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도 잘하는 놈이 잘한다-50화 (50/267)

50화 현실 타이쿤

“헤이. 우진, 일어났어? 식사는 어떻게…….”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서며, 침대 쪽을 살피던 앤디가 멈칫거렸다.

정오를 넘어선 오후 1시.

여행으로 인해 피곤해 늦잠을 자는 건가 싶어 최대한 깨우지 않으려 했지만, 이 시간이 되도록 일어나지 않아 방을 찾은 앤디였다.

그런데 방안에서 보이는 모습은 침대에 누워 있는 게 아니라 책상에 엎드린 채 자고 있는 선우진의 모습이었으니.

‘허. 이 친구…….’

열린 채 책상에 놓여져 있는 노트북과 종이 더미들.

같은 작가로서 지난밤 선우진이 무엇을 하다 잠든 건지 모를 수가 없었다.

‘어제 분명 요즘 글이 막혀 고민이라더니.’

그새 해결이 된 건가?

그런 생각을 한 앤디의 표정이 밝아졌다.

요즘 선우진이 무엇 때문에 난항을 겪는지는 어제 익히 들었다.

영화에 쓰기 위한 1, 2권짜리 소설을 쓰려고 하는데, 이야기가 잘 나오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지금 보아하니 그 실마리를 찾은 것 같았다.

‘그러면 저 노트북에…….’

<마지막 마법사>로 2,000만 부를 판매한 선우의 신작이 들어 있는 거였다.

그럼 그 값어치가 대체 얼마야.

어쩌면 저 노트북이야말로 그가 지금껏 봐 온 그 어떤 것보다 값진 물건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선우진을 깨워야 하나 아니면 그대로 놔둬야 하나 앤디가 고민하던 그때였다.

으음-

“…아.”

“이런. 일어났어? 이거 아무래도 내가 깨워 버린 것 같네.”

“으으. 아냐. 아, 깜빡 잠들었네. 몇 시야, 지금?”

“오후 1시. 해가 이미 중천이라고.”

“와우. 목이 뻐근한 이유가 있었네.”

그렇게 말하며 일어나 제 목 주변을 매만지며 스트레칭하는 선우진이었다.

그러더니 금방 컨디션을 되찾았는지 출출한데 밥이나 먹자고 하는 선우진.

문득 그런 선우진의 모습에 부러움이 든 앤디였다.

‘나도 20년 전에는 저렇게 쪽잠 몇 시간만 자도 괜찮았었는데 말이지.’

지금은 저렇게 하루 자고 나면 삼사 일은 고생할 거다.

아니, 애초에 그 전에 불편함을 견디지 못한 몸이 금방 깨게 만들겠지.

아무튼.

“좋아. 원래는 간단하게 먹을까 했는데, 점심으로 내가 거하게 한 끼 대접할게. 근처에 배달까지 되는 끝내주는 레스토랑이 하나 있거든.”

“오. 그렇게까지 말하니 엄청 기대되는데?”

“그 대신…….”

앤디가 노트북을 가리키며 눈을 빛냈다.

다른 건 중요치 않았다.

선우진이 쓴 신작을 빨리 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밤새 글을 쓴 거지? 내가 그 글을 가장 먼저 읽는 영광을 누릴 수 있을까?”

“뭐, 네가 말한 레스토랑이 그렇게 끝내준다면야.”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그리 대답하는 선우진이었다.

* * *

‘맛이 끝내주기는 하네.’

앤디의 말에 거짓은 없었다.

그가 말한 곳이 그의 집 근처인 것도 맞았고, 배달까지 되는 것도 맞았고, 맛이 끝내주는 것도 모두 사실이었다.

다만…….

[Joe’s Pizza]

그런 상호명이 적힌 박스 두 개.

앤디가 말한 끝내주는 레스토랑이 피자집이었을 뿐.

‘그래도 페페로니 피자 맛이 죽여줘.’

괜히 앤디가 자신한 게 아니었다.

한국에서는 찾기 힘든 본토의 맛.

물론 피자의 고향은 미국이 아니라 이탈리아라지만, 아무튼.

적절하게 분배된 토마토 소스와 그 위에 올라간 페페로니의 짭조름함이 조화되면서 아주 근사한 맛을 냈다.

“오, 오오……!”

하지만 정작 피자를 시킨 앤디는 그 맛을 즐기지 못하고 있다.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단골집이라고 해 놓고는 한 조각도 입에 대지 않은 것.

물론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기는 했다.

