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109화
복수의 시작(1)
우와아아아!
장운이 사흑천의 첩자로 밝혀진 동방백을 끝내 죽이자 사방에서 함성이 터져왔다.
강호무림에서 그럭저럭 호감이었던 회검문주의 초라한 추락이 아닐 수 없었다.
“역시 금령공자다!”
“저 나이에 벌써 초절정의 경지에 올랐으니 무엇이 두려우랴?”
“동방백도 그의 상대가 되지 못하지.”
그들은 장운의 실력이 자신의 실력이라도 되는 것처럼 몹시도 뿌듯해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중원 무림에서 떠오르는 최고의 후기지수를 꼽으라면 금령공자 장운과 더불어 일검매향 예천관이기 때문이다.
“문주님!”
“안 돼!”
절대로 쓰러질 것 같지 않던 회인검랑 동방백의 죽음에 회검문도 아니, 사흑천의 첩자들을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장운은 그러한 자들을 좌시하며 슬쩍 웃었다.
“지금 죽은 자를 걱정할 때가 아닐 텐데?”
장운의 의미심장한 말에 앞선 비무에서 패배한 백인하와 종호 등, 사흑천 첩자로 밝혀진 그들이 크게 당황하였다.
“……?”
도대체 무슨 소린지 싶었던 것이다.
“사흑천이 정파 무림에 악영향을 미친 이상, 무림맹이 가만히 두고 볼 것 같은가?”
그 말에 사흑천 이들은 아뿔싸 하며 발등에 불이 떨어진 얼굴이 되어버렸다.
물론 검신 장인랑을 제거하던 때, 사흑천주인 태상천과 무림맹주 천운학검 남일산은 손을 잡았다.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오월동주(吳越同舟)에 불과했다.
가장 큰 적인 검신을 제거하기 위해 마지못해 손을 잡았을 뿐, 무림맹과 사흑천 또한 서로 견제를 하며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곳이었다.
최대의 난적인 검신 장인랑이 죽은 만큼 그 이후에는 팽팽한 균형을 이루며 휴식기에 돌입하였다.
그런데 사흑천이 뒤에서 공작을 펼치는 것이 발각되었으니 무림맹은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젠장!”
“튀자!”
결국 남은 사흑천의 똘마니들은 꽁지가 빠져라 부리나케 도망가고 말았다.
그 뒤를 정의감 넘치는 이들이 추격을 하였으며 장운과 두길준, 응운곤 등은 그저 지켜만 보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일이 이런 방향으로 끝나고 말았군요.”
장운은 회검문 때문에 부쩍 마음고생이 심했던 항산파의 장문인 항산검옹 진호충을 찾았다.
“고맙습니다, 정말로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놀란 좌중들과 달리 항산파는 지금 축제 분위기였다.
문파의 존망을 위협하던 이들이 알고 보니 사흑천이었으며 장운과 황금표국이 그들을 대신하여 무찔러 주었으니 얼마나 고마울까?
“장운 소협.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내 항산파의 땅을 팔아서라도 꼭 보답을…….”
진호충은 너무 고마운 나머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내어주려 하였으나.
“아이고, 아닙니다!”
장운이 손사래를 치며 펄쩍 뛰었다.
애초에 진호충과 항산파에게 바라는 것은 없었다.
‘나는 항산파 검법에 영향을 받은 그 순간부터 꼭 은혜를 갚으리라 생각하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미 대가는 다 치르셨습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장운의 말에 진호충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진 장문인께서는 항산 일대뿐만 아니라 오대산 전역에 의로운 마음과 협을 펼쳐왔습니다. 저와 제 부친께서는 표국의 사람들이니 그 뜻을 오롯이 존경하였으나 아무래도 물질적인 가치 때문에 도와드릴 수 없었는데 이렇게나마 연이 닿게 되어 기쁠 따름입니다.”
장운은 그 어느 때보다 진심이었다.
진호충은 평생을 남을 위해 살아왔다.
그러니 오늘 단 하루만큼은 그를 위해 선심을 베풀어도 되지 않을까?
“이거…… 너무 미안해서…….”
평생 정의와 협을 위해 살아온 진호충은 너무나도 미안해했다.
주는 게 익숙한 나머지 받는 법을 몰랐던 것이다.
“미안할 필요 없습니다. 저는 충분히 받았으니까요.”
