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퀘스트 달성!
“하하. 누가 그래? 내 작품을 피터 네가 모두 찍을 수 있을 거라고.”
“흐흐. 선수끼리 왜 그래? 괜히 튕기는 척은 하지 말자고. 자네의 작품을 나보다 잘 찍을 수 있는 감독은 없어. 내게 맡기라고.”
피식-
피터의 자신감 넘치는 태도.
날 보며 씨익 웃는 게 꼭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에이. 그래서 나 안 쓸 거야?’
언젠가 봤던 모 만화 플랫폼 모 작가의 망언이 떠오르는 얼굴.
하지만 그 발언과 피터가 보여 주는 자신감을 비교하는 건 말도 안 된다.
피터 잭슨이라는 영화감독은 충분히 스스로에게 저런 자신감을 갖고 있을 만한 감독이었으니까.
‘반지의 제왕… 대단한 영화였지.’
회귀 전에도 본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그냥 영화관에서 아무 생각 없이 봤을 뿐이다.
꽤 재밌게 봤었다는 점 이외에는 어떤 영화였는지도 크게 기억에 남지 않았었다.
그냥 레골라스가 잘생겼었고, 골룸이 임팩트 있었다 정도가 전부였다.
그래서 최근에 전 편을 처음부터 다시 봤다.
‘그냥 재밌기만 했던 영화가 아니었어.’
예전보다 글을 잘 쓰게 된 지금이어서 그런가.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이 적지 않았다.
위대한 소설이라 칭할 수 있는 반지의 제왕의 서사를 훌륭하게 실사화했다는 점을 논외로 치더라도, 피터 잭슨이 영화 반지의 제왕을 통해 보여 준 절정의 영상미와 스펙타클함은 단박에 나를 사로잡았다.
특히 오크들이 대거 등장해 보여 주던 압도적인 전투 장면과 액션 시퀀스.
화려하고 디테일 한 스케일과 묘사.
그걸 보는 순간 확신했다.
피터 잭슨.
그 이외에 <마지막 마법사>를 맡길 감독은 없다고.
‘텍스트를 영상화함에 있어서 피터보다 뛰어난 감독은 없을 거야.’
게다가 진성 톨키니스트였던 피터가 반지의 제왕을 성공적으로 영상화한 것처럼, <마지막 마법사>의 팬인 그라면 영상화를 믿고 맡길 수 있었다.
그의 <마지막 마법사>를 향한 애정은 그간의 연락으로 확인했다.
특히 카타르시스가 가득 차오르는 전쟁 장면이 나올 때마다, 피터는 이걸 영상화한다면 어떠한 방식이 좋겠다는 식의 말도 아끼지 않았었다.
“좋아. 부정하지 않겠어, 피터. 마지막 마법사를 맡긴다면 네가 가장 적절한 선택이겠지.”
“흐흐. 좋아. 자네 작품처럼 시원시원해서 좋군. 그러면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내 말에 피터가 유쾌함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 사실 협상에 있어서는 서로 좋지 못한 태도다.
비즈니스적으로만 놓고 보면 이렇게 서로에 대한 욕심을 대놓고 표현하는 것보다는 이리저리 간 보면서 조건도 조율하고 그러는 게 맞으니까.
하지만 피터가 지금까지 <마지막 마법사>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던 것처럼 나도 굳이 피터 잭슨이라는 영화감독에 대한 욕심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우진, 내가 저번에 말했지? 널 백만장자로 만들어 주겠다고. 물론 그저 백만장자에서 끝나지 않겠지만. 내가 제시할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이야. 한번 읽어 봐.”
피터 잭슨이 건넨 서류.
솔직히 어떤 조건을 제시했을지 궁금하기는 했다.
하지만 서류를 확인하는 대신, 나는 피터를 보며 말했다.
“조건은 중요하지 않아, 피터. 네 말대로 네가 내 작품을 찍어 준다는 게 중요한 거지.”
“…진심이야?”
피터가 의외라는 듯 물었다.
그와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날 백만장자로 만들어 주겠다고? 그런 건 됐어. 오늘은 돈 얘기는 하지 말자고. 그 대신 네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어.”
“의지?”
“응. 혹시 <마지막 마법사>가 테메레르 시리즈 같은 꼴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거든.”
내 말에 피터가 쓰게 웃었다.
테메레르 시리즈는 총 9권짜리의 가상 역사 판타지 소설이었다.
한국식으로 설명하자면 판타지가 섞인 대체 역사 소설.
2006년에 피터 잭슨이 영화 판권을 구입한 소설로, 그로부터 7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별다른 영화화 소식이 전해지지 않고 있었다.
“으음. 테메레르……. 그래. 솔직히 말하면 내 앞으로의 계획에 테메레르 시리즈의 영화화는 없어. 도중에 영화 시리즈로는 제작이 힘들 것 같다 느껴 TV 드라마화를 계획했었는데, 원작자도 그렇고 제작사와도 이런저런 트러블이 있었어. 그 탓에 조만간 판권 계약도 끝나게 생겼고.”
