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140화
외가(外家)의 부탁(4)
“잠시 쉬었다 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광마친위대의 대원이 태원평에게 제안을 하였다.
그러지 않아도 말들이 지켜 있어서 말을 중간에 교체할 겸 배도 시장했던 것이다.
“그래, 이제 곧 섬서 서안이니 다 온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 판단을 내린 태원평은 수하를 시켜 주변에서 가장 비싸고 귀한 주루를 찾았다.
한 끼를 먹더라도 허투루 먹을 수 없었다.
천하의 사흑천 후계자가 어찌 저렴한 식사를 할 수 있단 말인가?
태원평은 언제나 사치를 즐겼으며 한 끼에 수십 금자를 태운다는 낭비벽으로도 유명하였다.
그 결과!
“서안 객잔으로 모시겠습니다, 도련님.”
광마친위대의 대원들은 고민도 하지 않고 서안에서 가장 으리으리한 객잔으로 이동을 하였다.
그렇게 가장 비싼 음식을 시킨 다음, 기다리고 있던 찰나였다.
“오호호홋!”
태원평은 음식을 기다리기 무료하던 차였는데 이럴 수가!
객잔 1층에서 눈이 번쩍할 정도로 어여쁜 여인이 아름다운 미소를 흘리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태원평은 지금 신부를 맞이하러 가는 것조차 잊은 채 미치고 말았다.
“저, 저, 저 여자는 누구인가?”
태원평은 수하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사실 이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수하들에게 어떻게든 저 처자를 자신의 식탁에 앉히라는 명령인 것이다.
“……알겠습니다.”
이에 대원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몸을 일으켰다.
‘쳇, 이런 수발까지 들어야 하나?’
그런 생각이 온몸을 지배했지만 상대는 무려 사흑천 차기 천주였다.
추후 입신양명(立身揚名)을 노리려면 하기 싫은 일도 필수였다.
“흐흐, 좋다. 좋아!”
모처럼 오랜만에 바깥 공기를 쐬자 소광마 태원평은 철없이 웃기 시작했다.
사실 요즘 정파와 사파의 분위기가 좋지 않은 탓에 외출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였다.
한데 이렇게 나오자마자 어여쁜 여인과 만나게 되니 기분이 좋지 않으면 호색한(好色漢)이 아닐 터.
바로 그때였다.
와장창창!
갑자기 1층에서 소란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태원평조차 예측하지 못한 일이었는데 자신이 보낸 광마친위대 대원과 아래층의 무인 간에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어딜 감히 내 제자에게 손을 대느냐?”
태원평은 그 근엄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일이 꼬이게 되었음을 직감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현실을 부정하는 중이었다.
‘그럴 리가 없어. 광마친위대는 개개인이 능히 절정의 고수들이다.’
소수 정예 병력이자 일당백의 전사가 저런 꾸지람을 듣고 있다고?
상황을 믿지 못해 아래를 내려보니 이럴 수가!
자신이 보낸 대원 하나는 바닥을 기고 있었고 놀랍게도 맞은편의 상대는…….
“화산파의 무인!”
매화 문양이 새겨진 도포를 착용한 노고수가 있었는데 그는 다름 아닌 화산의 장로인 소요자였다.
그렇다.
소광마 태원평이 눈독을 들인 여인은 바로 화산파 제일의 미녀이자 섬서 최고의 미녀로 불리는 화산의 한 떨기 청초한 꽃, 화산지화(華山之花) 예진설이었다.
공교롭게도 예진설은 소요자와 함께 다른 제자들과 식사를 하러 왔다가 태원평에 눈에 들게 된 것이다.
“위층의 주인이 있는 게로구나.”
소요자의 무공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기에 한눈에 태원평을 알아차렸다.
“허억!”
태원평은 소요자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크게 기겁을 하면서 움츠러들고 말았다.
동시에 자각하였다.
이곳은 자신이 폭군처럼 군림하는 사흑천의 성이 아니라 섬서성, 그러니까 화산파의 텃밭이라는 냉엄한 사실을 말이다.
“저, 저는…….”
본래 소광마는 좀처럼 숙일 줄 몰랐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어떻게든 상황을 모면해야 했던 것이다.
