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141화
외가(外家)의 부탁(5)
“월아를 어여삐 여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강소운으로 위장한 장운은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며 정중히 포권을 하였다.
예의라고는 개만도 못한 태원평은 보는 듯 마는 듯하며 오로지 강여월에게 뜨거운 시선을 보냈다.
“네네. 아무튼 간에…… 강 소저. 아니, 이제 강 부인이라고 불러야 하나? 하하핫!”
태원평은 진정으로 노골적이었다.
아무리 서강 상단이 보잘것없는 곳이라고 하나 장운을 비롯하여 여러 어른들이 있었는데 제대로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 대어 당장에라도 바지를 벗을 기세였다.
‘흡사 발정 난 강아지와 같구나.’
그 모습에 장운은 미간을 찌푸렸고 최대한 괜찮은 척 연기를 하던 강여월조차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너무 서두르지 마시고 먼 길을 오셨으니 좋은 음식과 함께 한잔하시는 게 어떠신지요?”
장운이 허리를 계속 굽신거리며 제안을 하였다.
“좋은 음식?”
“네. 그리고 뛰어난 명주(名酒)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따악!
장운이 보란 듯이 손가락을 튕기자 이미 다리가 휘어지게 잔칫상이 준비가 되어 있었다.
동시에 마개를 딴 술병에서 향기로운 냄새가 흘러나왔는데.
꿀꺽!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향과 냄새에 태원평은 자기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본래 식욕과 성욕은 동반한다고 그러지 않는가?
‘그러고 보니…… 화산파 빌어먹을 영감탱이 때문에 식사를 망쳐 버렸지.’
더군다나 밥을 먹지 않은 지 너무나도 오래되어 시장기가 돌았다.
여자도 좋지만 그전에 술을 마시며 흥취를 끌어올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판단 내렸다.
“으하하핫! 강 형께서는 눈치가 탁월하시군. 좋소이다! 한 잔 받지요!”
태원평은 짐짓 호쾌한 척 유세를 떨며 제안을 허락했다.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이 잔칫상이 들어오고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였다.
“도련님, 그전에 독성 검사를 한 번…….”
깐깐한 광마친위대의 인원들이 술과 음식에 독이 있는지 검사를 위해 은침(銀鍼)을 꺼내 들었다.
“어허, 이 친구들이!”
태원평은 언성을 높였지만 구태여 만류하지 않았다.
그 역시 안전과 관련해서 나름 철두철미하였다.
당연히 독은 나오지 않았고 태원평은 애꿎은 수하들만 나무랐다.
“저런 못난 놈들.”
“하하핫, 너무 노여워하지 마시지요. 다 소천주님을 위해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장운이 눈치 빠르게 옆에 붙으며 술을 따라주었다.
또한 아직 사흑천의 소천주 직위까지 올라가진 않았지만 일부러 기분 좋으라고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그 부분이 주효했다.
씨익!
태원평은 입꼬리가 귀에 걸리더니 이윽고 연거푸 술을 들이켰다.
이후에는 완전히 술독째로 퍼마시며 광란의 시간을 보내었다.
“일로 와! 여자 어디 있어?!”
술에 완전히 취한 태원평은 갖은 추태를 부리며 점점 본색을 드러냈다.
취하지 않을 때도 서강 상단의 이들을 무시하는 행각을 보였는데 완전히 만취하였으니 오죽했을까?
“제가 모실게요.”
장운이 눈치를 주자 이제 강여월이 나섰다.
그래도 걱정은 없었다.
‘태원평이 탱자탱자 마신 술은 독하기로 유명한 연화주(蓮花酒)다.’
이 연화주는 섬서의 특산물로 연꽃에서 나는 특이한 성분을 주정에 담아 제조한 것인데 미주(美酒)인 독시에 술이 약한 자는 냄새만 맡아도 취한다는 독주(毒酒)여서 술이 뛰어난 자도 많이 먹지 못할 정도였다.
태원평은 제법 내공의 고수였기에 그럭저럭 버텼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정신이 멀어지는 게 보였다.
연화주는 부르는 것이 값이자 같은 무게의 황금보다 비싼 것인데 이는 물론 장운이 황금표국에서 공수한 물건이었다.
“크흐흐!”
태원평은 강여월이 자신을 부축하자 마음에 든다는 듯이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그때는 이미 말을 듣지 않았다.
급기야.
휘청!
