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135화
무영문(無影門)을 취하다(5)
“…….”
유구무언(有口無言).
단유겸은 입이 있으나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완벽하게 위기에 몰린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지?’
그는 짧은 순간에도 연신 머리를 굴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 살아남을 가능성은 없다.
‘빌어먹을 금령검제! 이런 개 같은 무영신투 같으니!’
일이 막히니까 자연스레 남 탓을 시전하는 비영귀검 단유겸이었다.
돌이켜 보니 자신의 사부인 무영신투 장유백이 진즉 무영문을 양보해 주고 절기를 전수해주기만 했어도 배신은 하지 않았다.
물론 배신하는 놈들은 언젠가 다른 사유로 배신하지만 본인 스스로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으아아아!”
답이 없다고 여긴 단유겸은 박살 난 턱뼈와 제대로 발음이 되지 않은 혀로 고함을 고래고래 내질렀다.
‘오냐! 같이 죽자!’
단유겸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기 전에 발버둥을 치기로 하였다.
살아남을 가능성이 없으니, 그렇다면 갈아먹어도 시원찮을 저 금령검제와 무영신투에게 어떻게든 피해를 주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으득, 으드득!
단유겸은 악독함으로 무장된 초인적인 인내력을 발휘하며 어떻게든 박살 난 턱을 돌렸다.
그 때문일까?
“자, 잠가마안…….”
이전보다 훨씬 더 알아듣기 쉬운 발음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는 장운에게 등을 돌리고 무영문도들에게 다가갔다.
단유겸은 잔뜩 억울하다는 듯 움직임을 취했고 그의 행동에 무영문도는 단유겸이 죽기 직전, 최후의 변론이나 들어보자는 태도였다.
그것은 장운도 마찬가지였다.
‘얼마나 더 떠드는지 보자.’
일이 이렇게까지 흘렀는데 사람이 얼마나 더 추악해질지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바로 그때였다.
“하아아압!”
장운에게 패배하여 제대로 운신을 하지도 못할 것만 같았던 비영귀검 단유겸이 최후의 힘을 발휘하였다.
그는 안간힘을 쥐어짜 내어 무영문도 가장 앞에 있었던 인물, 즉 무영신투의 숨겨진 손녀인 장희서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목을 틀어 몸을 제압했던 것이다.
단유겸의 행동이 어찌나 빠르고 예상을 뛰어넘었던지 방심했던 장운을 비롯하여 다른 무영문도들도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크으으, 내가, 내가 모를 거 가으아?”
자신이 모를 것 같냐며 장희서를 품 안에 감은 채 그녀의 가녀린 목에 검을 겨누었다.
“왜, 왜 그래요?!”
장희서는 가만히 서 있다가 갑자기 봉변을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놀라며 물었다.
그녀 입장에서는 단유겸이 끝까지 왜 저러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흐흐흐, 나를 비로하여…… 노이네들은 다 아고 이찌!”
단유겸이 사력을 다해 소리쳤다.
그의 말은 옳았다.
무영신투는 착각하고 있었지만 장희서에 대한 그의 특별한 감정은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소문이었다.
특히 무영신투에 대하여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꿰뚫고 있었던 단유겸은 오래전에 이미 알아차린 사실이기도 했다.
‘내가 알 정도면 저 너구리 같은 늙은 영감들도 다 알고 있겠지. 그래서 내가 무영문주가 되고자 서두른 것이다.’
단유겸은 장희서를 단단히 휘어 감은 다음, 놀라서 두 눈이 크게 떠진 무영문의 노고수들을 바라보았다.
그들 중 몇몇은 무영신투보다도 윗세대였으며 장희서가 무영문에 어떻게 들어왔는지 아는 사람도 있었다.
“그만두게.”
“왜 그러는가?”
장희서의 신분을 차마 노출하지도 못한 채 전전긍긍하며 단유겸을 막으려 하였으나 비영귀검은 잃을 것이 없었다.
그는 이미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였으며 막다른 길에 몰려 있었기에.
“다 죽이거다!”
단유겸의 태도는 단호했다.
