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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138화 (138/173)

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138화

외가(外家)의 부탁(2)

장운의 덤덤한 말에.

“아!”

서강 상단의 후계자, 강여월은 탄식을 터뜨리며 아쉬움을 진하게 드러냈다.

면사포로 눈만 드러내고 있었는데 어찌나 아쉬웠던지 두 눈에 그 감정이 짙게 묻어나올 정도였다.

혹자는 장운의 발언에 남자가 대범하지 못하게 무슨 말을 저리하겠냐 싶겠지만 천만의 말씀.

‘도끼는 잊어도 나무는 잊지 못하는 법이다.’

강여월이 무심히 던진 말에 소년이었던 장운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험을 하였다.

비록 검신 장인랑이 직접 겪지는 않았어도 그의 모든 행복과 복수를 빌어주기로 맹세한 이상, 사소한 복수도 철저히 할 계획이었다.

그나마 서강 상단 수뇌부 어른들이 나쁜 것이지, 강여월 역시 순진했던 소녀였기에 더 이상의 악감정은 품지 않았다.

“그나저나…… 황금표국까지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장운이 다소 선을 긋는 듯이 말을 하였다.

말에 뼈가 있었다.

장운과 서강 상단 사이에 관계를 먼저 끊은 것은 다름 아닌 서강 상단 쪽이었다.

그 사실을 후계자가 된 강여월도 모르지 않을 터.

어린 시절이라면 모를까, 이제는 장성하여 직접 수장이 되었으니 모른다면 바보일 것이다.

“의뢰를 부탁드리려고 왔어요.”

아니나 다를까?

강여월이 황금표국을 찾아온 이유는 다른 사람이 그러했던 대로 의뢰를 청탁하기 위해서였다.

“어떤 의뢰인지 차근차근 들어보도록 하죠.”

장운은 그녀에게 편한 자리를 권하며 착석하였다.

“다름이 아니라…….”

어찌 된 영문인지 잠시 말을 끄는 강여월.

평소 그녀의 당찬 성격치고 맞지 않은 행동이라 장운은 의아함을 느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제게 혼담이 들어왔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 혼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그럼 정중히 거절 의사를 밝히면 되지 않소?”

장운이 뭐 그리 어려울 것이 있냐는 듯 반문하였다.

“그렇게 쉬웠다면 제가 구태여 여기까지 찾아오지도 않았겠죠? 혼담을 보낸 곳은 놀랍게도…… 사흑천이에요.”

오오오!

그 말에 조용하던 금옥관 접객 귀빈실은 일제히 흔들리고 말았다.

생각이 깊은 상수 노관과 감우량 표두들은 물론이고 장운의 곁을 지키는 상급 표두들도 너무 놀라 두 눈을 크게 뜰 정도였다.

‘설마 사흑천이라는 이름을 이곳에서 들을 줄은 꿈에도 몰랐군.’

화들짝 놀란 것은 장운도 마찬가지였다.

사흑천이라면 모름지기 전생에 얽힌 악연이자 반드시 복수를 해야 하는 곳이지 않은가?

동시에 현생의 장운과도 계속 악연으로 엮이고 있어 언젠가 한번 손보고자 마음먹은 곳이었다.

“사흑천?”

“네. 사흑천주인 광혈흑마 태상천에게는 늘그막에 얻은 아들이 있지요.”

그 말을 들은 감우량이 대답을 하였다.

“소광마(小狂魔) 태원평!”

그의 말이 옳았다.

사파의 하늘이자 지존이라는 사흑천주 태상천에게는 힘겹게 얻은 아들이 있었다.

그가 바로 소광마 태원평이었는데 아직 약관이 채 되지 않은 어린 나이임에도 대단한 성정을 자랑하였다.

워낙 대단한 아비를 둔 탓일까?

태원평은 사흑천과 아비를 믿고 갖은 패악질을 다 부리고 있었다.

오죽하였으면 그 어린 나이에 별호가 작은 미친 마인이라는 뜻의 소광마였다.

심지어 무공도 사파 최고의 후기지수 수준이라 알려져서 감히 건드는 자가 없을 정도였다.

“잘 아시는군요. 한 달 전, 상행을 위해 중원 여정을 한 일이 있었는데 하필이면…… 그 소광마와 마주쳤지 뭐예요?”

강여월은 차분한 음성으로 자신의 사연을 소개하였다.

