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142화
외가(外家)의 부탁(6)
금령검제 장운이 광마친위대 무인을 쓸어버린 이후, 그를 바라보는 강여월의 눈이 바뀌었다.
아니, 적들의 시신을 치우는 서강 상단의 수뇌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 사람이 정말…… 그 장운이라고?”
“그, 그때는 코흘리개에 울보였는데…….”
특히 서강 상단의 장로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장운이 어린 시절에만 하더라도 워낙 소심하고 무공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으며 다리를 절었던 통에 무시하던 자들이 대다수였다.
그런데 사흑천 무인들 중에서도 가장 무서우며 일당백의 용사라는 광마친위대를 혼자서 세 명이나 쓸어버렸다.
심지어 혈랑검 제진명이라는 자는 친위대원 수준이 아니라 사흑천 내부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검객이었다.
“지금 호들갑을 떨 때가 아닙니다.”
장운이 장내를 정리하자 서강 상단의 인원들이 나왔는데 장운은 집중을 요구하였다.
‘지금부터 계획 실행이다.’
장운은 그런 마음을 먹은 다음 일행들에게 상세히 지시했다.
“여기에 남은 흔적들을 모두 깨끗하게 지워주십시오. 그리고 날이 밝아오면…… 죽은 자들의 인상착의와 비슷한 자들을 모아 여기 사두마차를 타고 적당히 이동하여 사람들의 눈에 띄게 하세요.”
장운이 원하는 것은 소광마 태원평과 그 일행들이 서강 상단에서 무사히 빠져나왔다는 증거였다.
그 증거를 위해서는 치밀한 계획이 필요했다.
“소광마는 어찌할 것입니까?”
서강 상단 중 수뇌부 한 사람이 조심스레 다가와 물었다.
“돌아가는 흉내를 내는 데 있어 그는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마차 내부 안에 있는 것으로 추정될 테니까요.”
장운의 말에 많은 사람들은 크게 감탄을 하였다.
현재의 장운은 과거와 차원이 달랐다.
무공 실력은 물론이고 머리를 쓰는 것부터 시작하여 사람을 압도하는 탁월한 기운까지.
마치 다른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여러분들이 하실 일은 소광마 일행이 무사히 빠져나갔다는 소문을 만드는 일입니다. 그리고 사두마차를 완벽하게 세상에서 지우는 일도 함께해야 하죠.”
장운은 혹시라도 이들이 실수할까 봐 황금표국의 표두들을 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사두마차는 그대로 금옥관에 보관하면 어렵지 않을 이야기였다.
‘대단해.’
그의 깔끔한 일처리와 지도자로서 자질에 장운을 바라보는 강여월의 눈빛이 그윽해졌다.
장운을 다시 보게 된 강여월.
그녀는 이미 장운의 추종자 대열에 합류하였다.
“장운 소협. 그 소광마 태원평은 어떻게 하실건가요?”
강여월은 마지막으로 그에게 물었다.
“소광마, 그 망나니는…… 제가 알아서 할 것입니다.”
강여월이 아직 모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현재의 장운은 예전의 장운처럼 결코 소심하거나 무르지 않았다.
오히려 적들에 한해서는 그 어느 사람보다도 더 냉정하고 냉혹하였다.
* * *
솨아아아!
소광마 태원평은 꿀맛 같은 단잠을 즐기고 있다가 정수리부터 폭포가 내려치는 느낌에 화들짝 깨어나고 말았다.
“어푸, 어푸!”
눈과 코, 입에 물이 쏟아져 들어가는 것을 깨닫고는 연신 기침을 하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태원평은 눈을 뜨자마자 정신이 없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서강 상단에 도착하여 아주 성대한 접대를 받았다.
종래에는 결혼을 약속한 강여월과 함께 내실로 들어가던 것까지 기억이 나는데…….
“정신이 드는가?”
더 놀라운 것은 바로 지금부터였다.
정신을 차린 태원평 앞에 한 남자가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태원평이 아는 얼굴이었다.
“당신은 그…… 강 소저의 사촌 오빠?”
분명 어제 통성명까지 했지만 여인과 술, 기름진 음식 외에는 관심사가 아니라 흘려보내 버린 태원평이었다.
“그래. 맞아.”
장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시인했다.
따지고 보면 사촌 오빠라는 소개는 거짓이 아니었다.