스륵스륵-

종이 넘기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내가 어제 밤새 쓴 원고를 읽고 있는 앤디였다.

그것도 벌써 수시간째.

얼마나 집중해서 읽는 건지 아마 앤디는 아직도 피자 배달이 왔다는 걸 모르고 있을 거다.

“아아, 그래! 이거지!”

피식-

탄성을 내뱉는 앤디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아까부터 원고를 붙잡은 채 혼자 저런 식으로 중얼거리던 앤디다.

저렇게 집중해서 읽는 걸 보면 글이 꽤 괜찮게 나왔다는 뜻이리라.

‘아직 미완성이기는 하지만.’

밤을 새워 가며 글을 쓰기는 했지만.

아직 해결하지 못한 고민거리가 있었다.

사실 책상에서 잠에 든 것도 그 때문이었다.

고민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아 버린 것이다.

소설의 결말 부분에서, 주인공은 선택을 강요받는다.

그는 물론이고 미래 도시 속 대부분의 사람이 현실보다 더욱 몰두한 채 살아가는 가상 세계.

그 가상 세계를 유지할지, 아니면 모든 걸 무로 되돌릴지.

마지막 파트에서는 가상 세계의 운명이 주인공의 손에 달리게 된다.

처음에는 주인공이 가상 세계를 셧다운 하는 방향으로 결말을 쓰려 했다.

‘하지만 그건 너무 식상해.’

그런데 막상 그렇게 쓰려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

이 글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영화가 시작되고 1시간 반쯤 지나면 관객 대부분이 ‘이렇게 끝나겠구나’ 하고 짐작할 수 있을 만한 결말.

물론 예상대로 내용이 흐르는 것에서 오는 재미도 있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그리고 너무 메시지를 주려고만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주인공이 가상 세계를 셧다운 하게 된다면, 그게 의미하는 바가 뭐겠는가.

이런 가상의 세계보다는 우리가 직접 살아가는 현실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

뭐 그런 메시지를 주는 게 되어 버린다.

그런 생각을 하자, 더욱 그런 결말을 쓰고 싶지 않아졌다.

예전에 어디서 그런 말을 본 적이 있다.

영화나 소설은 메시지의 도구가 아니라는 말.

개인적으로 꽤 공감됐던 말이었다.

평소에 내가 글을 쓸 때도 거기에 무언가 메시지를 담으려고나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저 내가 느끼기에 재밌는 글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쓸 뿐이었다.

‘결말은… 조금 더 생각해 보자.’

이런 고민이 든다면… 그건 그만큼 내가 떠올린 내용이 부족하다는 뜻이었다.

내가 아직 떠올리지 못했을 뿐.

독자와 관객들을 더 깊게 사로잡을 만한 방향이 있을 거다.

고민은 잠시 뒤로하고, 계획했던 여행을 이어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앤디와의 대화에서 갑자기 영감이 번뜩인 것처럼, 일상의 어느 순간에서 영감이 샘솟을지도 몰랐다

뭐 결말 부분이 해결되지 않았다고 해서 조급함이 든다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옛말에 그런 말도 있지 않는가.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시간에 쫓기듯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애초에 슬럼프를 벗어났다고 해서, 하루 만에 끝까지 글을 다 쓸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도 안 했었다.

아무튼.

“우진!”

앤디의 부름에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어느새 다 읽은 건지 원고의 마지막 장을 덮은 그가 이렇게 소리쳤다.

“여기서 끝나다니! 다음, 다음 내용은 어딨지?”

“어제 쓴 건 거기까지가 전부야. 뒤 내용은 조금 더 생각해 보려고.”

“왓? 이런, 그걸 미리 말해 줬어야지. 여기까지 읽게 만들고 나보고 기다리라고? 우진, 혹시 평소에 악마 같다는 이야기 들어 봤어?”

본의 아니게 앤디에게 절단마공을 시전한 꼴이 되어 버렸다.

“하하. 그래서, 어때? 글은 괜찮아?

“괜찮냐고? 이런 걸 하루 만에 써 버리고는 그저 괜찮냐고만 묻는 거야?”

* * *

[피터 - Fuck. 역시 네 악마성은 알아줘야 해. 촬영에 바쁜 나에게 이런 글을 보내 주다니.]

[피터 - 심지어 마무리 짓지도 않은 글을!]

어디선가 이미 들어 봤던 듯한 피터의 말에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둘을 소개시켜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꽤나 마음이 통할 것 같았다.

