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도 잘하는 놈이 잘한다-42화 (42/267)

42화 넝쿨째 굴러온 당신

<마지막 마법사>는 이미 1부가 완결 난 상황.

하지만 번역 일정 탓에 실제로 1부 완결 편이 연재되기까지는 몇 달이나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 전에 2부가 다 쓰여지게 생겼어.’

원래는 휴재 기간을 넉넉하게 가져 갈 생각이었다.

그러다 며칠 전 2부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라 집필을 시작했는데,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떠오르는 덕에 집필 속도가 무지막지하게 빨랐다.

요 며칠 사이에 쓴 게 벌써 2권 분량 정도.

이렇게 1부, 2부식으로 글을 나눠 쓰는 게 처음이어서 그런가.

마치 새로운 소설을 쓰는 것처럼 영감이 샘솟았다.

‘작중 시간도 몇 년 가까이 흐른 만큼, 주인공도 1부의 주인공과 다른 느낌이 됐으니까.’

<마지막 마법사> 2부의 작중 시점은 1부가 끝나고 3년 후 정도.

1부에서 마지막까지 다뤘던 전쟁의 여파가 어느 정도 정리될 즈음부터 이야기가 다시 시작된다.

그만큼 1부 초반부의 주인공과 2부 주인공의 성격이나 가치관 등도 매우 달랐다.

처절했던 전쟁을 겪은 만큼 그저 소시민에 불과했던 주인공이 어느 정도 영웅적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 것.

‘그래서 그런가. 정말 다른 소설을 쓰는 기분이야.’

작가들의 집필 방식이야 다 다양하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대부분을 주인공의 시점에서 진행하는 편이었다.

그렇기에 주인공의 성향이 바뀐 만큼 소설의 분위기도 바뀌는 것.

1부에서는 주인공이 겪는 일상과 동료들과의 동료애 등 스케일이 다소 작은 이야기들이 중심이었다면, 2부는 전쟁 이후로 성장한 주인공을 그린 만큼 서사의 구조가 꽤 달라졌다.

물론 그렇다고 1부와 아예 다른 이야기로 전개하는 건 아니었다.

‘1부에서 풀어 놨던 떡밥들도 회수해야 하니까.’

대놓고 ‘이거 나중에 나올 떡밥이에요’라는 식으로 풀었던 것도 있고.

최대한 독자들이 모르게 숨겼던 복선들도 있었다.

1부만 봤을 때는 독자들이 상상도 못 했을 반전으로 흘러갈 내용도 있었고.

‘독자들은 이런 부분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법이지.’

이야기가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는 것에서 오는 재미도 있지만, 전혀 상상치 못한 흐름으로 진행되는 충격에서 오는 재미도 있었다.

물론 언제나 중요한 건 단순히 반전에만 신경 써 이야기의 흐름을 흩뜨리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내가 집중해야 할 건 그런 재미들을 최대한 극대화해 독자들이 <마지막 마법사>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썼을까.

‘후. 엄청 집중해서 썼네.’

손가락이 살짝 뻐근할 정도였다.

분량을 체크해 보니 앉은 자리에서 2권 반 정도의 글을 써 내렸다.

오랜만에 제대로 집중해서 글을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귀 이후 처음 안 늙는 헌터가 너무 강함을 집필했을 때 느꼈던 기분.

그만큼 글도 잘 뽑혔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제작 발표회 일정까지 몇 시간 남지 않은 상황.

준비를 마친 후 발표회 장소로 넉넉하게 출발했다.

“안녕하십니까, 작가님.”

“네. 오랜만이네요.”

검객무쌍의 제작 발표회.

출연진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검객무쌍은 연기 천재가 되었다와는 달리 제작에 대한 전권을 마룽 PD에게 전부 넘긴 만큼, 촬영 현장에 간섭하거나 그런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출연 배우들과는 몇 번 안면이 있었다.

따로 자리를 마련해 인사를 나눈 적도 있었고, 촬영 과정에서 작품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는 배우들과 소통을 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작품 너무 재밌게 잘 봤습니다. 다음 내용이 너무 궁금하더라고요.”

“저도요, 작가님. 특히 이아린? 그 여주인공 캐릭터가 너무 좋았어요. 나중에 중국에서도 그런 캐릭터가 있는 로맨스 드라마를 쓰시면 저도 좀 써 주세요.”

“하하. 감사합니다.”

처음에는 어떤 작품을 말하는지 몰랐는데, 이아린을 언급하는 부분에서 연기 천재가 되었다를 말하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연기 천재가 되었다는 아직 중국에 수출도 안 됐는데…….’

