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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도 잘하는 놈이 잘한다-6화 (6/267)

6화 어쩌면 그럴지도

“너… 이… 미친…….”

김대훈이 어버버대며 부릅뜬 눈으로 나를 노려본다.

뭐, 어쩌라고.

눈싸움이라도 하자고?

“미치다뇨. 안 미쳤습니다. 얼굴처럼 정신도 멀쩡하고요.”

내가 그렇게 쏘아붙이자 안 그래도 독두꺼비 같던 김대훈의 얼굴이 더욱 웃기게 변한다.

붉으락푸르락.

가만히 보고 있자니 나름 보는 재미가 있었다.

“너, 너어……!”

나한테 삿대질을 하면서 계속 ‘너, 너’거리기만 하는 김대훈.

하긴.

제 딴에는 이게 대체 뭔 상황인가 싶을 거다.

그가 평소에 고까워했던 최 실장도 아니고, 그와 승진을 놓고 경쟁하고 있는 이 팀장도 아니고.

새파랗게 어리디어린 19살짜리 연습생한테 이런 막말을 듣게 될 거라고 그가 한번이라도 상상해 봤겠는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건 김대훈 과장이 이해해야 할 일이다.

왜냐.

나는 그냥 19살짜리 연습생이 아니니까.

겉은 그렇지만, 속에 든 건 무려 9년이라는 시간을 거슬러 온 회귀자.

소설로 치자면 소설의 주인공이라 볼 수 있다.

반면 김대훈은?

허접한 엑스트라 악역이다.

그것도 초반에 주인공에게 참교육 당하고 사라질 악역에 불과했다.

“네가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연습생 생활 그만두고 싶어?”

흠, 이거 참.

전형적인 엑스트라 악역의 대사를 내뱉는 김대훈 팀장.

심지어 전혀 씨알도 먹히지 않을 협박이다.

회귀자의 눈에는 실장이건 뭐건 뵈는 게 없다고!

연습생에서 짤리든 말든, 지금의 나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5년 경력의 웹 소설 작가로서 감히 말하건대, 이런 허접한 악역의 허접한 협박은 그냥 무시하는 게 국룰이었다.

괜히 더 떠들어 봐야 분량만 아깝다.

“예에, 무사할 것 같네요.”

그렇게 말하며 나는 김대훈을 그대로 지나쳐 갔다.

팍-!

하지만 그런 나를 김대훈이 붙잡는다.

“이 새끼가 어른이 말하는데! 너 이거 어디서 배운 버르장……!”

“…참나.”

할 수 없이 나도 뒤돌아 김대훈을 마주 봤다.

그다음에는 내 팔을 붙잡은 김대훈의 팔을 반대쪽 팔로 똑같이 붙잡아 줬다.

꽈악-

떼어 내기 위해 강하게 힘을 주자, 김대훈도 제 팔에 힘을 꽉 준다.

더 강하게 힘을 주자 김대훈도 마찬가지로 더 힘을 준다.

뭐, 힘 싸움이라도 하자는 건가?

“…뭐 하세요?”

“이, 이익!”

하지만 싸움이 될 리가 없다.

나는 산삼보다 몸에 좋은지는 몰라도, 아무튼 고3.

성장호르몬과 남성호르몬 모두 한참 뿜어져 나오고 있을 시기다.

게다가 이맘때의 나는 배우 준비하느라 주 3회 웨이트도 빼먹지 않고 있었다.

그거 힘 조금 줬다고 팔뚝에 힘줄도 불룩 튀어나온다.

모니터 앞에서 키보드와 씨름하느라 매일 썩어 가던 28살의 나와는 근육의 탱탱함부터 다르다.

반면, 김대훈은…….

‘으음. 어렵네. 몇 살이지?’

몇 살이었더라.

액면가와 반쯤 벗겨진 머리의 상태로 추측해 보자면 사십 대 후반.

하지만 내 기억으로는 그렇게 나이가 많지 않았는데.

아마 생긴 것만 저렇지 실제로는 삼십대 후반쯤 될 거다.

어쨌든.

