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빠른 슬럼프 극복
사실, 그렇지 않아도 슬슬 제작사를 차릴까 생각하고는 있었다.
‘2억 1,000만 달러.’
한화로 2,300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
이게 바로 무엇일까?
바로 지금의 내 총자산 가치였다.
‘조금 더 오래 걸릴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억만장자가 되게 생겼어.’
출판사를 인수해 <마지막 마법사>를 출판한 게 신의 한 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책만 팔아서 저만한 돈을 벌려 했으면 2천만 부가 아니라 1억 부를 팔아야 했을 거다.
<마지막 마법사>의 흥행 돌풍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 내에서의 판매도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고, 새롭게 진출하는 해외시장에서도 매번 베스트셀러에 등극하고 있었다.
게다가 <마지막 마법사>의 2부도 조만간 출판될 예정이었으니.
올해 연말이 되기 전에 어쩌면 1억 부 클럽에 가입할 수도 있지 않을까.
‘<마지막 마법사> 하나로는 힘들 수 있어도, 안늙강과 칼넘강도 영미권 출판을 준비 중이니까.’
<마지막 마법사>의 2부 때문에 미뤄지기는 했지만, 올해 중순이 넘어갈 때쯤이면 출판이 가능할 거다.
1억 부면 거의 10억 달러를 벌게 되는 거다.
10억 달러.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Billionaire라 불릴 수 있는 돈, 작년보다 한층 더 성장한 올해의 가상 화폐 시장에서도 모두 소화하기는 힘든 금액이기도 했다.
‘10억 달러를 전부 비트코인에 넣을 수는 없어.’
그러다가는 현재 채굴된 비트코인 수량의 대부분을 내가 가지게 되는 불상사가 발생할 거다.
그리고 비트코인은 내가 기억하는 것과 같은 미래를 맞이하지 못하게 되겠지.
‘많아 봐야… 2, 3억 달러 정도?’
그 정도가 내가 가상 화폐 시장에 투자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게다가 올해 있을 비트코인 폭등에 최대한 영향이 가지 않도록 야금야금 사 모아야 했으니, 그것보다 적게 투자하게 될 수도 있었고.
아무튼.
비트코인에 투자할 2, 3억 달러 정도를 제외하면 5억 달러 이상의 금액이 내 수중에 남아 있게 되는 거다.
‘그 돈으로 제작사를 차리고 천천히 한국에서부터 제작 역량을 키워 나갈 생각이었는데.’
원래의 계획은 그랬다.
할리우드에 비교하자면 당연히 밀리겠지만, 그래도 한국의 콘텐츠 제작 역량은 꽤 우수한 편이었다.
당연 아시아권에서는 제일이라 볼 수 있었고, 미국이 아니라면 당장 한국보다 낫다고 말할 수 있는 나라가 없었다.
게다가 나는 K-콘텐츠가 전 세계에서 소비되는 미래를 알고 있기도 했다.
특히 미래 OTT 시장에서 K-콘텐츠의 파급력은 전 세계적으로 대단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피터의 일이 겹치면서 그 계획을 수정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바로 할리우드에 도전해 보자.’
사실 수익성만 따진다면 아무리 K-콘텐츠가 대단하다 해도 할리우드와 비교할 수는 없었다.
헤비급 어른과 중학생 아이가 붙는 수준.
할리우드는 10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영화가 1년에 몇 편씩이나 나오는 곳이었다.
그만큼 성공했을 때 벌어들이는 돈이 차원이 달랐다.
‘그 정도의 흥행을 한 영화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 반은 넘는 흥행을 기록한 영화가 있었다.
회귀 첫날, 회귀자 노트에 내가 기억하는 잘나가는 영화를 싸그리 다 적어 놨었다.
아까 그걸 뒤적거렸는데, 마침 딱 좋은 게 하나 있더라.
심지어 아직 어느 제작사와도 계약을 하지 않은 영화였다.
아니, 정확히는 소설.
