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도 잘하는 놈이 잘한다-20화 (20/267)

20화 세상 혼자 사시네

“자, 여기 여기 이렇게 두 분 도장 찍어 주시고. 가져오신 서류 이쪽으로 주시면 됩니다.”

“예. 여기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서류 봉투에서 인감증명서와 가족 관계 증명서 등의 서류를 꺼내 세무사에게 건넸다.

엄마는 세무사가 표시한 곳에 도장을 찍으면서도 이게 진짜 실제 상황인가 싶으신 표정으로 나를 연신 힐끔거리셨다.

아마 아직도 믿기지 않으신 거겠지.

언젠가 TV에 나오는 뉴스를 듣고 엄마가 ‘어휴, 저런 아들딸 하나 있으면 부모는 얼마나 좋을까.’ 하셨던 그 선우가 나라는 걸 말이다.

“자, 그러면 이걸로 법인 설립에 필요한 서류는 끝이고, 설립 신고나 사업자 등록은 저희 측에서 진행시키고 따로 보고드리겠습니다. 작가님께는 이전에 이미 관련 내용을 설명드렸었는데, 혹시 두 분께서도 설명이 필요하신가요?”

“어… 예. 좋습니다.”

세무사의 물음에 아버지가 그래 달라는 의사를 표했다.

사실, 아버지께서도 따로 사업체를 운영하시는 만큼 법인 설립이나 기타 절차 등에 대해서는 꽤나 잘 알고 계신다.

하지만 그럼에도 세무사에게 설명을 듣는 건, 아들인 내 일인 만큼 조금 더 확실히 하시기 위함이시겠지.

아무튼.

“내가 진짜 선우인 게 이제는 믿음이 가?”

“어휴. 여기까지 왔는데 믿어야지. 그런데 믿음이 가긴 해도 실감은 안 난다, 아들.”

나는 세무사와 얘기를 나누는 아버지를 잠시 놔두고, 옆에서 아직도 반신반의하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엄마에게 물었다.

사실 오늘 아침 일어나자마자 ‘내가 사실은 선우요.’ 하고 말하던 내게 수험 스트레스에 미친 거냐 물으시던 엄마였다.

진짜라고 말하면서 조아유 화면이나 엑셀로 온 정산서를 보여 드려도 괜한 장난치지 말라면서 짜증을 내기도 하셨다.

뭐, 이해가 안 가는 일은 아니다.

사실 이맘때의 나는 그냥 놀기 좋아하고 유명해지고 싶어 배우라는 꿈을 꾸던 보통의 19살이었으니, 그런 과거의 내 모습과 매스컴에서도 여러 번 떠들어 댈 정도인 선우라는 천재 작가를 연결시키긴 어려우셨을 거다.

결국 JP미디어의 내 담당자가 직접 우리 집에 찾아와 얘기를 하고 나서야 어느 정도 믿어 주시기 시작했다.

물론 그때도 여전히 담당자가 아니라 사기꾼인 게 아닌가… 아니면 내가 수험 스트레스가 너무 큰 나머지 그걸 풀기 위해 이상한 장난을 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가득해 보이셨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래서 지금 이렇게 세무사 사무실까지 직접 찾아온 거다.

내 말을 100% 믿지 못 하시는 부모님께 확인도 해 드리고, 겸사겸사 법인 설립 절차도 처리할 겸.

‘사실 원래는 내년에 밝히려 했는데…….’

예정보다 시기가 조금 당겨졌다.

나도 이렇게까지 잘될 줄은 몰랐던 중국에서의 성공으로 내가 버는 단위가 몇 억이 아닌 몇십 억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원래는 어차피 내년 4월에 비트코인으로 한탕 거하게 먹을 거니, 사업자나 법인을 내지 않고 몇 억 정도의 세금이야 5월에 종소세로 쿨하게 내 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내 수입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나면서 더 이상 ‘이 정도 세금쯤이야’ 하고 피식거리며 그냥 납세해 버릴 만한 액수가 아니게 되었다.

법인을 차리지 않고서는 내가 번 돈의 반 가까이 되는 돈을 세금으로 내야 되게 생긴 거다.

그래서 법인을 설립하려고 보니, 이번에도 내가 아직 미성년자라는 게 꽤 큰 걸림돌이 됐다.

지금까지처럼 약간은 주먹구구식으로 부모님 동의서만을 들이밀면 됐던 것들과는 다르게 법인 설립은 사무실 임대도 해야 했고, 부모님 인감은 물론 인감증명서도 떼야 했고 뭐 이것저것 필요한 게 많더라.

그 많은 걸 예전처럼 얼렁뚱땅 넘길 수도 없고 하니… 그냥 부모님께 사실을 다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시기가 바로 오늘이었던 거고.

아무튼.

“그럼 세 분, 안녕히 가십시오.”

“예, 세무사 님, 다음에 또 봬요.”

인사와 함께 나와 부모님은 세무사 사무실을 나섰다.

“후우.”

안 그러신 것처럼 보였지만 긴장하셨던 건지,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아버지가 크게 숨을 내쉬었다.