김대훈은 잦은 야근과 술자리, 만성 운동 부족에 시달리는 삼십 대 후반의 직장인이다.

젊었을 때도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던 건지, 축 늘어진 뱃살과 함께 힘을 줬지만 여전히 얇디얇은 팔뚝이 보인다.

“큼, 크흠!”

결국 오래 버티기 힘들었는지 김대훈이 헛기침을 하며 제 손에 힘을 뺀다.

그러게 왜 시비를 걸어.

“…너 이 새끼. 두고 보자.”

와우.

어떻게 이렇게 끝까지 한결같은 엑스트라 악역의 포스를 뽐내는 건지.

김대훈이 그렇게 말하며 황급히 자리를 빠져나간다.

나도 그런 김대훈의 뒷모습을 향해 한번 웃어 준 후 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김대훈이 간 방향과 내가 향하는 곳은 반대쪽이었다.

‘대표님한테 찌르기라도 하려나 보네.’

김대훈이 향하는 쪽은 대표실이 있는 상층.

아마 찾아가 건방진 연습생이 있다며 쫓아내야 한다고 찡찡대려는 거겠지.

뭐, 그러든 말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어차피 오늘 여기를 찾은 이유 자체가 이제 그만두려 한다고 말하려는 거였으니까.

아무튼.

“와아.”

옆에서 자그맣게 탄성이 들려온다.

날 보며 입을 벌린 채 엄치를 척 치켜올리는 여자애가 보였다.

“너, 대단하다.”

동글동글한 눈동자가 날 빤히 바라보고 있다.

꼭 토끼 같네.

“나 김 팀장님한테 그렇게 막 대하는 사람 처음 봤어. 이게 뭔 일이래?”

그렇게 말하며 환하게 눈웃음을 짓는다.

그런데 얘 이름이 뭐였더라.

분명 나랑 동갑이었는데.

그래도 한때 한솥밥을 먹었다고 얼굴은 기억이 나는데, 얘기를 나눠 본 적이 없었던 탓에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

물론 이름만 기억 안 나는 거지, 얘가 누구인지는 알고 있다.

STR엔터에 속해 있던 아이돌 연습생.

동갑이면서 내가 얘랑 한 번도 얘기를 나눠 본 적이 없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나는 배우 파트였고, 얘는 아이돌 파트였으니까.

연습실도 반대쪽에 위치해 있어서 서로 마주칠 일이 별로 없었다.

회사에서 남여 연습생이 마주치는 걸 최대한 막기도 했고.

배우 파트 여자애들이야 서로 연기 연습도 같이 하니 상관없는 얘기지만, 여자 아이돌 연습생 쪽하고는 엮일 일이 아예 없었다.

“너 선우진이지? 나는 정하연. 우리 친군데, 알아?”

아, 맞다.

이런 이름이었지.

그런데.

“친구?”

“응! 나 19살. 너도 19살 아니야?”

“아… 응, 맞아.”

나이가 같으면 다 친구인가?

19살의 나도 그렇게 생각했으려나?

아무튼.

“그런데 진짜 대박이다. 나 방금 본 거 다른 애들한테 말해도 돼?”

“뭐… 마음대로 해.”

“진짜? 바로 소문내야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정하연이 생긋 웃으며 제 스마트폰을 꺼낸다.

그러고는 신난다는 표정으로 엄지를 빠르게 두들긴다.

슬쩍 훔쳐 보니 여자 아이돌 연습생 단톡에 올리는 모양.

‘…이러다 성격 이상한 놈으로 소문나는 거 아니야?’

뭐, 상관없으려나.

어차피 회사는 오늘부로 그만둘 거였으니까.

“아!”

열심히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던 정하연이 갑자기 눈을 번쩍 뜬다.

그러더니 나를 돌아보며 묻는다.

“그런데 너 괜찮아? 김 팀장님 뒤끝 완전 장난 아닐 텐데……. 너 계속 괴롭히는 거 아니야?”

“괴롭힌다고?”

“응! 아까 말한 것처럼 김팀장님이 너 진짜 그만두게 하려고 하면 어떡해.”