“엘레나, 바쁜 와중에 죄송하지만 미국의 작가 한 명과 계약했으면 하는데요. 아, 이미 계약된 출판사가 있는 작가는 아니에요. 찾아 보니 전자책과 오디오북으로만 자비 출판을 했더군요.”
* * *
“와아, 집 대박. 동생 잘 둔 보람이 있네.”
“꼭 이럴 때만 잘 뒀다고 하지.”
누나의 사탕발림을 한 귀로 흘리면서, 부모님의 얼굴을 살폈다.
두 분 다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지만 꽤나 감격하신 모습.
고작(?) 20억짜리 집으로 저런 얼굴을 볼 수 있다니.
한참이나 남는 장사였다.
‘사실은 훨씬 더 좋은 데로 이사 보내 드리고 싶었는데.’
그 왜, 청담이나 한남에 있는 유명한 곳들 있지 않나.
한 채에 막 70~80억 하고 그런 곳.
하지만 그런 집으로 이사가는 건 부모님께서 싫다 하시더라.
‘하긴. 여기서 20년은 넘게 사셨으니까.’
근처로 이사만 한두 번 다녔지.
결혼하신 후로 사시던 동네를 쭉 벗어나지 않으셨던 두 분이다.
그런 만큼 동네에서 친하게 지내시는 분들도 참 많으셨다.
그래서인지 서울로 이사는 싫고, 뭐 해 주려면 근처 어디에 크게 단독주택이나 하나 지어 주라고 하시더라.
아마 농담으로 하신 말씀이셨겠지만…….
‘진짜로 그렇게 해 버렸지.’
근처에 널찍한 단독주택이 있어서 그걸 사들이고, 철거 후 신축해 버렸다.
공사 기간도 돈을 추가로 지급하면서까지 최대한 단축했고.
그렇게 하니 이것저것해서 20억 정도 들더라.
그런데 확실히 내 눈높이가 바뀌긴 한 게, 20억이면 예전에는 꿈도 못 꿨을 큰 금액인데…….
부모님께 겨우 20억짜리 집을 해 드려도 되는 건가?
막 그런 생각이 들더라.
‘아무튼 좋아하시니 다행이네.’
처음에는 아버지가 자식 손 벌릴 생각 없다고 당장 물리라고도 하셨다.
하지만 내가 ‘이미 계약 끝났고 공사도 들어가서 여기서 물리면 제 돈만 나갑니다’ 하니까 그때부터는 태도가 바뀌시더라.
정말 싫으셔서 싫다고 하셨던 게 아닌지.
어느 순간부터는 아버지와 엄마 두 분 다 공사장까지 직접 찾아가셔서 그거는 어떻게 해 달라, 여기는 이렇게 해 달라, 그러시기도 하시더라.
인테리어에도 엄청 적극적으로 관여하셨고.
덕분에 주택의 정원도 철저히 두 분의 취향대로 꾸며지게 됐다.
전에는 몰랐던 사실인데 두 분 다 이런 정원 딸린 집을 가지는 게 로망이셨단다.
“이거 정원 관리가 보기에는 좋아 보여도 엄청 귀찮대요. 힘드실 텐데 관리해 주실 분 고용하시는 건 어때요?”
“얘는 무슨 소리니. 원래 그런 귀찮음이 정원의 진짜 매력인데.”
“음음.”
이렇게 말씀하시는 엄마와 무언으로 긍정하시는 아버지.
뭐,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이제 두 분 다 일도 안 하시니 원하시는 대로 사셔야지.
“그런데 너는 한국 들어온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미국이야? 나도 데려가.”
“데려가기는 무슨, 학교 안 가게?”
“종강하고 가면 되지! 어차피 그때까지 너 미국이잖아.”
“오려면 오든가. 대신, 여행이 편할 지는 장담 못 해. 거의 무전여행으로 다닐 거거든.”
“으으. 그니까 왜, 돈도 많으면서 그러냐고오.”