자신은 이미 죽은 목숨이고 눈앞의 빌어먹을 저 금령검제 장운을 비롯하여 무영신투를 이기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끔찍한 슬픔과 절망을 전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가치 있는 죽음이 되리라 믿었다.
“이 여자는…… 무여시투의 손녀다!”
힘겹게 단유겸은 고함을 외쳤다.
이로 인해 무영문의 오래된 노고수들뿐만 아니라 젊은 무영문도들도 모두 깨닫게 되었다.
“뭐, 뭐라고?”
“분명히 무영신투의 손녀라고 그랬어?”
“하긴! 희서는 어느 날 갑자기 입문을 하여 출신 배경에 대해 의문이 따랐지.”
“그런데 설마 무영신투의 손녀일 줄이야.”
그러지 않아도 장희서의 배경에 궁금증이 많던 자들은 진실을 깨닫게 되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현 무영문 제일기재인 그녀가 알고 보니 무영신투의 핏줄이었다니!
역시 핏줄은 속이지 못한다고 느끼면서 그 중요한 인물을 문파 역적에게 내주게 된 것에 분통을 터뜨리는 중이었다.
“뭐, 뭐라고? 내가……?”
놀라는 것은 장희서도 마찬가지였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자신은 무영문 최고 장로들과도 친했고 누구든 다 잘 대해주었다.
한데 이것이 다 무영신투의 손녀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일 줄이야.
장희서는 놀라움에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크핫! 크하하하!”
무영문도들이 당황하는 것을 보자 단유겸은 그나마 조금 분이 풀리는지 벌써 역전이라도 한 것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보았느냐, 금령검제? 너는 그녀를 구하지 못했다. 네놈을 보낸 무영신투는 평생을 슬픔 속에서 좌절할 것이고……. 네놈도 마찬가지일 터!’
단유겸은 장희서의 목에 검을 점점 가져다 대었고 이내 새빨간 혈화(血花)가 피었다.
질끈!
장희서는 그 고통보다도 혐오하던 단유겸에게 제압당했다는 수치심에 두 눈을 감고 말았다.
그러지 않아도 자신의 출신 성분에 대해 깨달아 놀랍고 혼란스러운데 단유겸에게 이용당할 생각을 하니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순식간에 모두가 다 단유겸에게 휘둘리던 그때였다.
“그만하는 게 좋을 텐데.”
어찌 된 영문인지 장운은 사태가 이렇게까지 흘러갔음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차분하였다.
흠칫!
심상치 않은 자태에 당황한 단유겸은 그의 돌발 행동을 견제했다.
금령검제의 실력이 무척이나 뛰어나니 일검에 자신이 당할 확률이 높았다.
“검……. 버려!”
단유겸은 서둘러 장운을 향해 초령검을 내려놓으라고 경고했다.
스윽!
장운은 그가 원하는 대로 초령검을 아래로 내려놓았다.
아아아!
금령검제가 검을 놓자 무영문도들은 이대로 비극이 계속되리라 생각하고는 탄식을 내뱉었다.
‘그러면 그렇지.’
장운이 잠자코 자신의 말을 따르는 것을 바라보며 단유겸은 이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침착한 척하는 것도 모두 다 연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뒤로…….”
장운을 무장 해제 하는 데 성공한 단유겸은 장운을 더더욱 뒤로 물러나게 만들었고, 자신 또한 장희서를 붙잡으며 점점 뒤로 향했다.
솔직히 말해 처음에는 다 죽이고 절망을 안겨 줄 요량이었다.
그런데…….
‘어? 잘하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의외로 장운의 반항이 격렬하지 않았고 장희서도 쉽게 제압이 되었는지라 일이 술술 풀렸다.
잘만 하면 장희서를 인질로 삼아 무영문이 있는 귀령곡을 빠져나갈 수 있을지 모른다고 판단 내렸다.
죽기를 각오할 때가 제일 무서운 법인데 단유겸은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 그 순간, 자신을 지탱해 준 독기가 빠지고 말았다.
역전은 바로 그때 발생하는 법이다.
파아아아앗!
저 멀리 한 줄기 빛의 신형이 재빨리 튀어나왔다.
단언컨대 그것은 신법을 사용하는 모든 무림인을 통틀어 가장 빠른 속도였으며 무림에서 가장 빠른 자라고 자부할 수 있었다.
