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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도 잘하는 놈이 잘한다-53화 (53/267)

53화 만수르 따라잡기

“…하, 하하. 1억 달러라니. 돈을 많이 버셨다는 건 듣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1억 달러라는 금액은 놀랍겠지.

내가 출판사를 인수해 <마지막 마법사>를 출판했다는 건 아직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은 소식이었다.

딱히 숨기려고 숨긴 건 아니었고, 그냥 굳이 밝히지 않았을 뿐이다.

한국 사람들은 그냥 내가 미국의 출판사와 계약해서 떼돈을 벌었다더라,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내 입에서 1억 달러라는 금액이 나온 거니.

봉 감독이 보기에는 내가 갑자기 영화 제작에 내 전 재산을 쓰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릴 거다.

“음. 적지 않게 벌기는 했죠. 사실 <마지막 마법사>를 유통한 출판사가 제 소유거든요.”

“아! 그래서…….”

그제야 이해가 된 건지 당황한 기색이 줄어든 봉 감독.

물론 줄어들었다 정도지 아예 가신 것은 아니었다.

봉 감독의 전작도 제작비가 엄청 많이 든 거로 알고 있다.

역대 한국 영화 제작비 순위 Top3에 들 정도.

하지만 1억 달러면 전작에 썼을 제작비의 2.5배가 넘는 금액이었다.

“아! 사실 이건 초기 제작비에 불과하고요. 최종적으로는 1억 5,000만 달러 정도의 제작비를 측정해 놓고 있습니다.”

“예?”

봉 감독의 눈이 더욱 커졌다.

‘마션은 원래 제작비로 1억 달러 정도만 들긴 했었지.’

하지만 그건 이런 고비용 SF 영화 제작에 경험이 많은 리들리 스콧이 참여했을 때의 얘기.

봉 감독도 베테랑 영화감독이라지만, 이렇게 고비용 영화를 제작하는 데에는 아무래도 경험이 적을 수밖에 없다.

당장 전작도 한국 기준에서는 초호화 제작비였지만 미국 기준으로는 적당한 규모 정도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원래 마션에 쓰였던 것보다 많이 들 수밖에 없어.’

게다가 봉 감독뿐만 아니라, 내가 차릴 제작사도 마찬가지로 경험이 적었다.

물론 기존에 할리우드에 있는 제작사를 인수할 생각이긴 하지만, 인맥을 통해 스카우트한 여러 외부 인력도 모조리 합류시킬 생각이었다.

아마 제작 초기에는 그와 관련된 여러 잡음이 있을 터.

그걸 고려해서 제작비를 넉넉하게 책정한 것이었다.

“1억 5,000만 달러. 하하. 듣는 것만으로도 혹하네요.”

“네. 제작에 대한 전권을 감독님께 드릴 겁니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지만요.”

“조건이요?”

“예. 주연 배우 캐스팅은 제게 맡겨 주셨으면 합니다. 소설의 판권 계약을 할 때부터 염두에 둔 배우가 있어서요.”

“누군지 알 수 있을까요?”

“맷 데이먼입니다.”

일정 때문에 거절당한 리들리 스콧과는 달리 맷 데이먼과는 긍정적으로 얘기가 오가고 있었다.

참으로 다행이었던 것이, 조금만 제안을 넣는 게 늦었다면 리들리 스콧 때처럼 맷 데이먼과의 계약도 불발이 될 뻔했다.

몇 달 후에 촬영에 들어가는 영화 계약을 앞두고 있었던 것.

심지어 마션과 비슷한 스페이스 무비였다.

‘잊고 있었어. 놀란 감독이 내년에 내는 신작에 맷 데이먼이 출연한다는걸.’

한국에서도 1,000만 관객을 넘겼던 인터스텔라가 바로 그것이었다.

분명 영화관에서 봤던 영화인데.

맷 데이먼의 비중이 꽤 컸음에도, 매튜 매커너히의 임팩트가 너무 강력해서 맷 데이먼의 출연을 잊고 있었다.