장운은 그렇게 말하며 두길준과 응운곤을 돌아보았다.
그 두 사람도 무척이나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흡족해하고 있었다.
“이제 회검문 놈들은 언감생심 감히 이 땅을 넘보지 못할 겁니다. 저들의 진정한 정체는 회검문이 아니라 사흑천으로 밝혀졌으니 무림맹의 공식적인 항의의 절차가 이어지겠지요.”
그렇게 된다면 무림맹은 조사단을 꾸려 이 항산을 향할 테고 자연스레 항산파는 그 낙수 효과를 받아 안전함을 보장할 수 있을 터였다.
바로 그때였다.
“고, 고맙습니다.”
“그간 무례를 범해서 죄송합니다.”
진호충의 제자들, 항산파의 젊은 무인들이 쭈뼛대면서 장운에게 정중히 포권을 하였다.
맨 처음 만났을 때와 비교하면 천지 차이를 보이는 통에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했다.
“별말씀을. 이제 항산파와 저희 황금표국은 남이 아닙니다. 도움이 필요하거나 만나고 싶을 때 언제든지 찾아주십시오.”
장운은 그 말을 남기며 두길준과 응운곤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그야말로 완벽한 임무 수행이었다.
* * *
장운은 다시 황금표국으로 복귀하면서 바람을 타고 들어오는 많은 소식을 접하였다.
-회검문의 진정한 정체는 사흑천의 일부였다!
-정사 중간의 고수로 명망이 높았던 회인검랑 동방백은 알고 보니 사흑천의 대주였다니.
-결국 그들은 금령공자 장운과 황금표국 표사들의 손에 쓰러져 정체가 발각되고 말았다!
이 소식은 어마어마한 광풍이 되어 전 무림을 휩쓸고 말았다.
검신 장인랑 사후, 무림맹과 사흑천이 맞부딪치는 최초의 일이었으니 그만큼 후폭풍이 컸던 것이다.
이후에는 장운이 예측한 대로 무림맹은 조사단을 파견하여 사흑천의 개입 여부를 완전히 조사하였다.
반면 회검문은 동방백이 죽자마자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어 세간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조사는 모두 끝났습니다.”
장운에게도 무림맹 조사단의 일부가 다가와 대면을 하였다.
개방의 고수로 무림맹의 눈과 귀가 되는 이들이었다.
이들은 황금표국 금옥관까지 찾아와 아직 피로가 가시지 않은 장운과 일행들을 상대로 몇 차례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앞으로 사흑천과 무림맹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장운은 구파일방의 일원답게 거지치고도 도도한 콧대를 자랑하는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것은 본 무림맹과 구파일방이 알아서 할 문제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지극히 정파다운 답변이 돌아왔다.
장운은 그것이 몹시도 싫었다.
그에게 있어 복수의 대상은 사흑천주인 광혈흑마 태상천뿐만 아니라 무림맹주인 천운학검 남일산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아니, 어떻게 보면 태상천보다도 더 악질이 이 남일산이다.’
무림맹주의 직위에 올라 역대 무림맹주 중 가장 고강하고 청렴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 그.
오죽하면 별호도 고고한 한 마리의 학이라는 뜻에서 천운학검이라고 붙여졌을까?
그러나 장운은 그의 실상을 잘 알았다.
‘자신이 무림 최고가 되어야 하고 절대 타인에게 머리를 숙이지 못하는 자.’
동시에 그 누구보다 많은 야욕을 가진 사람이 바로 남일산이었다.
이는 무림맹에서도 아주 높은 수뇌부 몇몇만 아는 사실로 남일산의 가식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 수 있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장운은 개방 고수의 말에 화가 나려 했지만 애써 억눌렀다.
거지와 겸상하여 싸워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조만간 무림맹으로부터 기별이 올 것이니 그렇게 아십시오.”
개방의 고수는 끝까지 도도하고 고압적인 자세를 유지하며 자리를 떠났다.
“거지새끼 주제에 목이 빳빳하군요.”
“주제 파악도 못 하는 놈 같으니.”
두길준과 응운곤은 자신들이 하늘처럼 생각하는 장운이 무시받자 화가 나는지 이글거리는 눈으로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내버려 두세요. 꼭 문파의 위치가 자신의 위치로 아는 소인배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장운은 전생에 그런 자들이 싫어 세력을 만들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더불어 장운은 사흑천에 대한 복수와 더불어 무림맹에 대한 복수가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직감을 받았다.
