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자본주의 만만세-!
한 온라인 커뮤니티.
연예인 덕후들이 많이 찾기로 유명한 그곳은 어제부터 갑자기 생긴 여러 질문 글로 인해 때아닌 홍역을 겪고 있었다.
[혹시 얘 누군지 아는 사람 있어? 제바류ㅠㅠ]
-오늘 SBC 프로그램 방청 갔다가 웬 ㅁㅊ 존잘남 봄. 급하게 직찍 몇 개 찍었는데 실물 보고 정신 나가서 구경하느라 더 못 찍음, 시박;; 커피 잔뜩 들고 어디 걸어가던데, 정신 차려 보니 사라져 있었으뮤ㅠㅠㅠㅠ 암튼 얘 데뷔한 애임? 아니면 연생?
처음에는 그저 한 개의 질문 글이 올라왔을 뿐이었다.
구도 좋게 찍힌 전신 숏 하나와 얼굴이 여백 없이 빡빡하게 들어가 있는 누군가의 얼빡 숏 하나.
그런 사진들을 올리고는 사진 속 인물의 정체가 누구인지 묻는 글이었다.
-????
-와… ㅁㅊ
-머리 크기 무엇?
-ㅁㅊ… 이거 보정 안 한 거지?
└응응! 누군지 물어보는 거에 정신 팔려서 보정할 생각도 못 했어…….
-진짜 누구야? 돌? 배우? 말만 해. 본진 바로 갈아타려니까…….
-커피 엄청 들고 가는 걸 보면 아이돌인가? 근데 매니저 없어? 왜 직접 들고 가… 엄청 작은 기획산가;
-아니, 저 얼굴로 소형? 슴 안 오고 무엇하는 짓???
-나 이 글 보고 최근 나온 신인돌들 다 뒤져봤는데, 없던데?ㅠㅠㅠㅠ
-와아… 이 집 얼굴 잘하네…….
-진짜 얼굴 맛집 ㅇㅈ
-그럼 아직 데뷔 안 한 건가? 아이돌이든 배우든 뭘 해도 될 외모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생길 수가 있지 ㅠㅜㅜㅜ 허읔… 그래서 이름이 뭐라고?
하지만 그 한 개의 질문 글이 만든 여파는 그리 적지 않았으니.
[ㅁㅊ 저 얼빡남 누구임? 제발 답 좀…….]
[얘 연생이야? 연생 잘 아는 사람들 들어와 봐.]
[아니, 그래서 대체 누구냐고ㅠㅠㅠㅠㅠㅠ]
[일단 3대 기획사 소속은 아닌 듯; 거기 소속이면 여기서 이렇게 아는 사람이 아무도 안 나올 수가 없어…….]
질문 글에 다들 감탄하는 댓글들만 달 뿐.
결국 사진 속 인물의 정체를 안다고 나서는 이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SBC 제작 센터에 출몰한 데다 저런 얼굴을 지녔다면, 연예계와 거리가 먼 사람일 수가 없을 텐데.
연예계와 돌판에 대해 빠삭한 거로 따지자면 어느 커뮤니티에도 뒤지지 않는다던 사람 중에 저 사람을 아는 이가 아무도 없다니.
[얼잘남 누군지 뜸?]
-얼잘남?
-ㅇㅇ… 얼굴 잘하잖아.
-앜ㅋㅋㅋㅋ 얼잘남 ㅇㅈ
-그렇게 부르자 앞으로
[얼잘남 배우 연생 아님? 아이돌 보다는 배우 할 외몬데… 그리고 우리가 돌판 경력이 몇 년인데, 이렇게 못 찾는 게 말이 됨?]
-아니, 아무리 배우 연생이어도 그렇지; 걔네는 데뷔 전에 활동 아예 안 한다니? 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ㅠㅠㅠㅠ
[안 되겠다. SBC 어디라고? 일산에 작업 센터 있는 곳? 걍 거기 가서 텐트 침;]
-…같이 갈래?
-2222222
-33333
어쨌든.
이후 SBC 일산 작업 센터에 아이돌 직찍러로 추정되는 팬들이 다수 출몰하게 된 건 꽤 오랫동안의 일이었다.
* * *
소설의 영감은 불현듯 찾아온다.
다른 작가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경우는 그랬다.
어쨌든.
정말 예기치 않던 때에, 신작에 대한 영감이 떠올랐다.
“으음.”
아니, 생각해 보면 예기치 않은 때가 아니었다.
그 왜… 오귀스트 로댕이 만든 아주 유명한 조각상.
생각하는 사람도 지금의 나와 비슷하지 않은가?
무릎 높이 정도의 어딘가에 엉덩이를 걸터앉아, 전방 살짝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전신 근육을 긴장시킨다.
흔히 말하는 똥 싸는 자세.
그것이 바로 생각하는 사람의 자세다.
그런데 그와 같은 자세를 지금의 나 또한 취하고 있었으니.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영감이 떠오를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때였을지도 모른다.
쾅-! 쾅-!