물론 수출 계약은 한참 전에 완료된 상황이지만, 정식 방영이 시작되려면 일정이 조금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중국 인터넷에는 불법으로 번역된 해적판들이 벌써부터 돌아다니고 있다고 한다.

아마 그런 해적판들을 본 모양.

그래도 다들 같은 업계에 있는 배우들인데 드라마를 쓴 작가한테 해적판을 잘 봤다고 말하는 게 조금 신기했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다고 나오는데, 내가 뭐라고 할 수도 없고…….’

한국에서도 내가 알던 미래에 비하면 아직은 그런 편이지만, 중국은 특히나 저작권 의식 수준이 낮았다.

당장 배우들도 이런 태도인데, 일반 대중들은 오죽하겠나.

한국에 돌아가면 SBC에게 말이라도 해서 정식 방영을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텐센트 측에 말이라도 꺼내 볼까.’

사실 내 소설들도 비슷한 문제를 겪었었다.

처음 검객무쌍이 중국에서 흥행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불법 번역본이나 스캔본들이 인터넷에서 마구 유통됐었다.

중국 내 유통 담당자인 진강문학사에서 최대한 그런 불법 유통을 제재하기는 했었지만, 모든 공유를 막기는 힘들었던 상황.

그래도 텐센트와 같이 일을 하기 시작한 이후로는 그런 게 많이 줄어들었다.

아무래도 텐센트가 중국 인터넷 쪽에서 영향력이 상당하다 보니 진강문학사의 힘만으로는 전부 막기 힘들던 불법 공유에 대처하기가 더욱 수월했던 것이다.

아무튼.

와아아아-!

공항에서도 느꼈지만, 날 좋아해 주는 중국 팬들이 많다는 걸 이번에도 알 수 있었다.

제작 발표회의 사회자가 나를 소개하자 터지는 함성 소리가 검객무쌍의 주연 배우들보다도 더 컸다.

검객무쌍은 채널 CHIN의 야심작인 만큼 중국 내에서 상당한 인기가 있는 배우들을 쓴 상황.

새삼 내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제작 발표회에 이어 사인회 등 중국 내 일정이 모두 끝나고.

“후우. 떨리네요.”

“하하. 작가님 첫 예능 출연이시죠? 걱정 마세요. 시연이 얘는 몰라도 제가 완전 예능 베테랑이니까요.”

“저 말 믿지 마세요, 작가님. 주원 오빠가 예능 여기저기 많이 출연한 건 맞는데, 하는 얘기가 재미없어서 대부분 편집당하니까요.”

두 주연배우와 함께 TV 예능에 나갈 시간이 됐다.

* * *

[화제의 작가, 선우! SBC 예능 ‘이야기의 신’ 출연!]

[천재 작가의 집필 방법, 그에게서 배우는 창작의 비밀?!]

[작가 선우의 수입은? “다 계산하지는 않아서 모르겠다. 가끔씩 잔고를 확인할 때마다 깜짝 놀랄 정도? 모두 많은 분께서 과분한 사랑을 보내 주시는 덕분이다.”라고 밝혀.]

-수입이 얼만지 궁금했는데, 그건 말 안 해 주네… 아쉽…….

└당연한 거지. 잘은 몰라도 ㅈㄴ 많이 벌 텐데 그거 사실대로 말했다가는 열폭하는 애들 엄청 많을걸?

└ㅇㅈ 걍 조오오온나 많이 번다는 거하고 ‘지금까지 00억 벌었어요’는 다르니까.

└지금까지 최소 백억 가까이 벌었을 듯.

└백억이 어디 뉘집 개 이름이냐 라고 말하고 싶지만… 중국에서 종이책 판매만 천만 부 찍었다는 기사가 나온 걸 보면 진짜 백억 벌었을 듯.

-ㄹㅇ 존나 부럽네.

-와 ㅅㅂ 뭔 작가가 강주원 옆에 있어도 안 꿀리냐. 엄마랑 같이 보는데 쟤는 어디 나오는 배우냐고 묻더라;

└ㅋㅋㅋㅋ안 꿀리는 수준이 아니라 오히려 더 나은 것 같기도…….

└어머니가 선우 쟤 모르는 거 개부럽네; 나 쟤랑 동갑인데 울 엄마가 어제 선우진 보다가 나 보더니 한숨 푹 내쉬시더라… ㅅㅂ

└그 정도면 양반이지… 너네 엄친아라고 들어 봤지? 나도 우진이 쟤랑 동갑인데 쟤가 실제로 우리 엄마 친구 아들이라 힘들다 요새.

