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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118화 (117/173)

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118화

파란의 비무행(比武行)(1)

[……(중략)…… 제 검에 자신이 생겼습니다.

하여, 오는 보름날, 은검문(銀劍門)의 검과 제 검을 한번 시험해 보려고 합니다.

황금표국의 후계자, 금령공자 장운 배상(拜上)]

“푸하하하핫!”

새하얀 은발을 지닌 노검수(老劍手)는 그 서신을 보자마자 파안대소(破顔大笑)하고 말았다.

이것은 기분 좋은 웃음이 아니었다.

그 서신의 내용이 너무 어이없었기 때문이다.

와그작!

아니나 다를까?

은검문주인 은광세검(銀光細劍) 벽소월은 이내 정색을 하며 그 서신을 일그러뜨리고 말았다.

“이 미치광이 같으니. 젊은 세대 중에 잘나간다고 하니 뵈는 것이 없는 건가?”

감숙성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초절정 고수이자 드높은 자존심으로 유명한 벽소월.

그의 분노는 일리가 있었다.

은검문은 구파일방의 명문, 공동파의 영원한 호적수이자 감숙성에서 오래된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 중의 명문이었다.

비록 구파일방에는 들지 못한다고 해도 강호에서 가장 강한 문파 열다섯 곳을 꼽으라고 한다면 언제나 빠지지 않고 순위에 꼽히는 곳이었다.

‘그런데 뭐? 검에 자신이 생겼으니 시험을 해보겠다?’

이보다 오만방자한 말이 어디 있단 말인가?

벽소월이 화가 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냥 무시하십시오, 아버님.”

벽소월의 장자이자 장운과 비슷한 또래인 벽광일은 어이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금령공자 장운이 강하다는 것은 안다.’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신진 고수 중에서 잘 나가는 것이지, 이 은광세검 벽소월은 차원이 다른 고수였다.

즉, 한 문파의 장문인 급이라는 소리였다.

장운이 강하다고 하지만 아직 장문인급 고수로 견주기에는 시기상조(時機尙早)라는 의견이 공통이었다.

“무시? 쯧쯧, 이 어리석은 녀석 같으니. 이 은검문의 문주인 내가! 한낱 표국 무인의 도전장을 받고도 그냥 넘어간다면 세상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벽광일은 급격히 대노하는 아버지의 호령을 들으며 곧바로 후회를 하였다.

정파 무인들은 대개 자신의 무공과 출신 성분에 관해 자부심이 강하지만 이 벽소월은 특히나 더 대단한 자부심을 자랑하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에게 장운의 도전장을 무시하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세간의 평판과 더불어 호시탐탐 공동파를 넘어서려고 준비 중이었다.

‘하필 또 금령공자 장운은 공동파와 인연이 깊다고 들었다.’

그런 와중에 은검문주를 자극하였으니 이래저래 악연으로 얽힌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미울 판국에 이렇게 직접 도전장까지 보내주니 우는 아이 뺨 때린 격이나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잘되었다. 이참에 이 건방진 녀석을 혼내서 강호의 법도를 올바르게 세워야겠구나.”

벽소월은 짐짓 고고한 척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겉으로 볼 때 청수하고 곱게 늙은 벽소월은 그야말로 성인군자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달랐다.

그 어느 누구보다 세간의 평가에 민감하고 어떻게든 자신의 명성을 떨치고자 발버둥치는 소인배였다.

‘요즘 들어 제법 유명하다는 장운을 꺾는다면…… 자연스레 내 위상도 높아지겠지.’

처음에는 화가 났지만 가만히 서서 머릿속에 주판알을 튕겨보니 이것은 밑지는 장사가 아니었다.

오히려 공동파의 지인인 장운을 무참히 꺾어 큰 망신을 줄 요량이었다.

“광일아.”

“네, 아버님.”

“서둘러 황금표국 측에 답변하도록 해라.”

“뭐라고 말입니까?”

큰아들의 질문에 벽소월은 청수한 도인(道人)처럼 입을 열었다.

“강호의 후배님께서 가르침을 청하시니 만인이 보는 자리를 만들어 허심탄회하게 검을 논하자고 말이다.”

더할 나위 없이 고귀해 보이는 외관과 달리 그의 두 눈에는 욕심과 야망으로 불타고 있었다.

* * *

“금령공자 장운이 과연 올까?”