동시에 그는 쏟아져 나오기 무섭게 장희서를 안고 있던 단유겸의 혈도를 점하였다.
그야말로 눈부신 속도와 실력에 어지간한 사람들은 그저 빛이 번쩍거렸다 여길 뿐이었다.
“역시 오셨군요.”
오로지 금령검제 장운 만이 갑작스러운 손님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나 단유겸을 제압하고 장희서를 구한 것은 다름 아닌 무영신투 장유백이었던 것이다.
“어억! 억!”
아혈마저 제대로 짚은 단유겸은 놀라 비명을 내지르고 싶었으나 뭐라 반박하지 못한 채 그대로 아래로 고꾸라졌고.
덥썩!
무영신투는 능숙한 솜씨로 간만에 재회한 손녀를 안았다.
“희서야…….”
그리고 투명한 눈을 가진 손녀를 보자마자 그대로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장희서가 아직 제대로 걷지 못하던 때에 떠났는데 어느새 과년하여 시집을 보낼 나이가 되었으니 무영신투가 느끼는 감정과 회환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문주님…….”
장희서 역시 무영신투를 문주님이라고 불렀지만 여러 감정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장운은 그 두 사람이 어색해지려는 찰나에 눈치 빠르게 행동하였다.
“드디어 무영문의 진정한 주인이 돌아왔다!”
장운이 목소리에 내공을 담아 소리를 내질렀다.
드디어 결자해지(結者解之)라고 누가 그랬던가?
결국 무영문을 뜻하지 않게 떠났던 무영신투가 다시 돌아와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 지은 것이다.
“오오, 오오오!”
무영문주인 장유백이 돌아오자 어느새 호호백발이 되어버린 무영문의 노고수들은 일제히 눈물을 터뜨렸다.
솔직히 살아생전 다시는 못 볼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문주님!”
“드디어 오셨다!”
기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은 젊은 문도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기억하는 무영신투는 생생한 젊은이였는데 어느새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 다시 되돌아오고 말았다.
“문주님, 아니, 할아버지…… 라고 불러야 할까요?”
장희서도 기뻐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처음에는 크게 당황하였지만 이제는 기뻤다.
그동안 그녀는 자신이 무영문 장로 누군가의 숨겨진 자식이나 첩의 딸로 생각했는데 본인이 그토록 존경하는 무영신투의 손녀였다니!
이보다 더 기쁜 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나는…….”
눈물을 흘리며 울먹거리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그를 부축하며 보다 높은 곳으로 이끄는 손길이 있었다.
놀랍게도 무영신투 장유백과 같이 동행한 인물은 바로 황금표국의 국주이자 장운의 아버지인 금령검객 장천호였다.
처음에는 장운만 보냈는데 장천호가 진심을 담아 설득했던 것이다.
-우리 운이가 아무리 노력해도 본래 무영신투 문주님만 못할 것입니다.
무영문도들은 무영신투를 원할 것이 분명하지요.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따라왔는데 이런 상황이 펼쳐졌고 무영신투는 손녀를 구하기 위해 나선 까닭이었다.
장운 역시 아버지가 등장하자 살짝 놀라 두 눈이 커지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이 오랜 기간 기다려왔습니다. 장 형께서는 이를 마무리 지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장천호는 황금표국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부드럽고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장유백을 격려했다.
장천호 역시 한 집단의 수장으로서 그 무게감과 책임감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아픈 상처를 봉합하고 그다음 장으로 나아가야 할 무영문도들에게 진심을 담아 목소리를 전해라는 의미였다.
“드디어 못난 문주가 돌아왔소이다!”
그 말에 문주가 울었고 모든 문도들도 울었다.
그것은 슬픔의 눈물이 아닌 진심에서 우러러 나온 기쁨의 눈물이었다.
탕아귀환(蕩兒歸還).
뜻하지 않게 문파를 떠난 채 모든 것을 숨기며 살아야 했던 못난 탕아이자 한 문파의 주인이 돌아왔다.
그것도 현 무림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황금표국을 비롯하여 가장 강한 무인이라는 금령검제 장운이라는 기린아(麒麟兒)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