“어쩔 수 없었다 이거야? 그게 전부라면 좀 실망인데.”
“어쩔 수… 없었던 건 아니지. 네 예상이 맞아. 다 핑계야, 핑계. 호빗을 찍느라 테메레르를 제쳐 둔 거일 뿐이지. 하지만 이제는 달라. 난 더 이상 가운데땅 시리즈를 맡지 않을 거야. 이미 제작사와 톨킨 재단 측에도 말해 놨어. 호빗도 길예르모가 도중에 그만두지만 않았다면 내가 제작하지 않았을 거라고.”
피터가 변명하듯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뭐라 말을 이어 가다가 갑자기 입을 다물고는 생각에 빠지는 피터였다.
그러더니 무언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좋아. 핑계는 집어치우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우진, 몇 번이나 말했듯 나는 <마지막 마법사>를 꼭 내 손으로 영화화하고 싶어. 이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이야. 네 글을 읽으며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최소 수십 번은 했다고.”
“…….”
“반지의 제왕은 내 인생 최고의 소설이었지. 아직도 책방에서 첫 권을 읽었을 때의 감동을 잊지 못해. 아니, 아직도 그때만큼의 감동을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지. 그 어떤 소설을 읽어도 말이야. 하지만 그래도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은 있어. 그게 바로 네 <마지막 마법사>를 읽었을 때야.”
진성 톨키니스트로 유명한 피터 잭슨이다.
그런 그가 반지의 제왕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감동을 <마지막 마법사>에서 느꼈단다.
한 명의 창작자로서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는 발언이었다.
“여기서 약속할게. 영화 촬영이 가능한 환경만 갖춰진다면 바로 네 작품을 찍을 거라고. 하지만 우진, 네가 알아야 할 게 있어. 할리우드의 제작사라는 놈들이 얼마나 치밀한 놈들인데. 앞으로 최소 3년 정도는 제작 일정이 꽉 차 있을걸?”
그렇게 말하고는 판타지 영화 촬영의 어려움에 대해 설명하는 피터였다.
<마지막 마법사>를 제대로 영상화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CG와 인력 등이 필요한지.
그걸 위한 최소 제작비가 어느 정도쯤 될는지.
그리고 그 제작비를 따내기 위한 과정이 앞으로 얼마나 지난할지 등등.
피터의 말을 모두 들은 후 나는 이렇게 물었다.
“좋아, 피터. 호빗 시리즈 촬영이 전부 끝나는 건 내년쯤이던가? 그러니까, 아무튼 네 말은 돈만 충분하다면 내년에라도 바로 촬영에 들어갈 거라 이거지?”
“당연하지! 다만 그건 꽤 고된 일일 거야. 물론 나도 <마지막 마법사>를 한시라도 빨리 촬영하기 위해 애쓸 거야. 하지만 투자를 따낸다는 건 그리 쉬운 게 아니야. 내 이름이 더해지면 조금 더 수월해지기는 하겠지만…….”
“잠깐만 피터.”
“……?”
아무튼 피터의 입에서 들려온 오케이 소리.
그 말만을 기다렸던 나다.
곧바로 가방에서 서류 한 철을 꺼내 피터에게 건넸다.
“이게 뭐야?”
“한번 읽어 봐.”
“그래. 으음.”
내가 꺼낸 서류가 뭔지 몹시 궁금했는지 곧바로 꺼내 읽어 보는 피터 잭슨.
첫 줄을 읽자마자 그의 눈이 크게 뜨였다.
“자, 잠깐만.”
“어때? 그 정도면 충분하겠어?”
“지금 나와 농담하는 건 아니지?”
내가 꺼낸 서류의 첫 내용은 간단했다.
피터 잭슨을 <마지막 마법사>의 영화감독으로 고용하겠다는 제안서.
그리고 <마지막 마법사>의 영화화를 위해 책정한 초기 제작 예산, 1억 달러.
그 외에 피터가 <마지막 마법사> 영화 흥행에 따른 인센티브를 얼마나 받게 될지, 따로 흥행 여부와 상관없이 그가 받게 될 돈이 어느 정도인지 등도 있었지만, 그건 지금 당장 중요한 게 아니었다.
“1억 달러… 하하. 네게 1억 달러가 있다고?”
“응. 왜, 혹시 부족해? 1억 달러면 그래도 초기 자금으로는 충분할 줄 알았는데.”
“…하하. 장난해 지금? 1억 달러면 ‘초기 자금’으로 충분하겠냐고?”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나를 보는 피터 잭슨.
띠링-!
만약 내게 상태창이 있었다면 그런 효과음이 들리지 않았을까?
퀘스트 성공!
[SSS급 노ㅇ… 아니, 영화감독을 잡아라!]를 달성하셨습니다!