“자기가 먼저 도전장을 보냈는데 안 오고 배기겠어?”

“제아무리 신묘한 금령공자라고 해도 이번에는 실수했어.”

“맞아! 은검문주는 장운의 아비인 금령검객 장천호만큼이나 뛰어난 고수라고. 죽었다 깨어나도 못 이기지.”

새벽부터 은검문 인근은 분주했다.

왜냐하면 은검문주인 은광세검 벽소월이 며칠 전부터 공고를 했기 때문이다.

[오는 보름날, 이 벽 모가 사랑하는 후학, 금령공자 장운 소협과 검의 미래를 논하는 비무를 하기로 했으니…… 검학(劍學)을 연구하는 강호 동도 여러분들께서는 거리낌 없이 본 은검문을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에둘러 말하였으나 핵심은 하나였다.

은검문주와 금령공자가 비무를 벌이니 모두가 입회인이 되어 결과를 지켜보라는 말이었다.

그만큼 벽소월은 자신이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오! 왔다!”

“황금표국의 뛰어난 일급 표사들과 금령공자 장운이다!”

“황금표국의 후계자 장운!”

소란이 일어나기 무섭게 멋들어진 금의를 두른 장운을 위시로 두길준과 천세은, 응운곤 등 표사들이 뒤를 따랐다.

도전장을 보낸 장본인인 장운은 그렇다 치더라도 뛰어난 표사들이 총출동했다는 것은 하나를 의미했다.

황금표국 또한 장운의 비무행을 지지하겠다는 뜻!

‘흥! 왔구나.’

은검문의 주인 벽소월은 먼발치에서 장운 일행이 오는 것을 지켜보며 속마음으로는 갖은 욕을 다하였으나.

“으하하핫! 이게 누군가? 요즘 들어 강호무림을 진동시킨다는 천재, 금령공자 아니신가?”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는 만큼 위선자이자 겉과 속이 다른 벽소월은 가증스러운 모습을 연출하였다.

“과찬이십니다.”

이에 장운은 그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 추악한 속마음이 뜨거운 불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나 내색은 전혀 하지 않고 포권을 하며 예의를 차렸다.

어떻게 보면 무리한 부탁을 먼저 요청한 것은 바로 자신이니까.

“아닐세. 어딜 가도 다 자네 이야기니 말이야. 부러워 죽겠네. 내 아들들이 셋이나 되는데 셋을 합쳐도 금령공자 하나만도 못하니, 원!”

벽소월은 연신 호들갑을 떨면서 장운을 치켜세워 주었다.

물론 이는 호감이 아니라 이후 나락으로 떨어뜨리기 위해 계산한 행동이었다.

“칭찬 감사합니다.”

“허허허, 그나저나 자네가 먼저 이렇게 가르침을 청하니 기분이 참 좋네. 같은 검도를 추구하는 검객이자 선배로 후배의 요청에 응당 응해야…….”

그 순간 장운이 슬쩍 손을 들어 벽소월의 말을 끊었다.

“외람되오나 정정할 부분이 있습니다.”

“정정?”

장운은 순간적으로 벽소월이 당황하는 것을 지켜보며 진실이 아닌 부분을 짚었다.

“제가 여기까지 온 까닭은 친목을 도모하는 것도 아니고 은검문주께 한 수 가르침을 받겠다는 뜻도 아닙니다.”

장운이 주장하는 바는 간단했다.

서신, 아니, 도전장에 보낸 내용 그대로였다.

“제 검에 자신이 생겼습니다. 실전을 방불케 하는 비무를 요청 드리는 겁니다.”

장운은 보다 더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지금 자신이 도전장을 보내고 여기까지 찾아온 것은 친목질을 하는 것도, 한 수 배움을 부탁드린다며 살기 없는 대련을 하고자 함이 아니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

“누구의 검이 더 강한가? 그것을 증명하고 싶을 뿐입니다.”

장운의 말은 엄청난 후폭풍을 낳았다.

오오오오!

그의 발언에 오늘 모인 백여 명의 중인들이 일제히 탄식할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은검문을 상대로 이런 발언을 서슴지 않았으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 이…….”

장운의 거침없는 발언에 대인배인 척 연기를 하고 있던 벽소월의 표정에 금이 갔다.

찰나의 순간이나마 그의 본성이 발현된 것이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장운은 곧바로 파악하였다.

