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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도 잘하는 놈이 잘한다-36화 (36/267)

36화 운 좋은 친구

제작 발표회 시작 한 시간 전.

스태프들의 안내를 받아 분장실로 도착했다.

혹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까지 낀 채 뒷문으로 들어왔다.

“후우, 죽겠네요.”

“하하. 이젠 익숙해지셔야 할걸요? 아마 한동안은 대중교통 이용하시기 힘드실 거예요.”

모자를 벗는 나를 보고 스태프 한 명이 말했다.

안 그래도 슬슬 자차 구매를 알아보고 있었다.

회귀 전에는 면허를 늦게 딴 터라 몰랐는데, 지금 나이로도 운전면허를 따는 게 가능하더라.

바로 면허 시험장에 등록해서 며칠 전 면허 취득을 끝마쳤다.

이제 남은 건 차를 사기만 하면 될 뿐.

그렇지 않아도 법인이 벌어들이는 매출에 비해 비용으로 잡히는 게 너무 적다며, 법인 차량 리스라도 좀 하라고 난리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법인 이름으로 차량을 계약할 생각이었다.

물론 법인 차량은 사적 이용이 문제 잡힐 수도 있으니, 개인 명의로 쓸 차량들도 구매할 예정이었다.

‘뭐든지 꼬투리 안 잡히는 게 중요하니까.’

평상시에는 내 일이 곧 회사의 일이니 법인 차를 타고 다니고, 주말 같은 때 놀러 나가는 건 개인 차를 쓰는 거다.

누가 보면 뭔 돈 낭비냐 싶겠지만, 비싼 외제차 여러 대 차고에 쟁여 놓고 정작 타지는 않는 슈퍼 리치의 삶… 크으.

얘기만 들어도 멋있지 않은가?

오랜 내 꿈이었다.

그 덕에 대체 어떤 슈퍼카를 사야 최고의 하차감을 즐길 수 있을지가 요즘 가장 큰 고민이었다.

자고로 차량을 택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승차감보다는 하차감이었으니.

“와아, 내가 했지만 진짜 예술이네, 예술. 그렇지 않아요?”

“이건 진짜… 하아… 말이 안 나오네.”

그사이, 메이크업을 끝낸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헤어 아티스트와 서로 떠들었다.

오늘은 모처럼 헤어와 메이크업에 힘을 준 날이다.

이렇게 제대로 꾸민 건 거의 10년 만이었다.

배우 지망생 생활 할 때도 프로필 찍을 때나 이 정도로 신경 썼었으니.

그래서 그런가.

내 얼굴이지만 새삼 놀라웠다.

‘확실히… 저번에 했던 추측이 맞는 것 같긴 하네.’

비주얼도 강화된 재능 중 하나라는 추측.

아무리 봐도 사실인 것 같았다.

내 헤어를 만져 주시는 분은 아예 입까지 벌리고 제대로 감상 모드셨다.

손으로 머리를 살짝살짝씩 정리해 주시고 계신데, 꼭 조금 있으면 벌린 입에서 침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다.

“국장님, 여기 이분이 저번에 말씀드린 선우 작가입니다.”

“허… 허허… 익히 듣긴 했지만 참 잘생긴 분이셨네. 반갑습니다. 드라마국 국장 김성국입니다 ”

SBC 드라마국 국장이라는 사람도 왔다가 나를 보고 놀란다.

아무튼, 뭐 이것저것 공치사를 날리며 드라마에 대한 기대가 엄청 크다, 방송국 측에서도 제대로 지원해 주겠다, 그런 말들을 하던데, 솔직히 귀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다음 작품을 SBC와 같이 하게 될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서.

KBC나 MBS는 물론, 케이블인 TVM에서도 물밑 컨택이 오고 있었으니까.

특히 응답하라 1부의 성공으로 이제 슬슬 제대로 날아오르려 하고 있는 TVM은 고료로 부르는 액수가 장난이 아니었다.

아직 드라마가 어떻게 될지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도 지금 받는 고료의 3배를 불렀다.

회당 6,000만 원.

일이십 년 전부터 브라운관을 점령했던 진짜 특S급 드라마 작가나 회당 1억을 받아 가는 시기.

회당 6천이면 로맨스물로 요새 가장 잘나가는 스타 작가의 회당 고료랑 엇비슷한 액수다.