‘그래도 그 점 덕분에 우리 캐스팅을 수락하려는 거기도 하니까.’

인터스텔라에서 맷 데이먼의 비중이 그리 작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주연 배우라고는 볼 수 없었다.

반면 마션에서의 역할은 거의 대부분을 맷 데이먼이 이끌어 가야 했다.

그 점이 캐스팅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 같았다.

“맷 데이먼… 좋은 배우죠. 1인 생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주연 배우의 역량인데, 그런 면에서는 조금의 부족함도 없고요.”

“아, 마션을 읽어 보셨나요?”

“네. 개인적으로 SF 소설을 꽤 좋아하거든요.”

아직 한국어로 된 번역본이 출판되지 않았는데.

아마존에 연재됐던 마션을 읽은 모양이었다.

생각해 보니 봉 감독은 원어민 수준까지는 아닐지라도, 영어를 꽤 잘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아무튼.

분위기를 보아하니, 이거…….

‘일(억$)고초려 성공한 거 맞지?’

* * *

“어, 여기에요! 여기!”

“후. 겨우 시간에 딱 맞췄네. 근처가 엄청 막히더라고요. 경기 때문인가?”

“원래 경기 시작할 때쯤에는 그래요. 미국은 잘 갔다 오셨어요?”

“네. 푹 쉬고 왔죠. 아무튼 아직 시작 안 한 거죠?”

“네. 지금은 선수들 몸 푸는 거고. 시작하려면 조금 더 있어야 해요.”

자리에서 일어서서 나를 반기는 강주원과 인사하며 자리에 앉았다.

저번 ‘연기천재가 되었다’ 촬영 이후 꽤 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강주원이었다.

오늘은 야구장 티켓이 생겼다며 같이 보자고 미국에 있을 때부터 졸라 대서 온 것이었다.

‘야구 직관을 온 건 또 처음이네.’

회귀 전에는 축구이기는 해도 스포츠 소설을 쓰기도 했었고.

야구 소설이나 야구 만화를 수십 작품은 봤던 나지만, 정작 현실의 야구는 잘 몰랐다.

기껏해야 유명한 투수나 타자 몇 명의 이름 정도나 아는 수준.

“어. 그러니까 지금 저기 저쪽에서 공 던지는 사람 있죠? 저게 투수라고…….”

“아니아니, 그 정도는 알아요. 그 뭐냐 WBC나 올림픽 경기 같은 건 가끔 가족들이랑 챙겨 봤었다고요.”

이건 뭐 ‘자, 이게 클릭이야.’도 아니고.

신나서 설명하려는 강주원의 말을 저지했다.

‘선수들만 잘 모르는 거지. 회귀 전에 야구 선수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써 보려고 했을 정도로 야구 지식에는 꽤 빠삭하니까.’

뭐 대부분 소설이나 만화로 배운 거기는 해도 아무튼.

그나저나, 프리미엄석이라던데.

그래서인지 스포츠 기자로 보이는 사람들도 주위에 몇 명 보였다.

대포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나와 강주원 쪽을 보면서 연신 힐끔대고 있었다.

“흐흐. 그래요? 난 또, 작가님이 류현진이랑 이승엽 정도 빼고는 다 모른대서, 아예 모르시는 줄 알았네.”

“실제 야구는 본 적이 별로 없긴 한데, 대신 야구 게임이나 만화는 좋아했죠. 룰도 웬만한 건 다 알고요. 그 왜 보크 같은 거요.”

“아니, 보크도 알아? 그러면 다 아는 거네. 어? 우리 찍는다. 작가님, 저기 봐 보세요. 자, 치즈.”

강주원이 가리킨 쪽을 보니, 아까 ‘스포츠 기자인가?’ 싶었던 사람이 카메라를 우리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천상 연예인인 강주원은 어느새 내 어깨를 감싼 채 사진 포즈를 취하고 있었고.