물론 말이 무전여행이지 진짜 돈 없이 다닐 생각은 없었다.
다만, 평범하게 적당한 숙소에 묵고,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고 그럴 생각이었다.
그냥 호화 여행이 아닐 뿐이다.
지금의 내 자산을 생각하면 그게 사실 무전여행이나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어쨌든.
“저는 들어가서 글 좀 쓸게요.”
본가에 따로 작업용 공간을 만들었다.
따로 사용하는 작업실이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기는 했지만, 영감이란 건 언제 떠오를지 모르는 법이었으니.
탁, 타다닥-
방 안을 가득 울리는 타건음.
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그 소리가 멈춰 버리고 말았다.
‘내용이 자꾸 막히네.’
과거로 오고 나서는 처음 겪는 일이었다.
여태까지는 한글 창만 켜면 재밌는 이야기들이 쭉쭉 나왔었는데.
지금 쓰는 건 스스로가 보기에도 확 와닿지가 않았다.
‘영화라는 목표를 처음부터 잡고 시작해서 그런가.’
내가 차릴 제작사를 성공시키기 위해서, 그저 이미 성공이 예정된 시나리오를 사들여 영화를 만들기만 할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제작사를 차리려던 이유도 내가 쓴 글을 실사화시키고 싶어서였지 않나.
그래서 시나리오 계약을 하나 진행하는 한편, 영화로 제작할 글을 쓰자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생각했던 것처럼 이야기가 쭉쭉 써지지가 않았다.
사실 미국 여행을 떠나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저번에 캘리포니아에서 3주 쉬다 보니 <마지막 마법사> 2부의 이야기가 팍! 하고 떠오른 것처럼.
이번 여행이 내게 어떤 영감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뭐,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 * *
미국 캘리포니아.
여기를 떠난 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캘리포니아에 오게 됐다.
“반갑습니다, Mr. 선.”
“반가워요, Mr. 위어. 편하게 선우 혹은 우진이라 불러 주세요.”
“저도 그러면 앤디로 충분합니다.”
내가 며칠 전 엘레나에게 계약을 부탁했던 소설의 작가, 앤디 위어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우연의 일치였는지 그 또한 캘리포니아에 거주하고 있더라.
“저를 꼭 만나 보고 싶으셨다고요.”
“예. 제 킨들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빼앗으신 분을 직접 뵙고 싶었거든요. 하하.”
“하하. 앤디의 소설은 저보다 일찍 나왔었잖아요. 같은 시기에 맞붙었다면 몰랐을 겁니다.”
“무슨 겸손한 말씀을. <마지막 마법사>가 최근 출판계를 뒤흔들고 있는 건 저도 잘 알고 있는데요.”
앤디가 말한 것처럼, 그의 소설은 내 <마지막 마법사>가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차지하기 이전까지 1위를 기록하던 소설이었다.
장르는 달랐지만 장르 상관없이 집계되는 차트가 있는데.
거기서 <마지막 마법사> 이전에 1위를 차지하던 소설인 거다.
한국에서도 엄청나게 유명하고, 그 첫 소절마저도 여러 커뮤니티에 퍼지게 될 정도로 유명한 소설.
심지어 나도 기억하고 있을 정도였으니.
‘‘아무래도 좆됐다. 그것이 내가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다. 나는 좆됐다.’였나…….’
바로 마션.
그게 앤디 위어가 쓴 소설이었다.
“제 소설을 영화화하고 싶으시다고요.”
“예. 덤으로 제가 가지고 있는 윅슨 출판사에서 마션의 종이책 유통을 담당하고 싶습니다.”
마션을 가장 먼저 제작해야겠다 생각한 이유가 바로 이거였다.
마션은 미래에 전 세계 박스오피스 6억 달러라는 흥행을 기록하는 성공이 확정된 복권임에도, 아직 어떤 출판사와도 계약되지 않은 소설이었던 것이다.
