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111화
복수의 시작(3)
사흑천에서도 능히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뛰어난 고수인 탈명냉안 좌규.
그는 자신이 있었다.
‘금령공자 장운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일대일로 맞붙는다면 나를 이길 수 없을 것이다.’
회검문주인 회인검랑 동방백을 쓰러뜨렸다는 소문에 놀라긴 했지만 좌규는 동방백보다도 한 수 뛰어난 무인이었다.
동시에 표국 출신의 어린 무인이 강하면 얼마나 강하겠냐는 얕보는 시선이 깔려 있었다.
특히 허를 찔러 기습을 노린다면 십중팔구 어렵지 않게 끝나리라는 계산이었다.
“본 대에서 가장 강한 놈들로 세 명만 따라오지.”
좌규가 말했다.
장운이 생각보다 겁쟁이인 만큼 인원을 최소한으로 꾸리기로 마음먹었다.
욕심에 인원을 키우다가 조심성이 많은 사냥감이 도망칠지도 모르니까.
또한 뱃놀이를 할 터이니 그 특성상 많은 인원이 탑승할 수도 없었다.
이런 경우 최소한의 인원으로 구성하는 게 더 나았다.
“알겠습니다.”
대주의 말에 탈명대의 대원들은 일제히 기립을 하며 외쳤다.
그중에서 제법 머리가 잘 돌아가는 자 하나가 의문을 제기하였다.
“대주님, 혹시…… 장운이 함정을 설치하고 우리를 유인하는 게 아닐까요?”
생각의 역발상.
그 말에 장운이 그랬던 것처럼 좌규도 놀라움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좌규와 장운이 결정적으로 다른 것이 하나 존재했다.
“상관없다. 설령 유인한다고 해도…….”
장운은 전생의 실패를 통해 뼈저린 교훈을 배운 반면, 좌규는 오만하였다.
자신이 역으로 당하리라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놈을 인질 삼아 빠져나온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그 사소한 차이 하나로 두 사람의 승패는 물론이오, 운명마저도 결정되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비단 장운의 죽음만이 아니다.’
좌규가 원하는 것은, 그리고 사흑천이 원하는 것은 요즘 들어 승승장구하여 점점 눈에 거슬려가고 있는 황금표국의 기세를 눌러주는 것이었다.
듣자 하니 황금표국의 국주인 금령검객 장천호와 그 후계자 금령공자 장운을 제외하면 황금표국을 이끌어 나갈 인재는 없다고 하였다.
그 미래인 장운을 죽인다면 황금표국의 명운은 다하리라 믿었다.
“가자!”
* * *
“음하핫! 이렇게 초대를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탈명냉안 좌규는 다시 보옥전장 은둔의 장주인 금초고의 모습으로 돌아와 짐짓 호쾌한 척 웃음을 터뜨려주었다.
“아닙니다. 지난번에는 제가 실례가 많았지요? 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섭섭지 않게 준비하였습니다.”
장운은 그를 공손히 맞이하며 황금표국 인근의 강이자 섬서의 빼어나게 아름다운 강으로 유명한 금강을 가리켰다.
그 손끝에는 화려한 판옥선에 여러 무희들과 더불어 휘황찬란한 음식상이 준비되어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악사들도 준비되어 있어 대접에 소홀함이 없었다.
“오오, 금령공자께서 풍류를 이리도 좋아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좌규는 감탄하면서 한마디를 하였는데 사실 이 말에는 속내가 은연중에 담겨져 있었다.
뛰어난 무공으로 소문이 자자한 금령공자가 이런 주색잡기에 빠져 사냐는 뜻이었다.
장운도 그것을 잘 알지만 애써 무시했다.
‘두고 봐라. 네놈은 저 판옥선에서 처참하게 죽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다 전생의 복수이자 사흑천의 뛰어난 고수인 좌규를 죽이려는 의도였다.
“아무튼 이런 여흥에 있어 흥취를 깨뜨릴 수 없으니 호위 인원을 최소화하였습니다.”
좌규는 보란 듯이 말했다.
한낱 상인인 자신조차 고작 세 명을 대동하고 가는데 너는 몇 명을 데리고 갈 거냐는 의도였다.
‘겁쟁이인 만큼 최소 다섯 명 이상을 데려가겠지?’
