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107화
대리 검수(劍手)(5)
“흐읍!”
거대한 덩치의 역사(力士), 대검투귀 종호는 신음하면서도 순식간에 몸을 비틀어 뼈가 상하는 것만은 면했다.
그러나 치명상인 것은 분명하였다.
비틀!
“아직, 아직 더 남았다!”
더 싸우겠다는 뜻을 천명한 종호는 성난 황소처럼 숨을 씩씩 내쉬며 뜨거운 콧김을 내뿜었다.
예나 지금이나 화난 야수가 더 무서운 법.
종호가 피를 보며 흥분하자 더 걷잡을 수 없다고 느껴질 무렵이었다.
서걱!
놀랍게도 또 한 번의 절단음이 들려왔다.
그 소리는 전혀 예상 밖의 일이라서 타격을 받은 종호조차 의아할 정도였다.
심지어 타격을 받고도 움직일 줄 몰랐다.
“어? 어어?”
종호는 어깨가 아니라 다리에서 느껴지는 시큰한 고통에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어깨보다 더 격심한 자상이 쩌억 벌어져 핏물을 줄줄 흘리고 있던 것이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현 장내에서 모든 상황을 알아차린 사람은 딱 세 사람이었다.
먼저 이 공격을 행한 장본인 일검일섬 두길준과 더불어 금령공자 장운, 그리고 회검문의 주인인 회인검랑 동방백이었다.
‘시간 차를 이용한 공격이었다!’
벌떡!
동방백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다시 한번 몸을 일으키며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지르는 중이었다.
그의 말이 옳았다.
극한의 쾌검을 자랑하는 두길준은 첫 번째 공격을 행한 다음, 혼란스러운 틈을 타 시간 차이를 두고 후속 공격을 시도하였다.
그 결과, 막강한 맷집을 가진 종호가 첫 번째 공격은 어찌어찌 버텼지만 두 번째 공격에는 어쩔 수 없었다.
어깨에 이어 다리까지 다쳤으니 과다출혈로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었다.
“으으, 으으으. 나는, 나는…….”
종호는 아쉬운지 애써 지혈을 하며 투지를 불태우려 하였으나.
“어리석은 놈. 나는 네 목을 벨 수도 있었다. 더 하겠다면 더 이상 손속에 정을 베풀지 않겠다.”
두길준은 냉정하게 말함으로써 그의 의욕을 완전히 짓이겨 버리고 말았다.
더할 나위 없이 두길준의 완승이었다.
“……졌다.”
이쯤 되니 종호도 마음이 꺾여 그대로 패배를 시인하고 말았다.
우와아아아!
두 번째 대결마저 빠른 속도로 끝을 맺자 좌중들은 또 한 번 달아오르는 중이었다.
특히나 무림의 중심지가 아닌 항산 일대에서 이런 수준 높고 재미난 비무는 좀처럼 찾기 힘든 것이기에 반응들이 열렬했다.
결과가 갈리자 양측이 느끼는 온도 차도 분명했다.
“저렇게 강한 자가 어찌 일개 표국에…….”
동방백은 어찌나 놀랐던지 마음속으로 생각하던 말이 육성으로 튀어나오고 말았다.
놀란 것은 항산파의 장문인인 진호충도 마찬가지였다.
‘대단하구나. 금옥관의 표두도 이렇게 강할진대 하물며 장운 소협은 얼마나 더 대단할지…….’
첫 번째 대결에 이어 두 번째 대결까지 연거푸 황금표국 표두들의 승리.
말 그대로 파란의 연속이 아닐 수 없었다.
“회검문, 회검문 하더니…… 뭐, 별다를 건 없는데?”
장운은 측근들에게 작게 말하였으나 뛰어난 고수인 동방백의 귀에 그대로 들어가게 되었다.
물론 들으라고 한 소리였다.
부들부들!
장운의 적나라한 말을 듣자마자 동방백은 피가 끓어오르다 못해 혈관이 터져 버릴 심경이었다.
어찌된 것이 단 한 번도 이기지를 못한단 말인가?
‘더 부끄러운 것은 시작하자마자 모조리 패배했다는 점이다.’
격렬하고 치열한 접전 끝에 패배했다면 이해라도 간다.
한데 종호를 비롯하여 백인하까지 처참하게 패배하는 통에 회검문과 자신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더 이상의 패배는 안 된다고 느낄 무렵이었다.
