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130화
또 다른 천재(5)
“투검자 여송. 그대는 실로 대단한 적수였소. 대 명문 정파인 무당파를 대표하기 한 치의 부족함도 존재하지 않았으니…….”
장운은 점점 깊은 잠에 빠져드는 여송을 향해 정중히 포권을 하였다.
여송은 불가항력(不可抗力)으로 인해 의식이 멀어지는 와중에도 검을 놓치지 않았다.
그 모습이 다른 사형제들과 장로들을 더 눈물짓게 만들었다.
“오늘은 그만 편히 잠드시길.”
장운은 그를 향해 진심을 보였다.
‘내가 상대했던 그 어떤 자들보다 끈기가 있고 마음이 강한 상대였다.’
아직 실전 경험이 조금은 부족하고 젊기에 성숙하지 못하는 부분은 있을지언정 그 그릇의 크기만큼은 단연 압도적이었다.
장운은 진심으로 그를 생각하였다.
오늘의 패배로 인해 투검자 여송이라는 인물의 앞날이 어둡지 않기를 갈망했다.
그는 단 한 번의 패배로 평가받기에는 너무 아까운 사람이란 걸 잘 알아서였다.
“후우우.”
모든 전투를 마친 장운은 언제나 그랬듯 피로가 담긴 한숨을 내쉬었다.
오식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서 피로가 없는 것은 아니니까.
우와아아아아!
장운이 완벽한 승리를 거두자 적지에서 조용히 응원하고 있던 금옥관의 표사들은 일제히 고함을 내질렀다.
아직 여송의 패배로 인해 무당의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
‘드디어 무당파의 검도 꺾었다!’
‘삼대 잠룡이라는 투검자 여송을 이겼다고!’
그러니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으랴?
오히려 그들을 배려했기에 그저 함성만 내질렀을 뿐, 패자(敗者)에게 상처가 될 법한 말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장운에게 달려가 과한 축하를 하지도 않았다.
그저 자리에서 즐겼을 뿐이었다.
파아아앗!
마침내 두 사람의 비무가 끝나자 가장 먼저 비무대 위로 송학검객 자견이 달려 나왔다.
‘여송은 곧 장문인이 될 아이다!’
언제나 사형을 부러워하며 그를 은근히 시기하고 질투하던 못난 소인배, 자신과는 차원이 다른 아이라고 생각했다.
주르륵!
자견은 여송에게 달려가는 그 짧은 순간에도 눈물이 흘렀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사형은 미웠는데……. 사형이 남긴 제자는 왜 이리도 이쁜지 모르겠소.”
그 말은 진심이었다.
솔직히 투검자 여송의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
남들은 죄다 창천폭뢰니, 일검매향이니 인물들도 좋고 멋들어진 천재들인데 여송은 보잘것없이 생겨 뒷담을 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태극자 자운의 눈이 옳았다.
어째서 여송을 후인으로 정하였는지, 차기 장문인감으로 낙점하였는지 이제야 여실히 느낀 것이다.
“여송, 괜찮느냐?”
그는 잠에 빠져든 여송을 일으키며 그의 전신을 갈무리하였다.
여송의 몸에는 아직도 치열했던 격전의 흔적이 잔뜩 남아 있었다.
예천관과 남궁벽보다 크지 않은 전신에 피와 상처들로 가득하였다.
“크흡!”
그 모습에 자견은 참지 못하고 울음소리를 내어버렸다.
‘이 작은 체구로 훌륭히 싸웠구나.’
반드시 이겨야 할 싸움에 진 사형의 제자.
미워해야 정상일진대 가슴이 아프고 미어졌다.
치열하게 분투를 했던 흔적을 보다 못하여 자견은 자신의 도포를 벗어 그를 덮어주었다.
“대리 장문인으로 명한다!”
자견은 애써 눈물을 닦고 모든 무당의 도사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엄숙히 선언했다.
“오늘 이 치열했던 비무를 보고 확신을 하였다.”
자견은 자신이 사랑하고 미워했던 사형, 태극자 자운의 모습을 떠올렸다.
공교롭게도 여송과 자견 모두 그의 흔적을 상기하고 있었다.
-사제, 자네가 장문인을 대신 맡아주게.
자운 도인이 등선을 위해 떠나기 직전, 자신을 찾아왔을 때 나누었던 대화를 복기했다.