강여월과 자신은 머나먼 촌수로 따지면 외사촌 정도가 될 테니 말이다.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이냐?!”
태원평은 고개를 돌려 자신의 행색을 살피고는 그야말로 진노를 하며 고함을 내질렀다.
그도 그럴 것이 허름한 창고와 같은 곳에 처박혀 지푸라기를 밑에 깔고 잠을 잤던 것이다.
“이 미천한 놈이 강 소저의 사촌이라고 대우를 해줬더니 주제도 모르고!”
태원평은 아직도 현실을 자각하지 못한 채 노발대발하는 중이었다.
“여봐라! 광마친위대 없느냐?!”
자신이 직접 나설 수도 있었지만 머리가 깨어질 듯 아픈 관계로 수하들을 불렀다.
한데 이게 웬걸?
아무리 불러도 수하들은 오지 않았다.
씨익!
그 모습에 장운은 재미있다는 듯이 깊은 웃음을 지었다.
“왜 웃지?”
“죽은 자를 찾으니 우스울 수밖에.”
장운은 그의 질문에 섬뜩한 대답을 내어놓았다.
“뭐, 뭐라고?”
그제야 태원평은 오싹한 느낌과 동시에 희미하게 남아 있었던 어제의 일이 떠올랐다.
자신은 강여월의 품 안에서 졸려 쓰러졌어도 고수로서 청각이 남아 있었는데.
-서걱! 콰직!
듣기만 해도 모골이 송연한 그 소리들.
어디 그뿐인가?
매캐한 피 냄새와 동시에 생명이 꺼져가는 소리까지, 그 모든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이, 이런 미친놈! 설마 나를, 우리 사흑천을 건든 거야? 이깟 서강 상단 주제에?”
태원평은 이제야 비로소 수하들이 썰려 나갔다는 것을 인지하고는 언성을 높였다.
“정확히 말하면 서강 상단이 아니라 황금표국이다.”
이에 장운은 드디어 자신의 실체를 밝혔다.
“뭐?”
“말했잖아. 네놈을 노린 것은 서강 상단이 아니라 황금표국이라고.”
장운은 그렇게 말하며 아직도 모르냐는 얼굴로 반문했다.
“허억!”
그러자 태원평은 무언가 깨닫는 것이 있었는지 크게 놀라며 숨을 들이마셨다.
생각해 보니 그의 말마따나 서강 상단의 무력 수준으로 감히 광마호위대를 건들 수 없다.
아니, 혈랑검 제진명의 털끝 하나조차 건들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세 명이나 되는 대원을 쓰러뜨렸다는 것은 엄청난 고수를 의미했다.
황금표국 출신에 혈랑검과 다른 무인들을 쓰러뜨릴 정도의 젊은 인물이라면 오죽 단 한 사람이었다.
“금령검제…… 장운?”
여인과 술을 지독하게 밝히는 것치고는 제법 눈치가 빠른 작자였다.
“반갑군. 난 강소운이 아니라 장운이야.”
장운이 만약 어린 시절 그토록 바라던 서강 상단에 터를 잡았다면 성을 바꾸어 강소운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모두 다 부질없는 이야기지만 말이다.
“……!!”
마침내 상대의 정체를 완벽히 알아챈 태원평은 전율했다.
아닌 게 아니라 장운의 이야기는 사흑천주이자 자신의 아비인 광혈흑마 태상천조차 알고 있었던 것이다.
-금령검제 그 애송이 놈의 이야기가 귓가를 간지럽히더구나.
더욱이 그놈은 우리의 일을 방해하였지.
제거 대상이긴 한데…… 이제 내가 나서지 않는다면 상대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금령검제 장운에 대한 태상천의 평가였다.
‘콧대 높은 아버지조차 이자의 실력만큼은 인정했다.’
한데 이런 자리에서 만났다는 것은 불운을 의미하였다.
“도, 도대체 무슨 짓이야?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나는 그저…….”
태원평은 아직도 철없는 모습을 보였다.
그의 입장에서는 그저 노리갯감의 여인을 찾은 것뿐이었고 그저 재미를 즐기려던 것뿐이었다.
“서강 상단이 내 외가인 것은 알고 있나?”
장운이 차분한 음성으로 말하며 슬쩍 초령검을 쥐었다.
움찔!
그 말을 들은 태원평은 크게 놀라고 말았다.