“차림을 보아하니 명문 정파 소속은 아닌 것 같고…… 사파의 무리들이구나.”
소요자는 한눈에 상황을 알아차렸다.
아직 사흑천 후계자라는 신분을 감춘 태원평은 모르지만 사파의 어느 콧대 높은 공자가 예천설의 미모에 눈독을 들여 사건이 일어났다고 유추했다.
“많은 분들이 식사를 하는 곳이니만큼 더 이상의 소란은 원치 않는다. 주인인 네가 대표하여 우리를 포함한 모든 분들께 정중히 사과를 하면 내 용서토록 하마.”
소요자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현명하고 생각이 깊은 작자였다.
또한 손자뻘도 안 되는 철부지 사파 도령과 구태여 대결을 벌이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가벼운 선에서 끝내기를 원했다.
“크윽, 큭!”
하나 그것은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금수저로 살아온 태원평에게 있어 씻을 수 없는 치욕이나 마찬가지였다.
“어허! 정녕 끝을 보겠다는 것이냐?”
태원평이 주저하며 머뭇거리자 소요자는 다시 한번 언성을 높였다.
태원평은 주먹을 꽉 쥐었지만 아비 못지않은 실력자임을 간파하고는 깨갱 할 수밖에 없었다.
본디 이런 자는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무자비한 법이니까.
“……죄송, 죄송합니다.”
결국 태원평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희미하게 말하였다.
“안 들린다, 크게!”
상대를 잘못 걸려도 한참 잘못 걸린 소광마 태원평.
상대는 훈장 못지않게 깐깐하다는 화산의 대장로 소요자였다.
“여러 동도 분들의 식사를 방해하게 되어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그리고…… 화산의 무인분들께도 정중히 사과의 말을 전하겠습니다.”
태원평은 눈을 질끈 감고 흡사 아버지인 광혈흑마 태상천에게 잘못했다고 비는 것처럼 연기를 하였다.
이른바 시늉이나 마찬가지였다.
‘정말로 버릇이 없는 종자구나.’
그것을 모르는 소요자가 아니었지만 이 정도면 되었다 싶었다.
딱 봐도 사파, 그것도 대형 방파의 후계자가 분명하니 자신이나 화산파는 괜찮아도 섬서에 칼바람이 불 가능성이 컸다.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 죽을 가능성이 높으니 소요자는 이 선에서 마무리 짓기로 했다.
“그래, 얼른 식사를 하고 가거라.”
소요자는 이 정도에서 마무리 짓고 예진설과 다른 제자들을 데리고 떠났다.
부르르르!
태원평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를 뻑뻑 갈았다.
‘어디 두고 보자.’
사흑천 성에서는 절대로 느껴볼 수 없는 이 참담한 기분에 사지가 떨려올 지경이었다.
그는 화산파에 반드시 복수를 하리라 다짐하여 또 다른 미인, 화산지화 예진설에게도 눈도장을 찍었다.
‘흐흐, 언젠가는 화산파를 다 쳐 죽이고 그 미녀도 취할 것이다.’
생각하는 수준이 어쩔 방도가 없는 망나니 중의 개망나니였다.
“식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식었다. 얼른 출발하도록 하자!”
마음이 차게 식자 식욕도 없어지는 법이다.
태원평은 서둘러 광마친위대 대원들을 챙긴 다음 다시 이동을 재촉하였다.
* * *
“드디어 도착이로구나!”
강여월에 대한 태원평의 집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사흑천부터 이곳, 서강 상단까지 결코 적은 거리가 아닌데 놀랍게도 사흘이 지나지 않아 주파하는 대기록을 세울 정도였다.
마침내 서강 상단을 상징하는 깃발이 보이자 태원평은 벌써부터 마음이, 그리고 다른 쪽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전날 오전에 있었던 화산파와의 사건은 이미 뇌리에 잊혀지고 있었다.
“어서 오시지요.”
한편 서강 상단 측에서도 으리으리한 사두마차가 들이닥치자 미리 준비한 인원들이 마중을 나갔다.
“그래, 그래. 내 신부는 어디 있느냐?”
화산파의 일로 인해 자존심이 크게 상해서일까?