좌규는 그렇게 예상하며 호위 무인으로 분장한 탈명대원들과 함께 인당 몇 명을 죽여야 할지 계산과 더불어 동선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옳으신 말씀입니다. 오늘같이 흥겨운 날, 딱딱한 자들이 껴서 되겠습니까?”
장운은 오히려 홀로 나서는 게 아닌가?
‘오오!’
그 모습에 좌규와 탈명대원들은 놀라운 반, 기쁨 반의 눈빛이 되었다.
설마 장운이 호위 무인이나 표사들도 없이 홀로 나설 줄은 전혀 몰랐던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내심 기뻐서 환호성을 내질렀다.
‘흐흐흐, 멍청한 놈.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배 내부에 장운을 잔인하게 처리할 계획이었던 좌규는 일이 생각보다 더 잘 풀리자 기쁠 따름이었다.
“자자, 음식 식겠소이다. 어서 가시지요.”
그렇게 두 사람은 각기 다른 동상이몽(同床異夢)을 품은 채 배에 탑승했다.
장운의 말마따나 무희들과 악사들을 제외하고 배에 탑승한 인원은 오로지 그와 좌규, 그리고 탈명대원 세 명이었다.
“곧바로 한잔 올리겠습니다.”
장운은 배에 타자마자 휘황찬란한 상을 들어오라 지시하고는 곧바로 잔을 따랐다.
이에 좌규는 탈명대원을 슬쩍 바라보며 혹시라도 술에 독이 있는지 경계했으나 다행히도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좋습니다, 좋아!”
좌규는 호탕한 남자처럼 술을 들이켠 다음 아름다운 무희들의 춤과 더불어 흥겨운 악사들의 연주를 경청하였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배는 금강에서도 인적이 드문 한가운데까지 도달하였다.
“자아, 이제 여흥도 어느 정도 즐겼으니 의뢰 이야기를 한번 해볼까요?”
좌규의 말에 장운이 슬쩍 손을 들어 제지를 하였다.
“그전에 잠깐, 제가 하나 재미난 이야기를 해드려도 되겠습니까?”
“재미난 이야기라. 이런 흥겨운 잔칫날, 재미난 이야기보다 더 좋은 건 드물죠. 어디 한번 들어볼까요?”
좌규는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해보라고 하였다.
어차피 조금 있으면 장운은 곧 죽을 것이니 그 정도 부탁쯤은 어렵지도 않다 생각했다.
“옛날에 매우 부유한 부자 한 명이 있었습니다.”
“허허~ 부자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재미있는 법.”
좌규는 적당히 맞장구를 치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물론 머릿속에는 언제 어떻게 장운에게 효과적으로 기습을 할 수 있을까, 오로지 그것만을 염두에 두었다.
“그 부자에게는 정실 부인도 많고 첩도 많아 다섯 명의 아들들이 있었는데 서로 그 재산을 차지하려고 싸우기 시작했더랍니다.”
“저런.”
“그래도 어머니는 달라도 아버지는 같아 반쪽이나마 피를 나눈 사이이기에 흉악한 짓까지는 치닫지 않았는데 문제는 외부에 있었습니다.”
“외부라뇨?”
“그 부잣집 근처에 유명하고 포악한 마적단이 있었는데 그 마적단의 단장이 그 집 재산을 탐냈던 겁니다.”
“흐으음.”
열심히 장운의 분위기를 맞추고 있던 좌규가 돌연 생각에 골똘히 잠겼다.
“급기야 그 부잣집의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수하를 보내었고 안타깝게도 부잣집의 전 재산은 마적단 수하에게 떨어졌지 뭡니까?”
“…….”
어느새 말문이 없어진 좌규는 정색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운의 이야기는 거침이 없었다.
“더 악독한 것은 그 다섯 명의 아들들과 부자 아버지까지 모조리 쳐죽인 다음, 대를 물려받은 행세를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장운의 그 말에 좌규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설마 우리 보옥전장을 두고 하는 말이오?”
그렇다.
장운이 해준 이야기는 정확하게 사흑천이 보옥전장을 차지하게 된 내막에 대해 풀어서 비유를 하였던 것이다.
