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104화
대리 검수(劍手)(2)
대리 검수, 혹은 초빙 검객이라고 불리는 이 역할은 문파 대 문파 간의 전면전이나 비무에 있어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때로는 은밀하게, 때로는 대놓고 외부에서 고수를 초빙하며 어떻게든 전면전에서 이기기 위한 것이었으니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하였다.
“물론입니다. 다른 분도 아니고 진 대협의 일이니 제가 나서야지요.”
장운은 아비의 말에 흔쾌히 허락을 하였다.
어디 그뿐인가?
“항산파 고수분들께서 숫자가 적으시니 저를 비롯하여 금옥관에서 검을 다루는 표두들을 몇몇 대동하고 가겠습니다.”
파격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장운 소협!”
그 모습에 항산검옹 진호충은 크게 감동받은 얼굴이 되었다.
솔직히 말해 말년에 이런 일이 터져 내심 하늘을 원망하기도 했다.
많은 선행을 베풀어 온 자신이 어려움에 처하자 억울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죽으라는 법은 없는 모양이다.
“제가 아주 어릴 적부터 항산검옹 진 대협의 선행과 미담을 들으며 컸습니다. 심지어 제 아버님과도 막역한 사이이니 어찌 돕지 않을 수 있단 말입니까? 보수도 받지 않겠습니다.”
섬서성을 뛰어넘어 전 중원에서 명성이 자자한 금령공자 장운이 발 벗고 나서겠다 천명하였으니 진호충은 큰 감동을 받는 중이었다.
부르르!
어찌나 감격하였는지 노구가 떨릴 지경이었다.
“장하다. 과연 내 아들이다. 보수 문제는 내가 다 지원할 터이니 걱정 말고 의뢰에만 집중하려무나.”
진호충을 도우려는 마음은 장천호도 마찬가지였다.
장천호는 굳이 따지자면 협객이 아니라 표사였지만 무림에서 살아가는 데 있어 추잡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특히나 세 아들을 낳는 순간, 자랑스러운 아비는 못 되더라도 적어도 부끄러운 아비는 되지 말자고 생각하였다.
그런 장천호에게 항산옹검 진호충이란 존경의 대상이자 같이 있으면 마음이 맑아지는 지인이었으니 돕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검문끼리 대결이니 아마 비무 참가자는 검객만 되겠지요? 저를 비롯하여 여기 두길준 표사와 응운곤 표사도 있으니 인원은 충분할 것입니다.”
다행히도 금옥관의 표두들 중에서 검을 다루는 고수들이 많았다.
금령공자 장운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일검일섬 두길준은 이미 명문 정파의 후기지수들마저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해 파란을 일으켰었다.
반골 응운곤도 금옥관에 몸을 담기 전보다 실력이 일취월장하여 일반 표두 수준이 아니었다.
“오오오! 생각만 해도 든든하군.”
금령공자만 나서주어도 감지덕지할 판에 그 뛰어나다는 금옥관의 표두들이 나서준다는 말에 진호충은 감개가 무량하였다.
그러나 아직 문제가 남아 있었다.
“한데 회검문에서는 대리 검수의 참전을 묵인하겠다 하였습니까?”
문제는 다름 아닌 회검문 측 반응이었다.
대리 검수나 초빙 검객의 경우가 다반사라고 해도 상대 문파의 승낙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본 항산파를 우습게 보았습니다. 오 대 오 비무 대결에 승낙만 한다면 대리 검수나 지인을 초빙해도 된다고 하였습니다.”
진호충은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분개를 감추지 못하는 격정적인 모습이었다.
어찌 됐건 문제는 해결되었으니 걱정은 없었다.
“좋습니다. 그럼 저와 두길준 표사, 응운곤 표사를 비롯해서…….”
오 대 오 비무라고 했으니 비무 참가자를 얼마나 더 뽑아야 할지 고민하던 바로 그때였다.
‘그렇군.’
장운은 뒤늦게 옆에서 쏟아지는 뜨거운 시선을 느꼈다.
시선의 주인공들은 바로 항산검옹 진호충의 제자이자 항산파의 검객들이었다.
장운은 이제야 그들이 까칠하고 삐딱했던 이유에 대해 깨달았다.