하지만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나와의 차이점이 있다면,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영원히 사색을 가질 수 있는 조각상과는 달리, 내게는 방해꾼이 있다는 것이었다.
“야-! 선우진! 빨리 안 나와! 빨리! 급하다고!”
“30초!”
“진짜지? 나 진짜 센다?”
그것도 나와 혈연이라는 질긴 악연으로 엮인 방해꾼이.
“30, 29……!”
‘이사를 간다면 꼭 화장실이 두 개 딸린 곳으로 가야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뒤처리를 빠르게 마쳤다.
정말로 30초를 초과해 버렸다가는 어딘가의 인터넷 썰에서나 나올 법한 불상사를 맞닥뜨릴 것 같았기에.
나와 거의 같은 유전자를 물려받은 누나이기에, 현재 다니는 대학교에서는 여신 소리를 듣는다던데… 거기 사람들은 누나가 집에서 저러는 걸 알려나 몰라.
아무튼.
“후우.”
화장실 세면대 대신 부엌에서 손을 씻은 후, 나는 내 방으로 가 책상 앞에 앉았다.
타악-
그리고 펴게 된 노트북.
아직 아무것도 쓰여지지 않은 한글 창이 보였다.
‘제목은… 이거로 하자.’
화장실에 있는 동안 대략적인 스토리는 물론 제목까지 생각해 놨다.
[마지막 마법사]
줄이면 마마가 되는 건가……?
오 마이 갓.
진짜 내가 지었지만 내가 본 웹 소설 제목 중 당당히 worst 5 안에 들 수 있을 법한 구린 제목이다.
만약 2021년의 문토피아에 연재한다면 작가 연재란에서 연재되더라도 하루에 유입 10명도 채 모으지 못하고 소리 소문 없이 묻혔을 그런 제목.
하지만 그런 구린 제목인 걸 알고 있으면서도 내가 이렇게 제목을 지은 이유가 있었다.
-요즘 그 선우라는 작가가 유명해서 글 좀 읽어 보려 했는데… 제목 왜 이럼?
-안 늙는 헌터가 너무 강함… 칼잡이가 너무 강함… 뭐 너무 강함 시리즈임? 예전 ~에서 살아남기처럼?
-내가 판타지 소설 안 보는 사이에 시대가 많이 바뀐 건가? 피를 마시는 새, 룬의 아이들 윈터러 같은 제목부터 멋있는 소설은 요새 없음?
-요새는 한국 장르 소설도 일본 라노벨화됨? 뭔 문장형 제목을 쓰냐;
가끔 여러 커뮤니티에 내 필명이나 내 작품을 쳐 보고는 하는데, 그럴 때마다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는 반응들이다.
하나같이 내 작품들의 제목이 너무 별로라며 혹평을 뱉는다.
칼넘강이야 이미 내가 한번 히트를 치고 난 후라 그렇다 치더라도, 정작 안늙강은 연재 초기부터 엄청난 유입을 불러모았을 정도로 꽤 괜찮은 제목이었는데도 말이다.
‘이게 웹소 독자와 일반 독자의 차이지.’
사실 어쩔 수 없는 혹평이기는 했다.
그래도 저런 문장형 제목에 어느 정도 익숙한 기존 웹소 독자와는 달리, 일반 독자들에게는 생소해도 너무 생소한 제목 스타일이었다.
내가 신작의 제목을 ‘마지막 마법사’ 같은 제목으로 지은 게 바로 이런 이유다.
선우라는 작가가 너무 유명해진 나머지, 이제 내가 타게팅해야 할 독자층은 웹소만 보던 이들이 아니라 일반 독자들한테까지 확대됐으니까.
그런 이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 저런 제목을 지은 거다.
게다가 이제 나라는 작가는 제목을 통한 어그로가 필요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실제로 내가 알던 미래에서도 그저 필명만으로 사람들을 불러모을 수 있는 몇몇 작가가 작품 제목에서 오는 유입 어그로를 아예 포기하는 패기를 보여 주곤 했었다.
필명이 안 써 있었더라면 50화까지 연재해도 조회수 100이 될까 말까 한 제목으로 당당하게 연재를 시작해 버리는 그런 패기 말이다.
[야이~ㅎㅎㅎ 제목 구려도 내가 □□인데, 그래서 소설 안 볼 거야?]
조금의 치장도 없이 말하자면 대충 이런 마인드겠지.
아무튼.
탁- 타다닥-!
‘제목이 별로기는 해도… 정작 재미는 이번 작품이 제일 높을 것 같은데.’
소설의 초반부를 쓰고 있자니 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건 대부분의 작가가 느끼는 공통점일 텐데, 글이 가장 잘 뽑히는 경우는 그 글을 쓰는 작가마저 자신의 글에 재미를 느낄 때다.
작가가 제 글에 몰입한 만큼 독자들의 몰입을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이번 작품이 가장 독자들의 만족도가 높을 것 같았다.
당장 나 스스로가 안늙강과 칼넘강을 썼을 때보다 더 글에 재미를 느끼고 있었으니까.
‘어쩌면 수익 면에서도 제일 괜찮을 수도 있고.’
