 먹구름을 불러일으켰다면 천세은은 손가락으로 화려하고도 아름다운 나비를 불러일으켰다.

“맙소사!”

그 모습을 본 당희령은 두 눈을 의심한 채 상체를 쭈욱 내밀었다.

그도 그럴 것이 화려한 나비가 생기고 무수히 많은 잔상을 남기는 이 모습은 자신의 사부이자 무림 최고의 암기 달인, 천수관음 나화연만이 선보이는 고유한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화연이 암기술을 펼쳤을 때 나타나는 모습!’

흡사 나화연이 다시 살아 돌아온 것 같은 기시감에 당희령은 전신을 주체할 수 없었다.

덜덜덜!

사실 당희령은 세상 그 어느 누구보다 나화연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부모조차 내버린 자신에게 온정을 베풀어준 나화연이기에 일말의 양심이 반응하는 것이었다.

당희령은 무척이나 악독했기에 후회는 하지 않았으나 때때로 꿈에서 나화연이 나오곤 했었다.

그 때문일까?

당희령은 미친 듯이 몸을 떨며 정신마저 붕괴될 지경이었다.

사악하고 악독한 마음 하나로 정점에 선 그녀치고는 나약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보고 있느냐, 당희령? 이것은 사부님의 솜씨다.”

천세은은 여러 가지 감정이 묻어나는 두 눈으로 당희령을 아래로 내려다보았다.

스스스슷!

무수히 많은 나비의 환영을 만들어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가히 천수관음의 재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럴 리 없어. 나조차 익히지 못한 후반부 초식을 네년 따위가…….”

당희령은 질투심과 더불어 여러 복합적인 마음에 미쳐 버릴 지경이었다.

장운을 빼앗긴 것만 해도 악귀가 되어버릴 지경인데 평생의 염원이었던 호접개화천수공 후반부 초식을 펼칠뿐더러 천수관음의 재림을 보여주기까지 하였으니 정신이 온전할 리 없었다.

‘내가 부상을 입었다고 하나, 나와 엇비슷한 솜씨라고?’

당희령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정도 실력이라면 부상은 차치하고서라도 자신을 위협하기 충분하였다.

그 어느 것보다 놀라운 것은 호접개화천수공을 완벽히 펼치는 천세은의 모습이었다.

솔직히 말해 그 후반부의 초식은 어마어마한 내공과 음의 성질을 지닌 내공이 필요하기에 당희령은 물론이고 사부인 나화연조차도 힘겹게 펼치던 무공이었다.

한데 지금 천세은은 그것을 완벽에 가깝게 펼치고 있었다.

물론 이는 장운의 도움이 컸기 때문이리라.

“사부님이 나를 거두면서 하신 말씀이 하나 있다.”

천세은은 그 말을 하며 두 눈을 감았다.

그러자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사부인 천수관음 나화연의 모습이 보였다.

기이한 것이 이번에는 비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이 아니라 평소의 모습, 너무나도 단정하고 아름다우며 한 치 흐트러짐 없는 그런 모습이었다.

-세은아, 추후 분명 당희령, 그 아이가 너를 노릴 것이다.

아마 십중팔구 그렇게 되겠지.

과거 나화연이 했던 말을 상기하는 천세은.

나화연은 결코 바보가 아니었다.

당희령의 성정이나 마음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녀였다.

차마 정(情)을 이기지 못해 그녀를 살려주었으나 당희령은 그 어느 암기보다 더 지독한 무기로 돌아와 사부를 죽이고 말았다.

-그 아이는 정말이지 암기와 관련하여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모난 천성 때문에 모든 것을 포용하고 떠안아야 하는 이 호접개화천수공을 온전히 익히지 못하였다.

아마 나중에 가면 당문의 암기술을 섞거나 과하게 살기를 내포하는 등, 호접개화천수공을 변질시키겠지.

나화연은 천하제일의 여고수답게 나름의 혜안이 있었다.

동시에 당희령의 친부모보다 그녀를 잘 아는 통에 반드시 호접개화천수공에 자신의 개성을 가미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예견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당희령은 호접개화천수공의 후반부 초식을 모르는 탓에 필수적으로 다른 개성을 가미하는 수밖에 없었고, 더군다나 당문의 일원으로서 획기적인 암기의 무공을 알고 있기에 다른 선택은 없었다.

-호접개화천수공은 일일전승의 비학으로 세대를 거쳐서 완벽을 거듭하는 무공이다.

희령이 그 무공에 당문의 개성을 더하는 순간! 그 무공은 진정한 위력을 잃고 빛이 바랠 터이니.

일찍이 호언장담을 하였던 천수관음 나화연.

세월을 뛰어넘어 그녀의 예측은 그대로 적중하였다.

-그러니 그녀를 만나면 두려워하지 말고…… 힘들겠지만 희령을 처치하도록 하려무나.

나화연은 일찍이 자신의 운명을 예감이라도 한 듯 천세은에게 미리 부탁한 적이 있었다.

바야흐로 오랜 세월이 지난 이후에야 천세은은 그 숙원을 풀게 된 것이다.

“너는 진정한 호접개화천수공을 알지 못하니…… 내게 결코 이길 수 없다고.”

꽈드득!

천세은은 섬섬옥수가 부서져라 오룡오지암을 움켜쥐었다.

이제 복수의 방점을 찍을 때가 도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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