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150화 (150/173)

황금표국 역대급 무공 천재 150화

절반의 완성(1)

장운이 무결단과 함께 흑골대를 쳐부순 그 날 밤.

사흑천의 성 내부에는 회의가 한창이었다.

“천주님. 이제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사흑천의 부천주인 천악혈마(天惡血魔) 도단충이 직접 직언을 하였다.

이전부터 사흑천의 터를 버리고 새로운 터로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했던 것이다.

“끄응.”

이에 태상천은 신음을 내쉬며 고민을 거듭하였다.

사실 말이 쉽지, 수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사흑천의 자리를 버리고 이주하는 것은 안하무인(眼下無人)에 독단적인 성격을 가진 태상천조차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물며 아들이 실종되고 정사대전에서 연일 밀리는 등, 악재를 연거푸 맞이하는 태상천 입장에서는 이래저래 힘든 결정이었다.

“그럼 이 사흑천의 터는 어쩌고?”

태상천이 부쩍 늙어버린 얼굴로 물었다.

제아무리 사파 지존이라고 해도 악재에 장사는 없었다.

“이곳은 저와 부하들이 끝까지 항전하여 무림맹의 시선을 모으고 있겠습니다. 천주님께서는 그사이…… 황금표국을 점령하여 부족한 군량과 자금을 확보하십시오.”

도단충이 진지한 눈으로 말했다.

지금 정사대전에서 미느냐 밀려나느냐의 기로에 서 있었다.

더욱이 예전부터 단합이 잘되지 않는 사파 무림의 특성상 사흑천에서 대고 있는 자금줄이 마를 경우, 손바닥 뒤집듯 투항할 것이 뻔했다.

‘맞아. 사실 고민의 여지도 없지.’

태상천은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돌이켜 보면 쉬운 결정이었다.

요즘 들어 황금표국이 득세하고 강하다고 하나 태상천 입장에서는 한낱 표국이라는 선입관이 강했다.

그렇다고 하여 이전 적들처럼 멍청하게 방심은 하지 않았다.

“아시겠지요? 기습, 기습입니다. 아무도 모르게 저들을 치는 겁니다.”

도단충이 신신당부하며 말했다.

태상천은 여전히 황금표국 따위를 상대로 기습을 해야 하는 입장이었지만 이례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각이 여삼추였으니 한시라도 빨리 황금표국을 점령해야 했다.

더욱이 황금표국은 타고난 천혜의 요새로 어마어마한 부와 군량이 있으니 수성전을 펼치며 사파 세력을 불리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걱정 말게. 내 미리 준비한 구석이 있으니.”

태상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지금 자신이 도주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 이것은 이주야. 더 희망찬 우리의 앞날을 위한 이주!’

주먹을 불끈 쥐는 광혈흑마 태상천.

과연 그는 자신이 꿈꾸는 이주를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 * *

태상천은 부천주인 도단충과 만남을 종료하고 오십여 명의 수하를 대동한 채 은밀히 이동했다.

아무도 모르게 은밀히 다가오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육로는 이미 정사대전으로 인해 무림맹과 개방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으니 무리고 남은 방법은 자연스레 하나뿐이었다.

수로를 이용하는 것!

“장강수로채에 미리 통보를 하였으니 배가 준비되었을 것이다.”

오십이나 되는 인원을 아무도 모르게 은밀히 배에 태우려면 협조가 필요했다.

그것에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인물이 바로 장강수로채였다.

아니나 다를까?

사흑천의 성에서 빠져나간 태상천과 사파 고수들은 섬서로 향하는 강줄기를 발견하였는데.

“장강수로채에서 왔습니다.”

이미 다 이야기가 된 대로 장강수로채의 수적들이 여러 채의 배를 대동한 채 정박해 있었다.

씨익!

그 모습을 확인한 태상천은 이례적으로 환한 웃음을 짓고 말았다.

“좋아, 좋아. 넓게 보자면 장강수로채 또한 우리 사파 무림에 속하는 동도가 아니겠는가?”

사실 이 발언은 참으로 웃긴 말이었다.

평소 사흑천과 그 수장인 태상천은 장강수로채의 수적과 녹림의 산적은 사파도 아니라 일개 버러지에 불과하다며 입을 털어대었는데 이럴 때만 동도를 찾았다.