영화에 이어서 출판 유통까지 담당할 수 있다니.
그야말로 일석이조.
“으음. 좋아요.”
“예?”
“좋다고요. 사실 안 그래도 출판사를 알아보고 있었거든요. 친구들이 하드커버로 된 책을 받고 싶다 해서. 하하. 게다가 영화화라니. 제게는 분에 넘치는 제안이신데요, 뭐.”
생각보다 너무나도 쉽게 승낙하는 앤디.
이럴 거면 대체 왜 나를 직접 보고 얘기하겠다고까지 한 건지 궁금해지려는 찰나.
“그것보다!”
“……?”
“글 얘기나 하자고요. <마지막 마법사>요! 특히 마지막 권에서 주인공이 왜 그런 선택을 한 거죠?”
강렬한 걸 넘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보며 그리 묻는 앤디였다.
* * *
“장편 소설을 쓰는 건 그런 느낌이군. 나도 언젠가 장편 소설을 써 봐야겠어.”
둘 다 글을 쓰는 사람이어서 그런가.
앤디와는 말이 아주 잘 통했다.
덕분에 몇 시간의 대화만으로도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특히 서로의 글에 대해서 묻거나 집필 방법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게 얼마나 흥미로웠는지, 시간 가는 줄 몰랐을 정도였다.
“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군. 그러면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고. 편안한 밤 보내.”
“응. 너도.”
“아, 샤워실은 저기 안쪽에도 있어. 수건은 수납장 안에 있고.”
원래는 근처 숙소에 머물 생각이었는데.
앤디의 초대로 그의 집에 와 있었다.
남자 혼자 사는 집이지만 꽤 넓고 방도 여러 개라 해서 거절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내 첫 작가 친구인가?’
회귀하기 전에도 주위에 글을 쓰는 사람은 없었다.
웹 소설 작가라는 게 꽤 외로운 직업인 터라.
이렇게 글에 대해서 누군가와 진득하게 떠든 것도 거의 처음 있는 일이었다.
피터와도 가끔씩 글 얘기를 하기는 해도, 그건 작가와 독자의 관계에 더욱 가까웠고.
그래서인가-
‘내일 또 글에 대해서 얘기하자는 약속을 못 지키게 생겼는데.’
앤디가 편안한 밤을 보내라 했지만 아무래도 그러지 못할 것 같았다.
잠을 자기는커녕, 밤을 새게 될 것 같았으니.
타악-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열었다.
SF 소설을 쓰는 앤디, 그와 아까까지 떠든 여러 SF 명작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내게 어떤 자극을 준 것인지.
머릿속에서 소설의 영감이 마구 떠올랐다.
공대생 출신인 그와는 달리 과학 지식이 별로 없는 나는 앤디와 같은 SF 소설은 쓰기 힘들겠지만…….
‘어떻게 보면 이것도 장르는 SF지.’
그래도 내가 잘 쓸 수 있는 게 있었다.
심지어 영화 시나리오로 쓰기에도 적합해 보였다.
‘웹 소설로 치면 게임 판타지인 거지.’
하지만 완전히 웹 소설식의 겜판물은 아니었다.
오히려 웹 소설에서 따온 부분이 여럿 있었지만, 웹 소설에는 어울리지 않는 짧은 스토리.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강렬하게 느껴졌다.
시대적 배경은 암울한 근미래.
극도로 산업화된 미래 도시 속에서 주인공은 가상현실 게임에서의 거래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게이머였다.
‘그러다가 우연히 가상현실 속에서 초거대 기업의 비밀을 알게 되고…….’
앤디와의 대화에서 떠오른 작은 아이디어.
거기서 시작한 글이 점점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요 며칠 동안 억지로 써 내려갔던 글과는 달랐다.
인물들이 살아 숨 쉬고, 그런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이 저절로 어우러지는 기분.
탁, 타다닥-
이야기가 빠르게 질주하기 시작했다.
마치 눈앞에서 영상이 나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야기가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