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웨스턴 머니도 굿 머니
‘후우-.’
양진철 PD가 떨리는 마음을 애써 숨겼다.
절로 튀어나오는 한숨을 가까스로 속으로 삼켜 낸 것이다.
물론, 작품에 자신이 없는 건 아니었다.
‘연기 천재가 되었다’는 찍는 과정 내내 스태프들은 물론이고 배우들도 만족해서 찍고 있는 작품이다.
그만큼 촬영 분위기가 좋은 데에는 이유가 다 있는 법이었다.
찍는 자기들이 봐도 지금 찍는 작품이 재밌으니까, 잘될 것 같으니까.
그런 긍정적인 기운이 작품을 찍으면서 저절로 느껴지는데, 분위기가 어찌 안 좋을 수 있겠나.
심지어 양진철 PD는 촬영하는 동안 ‘대박작을 찍는다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런 생각이 절로 든 만큼, 좋은 작품을 찍었다는 자신은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자신이 있다고 해서 불안감이 없을 수는 없는 노릇.
원래 시청률이 나오기 전 PD의 모습이란 게 그런 법이었다.
“오오! 좋아!”
“일단 시작 분위기 좋고!”
6.8%!
그 숫자가 보인 순간, 양진철 PD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첫 시청률이 6.8%인 거면 그야말로 쾌조의 스타트.
가슴을 잠식하던 불안감도 빠르게 사라졌다.
물론 첫 끗발이 개끗발이라고.
일말의 불안감까지는 남아 있었다.
꽤나 높았던 첫 시청률 집계가 어쩌면 최종 집계에서도 최고 시청률일지도 모르는 노릇이었으니까.
하지만 첫방이 시작된 후 30분가량이 지나고.
슬슬 드라마의 흥행과 관련된 다른 지표들도 나오기 시작했을 때.
“시청자 반응 수치 장난 아니에요!”
“실시간 화제성 수치랑 네티즌 반응량도 엄청나요!”
양진철 PD는 제 입꼬리가 자신도 모르게 꿈틀거리는 걸 멈출 수 없었다.
그의 시선이 홍보 팀이 건네준 태블릿 PC로 향했다.
-엌ㅋㅋㅋ이거 보다 보니 개꿀잼이네.
-보통 공중파 드라마랑 달라서 신선하네.
-그런데 실제 배우들 모습도 저러려나? 드라마 스토리 말고도 실제 배우들이 연기 현장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보는 맛도 있음.
└ㅇㅈ 게다가 배우가 배우를 연기해서 그런가ㅋㅋㅋㅋㅋ 다들 캐릭터 찰떡임.
└222222 강주원이랑 한시연 연기 ㅈㄴ 잘하던데? 그사이 얘네 연기력이 는 거냐? 아니면 인생 캐릭터 만난 거냐?
└그 둘은 원래 연기 잘했음… 캐릭터가 연기랑 잘 맞아서도 있을 듯.
-와 ㅆㅂㅋㅋㅋ 근데 이게 웹소식 전개라는 거냐? 지루한 부분 하나도 없이 전개 ㄹㅇ 스피디 하네
-웹소에서는 이거도 느린 편임ㅋㅋㅋㅋㅋ 선우 얘 그래도 드라마 쓴다고 스타일 좀 바꿨네. 원래 선우 글 보면 이거보다 훨 빠름.
└그러면서 분량은 하루에 수십 편씩 나옴ㅋㅋㅋㅋ 괜히 웹소판 다 쓸어먹는 게 아님.
-ㅋㅋㅋㅋㅋ1화 시작하자마자 빌런 같은 놈 나오더니, 20분 후에 그대로 처. 단.
-아아, 이게 웹소식 사이다라는 거다.
연기 천재가 되었다는 드라마가 되기 이전 처음에는 웹 소설로 쓰여졌던 만큼, 보통의 드라마들과는 사뭇 다른 웹 소설만의 문법이 여럿 사용된 드라마였다.
특히 웹소식 사이다라고 칭해지는 초반부 빌런의 등장과 뒤이은 사이다에 따른 빠른 퇴장 같은 것들.
그런 게 기존 드라마 시청자들에게 신선하게 작용했는지, 긍정적인 반응들이 꽤 많이 보였다.
“제가 뭐랬어요. 무조건 커뮤니티 돌면서 영업 글 써야 한다고 했죠?”
홍보 팀 막내가 자축이라도 하듯이 가슴을 한껏 들어 올리며 젠체한다.
“그래. 네 말이 다 맞다!”
실제로 막내 놈의 공이 다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양진철 PD는 기쁜 마음에 그렇게 말해 줬다.
군대까지 다녀온 시커먼 남자 놈이 저러고 있으니 분명 짜증이 나야 하는데, 뭐 작품 반응이 좋으니 저런 모습까지 귀여워 보였다.
연기 천재가 되었다는 젊은 시청자를 타깃층으로 한 드라마다.