그렇게 며칠이 흐른 다음이었다.
“장운 도련님! 또 지목 의뢰입니다!”
금옥관의 표사들이 장운을 찾았다.
지난 회검문 사건 이후, 장운의 주가는 하늘까지 치솟아 그를 어떻게든 대면하고 만나기 위해 지목 의뢰를 하는 경우가 많았었다.
“특정 규모 이상의 의뢰가 아니면 거절하라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장운의 말에 표사들은 도리질을 하며 반색하였다.
“보옥전장의 장주께서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
보옥전장이라는 말에 장운의 두 눈이 이례적으로 커지고 말았다.
‘보옥전장이라면 섬서의 여러 전장 가운데서도 단연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 전장이 아니던가?’
그뿐만이 아니라 본래 보옥전장은 섬서 대대로 첫 손에 꼽히는 전장 중의 전장으로 한창 전성기에는 직접 전표를 뽑아내었고, 그 전표의 신용도가 중원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였던 시절이 있었다.
‘잠시 후계자 문제로 인해 첫 번째 자리에서 이제는 다섯 손가락 정도에 꼽히는 전장이 되어버렸지만 그 위세는 아직도 엄청나다!’
그런 대형 전장의 주인이 자신을 찾았다?
당연히 버선발로 마중을 나가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게 정말입니까?”
장운은 도저히 믿지 못해 재차 확인을 하였다.
더욱이 보옥전장의 주인은 과거 후계자 싸움에서 혈투를 벌인 만큼 좀처럼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아 은둔의 전주라고 불릴 지경인 것이다.
“네. 이미 명패를 확인하였습니다.”
표사들은 일제히 금옥관 내부 접객실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한눈에 봐도 일류 이상의 무인들이 부유해 보이는 한 중년인을 철통으로 호위하고 있었다.
일반 전장의 호위 무인이라면 일류 이상의 경지를 뛰어넘기 힘든데 그 숫자가 족히 다섯은 넘겼으므로 거짓은 아니리라.
“어서 가겠다고 전해주세요.”
장운은 한 차례 단장을 한 다음 재빨리 이동을 하였다.
‘도대체 어떤 이유로 보옥전장주가 나를 찾는지 모르지만 전속의 의뢰 계약을 따낸다면…….’
앞으로 몇 년간은 황금표국의 살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니, 역대급의 매출을 올릴 절호의 기회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일까?
장운은 여느 때보다 긴장한 얼굴로 접객실로 이동하였다.
“안녕하십니까? 황금표국의 장운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하여 절박함을 보이거나 과하게 자신을 낮추지 않았다.
그저 정중히 포권을 하며 예의를 차렸을 뿐이었다.
상대가 이미 자신을 지목하여 찾아왔다는 것은 장운 못지않게 상대도 장운을 원한다고 있는 방증일 터.
“오오, 그 장안의 화제라는 금령공자시구려.”
은둔의 전주라 불리며 치열한 후계 정리를 통해 보옥전장을 차지한 만큼 무섭거나 무게감이 있는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의외로 반색을 하며 장운을 맞아주는 게 아닌가?
물론 얼굴은 다소 강퍅하고 차가운 기운이 흘렀지만 쌍수를 들며 환대를 하는 통에 장운은 고맙기까지 했다.
“그저 허명일 뿐입니다. 외람된 말씀이오나 어찌하여 이곳까지 찾아오셨습니까?”
피차 서로 시간이 많지 않을 테니 장운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사실 겉치레에 치중하는 것보다 서로 원하는 것을 밝히는 것이 계약 성사 확률을 높이는 길이라 믿었다.
“내 지난 회검문 사건 일화를 소상히 들으며 매우 즐거워했습니다. 때마침 우리 보옥전장이 적재 창고를 새로 지어 물자 이동을 하려 하는데…… 귀 표국 측에 정식으로 의뢰를 부탁하고자 여기까지 왔습니다.”
보옥전장의 새로운 적재 창고라 함은 어마어마한 양을 의미했다.
이는 단시일 내에 옮길 수 없으며 적어도 반년은 잡고 차분히 이동해야 하는 대규모 의뢰에 해당되었다.
‘이건 대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