[피터 - 여튼, 네 메일로 저번에 말했던 회사 대표의 연락처를 보내 놓을게. 몇 번 손을 빌려 봐서 아는데, 꽤 괜찮은 곳이야. 첫 제작하려는 영화가 우주 관련이랬지? 그쪽 관련 특수효과로 전문인 곳이지.]

요 며칠, 피터를 통해서 할리우드의 여러 사람을 소개받았다.

제작사를 차리기 위해 필요한 인력들.

물론 맨땅에 헤딩하는 것처럼 제작사를 새로 차리려는 건 아니었다.

인수할 만한 적당한 규모의 영화 제작사를 알아보고 있기도 했다.

[나 - 양진철 PD님, 잘 지내시죠? 혹시…….]

한국에 있는 양진철 PD에게도 연락을 넣었다.

혹 한국의 인력 중 스카웃 할 사람이 없을까 싶어서였다.

드라마 업계와 영화 업계가 꽤 다르다지만, 그래도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사람들이 꽤 있을 테니까.

그리고 아예 두 분야 전부에서 활약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

한국의 콘텐츠 제작 산업은 참 기이하다.

가끔씩 전 세계에서도 통하는 걸 내기도 하는 걸 보면, 역량 면에서는 그리 흠잡을 게 없어 보이는데.

그 속사정을 살펴보면 참으로 허접하기 그지없다.

몇몇의 소수를 제외하면 제대로 된 월급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로 돌아가는 세계.

그리고 그렇게 부려먹는 걸 가성비로 포장하는 세계.

하지만 그런 환경 속에서도 할리우드에 못지않은 인력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실제 고용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철저한 검증을 추가적으로 해야겠지만 말이다.

‘연기 천재가 되었다도… 박봉을 받아 가며 고생하는 스태프들이 많았지.’

드라마 촬영이 거의 끝나갈 때쯤 알게 된 사실이었다.

개중에는 SBC 방송국에 정식으로 소속되어 합리적인 월급을 받아 가는 이들도 있었지만, 외주로 고용되어 최저 시급보다 낮은 돈을 받으며 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걸 알게 되고는 시청률에 따른 인센티브 명목으로 내 고료에서 일부를 떼 그들에게 지급하게 만들었는데.

내가 회귀하고 난 이후에 한 제대로 된 첫 선행이었다.

아무튼.

‘어쩌다 보니 내가 영화를 만들게 됐네.’

메가폰을 잡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영화를 위한 글을 쓰고 이렇게 제작에 필요한 인력까지 내 손으로 찾아 나서고 있었으니.

내 손으로 만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런 걸 보면 사람의 앞날이란 게 참 알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귀하고 첫날에만 해도 그냥 글 써서 돈 벌고, 그걸 비트코인으로 불리고, 그다음에는 마냥 인생을 즐길 생각으로만 가득했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냥 고생만 하는 것 같은 기분은 아니었다.

‘생각보다 재밌어.’

처음에는 그냥 한번 해 볼까 하는 마음이었고, 그다음에는 워너 브라더스에게 한 방 먹이기 위한 거였지만.

막상 이런 일들을 하다 보니 내게도 무척이나 흥미로운 일이 되어 버렸다.

글을 쓰는 것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뭐 인생 즐기는 게 따로 있나. 이렇게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즐기는 거지.’

생각해 보면 내가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게임들도 대부분 심시티, 타이쿤 류의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들이었다.

문명이나 풋볼 매니저도 한때 엄청 빠져서 몇백 시간을 플레이 했던 적도 있었다.

특히 풋볼 매니저는 매년 나오는 시리즈마다 플레이 타임 500시간씩은 찍었을 정도다.

그리고 삼국지 게임도 무척 좋아했었고.

인재를 수집하고 회사를 차리려는 지금의 나날들이 꼭 그런 류의 게임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어디 보자. 그러면… 피터가 나한테는 관우인 건가?’

아니다.

나는 촉나라보다는 위나라를 좋아했었으니까, 하후돈이 더 어울리려나?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였다.

우우웅-

전화가 울려서 보니, 엘레나였다.

“예, 엘레나.”

“작가님, 워너 브라더스에서 출판사를 통해 작가님을 만나 뵙고 싶다는 연락이 들어왔습니다.”

“…워너 브라더스요?”

“예. 영화 제작에 관련된 제안인데… 여러 번 거절을 했는데도 막무가내네요. 제 선에서 판단하기에는 무리인 것 같아서, 이렇게 연락드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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