└엌ㅋㅋㅋㅋㅋ ㄹㅇ엄친아였누.

처음 출연해 본 예능.

촬영 시간이 꽤 길었었는데, 그 때문인지 1부와 2부로 나뉘어 방영된다더라.

어제 방영된 건 1부였는데, 대부분의 분량이 나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강주원과 한시연과 함께 떠든 ‘연기 천재가 되었다’에 대한 내용은 2부에서 다루는 것 같았다.

아무튼.

‘질문이 너무 많아서 힘들었지.’

그동안 인터뷰 제의만 여러 번 받았지, 제대로 된 인터뷰를 한 적이 없어서일까.

프로그램 측에서 준비한 나를 향한 질문들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내 인세 수입이나 어떻게 하면 나처럼 성공한 작가가 될 수 있는지 같은 질문들도 있었고, 여자 친구는 있느냐, 이상형은 누구냐, 좋아하는 연예인은? 같은 신변잡기식 질문들도 많았다.

뭐, 대답할 수 있는 건 대답했고 대답하기 좀 그런 건 다른 출연진들의 도움을 빌려 적당히 회피했다.

그나마 MC들이 내게 다 우호적인 태도였어서 다행이었다.

양진철 PD가 출연 전 말했던 것처럼 내가 곤란해하는 질문은 굳이 더 묻지 않더라.

방영분을 확인해 보니 악마의 편집 같은 것도 없었고.

‘으음. 재밌는 경험이기는 했지만 이제 이런 예능 출연은 좀 자제해야겠어.’

이번의 중국행과 더불어 예능에 출연해 보고 느낀 건데, 한때 내가 꿈꾸던 성공한 연예인의 삶이란 건 딱히 나와 잘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구석에서 글만 쓰는 웹 소설 작가로 오래 살아서 그런가.

한때는 내가 꿈꿨던 삶인데도, 이렇게 TV 나오고 뭐 사인회도 하고 그러는 것보다 그냥 집에서 글을 쓰고 그 글을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는 게 더 편하게 느껴졌다.

아마 앞으로 TV에 출연한다면 다큐멘터리나 인터뷰 정도나 나가는 게 편할 것 같았다.

아무튼.

이후로도 시간을 빠르게 흘렀다.

그리고 미국 캘리포니아, LA 시내에 위치한 커피숍.

그곳에서 나는 드디어 내 사이버 친구를 직접 만날 수 있었다.

“허어… 놀랍군. 이런 전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원래 뭐든지 반전에서 오는 묘미가 있는 법이지, 피터. 그런데 어떤 걸 예상했기에 그렇게 말하는 거야?”

내 물음에 피터가 제 수염을 쓰다듬으며 답했다.

“나와 비슷한 모습일 줄 알았지. 수염은 나처럼 수북하고, 배에 적당히 인덕도 갖췄으며, 맥주와 함께 중세시대 관련 글을 찾는 걸 즐기는 중년의 사내? 자네의 글에서는 그런 냄새가 물씬 풍겼다 이 말이야! 그런데 이런 프리티 보이일 줄이야.”

“프리티 보이라니. 차라리 핸섬 맨이라고 불러 줘. 올해로 성인이 됐다고.”

“올해로 18살인가, 그럼? 흠. 16살인 줄 알았는데, 역시 동양인들은 너무 어려 보인단 말이야.”

만 나이로는 저게 맞긴 하지만 18살이라고 하니까 뭔가 적응 안 되네.

그래도 나름 정신 연령으로는 거의 한국 나이 서른인데 말이지.

뭐, 아무튼 다행인 점은 피터가 딱히 내 어린 나이에 거부감을 갖는다거나 그러지는 않는다는 거였다.

아니, 오히려 더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흐흐. 아무튼 좋아. 아주 좋아.”

“……?”

“자네가 내 생각보다 젊다는 게 말이야. 처음에는 살짝 당황하기는 했는데 조금 생각해 보니 오히려 더욱 좋은 일인 것 같아서.”

“으음. 어떤 점에서?”

내가 그렇게 묻자, 피터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자네가 앞으로 글을 쓸 세월이 수십 년이나 남았다는 거! 흐흐! 게다가 20대의 열정은 아주 놀라운 법이지 않나? 자네의 소설이 고작 마지막 마법사 하나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뜻 아닌가! 그걸 내가 전부 찍어 버리는 거지!”

…이거 참.

피터의 방금 말에는 나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세종대왕께서는 영의정 황희의 사직 요청을 장장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어떻게든 반려하셨다던데.

아무래도 나는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