뭐, 이렇게 말이다.
* * *
“우진, 대체 네 정체가 뭐야? 한국엔 재벌이란 게 있다고 들었어. 혹시 그런 가문의 후계자인 거야?”
“내 정체라니. 조금 전에 말했잖아. 그냥 평범한 한국의 소설가라고. 다만 작품이 아시아권에서 조금 성공했을 뿐인.”
“조금? 조금 성공한 거로 1억 달러를 벌 수 있다고?”
“뭐, 전부 소설로 번 거는 아니야. 최근에 번 돈을 가지고 투자를 했어. 운이 좋았는지 그게 대박이 나 소설 이상의 수입을 거뒀고.”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 1억 달러가 있는 건 아니지만…….
촬영에 들어가게 될 내년에는 1억 달러가 아니라 그 몇 배나 되는 돈이 내 손에 있을 테니, 굳이 구구절절 설명하지는 않았다.
아무튼.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야. 잠깐! 그래서 그랬던 거군?”
“……?”
“처음 내 이메일! 내가 널 백만장자로 만들어 주겠다 했었지! 오, 이런. 그게 네 입장에서 얼마나 웃겼을지 이제야 알겠어. 흐하하!”
그렇게 말하며 박장대소하는 피터였다.
뭐, 웃기기보다는 무서운 이메일 제목이었지만.
‘다행이야. 피터가 제안을 바로 받아들여서.’
피터와의 협상은 생각보다 훨씬 더 수월하게 끝났다.
그래도 곧바로 결정을 내리지 않고 조금 더 고민할 줄 알았는데.
아까 전 피터가 <마지막 마법사>에 대해 했던 말이 거짓이 아니었던 건지, 서류를 몇 분 더 읽어 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그 자리에서 사인을 한 피터였다.
물론 그냥 사인만 한 건 아니었다.
사인하기 전에 이런 말을 덧붙이더라.
‘이렇게 된 이상 <마지막 마법사> 하나만 가져가지는 않겠어. 앞으로 네 작품 중 최소 하나 이상은 내게 맡겨야 해.’
나로서는 오히려 두 팔 들고 환영할 만한 피터의 집착(?)이었다.
누가 강요하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자발적으로 의지를 불태우다니.
그야말로 한국 대기업에서 아주 좋아할 만한 인재인 피터였다.
‘그래도 아직은 갈 길이 멀어.’
계약이 확정된 후, 피터는 내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얘기를 듣다 보니 느낀 건데, 영화 제작이란 건 단순히 돈만 가지고 되는 일은 아니더라.
물론 이제는 돈만 있는 게 아니라 영화감독까지 있지만, 아무튼.
‘만약 피터가 아닌 다른 영화감독이었다면 오히려 코웃음을 치며 제안을 거절했을지도 몰라.’
정말이다.
피터가 <마지막 마법사>에 대해 갖고 있는 애정이 아니었다면 얼마나 많은 돈을 주든 내 제안을 수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피터가 돈이 부족한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반지의 제왕으로 어마어마한 떼돈을 번 덕에 지금 갖고 있는 재산으로만 따지면 나보다 몇 배는 많은 피터였다.
‘코인을 통해 돈을 더 불리면 제작사를 아예 인수하는 것도 생각해 봐야겠어.’
물론 소니나 유니버설처럼 메이저 스튜디오는 아무리 나라도 무리였다.
그런 메이저 제작사들은 단순히 몇 억 달러 수준이 아니라 최소 몇십억 달러는 필요하니까.
적당한 규모의 제작사를 인수한 후, 영화 흥행을 통해 덩치를 키우는 게 더 효율적일 터였다.
‘작품 흥행은… 자신 있으니까.’
내 작품의 흥행에 대한 자신도 있었고, 아직은 나만이 알고 있을 수많은 흥행작에 대한 기억도 있었다.
개중에는 이미 판권이 넘어간 것들도 있겠지만, 아닌 것들도 많을 것이다.
그런 영화들을 만들어 제작한다면, 빠르고 손쉽게 제작사의 덩치를 키울 수 있으리라.
그리고 피터와 만난 후 다음 날.
윅슨 출판사와의 약속이 있어 나가려는데, 좋은 소식 하나가 들려왔다.
[‘반지의 제왕’의 피터 잭슨이 택한 소설? <마지막 마법사>는 대체 어떤 소설인가?]
[아마존 최고의 판타지 소설, <마지막 마법사>를 알아보다!]
[종이책 없이 웹 연재만으로 몇십만 달러를 벌어들인 소설이 있다?! 피터 잭슨의 선택!]
‘…피터에게 값비싼 선물이라도 보내야겠는데.’
피터가 인터뷰에서 <마지막 마법사>에 대한 얘기를 한 것.
덕분에 <마지막 마법사>와 관련된 기사 수십 개가 쏟아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