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광풍의 시작
렌샤오와의 얘기가 끝나고 며칠이 더 지났을 때.
그동안 기다려 왔던 뉴스를 드디어 볼 수 있었다.
[마약 밀거래 사이트 ‘실크로드’ 폐쇄, 운영자 체포]
[미국 연방수사국(FBI), 샌프란시스코에서 실크로드 운영자 로스 울브리히트를 잡아들여.]
마약이 꽤 강력하게 관리되는 한국과는 달리, 미국에서 마약이란 건 꽤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물건이었다.
마리화나 같은 건 대학생만 돼도 사실 안 해 본 사람들이 더 적을 정도였고.
LSD나 환각 버섯 따위의 환각성 마약은 물론 코카인, 엑스터시 등의 하드 드러그들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았다.
뭐 아무튼, 실크로드는 그런 마약들을 온라인상에서 밀거래하는 디프 웹 사이트였다.
‘드디어 체포됐구나.’
그런 실크로드의 운영자가 어제 자로 체포됐다는 기사.
내가 이 소식을 그간 기다려 왔던 이유가 있었다.
[미 연방수사국(FBI), 실크로드 운영자 로스 울브리히트에게서 비트코인 12만 7천 개 확보.]
[딥웹 마약 거래처, 실크로드. 수수료로 유입된 비트코인이 무려 61만4천 개?]
그건 바로 실크로드에서 사용되는 화폐가 비트코인이었기 때문.
‘많이도 갖고 있었네.’
내가 기억하는 비트코인의 최고점으로 계산하면 대체 저게 얼마야.
무려 몇십조 원에 달한다.
물론 지금의 가치로 계산하면 고작 몇백억 원 정도에 불과하기는 하지만.
아무튼.
[1BTC=139.38$]
[1BTC=134.13$]
.
.
.
[1BTC=130.24$]
실크로드가 폐쇄된 탓일까.
실시간으로 비트코인의 가격이 떨어지는 게 보였다.
‘마약 거래를 위해 비트코인을 샀던 사람들이 팔고 있는 거지.’
하지만 그 하락세가 엄청나게 크지는 않다.
꽤 많은 수량의 비트코인이 시장에 나오고 있는데, 그걸 나오는 족족 쓸어담고 있는 큰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누구냐고?
누구긴 누구야, 나지.
[보유 BTC: 182,345.34 BTC]
[보유 BTC: 112,128.82 BTC]
[보유 BTC: 62,456.56 BTC]
.
.
[보유 BTC: 171,120.24 BTC]
[보유 BTC: 72,895.78 BTC]
수많은 지갑에 나눠 보관하고 있는 비트코인.
그걸 다 합치면 내가 현재 보유하고 있는 비트코인의 총수량은 대략 100만 BTC가 된다.
대충 매수 평균 가격이 120$ 정도 되니까, 1억 2,000만$ 정도를 비트코인을 매집하는 데에 쓴 거다.
내가 현재 가용할 수 있는 총자산이 그의 몇 배나 되는 걸 생각하면 사실 그리 많은 돈을 쓴 건 아니었다.
뭐, 어쩔 수 없었던 게 이전까지 시장에 나오는 비트코인의 수량이 그리 많지 않더라.
내가 마구잡이로 비트코인을 사들이면 어떤 나비효과가 생길지 몰라서, 자제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번 기회에 조금 더 긁어모으다 보면 30만에서 50만 정도의 BTC를 추가 매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실크로드가 드디어 폐쇄됐네. fuck, 콕을 구할 때 저기만 한 곳도 없었는데.
-FBI의 기술력으로는 비트코인 거래를 추적하지 못할 줄 알았는데… 어쩌다 잡힌 거래?
└운영자가 실수를 한 듯. 제대로 암호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실크로드에 로그인했다가 잡혀 들어갔다던데?
-흠. 멍청한 짓을 했네… 뭐 비트코인 보유자로서는 다행인 일이지만.
└Why? 왜 다행인 거지? 난 실크로드 때문에 비트코인을 사던 사람들이 사라져서 가격이 떨어질까 봐 걱정 중인데… 실제로 지금도 비트코인의 가격이 계속 하락하고 있어!