그 사실을 몰랐던 것은 둘째 치더라도 장운이 검을 쥐자 너무나 무서워서였다.
“그딴 사실을 내가 어찌 안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원평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평생 타인에게 떠받들어진 상태로 살았기에 숙일 줄을 몰랐다.
“그럼 태상천 놈이 내 원수인 것도 모르겠네?”
장운은 한술 더 떴다.
“뭣이라?”
갑자기 그의 입에서 아비의 이름이 나오자 태원평은 전율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점은 조심스럽게 언급한 것도 아니고 존칭을 사용한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원수라고 정확히 밝히기까지 했다.
그와 동시에 무자비한 구타가 시작되었다.
퍼억, 퍽!
장운은 내공을 담아 발길질을 하였다.
현재 태원평은 혈도가 제압이 된 상태였으며 사지는 자유로웠지만 언감생심 장운에게 덤벼들 수 없었다.
“아악! 악! 그만, 그만!”
태원평의 입에서 처음으로 약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불과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주객전도(主客顚倒)의 모습을 보이며 주인보다도 더 주인 행세를 굴었던 자가 아니던가?
한데 하루 만에 처참한 창고에서 보리타작을 하듯 두들겨 맞고 있으니 세상사 알 수 없는 법이었다.
“벌써부터 약한 소리를 하면 곤란하지. 세상이 다 네 것 같았지?”
장운은 냉정한 현실을 보여주었다.
꽈드드득!
발을 들어 팔꿈치 부근을 잔인하게 짓눌렀다.
그러자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저리다는 느낌을 초월하여 머리카락이 쭈뼛 서고 모든 모공에 침을 찔러 넣는 듯한 아찔한 아픔이 관통하였다.
“으아아아아악!”
차마 자존심 때문에 큰 소리를 내지 않던 태원평은 완전히 무너지며 어린아이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내지르고 말았다.
아울러 태원평의 오만한 성정이 무너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내, 내게, 내게 원하는 것이 뭔데? 금자? 명성? 뭐든지 다 해주겠다. 살려만 보내다오!”
이제 조금 현실 감각을 되찾은 태원평이 장운 앞에서 납작 엎드린 채 애걸복걸 애원을 하였다.
사실 이것도 태원평이 제법 강골이기에 잘 버틴 것이다.
장운의 내공은 상상을 초월하여 가볍게 짓누르기만 해도 살점이 으스러지고 뼈가 부러져 튀곤 했다.
그것을 눈물을 흘리지 않고 버텼으니 그나마 고수로서 체면치레를 한 셈이었다.
“일단…… 좀 맞자.”
장운은 태원평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아직도 얼굴에 못된 심보가 자글자글 보였기에 그 독기를 좀 빼주고자 한 것이다.
그렇게 대략 반 시진 정도가 흘렀을까?
장운의 손에 의해 미친 듯이 매를 맞은 태원평.
벌써 수차례 혼절하고 다시 깨기를 반복하였다.
장운은 그가 혀를 깨물거나 자결을 시도할까 봐 친절하게 재갈을 물리기까지 했다.
“허어어엉. 헝헝!”
결국 사흑천의 후계자이자 평생을 금수저로 살아온 소광마 태원평은 두 손 두 발을 다 든 채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장운 도련님! 제발! 제발 원하는 것을 말씀하십시오! 모든 것을 다 들어드리겠습니다!”
원하는 것을 말하지 않은 채 무조건적으로 때리는 장운의 계략은 제대로 먹혀들었다.
완전히 무너진 태원평이 사정을 다해 일단 말이라도 꺼내 달라며 애원하였다.
“그럴래?”
장운이 심드렁하게 말하자.
“네! 네! 뭐든지!”
태원평은 고개를 미친 사람처럼 끄덕이며 얼굴에 묻은 피가 동서남북으로 튀었다.
“그럼 내가 불러주는 대로 서신 하나를 좀 써줄래?”
장운은 기다렸다는 듯이 지필묵(紙筆墨)을 건네었다.
“물론입죠. 뭐라고 쓸까요?”
태원평은 전신에서 피가 흘러 한지에도 피가 스며들었는데 장운은 그것이 몹시 마음에 들었다.
왜냐하면 곧 쓰여질 서신의 내용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무림맹 놈들에게 추격을 받고 있습니다. 살려주십시오! 라고 간단히 좀 적어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