“아, 그리고 아버지 계좌로 돈 보냈어요.”

“뭐? 뭔 돈?”

“저희 집 대출 있잖아요. 그거 갚으라고 돈 보내 드렸어요. 조금 넉넉하게 넣었으니까 남은 건 엄마랑 나눠서 쓰시고요.”

집안에 1억 조금 넘는 빚이 있어서 그거 갚으시라고 넉넉하게 2억을 쐈다.

물론 샀던 비트코인을 조금 팔아서 마련했다.

사실 그냥 대출금은 그대로 놔두고 다달이 갚아 가는 돈을 내 통장에서 빠지게만 할까도 했는데… 원래라면 앞으로 6년 후에 대출 다 갚으시고 좋아하셨던 부모님 얼굴이 떠올라서 그냥 한 번에 갚아 버리기로 결심했다.

뭐, 그거 몇 달 더 참으면 내년 4월에 10배 먹는 거니, 미련하다면 미련한 짓이겠지만…….

그래도 미련한 짓에 몇 억쯤은 써 버리는 게 진짜 플렉스이지 않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 미련한 짓으로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얼굴을 몇 달 빨리 볼 수 있다면, 오히려 남는 장사라는 생각도 들었고.

“아이고. 아들 덕 보려면 한 10년은 기다려야 될 줄 알았는데… 당신은 복받은 줄 알아요. 내가 몇 번이나 말했죠? 젊었을 때 문학 소녀였다고. 우진아, 네가 역시 엄마 아들이긴 아들인가 보다.”

“그런가? 언제는 하는 짓만 보면 아버지를 빼닮았다면서요?”

“얘는, 내가 언제 그랬니?”

“흠흠! 아들 덕은 무슨. 그리고 닮기는 나를 더 닮았지.”

그렇게 말하시고는 아버지가 저 멀리 성큼성큼 걸어가신다.

이거 참.

나도 가끔 솔직하지 못하다는 소리를 듣고는 하는데, 이걸 보면 아버지를 닮긴 한 것 같다.

아무튼.

“아니. 어디 가요?”

“갑시다. 가서 일해야지. 그저께 삼양에서 받아 온 거 납기 오늘까지야.”

엄마는 그런 아버지를 흘깃 노려보시더니, ‘어휴’ 하면서 한숨을 뱉으신다.

꼭 ‘오늘 같은 날 아들 덕 본 김에 제대로 좀 보지. 뭔 또 일이냐.’라고 얼굴로 말하시는 듯하다.

사실 나는 내가 선우인 걸 아시고도 아버지가 저런 태도를 보이실 줄 예상하고 있었다.

뭐, 조만간 아들 덕 보기 싫으셔도 볼 수밖에 없으시게 만들면 그만이다.

“아들, 엄마 먼저 갈게.”

엄마가 이렇게 말하더니 벌써 저 멀리 걸어가고 계신 아버지를 종종걸음으로 따라가신다.

곧 환갑이신 두 분인데도 여전히 사이가 좋으시단 말이지.

뭐, 어쨌든.

엄마와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나를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것만으로도 오늘 쓴 2억이 전혀 안 아까워지는 순간이었다.

정 아까우면 글 좀 더 열심히 쓰지, 뭐.

‘그런 김에…….’

요즘 카페에서 쓰는 것도 질렸는데, 조금 새로운 장소에서 글을 써 볼까 싶다.

톡, 토도독-

“아, 양 PD님, 전데요.”

* * *

“허얼.”

드라마 작가, 정확히는 드작들의 유일한 등용문이나 다름없는 드라마 공모전에 당선되지 못 했으니, 아직 드라마 작가 지망생인 한수진 작가.

그녀가 놀란 얼굴로 어느 한쪽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누구래? 최 CP님 아들?’

저 멀리 보이는 건 그녀가 속한 ‘연기 천재가 되었다’의 총괄을 맡고 있는 드라마국 소속 최진섭 CP와 그 옆에 있는 한 남자.

뒷모습만 보이는 탓에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최진섭 CP의 아들이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한 건, 최진섭 CP가 옆에 있는 남자에게 여간 친한 척을 하는 게 아니어서 그랬다.

대하는 얼굴만 놓고 보면 꼭 수능에서 만점 받고 돌아온 아들을 대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조만간 수능이지.’

문득, 10년 전 수능을 치렀던 자신이 떠오르는 한 작가였다.

만점은 아니어도 평소 성적 대비 수능을 꽤 잘 보고 돌아왔던 그녀를 향해 그녀의 부모님도 꼭 저런 얼굴이셨는데.

수능을 잘 봐서 원하던 문창과에 들어갈 수 있게 되어 기뻐했던 스스로의 모습도 떠올랐다.

‘그때만 해도 금방 정식 드라마 작가가 될 줄 알았는데…….’

어렸을 때부터 글 잘 쓴다는 소리를 듣던 자신이니, 대학을 졸업하고 빠른 시일 내에 어쩌면 재학 도중에 공모전에 합격해 데뷔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곤 했었다.