아직 첫 삽만 떴을 뿐, 방영도 시작하지 않은 드라마의 작가에게 제안하기에는 지나치게 큰 액수라는 소리다.

그만큼 내 성공을 확신하는 걸까?

그것도 있겠지만 아직 TVM이 그냥 드라마 하나 성공한 게 전부인 케이블 채널이라는 이유가 더 클 거다.

지금은 배우나, 드라마 작가나, PD나 가릴 것 없이 케이블로 이적하는 걸 급이 떨어져서 밀리는 거라 생각해 꺼리는 시기니까.

그런 인식을 없애기 위해 몇 배나 되는 고료를 앞세워 작가들을 영입하려는 거다.

‘그 정도로 모기업이 제대로 칼을 갈았다는 의미이기도 하지.’

범오성 계열의 재벌 가문이 가지고 있는 회사다.

자금력에서는 지상파 방송국들과 비교할 수가 없었다.

뭐, 아직은 지상파가 파이 대부분을 차지한 채 철옹성처럼 내주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 TVM의 그런 전폭적인 투자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 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나만은 알고 있다.

앞으로 방송의 흐름은 꽤 많은 부분이 지상파에서 케이블로 넘어가게 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중심에는 TVM과 그 모기업의 재벌 가문이 있다는 걸 말이다.

‘드라마 작가를 계속할 거라면 TVM과 하는 것도 괜찮지. 지상파는 지는 해고, 이쪽은 이제 막 뜨는 해니까. 가서 개국공신 취급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 거야.’

괜찮다 못해 좋은 선택이다.

내가 알던 미래에서 TVM이 스타 PD나 스타 작가들에게 해 주던 대우들을 보면, 어려울 때 도움받은 걸 잘됐다고 입 싹 닦는 그런 회사는 아니었으니까.

물론.

‘내가 그냥 드라마 작가인 게 전부였다면 말이지.’

내게는 TVM의 제안도 별로 혹할 만한 얘기가 아니었다.

회당 6,000은 엄청나게 큰 고료지만, 내 다른 수익과 비교하면 그리 크다 볼 수 없었고.

앞으로 있을 TVM과 그 모기업의 성장은… 어쩌면 내가 나서서 저지해야 할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토독-

“작가님, 이제 3분 있다가 회장 안으로 들어가실게요.”

“아, 감사합니다.”

안내를 위해 온 스태프분께 인사 후, 나는 메일을 열어 어제 왔던 연락 하나를 확인했다.

[Dear. Sunwoo -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제안서] - Netflix

‘얘네가 한 3달 후부터 대박 나던가?’

웬 자체 제작 정치 드라마 하나로 미국의 드라마판을 충격으로 몰아넣는 한 비디오 스트리밍 회사.

이미 20억 달러가 넘는 기업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몇 년 후에는 전 세계 스트리밍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하면서 기업 가치가 그 수십 배에 달하는 초거대 기업이 되는 회사.

넷플릭스가 내게 보낸 메일이다.

뭐, 한국과 중국의 스타 작가 선우가 아니라 아마존 개인 출판 작가 선우에게 보낸 메일이라 조건은 형편없었지만.

아무튼.

‘그럼 지금은 아직 넷플릭스도 뭐 없을 때 아닌가?’

넷플릭스의 제안을 보다 보니 재밌는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OTT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뭘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마 가장 핵심은 결국 제대로 된 오리지널 콘텐츠일 거다.

다른 플랫폼이 갖지 못한, 오직 우리 플랫폼에서만 볼 수 있는 명작의 존재.

사실 가장 시장 선도적이었고 혁신적이었던 넷플릭스가 결국 비디오 스트리밍 시장의 3분의 1을 먹은 게 최대고 그 이후 점유율을 내준 이유도 바로 저것이다.

어디선가 판권을 사 온 것 말고, 넷플릭스가 자체 제작한 콘텐츠 중 재밌다 싶은 게 몇 되지 않는다는 것.

그런데… 내가 넷플릭스의 메일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내가 아는 누군가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게 아닌가?

어? 내가 아는 글 쓰는 사람이 한 명 있는데 글을 좀 잘 씀.

쓰는 속도도 빨라서 한두 달이면 작품 하나 뚝딱임.