“아, 회검문주님?”
돌연 장운이 동방백을 찾는 게 아닌가?
“……?”
전혀 예측하지 못한 동방백이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며 돌아보았다.
눈은 웃고 있었지만 이마 위의 혈관들이 꿈틀거려 두 눈으로 보기 힘들 정도였다.
그것과 별개로 장운은 본래 생각했던 계획을 실천하였다.
“세 번째, 네 번째 대결은 포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뭐?!”
두 대결을 모두 포기하겠다니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동방백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진위 여부를 가리고자 장운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들은 어찌하여 2승을 거두고도 2패를 올리려 하는 걸까?
그 이유는 무척이나 간단했다.
“세 번째, 네 번째 대결에 나설 분들은 항산파의 고수분들이십니다. 현재 회검문은 연이어 패배를 당하였으니 잔뜩 독기가 오른 상태일 것이고…… 그렇다면 항산파 측에서 큰 부상을 입을 수도 있겠지요?”
그렇다.
장운의 계획은 바로 이것이었다.
응운곤과 두길준을 맨 처음 앞세워 빠르게 2승을 거둔 다음, 항산파 참가자들의 안위를 위해 모두 기권을 시킨다.
“그리고…… 어차피 회검문주님과 저의 대결로 대미(大尾)를 장식해야 하니 구태여 쓸모없는 피를 보기 전에 방지하려고 그랬습니다.”
장운은 솔직했다.
회검문 측에서 2승을 거두어 따라잡는다고 한들 결국 대장전에서 결과가 갈리게 되니 앞선 두 대결을 기권하겠다 천명한 것이다.
장운의 의도가 밝혀지자마자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과연 금령공자로다.”
“쓸모없는 희생을 피하려 하다니.”
“맞아. 괜스레 항산파에 시비를 거는 회검문과는 배포부터 다르다니까?”
앞선 황금표국 두 표사들의 실력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일까, 아니면 항산파라는 몰락해 버린 명문가에 대한 동정 때문일까?
좌중들은 이제 항산파를 응원하기 시작하였다.
“으으음.”
여론이 뒤바뀌기 시작하자 동방백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무언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느낀 것이다.
아울러 우스운 모양세로 2승을 따낸 것에 약간의 굴욕감마저 들었다.
“무례라고 생각하신다면 미리 양해를 구하도록 하겠습니다.”
장운이 정중히 포권을 하며 쐐기를 박았다.
따지고 보면 기권을 하는 것은 상대의 자유였으니 막을 방도는 없었다.
더군다나 그 제안도 회검문에게 있어 불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리했으니까.
‘그래. 어차피 네놈과 결전을 벌이리라 생각하고 있었지.’
동방백은 이렇게 된 마당에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금령공자 장운을 꺾어 위상을 다시 세우리라 다짐하였다.
“좋소이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지.”
그와 동시에 동방백은 앞으로 나와 차분히 몸을 풀었다.
사실 그에게 있어 전투와 비무는 일상 생활이나 마찬가지였다.
사흑천 내부 촉망받는 고수였던 시절부터 대주로 거듭나 이렇게 은밀한 특급 지령을 받을 때까지 매일 매일 사투를 벌여왔던 것이다.
“이해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장운도 적극적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확실히 강한 고수다. 그러나 나는…… 초절정의 반열에 들었다.’
초절정의 반열에 들은 다음 무공을 보는 눈이 부쩍 달라졌다.
특히나 과거에는 경지가 부족하여 모자랐던 전생의 무학들이 이해가 가기 시작해 그의 성취는 일취월장이었다.
흔히들 경지가 높아질수록 발전 속도는 더디며 평생을 그 경지에 머무른다고 하는데 천만의 말씀.
장운은 차원이 달랐다.
나날이 발전이고 검신의 무학을 깨닫는 과정을 즐겼다.
“자아, 마지막 대결이구려. 이 대결에서 승리한 문파가 항산 인근은 물론, 오대산까지 지역을 관할하도록 하며 지는 문파는 폐문이란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오.”
장운과 동방백이 차분히 몸을 풀고 있을 무렵, 진호충이 나서서 말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항산파의 운명이 걸린 승부에 위축이 될 법도 한데 놀랍게도 진호충은 침착한 모습이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했다. 남은 것은 하늘의 도움뿐.’