마지막 마법사의 장르가 판타지라는 게 그 이유였다.
무협은 일단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장르다.
헌터물은 호불호는 덜해도 아직 많은 독자에게 생소하게 느껴지는 장르다.
하지만 그런 전작들과는 달리 마지막 마법사의 판타지 세계관은 장르 소설을 읽는 독자라면 모두 쉽게 적응할 수 있다.
게다가 나도 최근에야 알게 된 사실인데, 중국 웹 소설 시장도 판타지에 대한 수요가 만만찮았다.
가장 잘나가는 장르는 단연 무협이나 선협과 같은 동양형 판타지라지만, 기사와 마법이 등장하는 서양형 판타지가 차지하는 파이도 꽤 컸다.
실제로 올해 가장 큰돈을 벌어들인 중국 웹 소설 작가도 무협이나 선협을 쓰는 작가가 아니라 판타지를 쓰는 당가삼소라는 작가였다.
무협 대신 판타지를 쓴다고 해서 중국에서의 흥행에 실패한다거나 그런 일은 없을 거다.
어쨌든.
“야. 나 나간다.”
한창 글을 쓰고 있는데 나갈 준비를 끝마친 누나가 내게 인사했다.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손을 들어 식탁을 가리키며 말했다.
“엉. 아, 식탁에 돈 놔뒀는데 가져가든가 말든가.”
“돈? 뭔 돈?”
“니 어제 엄마한테 돈 없다고 곡소리를 내더만. 그래서 용돈 좀 챙겨 놨다.”
“아 씨. 누나한테 니라고 하지 말랬지?”
“뭐? 돈 필요없다고? 거기 30만 원 들어 있는데?”
다시 돈을 가져가려는 제스처에 누나가 빠르게 표정을 밝게 했다.
암 그래야지.
저게 내 소설로 치면 얼마짜린데.
제대로 계산은 안 해 봤지만, 대충 500자 정도는 되지 않을까?
그만한 글자를 쓰려면 아무리 나라도 1~2분 정도가 소요된다.
즉, 나는 자그마치 100초 가까이 되는 시간을 누나에게 베푼 것이다.
감사해야 하고 말고.
“움하하. 그거다 우매한 중생이여. 내 자비를 느껴라.”
아아,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라는 것이다.
나보다 일찍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언제나 내 위에 있던 누나와의 관계를 역전시키는 힘!
“뭐래. 미쳤나 봐. 아, 돈은 잘 쓸게.”
…단점이라면 그런 힘을 쓸 수 있는 건 오직 돈을 건네기 전까지만 유효하다는 거지만.
뭐, 어쩔 수 없다.
모름지기 모든 힘에는 제약이 따르기 마련이니까.
우우웅-
그러던 그때였다.
막 닫히는 현관문을 보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JP미디어 담당 편집자였다.
“예. 여보세요.”
“자, 작가님!”
평소답지 않게 떨리는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편집자.
내가 톡 연락을 더 선호하는 걸 잘 알아서 원래는 다짜고짜 이렇게 전화 먼저 안 하는데, 오늘은 아무런 연락 없이 전화한 걸 보면 잔뜩 흥분한 게 틀림없었다.
…그간 경험상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꼭 좋은 소식이 들려오던데.
“미쳤습니다!”
“……?”
“텐, 텐센트… 텐센트에서……! 텐센트에서……!”
텐센트?
내가 아는 거기?
한국인의 민속놀이인 레전드 오브 레전드를 만든 게임 회사를 인수해 버리는 바로 그곳?
‘아. 나중에 돈 벌면 텐센트가 채가기 전에 내가 먼저 인수할까?’
지금 벌써 팔렸으려나?
나중에 한번 알아봐야겠다.
그리고 안 팔렸으면 코인으로 떼돈 벌고 난 다음 내가 그 회사를 먼저 인수하는 거다.
그다음 차이나 머니로 인해 한국이 당했던 걸 그대로 되갚아 주는 거지.
어? 레전드 오브 레전드 챔피언들로 K-POP 그룹을 만들어 놓고 거기 센터를 한국 캐릭터 놔두고 중국 캐릭터로 시키는 게 말이 되냐고.
그럼 그게 씨팝이지 K-POP이야?
아무튼.
“텐센트에서… 뭔가요?!”
나는 K-예능처럼 계속 ‘텐센트에서……!’만 반복하며 사람 애간장을 태우는 편집자를 재촉했다.
그 덕에 오래 지나지 않아 나는 다음 말을 들을 수 있었다.
“텐센트에서……! 작가님 다음 작품들을 자기네 플랫폼에 독점 연재해 주시면 계약금을 지급하겠답니다!”
“계약금… 얼마죠?”
두구두구-
꼭 그런 효과음이 들리는 듯했다.
기대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월20억킥 작가인 난데.
웬만한 계약금으로 편집자가 이리 흥분할 리가 없었으니까.
그리고.
“…예에?!”
뒤이어 편집자가 텐센트에서 제시한 계약금의 액수를 말해 줬을 때.
나는 이 말을 다시 한번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자본주의 만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