“그래. 채주는 누구인가?”

태상천이 채주를 찾자, 한 인물이 나섰다.

“제가 바로 산서수채의 채주인 광표이옵니다.”

그는 다름 아닌 수중밀검 광표로 장강수로채 전역을 다스리는 수왕 사유혼의 넷째 제자이기도 했다.

“오! 수왕의 제자로군. 수왕께서는 잘 계시나?”

태상천이 천연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 질문에 광표는 순간적으로 화를 낼 뻔했지만 초인에 가까운 인내력을 발휘하여 참았다.

‘수왕 사부님의 칠순 축하 자리에 참석을 하지도, 하다못해 선물을 보내지도 않은 주제에 입을 털어?’

그 생각만 해도 부들부들 떨렸지만 내색할 수는 없었다.

원대한 계획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잘 계십니다.”

“하하핫! 수왕 선배와 천하를 호령하던 옛일이 생각나는군.”

기억은 서로 다르게 쓰여진다고 누가 그랬던가?

태상천은 수왕과 단란한 한 때를 보내었다고 기억하고 있었지만 천만의 말씀.

수왕과 장강수로채 입장에서는 사파 정식 문파로 취급도 해주지 않고 은근한 알력 다툼 덕분에 정파보다는 사이가 가까울 뿐, 그저 얄미운 동네 이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습니까?”

광표는 여전히 내색을 하지 않으며 그와 일행들을 나누어 태웠다.

“한데…… 왜 거대한 배를 보내지 않고 이런 자잘한 배를 여러 개를 보냈지? 이렇게 된다면 필수적으로 인원이 흩어질 수밖에 없는데?”

순간 태상천의 두 눈이 가늘게 찢어지며 약간의 살기를 발산했다.

기껏 도와주었더니 도움이 시원찮다고 밥상 걷어차는 행동에 피가 거꾸로 솟을 지경이었다.

물론 한껏 예민한 태상천 입장에서는 의심이 될 만했지만 이것은 해도 너무 했다.

“물론 본 수채에도 여러 큰 판옥선들이 있습니다. 하나 그러한 배들은 필연적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마련입니다.”

광표는 화를 내지 않고 차분히 설명을 이어나갔다.

“반면 이런 어업에 필요한 고기잡이 배들은 한꺼번에 돌려 다녀도, 강의 중간이나 하류에 위치하여도 어느 누구 하나 의심하는 자들이 없지요.”

그 논리적이고 탁월한 말에 의심이 많은 태상천조차도 무릎을 탁 내리쳤다.

“옳거니. 과연 그렇군. 호의에 예민하게 굴어서 미안허이.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이니 말이야.”

태상천은 본래 미안하다는 소리를 죽었다 깨어나도 하지 않았지만 오늘 만은 예외였다.

자고로 배 위에서 선장의 말은 법이라는 격언이 있다.

이 여러 척의 배를 이끄는 선장은 산서수채주 수중밀검 광표였기에 그를 어느 정도 존중할 필요가 있었다.

“당연히 이해합니다. 더욱이 수왕 사부님께서는 오늘 일을 계기로 사흑천과 장강수로채가 한층 더 가까워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수왕이 먼저 숙이는 듯한 말에 태상천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연신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 수적질만 하는 고고한 늙은이가 그런 말을? 하긴, 이제는 시대의 흐름을 볼 때가 되었지.’

완고하기만 한 수왕이 저자세를 보이자 태상천은 내심 기뻐하며 답했다.

“여부가 있겠는가? 일단 공공의 적이라 할 수 있는 무림맹부터 무너뜨리고 봄세. 무림맹만 넘어진다면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는 자신들의 안위에 신경을 쓸 게 뻔하니 말이야.”

그러면서 끝까지 황금표국을 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산서수채를 비롯하여 장강수로채의 수적들이 상단과 표국과 거래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혹시라도 나쁜 마음을 먹을까 봐 함구하고 있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는군. 황금표국을 차지한다면 우리를 팽할 놈들이 무슨 망언이란 말인가?’

그 속내를 불 보듯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광표는 뻔뻔한 태상천의 발언에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그럼 최단의 길로 섬서 내부까지 안내를 하겠습니다. 목적지가…….”