설령 장운이 패배한다 하더라도 진호충은 그를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장운과 황금표국에 엄청난 고마움을 느끼고 약속대로 항산파의 문을 닫은 다음 금자가 생기거든 조금이나마 의뢰 비용을 낼 요량이었다.
“후후후, 물론이외다.”
진호충의 말에 동방백은 오히려 먼저 이야기해 주어 고맙다는 눈치였고.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장운 또한 어깨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며 비무대 위로 뛰어올랐다.
처억, 척!
짠 듯이 두 사람이 동시에 비무대에 올라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맺힌 게 많은 동방백은 장운을 바라보는 눈이 곱지 않았다.
그에 비해 장운의 눈은 평온하고 덤덤하였다.
“준비가 되었소?”
동방백이 물었다.
흡사 아랫사람이나 하위 고수를 대하는 듯한 태도로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를 펼치기 직전, 상대의 집중력을 건들겠다는 의도였다.
끄덕!
이에 장운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개수작을 부려봤자 그에게는 전혀 통용되지 않았다.
“비무 시작!”
진호충의 외침 아래 마침내 비무가 시작이 되었다.
요 앞의 대결들이 모두 시작하자마자 치열한 양상을 보인 것과는 달리, 오히려 정반대였다.
스스스슷!
파아아앗!
두 사람은 모두 내공을 개방하며 차분히 탐색의 시간을 가졌다.
너무 고요하고도 침착한 모습에 비무가 아니라 차를 마시는 시간 같기도 했다.
물론 그것은 일반인이 보는 시각이지, 초절정 고수들은 달랐다.
“…….”
“…….”
장운과 동방백은 서로를 바라보며 은연중에 감탄을 터뜨렸다.
먼저 동방백은 장운의 심상치 않은 기도에 놀라고 말았다.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고수구나.’
은근히 자존심이 높은 동방백이었기에 극찬이나 마찬가지였다.
특히 사흑천 내부 고수 출신으로서 사파의 정점이라 불리는 사흑천에조차 장운 나이에 이런 성취를 자랑하는 고수는 없었다.
‘으음? 무언가 어두운 기운이 느껴진다.’
장운은 그에게서 특이한 기운을 읽었다.
이는 과거의 경험 때문이었다.
최근에는 적마방을 추적하다 만난 태상천의 의동생, 혈월문주 용진산을 만났을 때 느꼈고, 전생에는 광혈흑마 태상천과 마주할 때 느낀 그 특유의 느낌.
그러나 이것은 짧은 마주침이었기에 확신을 할 수 없었다.
‘좀 더 파고들면 확신할 수 있겠지.’
생각에 거기까지 미친 장운은 온 힘을 다해 초령검을 휘둘렀다.
-금령가화(金靈加貨)!
불과 조금 전까지 조심스럽게 탐색을 거친 것에 비하여 화끈하고도 과격한 공격이었다.
파바바밧!
장운의 검이 황금빛을 내뿜으며 순식간에 물들어가자 이를 상대하던 동방백의 두 동공이 커졌다.
내심 제법이라고 감탄을 하며 그도 자신이 자랑하는 무공이자 실상은 사흑천의 숨겨진 비전의 검공인, 단룡검결(斷龍劍結)을 펼쳐보였다.
이 단룡검결은 사흑천 내부에서도 매우 독특한 위치의 무공이었다.
무공의 탄생부터가 매우 특별한데, 과거 정파에서 파문당한 승려이자 무림 공적, 단룡거사(斷龍居士)가 창안한 검법으로 분명히 정파의 기질이 느껴지면서도 자세히 살펴보면 사파의 강력함과 살기를 지닌 무공이었다.
즉, 정사 중간을 표방하는 동방백에게 있어 필수적인 검법이자 가장 잘 들어맞는 무공이기도 했다.
사흑천은 이 모든 일을 계획하여 선택받은 동방백에게 이 단룡검결을 전수해준 것이었다.
-단룡회천(斷龍灰天)!
장운의 금령풍운검법이 화려하고 거센 바람을 일으킨다면 동방백의 단룡검결은 비장함과 예리함을 가미한 모습이었다.
분명한 것은 누가 이겨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상승의 검공이라는 점!
서로를 압도하는 거대한 검강이 공중에 뒤엉키며 어마어마한 후폭풍을 낳았다.
콰가가가강!
과연 이 비무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