-네? 제가요?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자견이 놀라며 되묻자.
-그래. 사제는 언제나 장문인이 되고 싶어 했잖아?
아무것도 모른 줄로만 알았던 자운의 말에 자견은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아, 아니, 나는…….
-괜찮네. 자네가 대리 장문인을 맡다가…… 여송이 믿을 만해졌다 싶을 무렵에 넘겨주게나. 만약 영 시원치 않다면 사제가 장문인 자리에 눌러앉아도 좋네.
-…….
솔직히 그 당시에는 사형이 자신의 저의를 의심하는 것 같아서 밉고 영 찝찝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난 뒤에야 깨달았다.
‘사형은 다 알고 있었구나.’
투검자 여송이라면 반드시 모두를 진심으로 납득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처음에는 그를 진심으로 믿고 따르기보다 외부인인 장운 일행에게 분열된 모습을 보일 수 없어 그를 앞장세우고 뒤를 따랐는데 이제는 달랐다.
“오늘부로 투검자 여송을 대 무당의 이십일대 장문인으로 명하겠다!”
모든 생각을 마친 자견이 내공을 담아 소리를 질렀다.
“……?!”
갑작스러운 선언에 무당의 도사들은 일제히 얼어버리고 말았다.
솔직히 반드시 이겨야 할 비무에 졌는데 벌을 안 주고 장문인 직위를 주다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러다가.
우와아아아아!
무당파의 모든 인원들이 아이가 된 것처럼 일제히 소리를 내질렀다.
사실 비무의 결과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내용보다 결과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해도, 때때로 결과보다 내용이 심금을 울릴 때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이 비무였다.
“나의 사형이자 전대 장문인이신 태극자 자운 도인께서는 좀 더 지켜보라 조언하셨지만! 나는 오늘 진정으로 깨달았다.”
자견은 애써 여송을 부축하며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선언하였다.
“투검자 여송은 본 무당파를 이끌어나가기 부족함이 없는 인재이며 다시 엄청난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불러오리라 확신한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모든 이들이 인정을 하며 함성을 내지르고 박수를 쳤다.
바야흐로 새로운 세대의 젊은 장문인이 탄생하는 순간이자 투검자 여송이 모든 인물로부터 진정으로 인정받는 때였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송은 깊은 잠에 빠져 눈을 뜰 길이 없었다.
워낙 치열한 격전을 치렀기에 아마 이틀은 잠자고 있을 것이다.
“금령검제 장운 소협. 여송과 싸워줘서 고맙네. 이것은 진심이야.”
자견은 여송을 다른 도사들에게 넘겨 의원으로 보낸 다음, 장운과 조우했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여송 소협과 검을 나눌 수 있어, 그리고 무당의 위대한 검을 견식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장운 또한 진심이었다.
남궁에는 남궁의 검이 있고 무당에는 무당의 검이 있다.
그리고 장운에게 있어 가지각색 다양한 상승의 검을 만나는 것은 맛이 다른 달콤한 당과를 마주한 어린아이와 같았다.
그만큼 기쁘고 신이 난다는 이야기였다.
“그리 말해줘서 고맙군. 그래, 자네가 본 우리 여송은 어떤가?”
자견의 질문에는 무당을 잘 이끌어나갈 수 있겠냐는 뜻이 담겨 있었다.
이미 여송을 아끼고 사랑하는 나머지 객관적인 시야를 상실했다고 여겨 문파 외인인 그에게도 물은 까닭이었다.
“훌륭한 무인이기 이전에 심기가 굳고 그릇이 큰 사람입니다.”
투검자 여송.
그는 장차 더 위대한 검객이 될 것이고 어쩌면 무당파 역대급 장문인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 그거면 되었네.”
이로써 모든 비무가 종료되었다.
* * *
투검자 여송과 치열했던 비무가 끝난 뒤, 장운과 일행들은 무당파의 귀빈 대우를 받았다.
심지어 장운 일행이 떠나려고 하자.
“여송이 곧 깨어날 텐데……. 좀 기다렸다 가는 것이 어떻나?”
여송이 건강을 완벽하게 회복하기 전까지 대리 장문인 직위를 수행해야 할 송학검객 자견이 이렇게 권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운은 고개를 저었다.