좌규는 처음에는 모르고 있다가 점점 듣자 하니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같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장운이 어쩌면 모두 다 눈치챈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보옥전장이라니. 말은 똑바로 해야지.”
의심은 곧 확신으로 변하였다.
“사흑천이라고 해야 옳지 않겠나?”
휘익!
그 말을 듣자마자 금초고는 마침내 완전히 탈명냉안 좌규의 모습으로 돌변하여 뒤로 연거푸 물러섰다.
채앵, 채애앵!
그와 동시에 보옥전장 호위 무인으로 변장을 하던 탈명대의 특급 대원들이 저마다 숨겨둔 병장기를 꺼내 들었다.
꺄아아악!
화기애애하던 잔치 분위기에서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모하자 춤을 추던 무희들은 비명을 질렀고 악사들은 혼비백산하며 자리를 떠나고 말았다.
더 무시무시한 것은 지금 이 장소는 금강 한가운데라서 어디로 도망갈 때가 없다는 점이었다.
“껄껄껄. 재밌군, 재밌어.”
좌규는 더 이상 정체를 감추지 않았다.
오히려 전신전력으로 살기를 발산하며 특유의 차디찬 안광을 빛내고 있었다.
평범한 용모의 좌규를 한 번만 보더라도 절대 잊을 수 없게 만드는 그 특이하고도 살기 짙은 눈빛.
강호무림에 무수히 많은 살성(殺星)들과 마인(魔人)들이 존재한다고 하나 눈빛만으로 따지자면 이 탈명냉안 좌규가 최고였다.
“언제부터 알아차렸지?”
좌규가 물었다.
그 무시무시한 살기와 목소리 덕분에 따뜻하게 데운 술마저 차게 느껴졌다.
“글쎄…… 언제일까?”
좌규는 세 명의 절정 무인과 대동한 반면 철저하게 혼자인 장운은 움츠려야 정상인데 묘하게 여유가 넘치는 것이 아닌가?
“이런 미친놈!”
좌규는 장운이 여유가 넘칠수록 기이하게도 누군가가 쫓아오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놀랍게도 놈은 내 정체를 미리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왜 혼자 이 배를 탄 것일까?’
이 잔치를 즐기다가 그 중간에 알아차렸을 리는 없다.
좌규, 자신의 연기는 완벽했고 실수도 하지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설마…….”
좌규는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도망을 갔던 무희들과 악사들의 방향을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채재재쟁!
무희들과 악사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일제히 환복을 하며 모조리 병장기를 꺼내 드는 게 아닌가?
사실 그들은 모두 금옥관의 표사와 표두들로 변장을 하였던 것이다.
천세은과 응운곤, 두길준과 감우량부터 해서 동곽까지.
금옥관의 고수들이 총 망라되어 있었다.
물론 실제 무희와 악사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갑판 아래로 내려가 안전히 대피를 하였다.
“이 쥐새끼 세 마리를 포위하라.”
이제는 장운의 오른팔로 거듭이 난 정파 무림의 기대주, 일검일섬 두길준이 탈명대원 셋을 가리키며 말했다.
금옥관의 표사들이 맡은 임무는 좌규를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좌규의 똘마니를 처리하는 거였다.
이로써 장운은 오롯이 좌규만 상대하면 될 일이었다.
“함정은 네놈이 판 것이 아니라 내가 판 것이다.”
장운이 좌규의 눈빛만큼이나 냉랭하게 말했다.
그의 말은 옳았다.
‘나는 일부러 혼자 배에 타는 척 연기를 했다.’
이는 모두 좌규의 방심을 유발하기 위함이었다.
“혹시라도 배에 타지 않을까 봐 얼마나 걱정을 했던지.”
장운이 그를 배에 태운 이유는 두 가지였다.
좌규가 혹시라도 도망을 가 사흑천으로부터 지원군을 불러올까 봐.
그리고 남은 이유는 바로…….
“네놈도 이 자리에서 실종이 되는 거야. 사천 당문의 당호륜과 당희령. 그리고…… 혈월문주 용진산처럼!”
좌규를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서 실종 처리를 꾀할 요량이었다.
그런 다음 장운이 가지고 있는 모든 재주와 인맥을 동원하여 보옥전장의 재산이 실제로 탐이 난 좌규가 야반도주한 것으로 꾸밀 계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