“그렇네. 서안에서 서쪽 방향 인근에 내려주게.”

태상천이 말했다.

참고로 서안에서 서쪽 방향으로 올라간다면 두 갈래의 길이 나온다.

한쪽은 허허벌판이고 다른 한쪽은 황금표국인 것이다.

그래서 그냥 황금표국이라 말해도 되는데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스르륵!

그렇게 아닌 밤중에 뱃놀이가 시작되었다.

이후 광표는 수하들과 함께 여러 척의 배를 나란히 이동시켰다.

이는 물론 태상천의 지시였다.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왕이면 나란히 이동했으면 좋겠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는데 이 행동에는 다 꿍꿍이 속내가 숨어있었다.

혹시라도 기습을 하거나 광표가 배신을 할까 봐 언제라도 다른 배 위로 뛰어들 수 있게 판옥선을 줄줄이 묶은 것처럼 이동하려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좁은 수로로 진입합니다. 너비는 우리 배 두 척 정도인데 안전을 위해 한 척씩 나가는 것이 옳습니다.”

곧 바닥이 얕은 좁은 수로가 나오자 광표는 진지한 얼굴로 조언을 하였으나.

“흐흐, 괜찮으니 두 척씩 보내주게.”

태상천은 특유의 안하무인 자태를 보여주었다.

그는 정작 수중행에 대해 전혀 모르는 주제에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

“이곳은 물이 얕고 바닥에는 암석(巖石)들이 많아 배가 부서질 수도 있습니다.”

광표는 처음으로 답답하다는 얼굴이 되고 말았다.

“책임은 내가 질 테니 두 척씩 가지.”

태상천은 여전했다.

그에게 있어 사흑천 바깥도 곧 사흑천 성 내부처럼 굴었다.

평생토록 남이 떠받드는 삶을 살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광표는 표정이 굳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의견을 십분 반영하여 좁은 수로에 배를 두 척씩 줄줄이 짝을 지어 진입했다.

스르륵!

첫 배인 태상천이 타고 있는 배와 짝인 그 옆의 배는 무사히 통과를 하였다.

“이봐. 이것 보라니까?”

그 모습에 태상천은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이며 거들먹거렸다.

쿠웅!

두 번째 줄을 지은 배는 좁은 수로 탓에 배의 옆면이 긁히며 배에 탄 수하들은 뱃멀미를 호소할 지경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배가 부서지는 일을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 수하들은 용맹하고 겁이 없지. 이 정도는 괜찮네.”

하지만 문제는 다음부터였다.

마지막 배들도 진입하려는 찰나!

우지끈!

마침내 사달이 나고 말았다.

이전에는 운이 좋아서 그렇지, 결국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은 말로는 뻔했다.

마지막 배들은 부러지고 바닥이 뚫려 여간 힘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큰일 났습니다!”

“배의 바닥이 부서져서 물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배가 익숙지 않은 수하들이 기겁을 하자 이제야 큰일 났음을 자각한 태상천은 사색이 되고 말았다.

“광표 채주! 어떻게 좀 해주게.”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모든 책임은 자신이 진다고 해놓고 사달이 벌어지니 결국 전문가 손을 빌리고 있었다.

“배를 멈추고 정박시키는 것이 옳습니다.”

광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정론을 이야기했다.

그 말은 당연했다.

배에 문제가 생겼으니 문제의 배를 정박시켜 남은 인원을 다른 배에 태우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렇게 되면…… 시간이 지체되겠지?”

태상천은 무슨 생각을 그리하는 건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네, 인원 분배도 다시 해야 하고 배가 한층 더 무거워지니까요.”

광표의 말에 태상천은 결단을 내렸다.

‘시간을 더 이상 지체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또 하나 더.

배에서 내려 정박하는 순간에 적이 나타나 자신을 칠지도 몰랐다.

아니, 어쩌면 배가 부서진 것부터 다른 사람의 짓인지도 모르지 않은가?

“수하들만 정박하여 육로로 달려와 나루터에서 합류하라고 전하지.”

“네?!”

광표가 놀라 다시 되물었다.

“우리는 이대로 진격할 걸세. 중간에 낙오되는 이들은 추후 뒤늦게 따라와서 합류하는 거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