물론 그건 기대에 불과했고, 현실 속 자신은 결국 대학을 졸업하고 5년이 넘게 지나도록 공모전에 번번이 낙방하는 만년 지망생인 신세였다.

지금은 양진철 PD의 스카우팅으로 ‘연기 천재가 되었다’의 보조 작가 겸 스크립터를 맡고 있었고.

그런데 이런 자신의 처지가 절대 특별한 게 아니라 보통의 드라마 작가 지망생들의 처지인 걸 생각해 보면…….

‘선우 작가님이 미친 거지… 우리가 이상한 게 아니라고.’

19살의 나이로 소설도 대박, 드라마도 대박.

뭐, 후자는 아직 확정은 아니라지만 지금까지 나온 대본을 읽고 그녀가 판단하기로는 대박의 기운이 물씬 풍겼다.

아마 세상에 천재가 있다면 그런 사람이지 않을까?

어쨌든.

“아.”

최 CP님 아들은 아니네.

최진섭 CP의 옆에 있던 남자의 옆모습을 보자마자 한 작가가 확신하듯 떠올린 생각이었다.

절대 부자 관계일 수가 없다.

최진섭 CP님께는 죄송한 말이지만, 만약 최진섭 CP님에게서 저런 비주얼이 나온 거라면, 그건 정말 신의 기적이라 불러도 좋을 거다.

‘신인 배우? 아니면… 내가 모르는 아이돌인가?’

이제 완전히 고개를 돌려 앞모습을 확실히 볼 수 있게 되니 알겠다.

일반인의 외모는 절대 아니었다.

최소 연예인, 그것도 굳이 따지자면 배우 쪽이었다.

왜 연예계에서 흔히 쓰는 말 중 하나가 배우 비주얼이라는 단어인데, 딱 그 말에 어울리는 남자였다.

‘나중에 양 PD님 통해서 누군지 물어봐야겠다.’

신인 배우면 양진철 PD에게 말해서 캐스팅 후보에 넣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연기력을 본 건 아니었으니 주조연은 아니더라도, 저런 비주얼의 배우가 필요한 신들이 연기 천재가 되었다에는 꽤 많았다.

작중에 유명 배우지만 비중은 단역급인 배역들이 몇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청자들에게 어떤 배역이 작중 세계관에서는 잘나가는 배우라는 걸 납득시키려면 웬만한 비주얼로는 무리인데, 그런 비주얼을 가진 현역 배우들을 모두 카메오로 섭외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말이다.

“어? PD님 계셨네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회의실로 들어가니, 때마침 양진철 PD가 안에 있었다.

“아! 혹시 오늘 최 CP님 보셨어요?”

“응.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같이 있었는데, 왜?”

“그러면 최 CP님이랑 같이 있던 신인 배우? 연예인? 아무튼 그 미친 비주얼도 보셨어요? 와아, 아까 멀리서 보는데 멀리서도 후광이 보이는 게… 신인 배우 맞죠?”

“어? 아, 아아… 그런데 신인 배우? 하하.”

“왜요? 배우 아니에요? 배우가 천직인 외모던데.”

배우가 아니었나?

대체 자기 말 중 어디가 웃긴 건지, 계속 피식거리는 양진철 PD에게 설명하라는 듯이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튼 저희 드라마에 쓰면 좋을 것 같던데요? 왜 서지섭 역이나 정서준 역. 작중에서는 대세 배우들로 묘사되는데 정작 나오는 분량은 엄청 적잖아요. 그런 배역에 캐스팅하면 아주 딱일 것 같지 않아요? 얼굴로 맘껏 열일하고 작품에서는 퇴장하는 거죠.”

“…오? 그건 진짜 괜찮은 의견인데?”

방금의 말에는 양진철 PD도 동의하는 건지, 그의 얼굴이 흥미로 가득해진다.

“내가 한번 여쭤봐야겠다.”

“…에? 여쭤……?”

그 순간.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회의실로 들어왔다.

아까 전 한 작가가 보았던 최진섭 CP의 옆에 있던 미친 비주얼.

그가 회의실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어라라?”

한 작가가 놀란 얼굴로 눈을 꿈뻑거렸다.

“아, 마침 오셨네. 여기는 한수진 작가라고, 아까 말씀드렸던 보조 작가 겸 스크립터입니다.”

“안녕하세요.”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남자의 모습에 한 작가도 꾸벅 고개를 숙였다.

“하, 한수진이라고 합니다.”

뭐지? 배우 아니라며?

그러면 여기는 왜?

진짜 최 CP님 아들? 그건 진짜 진짜 말도 안 되는데.

아니, 근데 그것보다… 가까이서 보니까 아까보다 한층 더 눈부신 게…….

꿀꺽-

한 작가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을 때였다.

“선우진입니다. 아… 여기서는 이제 선우라고 해야 하나? 대본을 쓴 선우입니다.”

“……?”

뭔가 이해하기 힘든 말이 방금 한 작가의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

“하하! 놀랐지, 한 작가? 내가 저번에 말했잖아. 선우 작가님 배우하셔도 될 정도라고.”

아니, 이건 그냥 해도 될 정도가 아니잖아요!

한 작가가 속으로 소리쳤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