조금 어색하기는 했지만 나도 따라서 자세를 취했다.

“뭐예요, 저 사람들은? 기자?”

“아뇨. 기자들은 프레스실이 따로 있어서. 대부분 팬일걸요?”

“와, 그런데 무슨 저런 전문 카메라를 들고 다녀요?”

“에이. 요즘 저러는 팬들이 한둘인가? 왜, 저희 촬영 때도 팬분들 엄청 오셔서 찍고 그랬었잖아요. 카메라 가격으로 따지면 그런 팬분들 카메라가 훨씬 더 비쌀걸요?”

하긴.

저번 중국에 갔을 때 겪었던 팬들을 생각하면 딱히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그때도 무슨 전문가용 카메라 같은 것들이 수십 대 있었던 거 같은데.

“그런데 신기하네. 작가님은 아직 그런 팬들 없어요? 막 택시 타고 작가님 따라다니면서 사진 찍고.”

“으음. 중국에서는 좀 있었는데, 한국은 없는 거 같아요.”

“그래요? 저희 드라마 한창 방영될 때 작가님 인기를 생각하면 있을 법도 한데. 아무튼 다행이네요. 사생 한 명 붙으면 엄청 골 아파요.”

‘사실 한국도 진짜 없던 건 아니지.’

몇 명 있기는 했었다.

우리 집이랑 내 작업실까지 알아내서 쫓아다니던 사람들이.

그런데 지금은 없다.

뭐, 그 이유에는 내가 외부 활동을 ‘연기천재가 되었다’ 촬영 때와는 달리 잘 안 해서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저번에 고용한 경호원들이 그런 사람들을 알아서 커트해 주는 게 가장 클 거다.

게다가 비싼 법무법인을 고용해서 그런 사람들한테 따로 반협박식으로 말을 전달했는데.

그렇게 하니 언제부터인가 한국에서는 나를 쫓아다니는 사람들을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왜, 무적의 단어가 있지 않나.

킹신적 갓해 보상.

삐까번쩍한 OO 법무법인 ㅁㅁㅁ 변호사라 적힌 명함을 들고, 내 담당 변호사들이 그런 사람들 집을 찾아가는 거다.

그다음에는…….

이봐요!

당신네들!

한 달에 최소 수십 억을 버는 작가가 당신들 때문에 정신적으로 피해를 봐서 글을 못 쓰고 있어요!

이거 어떻게 하실 겁니까?! 예? 어떻게 할 거냐고요!

돈 많아요? 정신적 피해 보상으로 수십 억 내놓을 정도로?

한 번만 더 쫓아다니다 걸리면, 정신적 피해 보상으로 그만한 돈을 청구할 겁니다!

이렇게 말하는 거다.

그러면 당연히 법을 잘 알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다시는 그런 일을 벌이지 않게 된다.

뭐 사실 저건 그냥 저러겠거니 하고 대충 설명한 거고.

아마 실제로는 법잘알 변호사들이 법에 걸리지 않는 선에서 반협박식으로 일을 잘 해결하고 있을 거다.

‘역시 돈이 최고야.’

매번 느끼는 사실이다.

아무튼.

어느새 경기가 시작되고 꽤 재밌게 경기를 보고 있었는데.

-따악!

“야 이 @#%$!%%^$%!!!!!!”

배트에 공이 맞는 소리.

그리고 그 이후 들려온 욕설.

아니, 강주원 이 사람.

몰랐는데 욕 겁나 잘하네?

“아니, 연봉을 10억이나 받아 처먹으면서 그딴 공을 던져? 어? 네가 그러고도……!”

뭐, 고작 홈런 한 방에 저런다고 이상해 보이지는 않는다.

스포츠 팬이라면 당연히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개똥을 싸고 있으면 자연스레 욕이 나오는 법이다.

나도 한때는 내가 응원하는 팀 구단주부터 시작해 단장, 감독, 선수들 전부 깡그리 저주를 퍼부었던 적이 있었다.