내용인즉슨, 황금표국과 연이 끊어져 가세가 기울기 시작한 서강 상단은 힘겨운 상행을 이어가던 도중 소광마가 이끄는 무리를 만나게 되었다.

“소광마 태원평의 본래 목적은 약탈이었지만 저를 보고 한눈에 반하게 되었지요.”

다소 민망할 수 있는 이야기인데 강여월은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스르륵!

오히려 장운을 항하여 보란 듯이 면사포를 해제하였는데 그 미색이 어찌나 화사하고 매혹적이던지.

오오오!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져 나올 정도였다.

황금표국의 훈련이 잘된 무인들조차 화들짝 놀랄 정도로 경국지색(傾國之色)의 미모를 갖춘 장본인이 바로 이 강여월이었다.

‘어릴 때도 그랬지만 정녕 아름답게 성장했군.’

심지어 그녀를 달갑지 않게 여기는 장운조차 그 미모를 인정할 정도였다.

장운이 경험한 미녀는 단연코 비옥수 천세은인데 천세은이 청순하고 순수한 미녀라면 이 강여월은 화려하고 도회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결이 다른 미녀였다.

“그 덕에 약탈도 피하고 험한 일도 피할 수 있었는데 문제는 그다음이었어요.”

장운은 한눈에 알아차렸다.

“옳거니, 바로 혼약 신청이 들어온 게로군.”

“맞아요. 그것도 사흑천주인 태상천이 직접 서신과 혼약을 위해 선물까지 보내는 통에 어찌나 난감하던지…….”

강여월은 그 순간을 떠올리자 아직도 아찔하였던지 단아한 이마에 한 줄기 땀방울이 흘렀다.

“으으음.”

모든 이야기를 들은 장운은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였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한데 강 단주께서는 태원평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오? 외람된 이야기지만 혼례만 올린다면 사흑천을 등에 업어 섬서 서안 최고의 상단이 될지도 모르는 일인데?”

장운이 제법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아니, 따지고 보면 당연한 질문이었다.

태원평이 어떠한 사람인지 하는 문제와 별개로 그는 사파에 있어 막강한 권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특히나 나날이 퇴보하는 서강 상단에게 있어 목적을 띈 혼례는 그리 낯설지 않은 이야기였다.

장운의 친모인 강씨 부인 또한 장천호와 그런 사유로 혼인을 하였으니 손가락질받을 일도 아니었다.

“소광마의 성정을 잘 모르는 모양이군요. 그는 진정으로 미친 광인이에요. 사람이 아니고, 아니, 사람만도 못한 작자죠.”

장운이 자신의 미모를 보고도 미동도 하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장운 옆에 딱 달라붙고 있는 천세은의 미모가 자신과 견줄 만해서일까?

그렇게 말하는 강여월의 목소리에는 날이 서 있었다.

“뭐든지 다 완벽한 것은 없지 않소? 그 대신 엄청난 권력을 얻고 서강 상단도 일으킬 수 있을 텐데?”

어찌 된 영문인지 장운의 말은 점점 더 노골적이었다.

“무례하군요! 우리 서강 상단이 아무리 몰락일로를 걷고 있다고 한들…… 사악한 사도를 걷는 자와 혼례를 할 수는 없어요. 과거 우리 상단이 귀 표국과 혼례를 올린 것도 그분께서 금령검객을 흠모했기 때문이에요!”

강여월은 화가 났는지 급기야 장운의 친모 이야기마저 꺼내고 말았다.

“…….”

장운이 굳은 얼굴로 침묵을 유지하자 강여월은 그제야 제정신이 들었던지 아차 하는 얼굴이 되어버렸다.

왜냐하면 그녀와 서강 상단은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나도 불편한 황금표국까지 구태여 올 생각은 없었어.’

문제는 사흑천, 태상천과 얽혔다고 하자 모든 표국과 문파에서 거절을 하는 통에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강여월은 매달 꼬박꼬박 무림맹을 지원하는 소정의 금자를 보내고 있었기에 그들의 도움마저 요청하였으나 돌아오는 것은 철저한 무시였다.

[사소한 일로 정사대전을 일으키는 것은 시기상조(時機尙早)입니다.

귀 상단께서 모쪼록 현명한 판단을 내리길 바랍니다.]

기껏해야 사람의 속을 벅벅 긁어놓는 서신 하나를 달랑 보냈을 뿐이었다.

그 서신을 받아들고 강여월은 진정으로 분노하고 말았다.

매달 금자는 잘 거둬 가면서 정작 나서야 할 때는 꽁무니를 내빼는구나.