태원평이 몸을 크게 휘청거리며 넘어질 기미를 보이자 장운이 놀라는 척 그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이내 광마친위대들이 다가와 장운의 앞을 막고 제지를 하였다.
“아이고~ 아무래도 너무 취하신 듯합니다.”
장운이 걱정하는 얼굴로 발을 동동 구르자 광마친위대들이 답하였다.
“이후는 우리가 알아서 하겠소이다.”
그들은 술을 마시는 태원평을 지켜보았을 뿐, 자신들은 마시지 않았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 내실까지만 안내하겠습니다.”
장운은 태원평을 그들에게 맡기고 강여월을 대동한 채 따라나섰다.
광마친위대 삼 인은 여전히 경계하는 눈치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왜냐하면 합방하지 않을 경우, 술에서 깬 태원평이 길길이 날뛰는 모습을 보일 게 분명해서였다.
“좋소.”
광마친위대 삼인 중 가장 뛰어난 고수이자 대장격인 혈랑검(血狼劍) 제진명은 허락을 하였다.
그렇게 장운과 강여월, 광마친위대들과 태원평이 함께 나서 귀빈실을 떠나 이동을 하였다.
제법 긴 거리를 이동하여 연무장 바로 뒤에 있는 안방으로 향하던 찰나였다.
-이식(二式) : 분광검(分光劍)!
검이 어디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잠자코 뒤를 따르던 장운이 돌연 본색을 드러냈던 것이다.
그 검은 당연히 초령검이었는데 실상은 이러했다.
강여월이 연무장 인근에 숨겨져 있던 초령검을 들고 품에 숨긴 다음, 장운에게 건네었다.
이는 광마친위대들이 서강 상단을 우습게 보았기에 잔뜩 방심하여 벌어진 일이기도 했다.
이류 상단 주제에 감히 사흑천에게 칼질을 하겠냐는 심산이 깔려 있었다.
번쩍!
강호무림에서 방심은 곧 죽음이나 마찬가지다.
혼원무극검법 기본 초식 중 가장 빠르다는 분광검이 빛을 폭하며 엄청난 빠르기의 쾌검을 시전하였다.
서걱!
그의 실력은 진정으로 무서웠다.
잔뜩 방심하던 광마친위대 일원 중 하나의 목이 그대로 잘리고 말았다.
방심의 대가치고는 무척이나 무시무시하였다.
“으아…….”
이에 화들짝 놀란 다른 인원 하나가 언성을 높이려던 그때!
-삼식(三式) : 진천검(振天劍)!
장운은 기다렸다는 다른 이의 목도 쳤다.
물 흐르듯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에 적들은 감히 반응조차 하지 못한 채 그대로 당할 뿐이었다.
‘내가 왜 바로 처치를 하지 않고 술과 음식을 먹였을까?’
장운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는 사흑천 무리들을 방심에 빠뜨리려는 계략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몸을 무겁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화산파 사람들 때문에 쫄쫄 굶은 그들은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을 보자 달려들어 허겁지겁 먹었다.
심지어 태원평은 술에 잔뜩 취해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른 채 흥청망청하는 중이었으니 장운과 강여월의 계략은 그대로 적중한 셈이었다.
“네, 네놈! 보통 놈이 아니구나?”
순식간에 동료 둘을 잃은 혈랑검 제진명은 놀란 눈으로 장운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강한 자는 사흑천주를 제외하고는 처음이었다.
자신 역시 사흑천 내부에서 손꼽히는 고수였는데 이길 자신이 없었다.
‘어째서 진즉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다시 그를 바라보니 비범하기 그지없었다.
제진명은 그 사실에 전율했다.
이전에는 몰랐는데 지금 느껴진다는 것은…….
“설마…… 사흑천주님 만큼이나 나를 아득히 초월한 고수이기 때문인가?”
사파 일대에서 저승사자처럼 군림한다는 혈랑검 제진명.
심지어 그는 광마친위대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절정 검객이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대는 강해도 너무나 강하였다.
“그래. 정답이다.”
장운은 비명횡사(非命橫死)한 다른 두 놈과 달리 제법 눈치가 빠른 제진명을 향해 앞을 가로막았다.
방심으로 두 명을 날리고 태원평을 거의 인사불성(人事不省)을 만들었다.
적들의 삼엄한 경계 탓에 모든 일을 장운 혼자서 처리해야 했기에 계획을 짜내었고 그 계획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하압!”