물론 중장년층도 놓치지 않겠지만, 그래도 가장 최우선 타깃층은 젊은 시청자들.
그런 만큼, 젊은 시청자들의 반응을 가장 즉각적으로 보여 주는 인터넷 화제성 등의 지표가 시청률 못지않게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런 화제성 수치도 좋게 나오고 있었으니.
드라마 대박의 조짐이 스멀스멀 보이기 시작한 상황.
“떴다-!”
거기에 대망의 하이라이트가 드디어 들려왔다.
“8%, 9%… 와! 대박! 순간 9.8%도 찍었습니다!”
“뭐? 진짜야?”
스타트 이후 30분 동안의 시청률 추이가 나온 것.
그간의 분당 시청률이 그래프로 좌르륵 정리가 돼서 눈앞에 떴다.
그중 가장 높이 보이는 그래프 하나.
‘9.8… %……!’
거기에 적힌 순간 최고 시청률 9.8%.
흐하-
순간, 그런 웃음이 양진철 PD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심지어 우측에 따로 표시된 평균 시청률은 점점 우상향해서 현재는 8.9%.
이후로도 전혀 줄지 않고 꿈틀꿈틀 위로 올라가기만 한다.
이대로라면 1화 클라이맥스 부분에서는 무난하게 10%를 넘길 거고, 어쩌면 11%에서 12%를 웃돌지도 모른다.
첫방 평균 시청률이 거의 10%에 준하는 건 물론, 최고 시청률이 벌써부터 두 자릿수를 코앞에 두고 있는 상황.
아니나 다를까.
“와……! 넘었습니다! 10프로!”
누군가의 외침에 모두의 눈이 한곳으로 향했다.
1분 전 순간 최고 시청률이 찍혀 있는 곳.
그곳에 찍힌 10.3이라는 숫자가 유독 빛나는 것 같았다.
“축하드립니다, PD님! 작가님도요!”
“와아-! 대박!”
“첫 회부터 보너스다!”
“동시간대 경쟁작, 아니 경쟁작이라 부를 가치도 없어요! MBS는 6.8%, KBC는 9.6%로 두 작품 모두 지난주보다 떨어졌어요. 하하, 1화 만에 우리한테 따라잡힌 거라고요!”
“우리 드라마만 혼자 대박! 시청률 독주입니다, 독주!”
10.3%… 심지어 아직 더 올라갈 기미를 보이고 있는 10.3%.
첫방부터 이렇게 두 자릿수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건 아무리 지상파라고 해도 꽤 특별한 사건이었다.
우웅- 우우웅-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회식에 참여한 사람들의 폰이 마구 울린다.
온갖 곳에서 축하 연락들이 쏟아지는 거다.
당장 양진철 PD의 폰도 가족과 방송 관련 지인들의 문자가 쌓이고 있었다.
‘…진섭이 형, 드라마국 국장님까지?’
그야말로 축하 세례를 받고 있는 그였다.
통화도 계속 밀리는 것 같은데, 그 와중에도 폰의 진동이 멈출 줄을 모른다.
아마 문자 메시지도 그새 수십 통은 왔을 거다.
담당 CP인 최진섭 CP의 연락이야 당연했고, CP 때부터 엉덩이 무거운 분으로 유명했던 드라마국 국장도 자기에게 전화를 넣고 있을 정도였으니.
‘나도 이제 인맥 관리할 타이밍인데.’
양진철 PD, 그는 아직 CP를 달기에는 조금 이른 연차다.
하지만 그렇다고 꼭 수년 내로 진급이 불가능하지만은 않은 나이였다.
어차피 PD는 연차가 아니라 작품 흥행으로 말하는 법.
그래도 양진철 PD 정도면 중견 PD 소리를 듣기에는 충분한 연차.
대박 작품 하나만 있으면 한두 작품 정도 적당히 구색 맞추기용으로만 하고 CP로 승진할 수도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드라마가 대박이 될 조짐을 보이고 있었으니.
이번 드라마가 끝나면 양진철 PD가 CP 승진 명단에 포함되기까지는 2-3년도 남지 않는 거다.
즉, 양진철 PD도 이제는 여기저기 풀칠도 하고 사내 정치판에도 끼어들고 그래야 할 때였다.
그래서 그런 양진철 PD가 제 인맥 관리를 위해 한 게 무엇이냐 하면…….
띡-
우선, 라인 직속 상사인 최진섭 CP, 그 외의 다른 CP들, 드라마국 국장의 전화가 쏟아지는 핸드폰을 끄기.
그다음으로는 그가 알고 있는 최고의 인맥이자.
“흐하하! 작가님! 축하드립니다! 다음 작품도 떠오르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십쇼!”
그의 황금 동앗줄에게 축하 인사 건네기였다.
* * *
일주일이 더 흘렀다.