“아! 혹시 항산파의 고수분들께서는 저희의 참전이 마음에 드시지 않으신가요?”
장운의 말에 항산파의 무인들인 모두 움찔하고 말았다.
내심 들켰다 싶은 것이다.
“그, 그게…….”
“흠흠, 다름이 아니오라…….”
“우리보다 한참 어리셔서 조금…….”
장운의 추측은 사실이었다.
이들은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부님에 대한 원망과 더불어 막냇동생 연배로 보이는 장운에게 좌지우지되는 것이 언짢아서 삐딱하게 굴었었다.
“어허, 이놈들이!”
이에 부탁하는 입장에서 오만불손한 태도를 보이자 겸허한 진호충이 일갈을 하려던 찰나!
“아니, 잘되었습니다.”
돌연 금령검객 장천호가 나섰다.
어차피 항산파의 내부 고수들과 장운 일행 간에 문제는 반드시 발발한다고 예측했기에 이참에 풀고 가는 게 상책이라 여겼다.
“괜찮으시다면 진 대협과 항산파 고수분들께서는 우리 장운의 실력이 어떠한지 한번 견식해 보겠습니까?”
장천호가 제안을 하였고.
끄덕!
장운도 자신이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든지 와도 좋다는 뜻이리라.
“제가……!”
“저도 해보겠습니다.”
“저도!”
이에 나름 혈기가 왕성한 항산파 세 고수들이 모두 나서려고 했다.
사실 이들은 인원이 거의 없는 항산 내부에서 무공을 수련하는 따분한 생활을 하였기에 자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요즘 대세라는 금령공자를 상대로 얼마나 선전할 수 있을지 궁금했고 나름의 자신도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그럼 세 분 다 함께 나서겠습니까?”
장운은 슬쩍 웃으며 특유의 패기를 자랑하였다.
“……뭐?!”
그의 말에 진호충은 충격을 받았다.
부글부글!
남은 세 제자들도 단전 아래부터 깊숙이 분노가 끓어오르는 것을 감지했다.
물론 개개인은 장운보다 약할 걸 알지만 혼자서 세 명을 상대하겠다니.
이것은 항산파를 무시해도 너무 무시하는 처사가 아닌가?
“오해 마십시오. 제 의도는 하나입니다.”
장운은 활짝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회검문이 상대해야 할 자가 얼마나 강한지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뿐!”
그 말에 진호충은 어느 정도 평정심을 되찾았다.
따지고 보면 자신 역시 금령공자 장운의 실력을 육안으로 지켜본 적은 없었다.
그리고 흔히들 강호의 소문은 몇 할 이상 부풀려져 있다고 믿었기에 그저 후기지수 중 제법 강한 수준이겠거니 싶었다.
스윽!
장운의 오만한 듯한 말에 항산파의 주진형, 규태, 우만정의 시선이 한데로 모였다.
사부인 진호충을 바라보며 허락만 해주면 삼 대 일의 대련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한번 해보거라.”
마침내 사부의 명령이 떨어지자 항산파의 세 무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검을 뽑아 들었다.
채재재쟁!
본디 이런 친선의 대련에서는 진검을 사용하는 데 주저하게 마련이나 이들의 검은 번들거리며 투기를 발산하였다.
“장운 소협. 정말로 괜찮겠소?”
“우리들은 봐주지 않을 생각이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소. 무를 거면 지금 무르시길.”
항산파의 세 사람은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였지만 장운은 요지부동이었다.
“괜찮으니 전력을 다해 덤비십시오.”
장운은 그들을 향해 결코 무례를 범하지 않았다.
예의와 존중을 보였고, 그저 그들에게 현실을 좀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아아아압!”
장운의 도발 아닌 도발에 분노를 한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검을 출수하였다.
그들이 펼친 것은 바로 항산파의 상징이자 이제는 고전(古典)이 되어버린 항산십이봉검법(恒山十二峰劍法)이었다.
장운의 전생인 검신 시절을 비롯하여 무수히 많은 검객들에게 영감과 기초가 되어준 검법이기도 했다.
-항산무봉(恒山舞峰)!
항산파의 세 고수의 선택은 나쁘지 않았다.
각자 다른 검법의 다른 초식을 사용하는 것보다 동일한 검법의 동일한 초식을 한곳에 모음으로써 부족한 위력과 기세를 더하였다.