혈랑검은 진정으로 용맹했다.
지켜야 할 대상은 이미 술에 잔뜩 취해 항거불능(抗拒不能)의 상태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 혼자서 도주할 마음도 품을 법한데 그는 달랐다.
-혈랑폭겸(血狼暴鎌)!
그는 맹렬하게 검기를 휘두르며 장운에게 대적하였다.
그저 손 놓고 가만히 죽을 수 없다는 방증이리라.
“하인이 주인보다 낫구나.”
장운은 자신에게 불나방처럼 덤벼드는 제진명을 향해 높이 평가하며 자세를 고쳐잡았다.
상대가 무인으로서 최후를 원하니 그 대우를 해주겠노라 다짐했다.
‘편히 가거라.’
장운은 그런 마음을 품은 채 비록 적이나마 존중의 마음을 표하며 예우를 해주었다.
-금령풍천비류(金靈風天沸流)!
가지고 놀다 죽일 수 있는데도 자신이 누구인지 깨달을 수 있는 개성 강한 검법을 펼쳤던 것이다.
파아아앗!
그것은 바로 금령풍운검법이었다.
최근 들어 혼원무극검법에 매진한 탓에 잘 사용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허를 찌를 때는 용이했다.
콰아앙!
두 사람의 검이 공중에서 뒤엉켰다.
혈랑검의 솜씨는 진정으로 뛰어났지만 장안의 화제이자 현 무림 최강의 검객으로 꼽히는 금령검제의 검을 당해낼 수 없었다.
“이제 알았어! 당신은…….”
제진명은 장운의 공세에 연신 밀려 패배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었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자신의 목을 취할 사람은 결코 무명소졸(無名小卒)이거나 하찮은 인물이 아니었으니까.
“그래. 내가 바로 금령검제 장운이다.”
장운은 그 말과 동시에 마침표를 찍었다.
서걱!
용감히 싸운 혈랑검 제진명을 치하하며 고통 없이 그를 떠나보내었다.
워낙 재빠르게 목숨을 취했기에 고통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씨익!
제진명은 죽어가면서도 인상을 찌푸리거나 울화에 차지 않았다.
오히려 웃었다.
조금은 우스운 이야기지만 무림인들은 강호무림에 뛰어들며 누구나 한 번씩 생각하는 것이 있었다.
-과연 나는 어떠한 자의 손에 죽게 될까?
칼밥 먹기 위해 험한 강호무림에 뛰어든 순간부터 호상(好喪)을 누리는 것은 진즉 포기하였다.
궁금한 것은 오로지 단 하나.
자신의 목을 취할 자가 누구냐는 것이었다.
오죽했으면 무림인들 사이에서 우스갯소리로 그런 말이 돌았다.
적어도 손꼽히는 고수의 손에 일대일 대결을 하다 당당하게 죽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무림인의 호상이라고.
‘그래, 금령검제의 손에 죽는다면…… 그것은 호상이겠지.’
혈랑검 제진명은 그런 생각을 마치며 두 눈을 감았다.
무인으로서는 성공했지만 호위 무사로서는 실패를 하였다.
주인을 남기고 죽었으니 말이다.
“음냐, 음냐.”
반면 소광마 태원평은 지금 수하들이 모두 죽은 것도 모른 채 강여월을 열심히 끌어안고 꿈나라로 가는 중이었다.
사실 그는 강여월의 품에 안긴 순간부터 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곧 지옥이 닥쳐올 것도 모른 채.
“……세상에!”
결국 놀라는 것은 아직 깨어있는 자의 몫이었다.
서강 상단의 후계자, 강여월은 장운의 실력을 바로 목전에서 견식하고는 놀라움에 사지가 부들부들 떨릴 정도였다.
‘강하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무공을 거의 모른다고 하나 상단의 후계자인 이상 무공을 보는 눈은 있었다.
금령검제 장운이 강한 것도 알고 현 무림에서 손꼽히는 검객인 것도 알지만 그래도 어린 시절 찌질했던 잔상이 강했기에 은연이 우습게 보고 있었다.
한데 이게 웬걸?
혼자서 사흑천의 뛰어난 무인들을 순식간에 도륙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눈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괘, 괜찮아요?”
광마친위대 둘부터 혈랑검을 쓸어버리기까지 불과 반 각조차 채 지나지 않았다.
강여월이 놀라 호들갑을 떨며 물었다.
“뭐가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