“상관없어. 어차피 그만두려 했으니까.”

“뭐어?”

안 그래도 똘망거리던 정하연의 눈이 더욱 번쩍 뜨인다.

와,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까 눈이 진짜 컸다.

생긴 건 귀엽긴 한데 그 큰 눈이 나를 코앞에서 빤히 바라보니까 조금 부담스러울 정도다.

“그만둔다고? 왜!”

“그냥……?”

“뭐? 그냥? 그런 게 어딨어!”

으음.

분명 예전에 얼굴은 오고 가며 몇 번 봤어도 얘기 나누는 건 오늘이 처음인데.

꼭 제 절친한 동료 연습생이 그만둔다고 말한 것처럼 놀라는 정하연이다.

원래 낯을 엄청 안 가리는 스타일인가?

아무튼.

“재능이 없어서.”

“……?”

“재능이 없다고. 너도 아까 들었으니까 알 거 아냐. 김 팀장이 나보고 연기력 어쩌고 떠들던 거. 그거 말투가 싸가지 없었을 뿐이지 내용에는 틀린 말 없어. 나 연기 못하거든.”

“…아.”

건조하게 내뱉은 내 대답에 정하연의 눈이 살짝 떨린다.

살짝 벌어져 있던 입도 합, 하고 닫힌다.

뭐라고 할 말이 없어서일 거다.

사실, 배우 파트나 아이돌 파트나 재능이 없다는 것 따위의 이유로 일찌감치 제 꿈을 포기하는 경우는 그리 드문 게 아니었으니까.

아마 정하연도 나와 같은 이유로 아이돌 연습생을 그만두는 경우를 몇 번 봐 왔을 거다.

‘뭐, 진짜 이유는 따로 있기는 하지만.’

하지만 진짜 이유를 말할 수는 없다.

어차피 가망 없는 배우 지망생은 빨리 때려치고, 시드 머니 불려서 코인에 다 박아야 해.

이런 말을 하면 저기 저 지금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동글동글한 눈동자가 단숨에 미친놈을 바라보는 눈초리로 바뀔 것이다.

그리고 뭐, 재능 없어서 그만두는 게 아예 틀린 이유는 아니기도 했고.

‘재능 있었으면 나도 계속 배우했지. 어차피 앞으로 어떤 영화나 드라마가 흥행할지도 아니까 최대한 흥행할 작품만 찍고.’

그러다 주연급 배우가 되면 주연 여배우하고 어? 그 뭐냐 러브 러브 한 신도 좀 찍고, 키스 신도 찍고, 어?

나중에는 막 할리우드도 진출하고!

나도 그러고 싶다고!

진짜 최소한의 연기력만 갖고 있었어도 그렇게 했을 거다.

나중에 코인으로 번 돈으로 내가 제작사 차리고 투자사 차리고 해서 억지로라도 그렇게 했겠지.

아무튼.

“으응. 아쉽네. 그래도 계속하면 좋을 텐데…….”

내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만 있자 민망했는지, 시선을 살짝 피한 정하연이 한 손으로 제 머리를 꼬면서 입술을 비죽거린다.

그러다 잠깐 고민하는 얼굴을 하더니 갑자기 내게 제 스마트폰을 건넨다.

“자!”

“……?”

“번호달라고, 번호. 이거를 꼭 말로 해야 알아?”

“……?”

뭐지?

일단 정하연이 말한 대로 번호를 찍어 건네주기는 했다.

“너 이제 회사 그만둔다며. 그러면 이제 볼 일 없을 거 아냐? 그러니까 연락처 달라고 한 거야. 너 이상한 오해는 하지 마라.”

스마트폰을 받아 든 정하연이 그렇게 빠르게 말을 쏘아붙였다.

그러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는 뒤돌아서 뛰어가기 시작했다.

‘…….’

뭐지 진짜.

진짜 19살들의 감성을 가짜 19살인 내가 이해하지 못 하는 건가.

그것도 아니면…….

19살의 나.

‘설마 인기남이었던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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