동시에 세 고수들의 실력도 나쁘지 않았다.
일류라고 하기는 부족하고 이류치고는 강한 정도?
그러나 현재 장운의 실력은 초절정을 주파하고 있었으니 감히 상대 될 리 없었다.
-금령조화(金靈造化)!
장운은 그들을 무참히 깨뜨리는 것보다 툭, 치면서 깨달음을 주는 방향을 선택하였다.
파아아아앗!
금령풍운검법 중에서도 단연 많은 변화와 부드러움을 간직하였다는 금령조화 초식을 시전하면서 세 무인의 항산무봉 초식을 씻은 듯이 제압하였다.
이것은 압도나 우월의 개념이 아니었다.
무(無), 일검으로 모두 지워 버리는 상승의 묘수를 발휘한 까닭이었다.
주르르륵!
동시에 그들을 뒤로 주르륵 밀어내며 부드러운 검강으로 매만지기까지 했으니 눈치가 없는 자들도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장운이 무척이나 봐주었다는 것을.
“허억! 허어억!”
“이럴 수가!”
“……이런 격차가 있다고?”
장운의 시도는 우매한 그들의 시야를 넓혀주는 계기가 되었다.
단 일검으로 삼인의 검을 이긴 것은 물론이오, 세 사람의 목을 언제라도 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니 등 뒤에는 오싹한 땀 줄기가 흐를 지경이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불과 조금 전까지 장운을 향해 오만방자하게 굴었던 장면이 생각나서 다리가 떨렸다.
“오오오오!”
놀란 것은 이들의 스승인 항산검옹 진호충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잡기에 능하고 외부로 돌아다니느라 무재(武才)가 부족할지언정 한 검법을 진득하게 익혀 일류 수준에 도달한 위인이었다.
그런 만큼 적어도 상대가 타고난 검객인지 아닌지 구분할 눈은 있다고 믿었다.
‘타고난 검객이야. 아니, 검귀라고 해야 하나?’
진호충은 지금 전율이 일어 도대체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가 젊었던 시절, 금령검객 장천호와 조우했을 때도 이런 충격은 아니었다.
한참 어린 연배인 장천호가 자신보다 아득히 뛰어났을 때 느낀 감정은 질투와 더불어 포기였다.
그러나 현재 진호충이 장운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은 경외와 순수한 감탄인 것이다.
“믿을 수 없어…….”
놀란 것은 항산의 세 무인 중 가장 실력이 뛰어난 규태와 주진형마저도 두 눈을 끔뻑이며 당황할 지경이었다.
‘이렇게나 큰 격차가 있다고?’
우물 안 개구리가 드넓은 세상을 보았을 때 이런 심정이었을까?
지금 항산의 젊은 무인들이 느끼는 감정은 뭐라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놀랍고 막대하였다.
이기지 못하리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세 명인데 단 일검에 철저히 농락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제 좀 믿음이 가십니까?”
장운이 특유의 쾌활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실력 하나로 항산 젊은 세 무인들의 입을 막아버린 놀라운 광경이었다.
“진 대협, 정식으로 계약을 체결하시지요.”
장운은 이들과 대결을 하며 마음을 굳혔다.
항산파의 무인들을 위해 기꺼이 대리 검수가 되어주기로.
“이번 일은 저를 비롯하여 두길준 표사와 응운곤 표사, 이렇게 셋이 나서도록 하겠습니다.”
동시에 오 대 오 비무전을 치르는 데 있어 구상도 해놓았다.
무릇 오 대 오 비무는 먼저 삼 승을 올리는 것이 관건이었다.
따라서 나머지 두 명이 어떻든 세 명만 강하다면 필승이 가능하다는 말씀.
“부탁하네. 부디 우리 항산파를 도와주시게.”
고마움과 노파심으로 뒤섞인 진호충이 장운의 두 손을 꼭 잡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네. 진 대협께서는 평생을 언제나 남을 위해 돕고 희생하셨습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남에게 도움받을 자격이 충분하십니다.”
장운은 결심했다.
평생 착하게 살아온 이 진정한 대협을 위해서라도 꼭 회검문의 비열한 놈들을 모두 이기기로.
“오히려 회검문의 현판이 깨지는 날이 올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