어? 퍼거슨 시대에는 킹갓제네럴 황유였던 게 맹구라 불리는 게 말이 돼?

말이 되냐고.

그래도 내가 그 병신 같은 팀 빠는 걸 탈출해서 다행이지.

끝까지 맨유 팬을 고집했으면 회귀하기 전까지도 열불 터져서 죽었을 거다.

아니, 회귀하기 전에 고혈압으로 사망했었을 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핸드폰을 켜 EPL 순위 테이블을 봤다.

그러자 보이는 1위 자리에 적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이름.

이때까지는 그래도 황유였구나.

아마 올해를 마지막으로 퍼기 경이 은퇴하지?

그 생각을 하자, 갑자기 묘한 감정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회귀하고 나서 학교에 갔다가 내가 고3 막바지에 사귀었던 전 여친을 본 적이 있는데, 지금 느끼는 기분이 딱 걔를 봤을 때의 느낌이었다.

물론 과거로 온 후니까 걔하고 사귀었던 일은 다 없었던 일이 됐고.

그 애는 나 말고 다른 남자애랑 사귀게 됐었는데…….

그게 참 기분이 묘하더라.

아쉬운 것도 아니고, 쟤가 다시 좋아지는 것도 아닌데…….

뭔가 참 멜랑꼴리하면서도 신기하면서도 이상한 게… 썩 좋은 느낌은 아니더라.

아무튼, 잘나가는 맨유를 보니까.

정확히는 지금이 마지막 황금기인 줄도 모르고 좋아하고 있을 맨유를 보니까, 꼭 그런 기분이 든단 말이지.

‘그렇다고 다시 맹구는 안 하지.’

나는 헤어진 전 여친을 과거로 돌아왔다고 다시 사귀는 그런 하남자가 아니다.

이미 버린 인연은 다시 돌아보지 않아야 하는 법.

게다가 내게는 맹구 이후 정착한 새로운 팀이 있었다.

원래는 한동안 축구 응원하는 걸 끊었었는데, 그런 내 마음을 사로잡은 팀이 하나 있었다.

한때는 잘나가다가 하부 리그로 떨어지고, 그렇게 십수 년을 다시 재승격하지 못하다가 화끈한 공격 축구로 챔피언십 1위로 승격한 후 EPL에서도 잘 적응하는 모습에 팬심이 생겼었다.

아무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어, 뭐야? EPL 좋아해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야구장에 와서 축구 리그 테이블을 보는 사람이 어딨어요.”

“아… 죄송해요. 그냥 잠깐 살 게 생각나서 그거 좀 보느라요.”

“예? 뭔 살 거?”

“야구 구경하다 보니까 떠오른 게 하나 있어서요. 제 마음속 장바구니에 넣어 두려고요.”

“……?”

‘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거냐’라는 눈빛으로 나를 보는 강주원.

사실 이해하라고 한 말은 아니다.

그나저나, 내가 조만간 만들려는 OTT 플랫폼.

그것을 전 세계에 어떻게 홍보해야 할지가 방금 떠올랐다.

미국 빼고는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리그.

그 리그에서 가장 강한 팀 유니폼에 그 OTT 플랫폼 이름이 딱 박혀 있는 거지.

거기서 끝나지 않고 그 팀이 막 챔피언스 리그도 우승하고 말이지.

심지어 그 팀 구단주가 그 플랫폼의 주인인 거다.

‘나쁘지 않은 거 같은데?’

홍보 효과도 홍보 효과지만.

5년 후 풀 포텐 터지는 유망주들을 영입해 키우는 것만으로도, 금전적 효과가 꽤 쏠쏠할 거다.

‘…….’

풋볼 매니저 플레이 타임 도합 2,000 시간.

심지어 실제도 아닌, 그저 게임일 뿐인 풋볼 매니저 속 구단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을 앞두고.

목욕재계 후 정장에 넥타이까지 차고 모니터 앞에 앉았던 바로 나, 선우의 피가 끓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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