게다가 앞으로 성공할 영화나 드라마 등등도 다 알고 있다고?

그럼 그런 사람 하나 잡으면 ott 플랫폼 성공시키기 쉬운 거 아님?

뭐? 그런데 그 사람 돈도 겁나 많아질 예정이라 아예 자기가 플랫폼 차리는 것도 가능하다고?

엌ㅋㅋ ott 플랫폼 차리기만 하면 몇 년 내로 넷플릭스 따라잡고, 아예 전 세계 시장 먹는 것도 10건웅 아님?

…이런 생각의 플로우가 내 머릿속에서 오간 것이다.

그리고 곰곰히 생각해 봤는데 그냥 떠올린 것치고는 꽤나 괜찮은 생각인 것 같았다.

전 세계 미디어를 지배하는 작가… 겸 억만장자.

꽤 멋진 타이틀인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내 작품을 내 마음대로 영상화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투자자나 제작사와의 알력 싸움, 영화사와의 협상 등등.

만약 모든 걸 내가 차린 회사에서 하게 된다면, 그런 귀찮은 것들은 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뭐… 아직은 그냥 다 먼 이야기기는 하지만.’

물론 지금은 그냥 생각만 한번 해 본 단계였다.

제대로 된 회사를 차리려면 그저 작가와 돈만 있다고 가능한 게 아니었으니.

관련 인맥은 물론이고 작품을 찍어 줄 촬영 감독들이 필수적이었다.

드라마야 어떻게 양진철 PD부터 시작해 국내 인력들을 스카웃한다 쳐도… 내가 원하는 규모의 블록버스터 작품을 촬영할 사람은 국내에서 구하기 힘들었다.

운 좋게 그런 사람이 딱! 하고 나타나면 좋겠지만, 너무 희망사항이지, 그건.

어쨌거나-

“자, 이제 저 따라오시면 됩니다.”

이제 회장으로 가야 할 시간이었다.

* * *

선공개 영상 이후 생긴 화제성 때문인지, 수많은 사람이 찾았던 ‘연기 천재가 되었다’의 제작 발표회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연기 천재가 되었다’, 기자단들 사이에서 호평 일색.]

[강주원과 한시연의 실친 케미! ‘연기 천재가 되었다’에서 빛을 발하다!]

[벌써부터 기대되는 여주인공의 사랑스러움! 한시연, 드디어 한류 스타의 대열에 들어서나?!]

[제대로 만든 웰메이드 드라마? ‘연기 천재가 되었다’를 향한 기대감 급증!]

영상 시사를 위해 제작된 15분가량의 영상.

그걸 접한 기자단들 사이에서 드라마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들이 나왔다.

전반적인 스토리와 등장인물의 캐릭터성 모두가 최소 수작 소리를 듣기에 충분하다는 평.

지금처럼 연기 천재가 되었다 이외에는 제대로 된 기대작들이 없는 상황이라면, 다음 해 1분기는 연기 천재가 되었다의 독주 체제이지 않을까 하고 말하는 기자들도 있었다.

[제작 발표회에서 모습을 드러낸 선우, 화제 속 주인공과 동일인물?]

[선우진, 떡잎부터 잘생긴 모태 미남 입증, ‘어린 시절의 우진이는…….’]

[‘연기 천재가 되었다’ 주인공 역의 강주원, “첫 대본 리딩 때 작가님 보고 깜짝 놀랐죠. 메이크업 안 하고 왔다가 큰일날 뻔하기도 했고요.”]

물론, 가장 많은 관련 반응이 쏟아진 건 작가인 선우진이었다.

그동안 베일에 쌓여 있던 19살의 천재 작가.

그 작가가 웬만한 배우 뺨치는 비주얼의 소유자라는 건, 한동안 조용하던 연예 뉴스란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한 이슈였다.

-ㅅㅂㅅㅅ

└이게 머임? 시발섹ㅅ?

└시발세상…….

-아… 진짜 씨발 세상이네 ㅋㅋㅋㅋㅋ 쟤는 뭔데 다 가졌냐?

-그래서 드라마는 재밌대?

└ㅇㅇ… 참여한 기자들 말 들어 보면 간만에 나온 웰메이드 드라마라던데.

└요새 홍보 엄청 때리는 만큼 그 값어치 한다고 함.

└오… 소설은 재밌게 봤었는데 드라마도 챙겨 봐야겠다.