태원평의 오만방자함은 유독 심하여 하늘을 찌를 기세였다.
아직 혼인은커녕 강여월에게 제대로 된 대답을 받기 전이었는데 신부 취급이었다.
“안으로 천천히 드시지요.”
상단 문지기의 말에 태원평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안으로 달려들었다.
“도련님!”
혼자서 튀어 나가는 모습에 호위를 맡은 광마친위대의 대원들은 혼비백산하면서 따라갔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에 하나 기습을 맞으려면 어쩌려고 저러는 것일까?
‘진짜 못 해 먹겠네.’
‘극한 직업이라니까.’
대원들은 그런 생각을 하며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따라 들어갔다.
그래도 걱정은 없었다.
서강 상단의 주인인 강여월이 직접 나와 맞이했던 것이다.
“어서오세요.”
태원평은 드디어 강여월과 모처럼 오랜만에 마주하자 치아를 훤히 내보일 정도로 환하게 웃고 말았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화산지화 예진설을 보고 침을 줄줄 흘렸던 주제에 참 줏대가 없는 모습을 보였다.
“으핫! 하하핫! 여전히 아름답구려.”
더 나아가 추태를 부렸다.
만나자마자 곧바로 손을 잡으려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강여월 뒤에서 가까이 있던 웬 젊은 남성이 나와 먼저 강여월을 인도하며 내부로 안내했다.
“자자, 일단 안에서 대화부터 하시죠.”
“…….”
태원평은 자신의 행동이 제지받은 것만 같자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살심(殺心)이 끓어오르는 특유의 눈빛으로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강 소저, 저 옆의 사람은 대체 누구요?”
그러지 않아도 어제 화산파 사건 때문에 누군가의 목을 치지 않으면 좀이 쑤시려던 차였다.
만약 이곳이 서강 상단이 아니고 저 남자가 강여월과 친해 보이지 않았다면 죽어도 진즉에 죽었을 것이다.
“아, 내 정신 좀 봐. 소개가 늦었네요. 저분은 제 사촌 오라버니이신 강소운이라고 해요.”
“사촌 오빠?”
사촌 오빠라는 말에 태원평은 눈이 다시 제대로 돌아왔다.
그저 친한 관계였다고 했으면 손이 날아들었을지도 모른다.
“네. 아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양친께서 모두 돌아가셨으니…… 집안의 어른이라곤 여기 사촌 오라버니밖에 없거든요.”
그 말을 들은 태원평은 속으로 큰 실수를 할 뻔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고, 내 인사가 늦었군. 반갑소. 태원평이오.”
그는 제 딴에는 나름대로 잘 보이겠다며 강소운에게 인사를 했는데 그 태도가 어찌나 불성실하고 건들건들하던지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것이 최대한 정중하게 이야기를 했다는 것인데 평상시 행실이 어떤지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진짜로 내 사촌 동생이었다면 넌 당장 따귀를 맞았을 것이다.’
강소운, 아니, 금령검제 장운은 당장에 머리채를 끌어 잡고 개처럼 후려 패고 싶은 욕구를 참아내고 있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여긴 까닭이었다.
사실 소광마 태원평이 서안 객잔으로 가 소요자 일행과 만나 여기까지 도착하는 모든 것에 장운의 손길과 입김이 닿아 있었다.
어려울 것은 없었다.
장운은 소요자와 화산지화 예진설의 행동반경에 대해 주위 상인들에게 보고 들은 것이 많았다.
하여, 호색한에 개차반인 태원평이라면 예진설을 만나 사건을 일으키리라 생각했고 이는 적중하였다.
이왕이면 소요자 손에 죽었다면 최상이었지만 지금도 나쁘지 않았다.
인정 많은 소요자라면 죽이지 않을 것이라 관망했고, 장운이 의도한 것은 저 태원평이 이동하는 중간에 정파의 일원들과 엮여 연루되는 것이 목적이었으니까.
‘이 모든 것이 거대한 계획의 그림이니.’
장운은 애써 분노를 가라앉히며 침착한 모습을 보였다.
아직 시간은 많고 밤은 길었다.
자, 과연 장운은 이 개망나니 소광마 태원평을 어떻게 요리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