그 일주일 사이, 나는 15만 개가량의 비트코인을 처분하는 데에 성공했다.
[1BTC = 204.32$]
현재 비트코인의 가격은 200달러를 넘긴 상황.
하지만 내가 보유 비트코인을 처분한 평균 금액은 대략 180달러 정도였으니.
‘한화로 딱 280억 원이네.’
남은 5만 개를 지금 가격인 204불보다 조금 윗선에서 정리한다고 치면…….
그게 약 120억가량이니 도합 400억 원.
‘백억 대 부자 되는 거, 참 쉽네.’
회귀하고 반년의 시간으로 거둔 수익치고는 꽤 컸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이 시점쯤에는 100억 원 버는 것도 감지덕지였을 텐데.
예상하지 못했던 중국 대박으로 인해 훨씬 더 벌어들일 수 있었다.
그만큼 앞으로의 투자 소득도 몇 배는 더 늘어나게 될 터.
차이나 머니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그나저나-
[피터 - 그래서 대체 언제 만날 수 있는 거지?]
[피터 - 지금 한국에 있다고? 미국에는 언제 오는데?]
저번의 메일 이후로 이렇게 가끔 연락을 주고받게 된 피터 잭슨이었다.
아무래도 그가 요즘 <마지막 마법사>의 연재 내용에 제대로 꽂힌 게 틀림없었다.
며칠 전부터 전쟁 파트가 연재되기 시작했는데, <마지막 마법사>의 웅장한 전쟁 파트가 피터 잭슨의 몸을 잔뜩 달아오르게 만든 것 같았다.
전쟁 파트 연재 이후 며칠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여러 번이나 어서 만나자고 나를 독촉하고 있었다.
톡, 토독-
[나 - 글쎄. 그저 전자책 시장에서 끝나게 될는지는 두고 보자고.]
[나 - 그리고 네가 사고 싶다는 건 <마지막 마법사>의 영상화 판권뿐이지 않아? 소설이 성공하면 할수록 더 좋은 거잖아.]
[피터 - FUCK. 그만큼 네게 더 많은 돈을 쥐어 줘야겠지. 내가 널 millionaire로 만들어 주겠다고는 했지만, 그때 생각했던 돈은 정말 1M 달러가 전부였다고. 이대로면… well, 내 최종 예산을 넘길 수도 있다고만 말해 놓겠어.]
[피터 - 내가 언제까지나 네 작품의 열렬한 지지자일 거라 생각하지는 마. 원래 돌아선 팬이 제일 무서운 거 알지?]
피식-
‘넌 나를 백만장자로 만들어 주겠다고 했을 때부터 제일 무서운 팬이었어, 피터.’
순간 그런 실없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피터가 말한 최종 예산이면 한 5M 달러 정도 되려나?
뭐… 그 금액에 피터에게 판권을 넘길 생각은 당연히 없다.
5M 달러(50억가량)를 누구 코에 붙인다고 그 돈 받고 판권을 통째로 넘겨. 최소 러닝 개런티지.
오히려 5M 달러를 주고 내가 피터를 고용한다면 모를까.
[아마존 월간 베스트셀러 - Genre: Fantasy]
Top1. …….
Top2. …….
Top3. <마지막 마법사>
물론 피터 잭슨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오는 데에는, 최근 <마지막 마법사>가 제대로 순항 중이라는 이유도 있을 거다.
아마존 주간 베스트셀러에 들면서 드디어 제대로 노출이 되기 시작한 <마지막 마법사>는 최근에는 월간 베스트셀러 3위에 오르면서 최고 주가를 경신하고 있었다.
기존 1, 2위의 작품들이 2,000편이 넘어가는 초장편이라는 걸 생각하면 꽤나 놀라운 순위.
[받은 메일함 - 13]
그 덕분인지, <마지막 마법사>를 위해 만들어 놓은 컨택용 메일에도 출판사들의 연락이 여럿 쌓여 있었다.
신생 출판사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중견, 대형 출판사들도 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출판사들이 보내 온 계약 조건들을 보다 보니 느낀 건데…….
‘잘못 생각했어.’
지금까지 내가 우선순위를 잘못 세웠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달려라, 쿠키>를 조만간 출시하는 데브브라더스에 투자하거나, 아니면 마이클이 세울 인공지능 플랫폼에 투자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해야 할 투자를 잊고 있었던 거다.
<달려라, 쿠키>보다 훨씬 더 수익성 높고, 지속성도 뛰어난 IP를,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이나 만들 수 있는 회사가 있었던 것이다.
‘왜 내가 출판사를 인수할 생각을 안 했지?’
대충 싸게 나온 영미권 출판사 하나 인수해서, 내 회사에서 내 글을 출판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게 바로 돈 복사인데?
…나, 바보였던 건가?
뭐, 아무튼.
차이나 머니는 이제 즐길 만큼 즐겼고.
웨스턴 머니의 맛을 한번 볼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