게다가 그렇지 않아도 앞서 여러 커뮤니티를 시끌시끌하게 했던 선우진이었다.

인터넷 화제성에서 웬만한 톱스타의 열애설 못지않았을 정도였다.

덕분에 선우진을 향한 각종 러브 콜들도 쏟아지고 있었다.

인터뷰와 관련된 문의부터 시작해 여자 친구는 있는지, 자산 관리는 본인이 직접 하는지 등의 신변잡기식 문의 등.

한 줄이라도 더 얻어 내 관련 기사를 쓰려는 기자들의 전화는 기본에, 과거의 연을 빌미로 여기저기서 그를 찾는 온갖 연락들까지.

[한현호 - 기사 봤는데… 혹시 네 드라마에 단역으로라도 출연할 수 없을까? 우리 레슨 때 자주 봤었잖아.]

이렇게 자신을 드라마에 꽂아 넣어 달라는 청탁도 심심찮게 받는 선우진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선우진을 애타게 찾고 있는 곳은 따로 있었으니.

놀랍게도 한국이 아닌 뉴질랜드의 어딘가.

“왓? 내가 뭐 퍼시 잭슨 시리즈를 사 오라 한 것도 아니고. 이런 것 하나 못 해 준다고?!”

자신에게 온 넷플릭스의 연락을 확인하고 짜증을 내뱉는 피터 잭슨, 바로 그였다.

‘가운데땅’ 시리즈. 대부분은 반지의 제왕이라는 이름으로 익숙할 대작을 직접 실사화했던 그는 더 이상 가운데땅 시리즈를 찍지 않기로 결정을 내린 참이었다.

제작사와의 갈등, 원작 팬들과의 다툼은 물론 가운데땅 시리즈가 자신의 커리어의 전부라며 다양성이 부족한 감독이라는 비판을 더 이상 참기 힘들다는 게 그 이유였는데, 그걸 벗어나기 위한 일환으로 다음 커리어를 위한 작품을 물색하고 있던 것이었다.

마침 그런 와중에 넷플릭스라는 웬 미국의 동영상 플랫폼에서 차기작을 자신들의 지원하에 제작해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거대 영화 제작사도 아니고, 듣도 보도 못한 회사가 피터 잭슨의 눈에 찰 리가 없었다.

그래도 제대로 된 차기작을 준비하면서 소일거리로는 나쁘지 않겠다 싶어, 그럼 최근 읽기 시작한 글이 있으니 그 판권을 사 오면 제작을 맡겠다고 통보를 한 것이었는데…….

“역시 근본 없는 미국 회사를 믿는 게 아니었어.”

대단한 시리즈도 아니고.

이제 막 개인 출간을 시작한 글 하나도 판권 계약에 실패했다는 게 아닌가?

피터 잭슨은 그렇게 역시 미국 기업을 믿는 게 아니었다고 자책하며 자신이 요청한 그 소설의 최신화를 클릭했다.

‘그런데 이 글…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글이란 말이지.’

처음 접했을 때는 흔한 중세 기반 판타지 소설이라 생각했는데, 보다 보니 그런 수준의 글이 아니었다.

아마존에 막 글을 올리기 시작한 걸 보면 이제 막 글을 쓰기 시작한 신인 작가인 것 같은데.

글 곳곳에서 보이는 번뜩이는 재능이 보통이 아니었다.

매 에피소드마다 증폭되는 메인 플롯을 향한 기대감.

그저 중세시대에만 기반한 게 아닌, 기존 서양 판타지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독특한 설정들.

오히려 넷플릭스에서 판권을 사지 못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좋아. 운 좋은 줄 알라고, 정체 모를 친구.”

결정을 내린 피터 잭슨이 메일함을 열어 메일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보던 소설, <마지막 마법사>의 판권을 자신이 직접 사들이기 위해.

이걸 가지고 조금 만지작거리다 보면 대형 영화 제작사들도 혹할 만한 작품이 탄생하리라.

“어디 보자. 제목은 이렇게 해 볼까? 이봐, 운 좋은 친구. 내가 바로 널 백만장자로 만들어 줄 피터 잭슨이라고 해.”

누구나 혹할 만한 제목.

피터 잭슨은 그렇게 스스로의 네이밍 센스를 칭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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