이게 정녕 정파의 법도가 맞는 것인가?

정의를 추구한다는 무림맹의 판단이 맞는 것인가?

여러 차례 의심이 들었다.

급기야 무림맹에 보내는 지원 금자마저도 끊으려고 하였지만 그랬다간 후폭풍이 두려웠기에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 우스운 상황 속에서 강여월은 한 곳을 떠올렸다.

현재 기세와 전력이 구파일방 오대세가 못지않으며 사흑천과의 대결도 마다하지 않은 강력하고 용맹한 집단.

그곳이 바로 이곳, 황금표국이었다.

“그러니까…… 강 단주께서는 확실히 거절하고 싶다는 거지?”

잠시 흠칫한 강여월과는 달리 장운은 여전히 속내를 드러내지 않은 채 특유의 무덤덤한 얼굴로 물었다.

“네! 사흑천 측에 여러 번 정중히 거절을 했지만 그들은 급기야 은근한 협박을 하더라고요.”

그럴수록 강여월의 마음은 더더욱 차게 식었다.

서강 상단은 예로부터 정도를 지키며 금자를 위해 영혼을 팔지 않은 곳이었고 강여월이라는 사람 또한 기개가 올곧은 면이 있었기에 거부를 했다.

“그것을 견디다 못해 이곳을 찾아온 거고요.”

강여월은 이제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속내를 모두 털어놓았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마음에 드는군.”

장운이 불쑥 말을 하였다.

“……네에?”

그러자 강여월은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강여월은 장운이 과거의 기억 때문에 자신을 싫어하고 곯려주려고 그런 게 아닌가 의심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음에 들다니?

화끈!

심지어 가까운 친인척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든다는 말에 얼굴이 다 빨개질 정도였다.

“사악한 사흑천과 절대로 연을 맺지 않겠다는 그 자세 말이오. 참 마음에 드오.”

장운이 부연 설명을 하였다.

그 말은 옳았다.

‘만약 사흑천과 가까이하고자 했다면 그 부탁을 일언지하에 거절했을 것이다.’

한데 상단의 사정이 어려워도 정도를 지키는 모습과 더불어 사흑천을 혐오하는 모습에 장운은 마음이 기울었다.

“정리하자면 사흑천과 관련하여 원치 않은 혼담을 막아달라는 의뢰이지 않소?”

장운이 한차례 정리를 하였다.

“네, 바로 그거예요.”

강여월은 아직도 얼떨떨하다는 얼굴이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꼴인가?

다른 사람들은 사흑천 이야기만 나와도 못 들은 척 뒤로 돌아섰다.

거대 표국은 말할 것도 없고 정의를 논하는 거대 방파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무림맹조차 원만히 해결하라는 등, 뒷짐을 지는 상태였다.

그런데 장운과 황금표국은 달랐다.

“의뢰 대금은 어떻게 치를 것이오?”

장운이 물었다.

의뢰 내용이야 개의치 않으며 단가만 맞으면 얼마든지 수락한다는 뜻을 풍기고 있었다.

“네에, 네? 의뢰를 수락할 건가요?”

강여월이 어마어마하게 놀라자 장운이 한 차례 어깨를 으쓱거렸다.

“의뢰를 부탁하려고 온 것이 아니오? 가격만 맞으면 못할 것이 없지.”

때마침 이 시기에 사흑천을 한번 눌러보고 싶은 것이 장운의 속내였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더.

‘외가인 서강 상단은 한때나마 장운이 꿈꾸던 곳이었다.’

그런 만큼 과거 장운에게 큰 빚을 진 금령검제는 도움을 주고 싶었다.

“어, 얼마를 원하나요? 참고로 우리 상단의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조금은…….”

강여월은 당황하며 말을 꺼내었다.

설마 진짜로 진지하게 의뢰가 수락될 줄은 기대조차 하지 않았기에 의뢰 대금은 전혀 생각지 않았다.

“괜찮다면 내가 제시해도 되겠소?”

장운이 의미심장한 얼굴로 말했다.

끄덕!

강여월이 고개를 끄덕이자 장운은 황금표국과 서강 상단, 두 집단이 서로 상부상조(相扶相助)할 수 있는 최적의 방안을 제시하였다.

“내가 귀하의 혼담을 완벽히 막아낸다면…… 본 표국이 천하를 평정할 때까지! 서강 상단은 금옥관 내에서 우리와 뜻을 함께하시는 것이 어떻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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