‘은검문이 어떠한 곳인지 잘 안다.’

장운은 전생인 검신 장인랑 시절 때부터 공동파와 이 은검문을 잘 알았다.

공동파를 밀어내겠다는 일념하에 보이지 않은 곳에서 갖은 수작을 다 부리는 곳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저 은광세검 벽소월은 공동파의 장문인이자 공동제일검인 복마진검 진가후를 누르고자 근방에 나는 영약과 약초는 쓸어 담는 중이었다.

“제 발언이 무례했다면 정중히 사과드리겠습니다.”

장운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며 무림의 선배를 존중했다.

장운은 확실하게 선택지를 주었다.

도전장을 먼저 드림으로서 은검문이 거절할 수 있으면 거절해도 된다는 방향을 고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운을 이곳까지 당도하게 만든 것은 어디까지나 벽소월의 선택이었다.

“어차피 선배님과 저는 보다 더 많은 명성을 원합니다. 그러니…….”

장운은 초령검에 손을 가져다 대며 비무를 준비하였다.

“그거면 되지 않겠습니까?”

장운은 자신의 실력이 표국 무인 수준을 지나 후기지수 최강을 넘어 이제 장문인급이라는 증명을 원했고, 벽소월은 요즘 장안의 화제라는 장운을 꺾어 유명세를 원하는 중이었다.

둘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였으니 그 어떠한 미사여구를 갖다 붙일 필요는 없었다.

적어도 장운은 그렇게 생각했다.

“으핫! 헛! 우리 후배님께서는 젊고 혈기가 왕성하시구려.”

끝까지 대인배 면모를 보이려는 벽소월의 표정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두 눈은 살기로 번들거리는데 입만 애써 웃고 있는 것이 어색하게 만들어진 인형을 방불케 했다.

그는 억지로라도 참으려고 했으나 그저 참고만 있을 위인도, 그릇이 넓은 사람도 아니었다.

“설마…… 뒤에 공동파와 복마진검 진가후 장문인이 뒤를 봐줘서 그런 것은 당연히 아니겠지? 하하하, 농담이오. 농담!”

그런 사람의 특징이 있다.

주위 사람들은 아무도 안 웃는데 혼자서만 박장대소를 한다는 점이었다.

“좋네, 좋아. 간만에 이렇게 후배께서 비무를 하자는데 거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벌써 목까지 시뻘게져서 당장이라도 개백정처럼 검을 휘두르고 싶어 안달이 났는데, 그것이 두 눈으로 다 티가 나는데 정작 본인만 모르고 있었다.

“그래. 화끈한 비무를 원한다면 한번 하지.”

벽소월도 자신의 애병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 검은 굉장히 독특했는데 은검문의 무공과 매우 잘 어울리는 폭이 굉장히 좁고 검 끝이 무척이나 날카로운 검이었다.

아울러 소인배인 벽소월이 검을 잡자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적어도 그는 호협한 대협은 아닐지언정 뛰어난 검객인 것은 그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지.’

장운은 검과 함께 일치되어 합일(合一)의 자태를 뽐내는 벽소월을 지켜보며 웃음이 번졌다.

아무리 비무행 초입이어도 잔챙이는 싫었다.

힘겹게 오식을 깨우쳤는데 만만한 상대를 지목하는 것은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시작하기 먼저…… 우리 후배께서 실전과 같은 비무를 하자고 했으니 우리 둘 중 누군가가 다쳐도 원망하는 것은 없도록 하지.”

벽소월은 끝까지 사람 좋은 미소를 선보이며 말했다.

저 말을 해석하면 반드시 피를 볼 것이니 죽을 준비를 하라, 정도가 될 것이다.

장운은 벽소월의 됨됨이를 알고 있는지라 웃음이 터질 뻔한 것을 애써 참으며 답하였다.

“얼마든지요.”

이제 모든 의견이 모아졌다.

남은 것은 잔뜩 달아오른 두 검객의 비무를 지켜보는 일뿐이었다.

“내 배움이 워낙 부족하여 후배님께 삼초를 허락하지는 못해도 선제공격은 양보하겠네.”

자만은 불행의 씨앗인 것을 벽소월은 아둔하여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곧 닥쳐올 엄청난 불행을 자신의 손으로 지핀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그 선택 때문에 나락으로 떨어질 일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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