“오랫동안 자리를 비웠습니다. 표사가 표국을 떠나서야 쓰겠습니까?”
장운은 씨익 웃으며 그 말을 남겼는데 나이가 들어 생각이 깊은 자견은 그 말의 속뜻을 알았다.
‘옳거니, 드디어 강호의 비무행을 마치고 황금표국으로 복귀하겠다는 소리구나.’
그의 예측은 옳았다.
장운은 무당파와 비무를 끝으로 길고 길었던 파란의 비무행에 방점을 찍고자 했던 것이다.
‘물론 아직도 상대하고 싶은 고수들이 많다.’
구파일방 오대세가의 장문인, 가주들은 물론이고 전생의 원수인 천운학검 남일산까지 말이다.
실제로 무당파 이후에도 한두 번의 비무를 더 할까 고민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 비무와 실전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들은 다 얻었다.
그것을 깨닫게 해준 인물이 바로 투검자 여송이었다.
검의 경지보다 검의 혼을 넣는 것이 더 강하고 뛰어나다는 것을 그가 알려주지 않았나?
“아쉽군.”
“무당파가 있는 호북성과 본 표국이 있는 섬서성은 그리 멀지 않습니다.”
장운이 웃으며 말했다.
물론 두 성을 오갈 때 범인들은 족히 수십 일은 걸린다지만 이들은 절정을 뛰어넘는 절세 고수들이었다.
거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진정 중요한 것은 마음의 거리일 뿐.
“황금표국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언제든 편히 방문해 주십시오.”
이제 무인으로서 장운은 잠시 휴업이었다.
다시 표두 장운으로 되돌아왔다.
“저렴하게 모실 테니 금옥관에 오시는 걸 잊지 마시고요.”
그 너스레에 자견을 비롯하여 모든 사람들의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으하하하핫!
분위기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장운은 영업을 잊지 않았고 고객 확보에 여념이 없었다.
“물론이네. 종종 표국에 놀러 갈 테니 잊으면 안 되네!”
이로써 장운은 남궁세가에 이어 무당파와도 깊은 인연을 남기게 되었다.
비무행을 통해 적을 만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친구와 인맥을 만들었으니 대성공이라 할 수 있었다.
* * *
이윽고 장운은 금옥관 일행들과 함께 오랫동안 자리를 비웠던 황금표국으로 이동하였다.
그동안 세월을 돌이켜보니 자그마치 1년 이상 훌쩍 넘어가 있었다.
‘과연 표국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버님은 어떻고?’
다시 되돌아간다니 장운은 이상하게도 가슴이 설레고 궁금한 것들이 많아졌다.
어느 정도 소식은 들었고 별 위기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긴장이 되었다.
“이거 긴장되는군요.”
“맞아요. 저희들은 종종 왕래를 하고 오가기도 해서 대충은 알고 있지만…….”
두길준과 응운곤, 천세은도 덩달아 긴장을 하였다.
그들은 비무행을 따라다니며 한 번씩 황금표국을 들르곤 했다.
표국의 일이 있다면 일손을 거들고 아버지인 장천호로부터 장운의 소식을 전해주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현재 황금표국이 승승장구하고 있으며 이제 견제해야 할 적도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렇게 어느 정도 이동하였을까?
드디어 익숙한 표국의 대문이 보인다.
그 옆에는 장운을 알아보고 식겁을 하는 일반 표사, 쟁자수들이 보이고…….
“드디어 다시 돌아왔습니다!”
장운이 그 앞에서 내공을 담아 사자후(獅子吼)를 내질렀다.
그가 소리를 지르기 무섭게 바로 튀어나오는 인물이 있었다.
“장운아!”
그는 바로 아버지, 금령검객 장천호였다.
못 본 지 1년에 불과한데, 그사이 부쩍 흰머리가 많아진 아버지였다.
“아버지!”
두 사람은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해후를 하고는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보다 더 사이가 좋을 수 있을까?
“정말로 많이 성장했구나!”
장천호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이것은 비단 외형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1년간의 비무행을 통해 아직 앳된 티가 있던 남자는 바야흐로 의젓한 청년이 되었고 검객은 검제가 되어있었다.
그는 비무행으로 많은 것을 얻었고 모든 것을 얻었다.
“이제 저는 그 어느 누구도 두렵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