└맞아. 사실 다들 아시다시피 실크로드가 비트코인의 가장 큰 수요처였잖아? 나도 저기를 통해 마리화나를 몇 번 사 보기도 했다고.
└가상 화폐의 미래를 생각하면 실크로드 운영자가 잡혀 들어간 게 다행인 일이지. 언제까지 비트코인이 저런 암거래에만 쓰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I totally agree. 그리고 가격이 하락할 거라 생각한다는데… 며칠만 기다려 보면 상황이 달라질걸? 난 오히려 이번 실크로드 폐쇄로 인해 비트코인의 가격이 대상승할 거라 예측하고 있다고.
└대상승? 왜?
└비트코인의 존재조차 몰랐던 사람들이 이번 실크로드 뉴스를 통해 비트코인이 실제로 화폐로 쓰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될 테니까. 비트코인이 화폐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는 계기가 될 거라 본다.
‘오… 놀랍네.’
저번에 한번 본 적 있던 가상 화폐 관련 웹사이트를 살펴보는데, 비트코인의 향후 미래를 제대로 예측하는 사람들이 몇 있었다.
나야 당연히 그런 미래를 경험하고 왔으니 알고 있는 거지만.
지금 시점에서 저런 통찰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하긴, 생각해 보면 가상 화폐 광풍이 불었을 때 그걸로 억만장자가 된 사람들이 꽤 많았었다.
아마 저 댓글을 쓴 사람들도 그런 억만장자 중 한 명이었겠지.
아무튼.
저기 저 댓글의 내용처럼, 이번 실크로드 체포 사태는 비트코인에 있어서 꽤 중요한 순간이 된다.
저번 키프로스 재정 위기가 몇몇 자산가들의 자산을 비트코인으로 몰리게 했다면, 이번에는 몇몇 자산가 수준을 넘어서 꽤 많은 사람이 비트코인의 존재와 사용처를 알게 되는 계기가 된다.
[미국에서 수백억 원 규모로 마약이 밀거래 되던 디프 웹사이트, 운영자 검거되다.]
[실크로드? 동서양을 잇던 교역로? NO, 마약 암거래 사이트!]
[비트코인 덕에 드러난 각국 마약 가격]
-ㄷㄷㄷ 수백억? 마약 시장이 그렇게 큼? 한국은 마약 청정국이라 다행인 듯.
-와;; 그냥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며칠 뒤에 우편으로 마약이 배달 온다고? 미쳤네, 그냥…….
-사이트는 아직 폐쇄 안 된 듯? 토르 키고 접속해서 방금 구경하고 옴 ㅋㅋㅋ
└오, 주소 좀.
└그냥 토르 킨 다음 silkroad 치면 나옴… 마약들 사진도 막 나와 있는데. 신기하네, 저렇게 생긴 거였구나.
└조심해라 ㅋㅋ 거기 접속했다고 소환장 날아올라.
└ㅋㅋㅋ 토르 써서 안 잡힘. 뭔지 모르면 검색 ㄱ
-ㅋㅋㅋ 기사 보면 한국에 배달한 내역도 있다던데… 한국이 마약 청정국이라는 거 옛말인 듯.
└그래도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한국만 한 곳도 없음. 요즘 미국 대학 가 보면 매일 몰리 빨면서 파티함;
└ㄹㅇㅋㅋ 몰리나 코카인, 애시드 같은 건 요즘 빡센 약도 아니지. 걍 개나소나 다 함.
└그걸 어케 앎? 혹시……?
└(삭제된 댓글입니다.)
-그런데 비트코인이 뭐임? 싸이월드 도토리 같은 건가?
└ㅇㅇ 개념은 비슷함.
└암호 화폐라고 디지털 자산이라는데… 저런 걸 돈 주고 산다는 게 신기할 따름ㅋ
-예전에 비트코인 저거로 피자 사 먹었다는 사람 기사 본 적 있는데 ㅋㅋㅋ
└기사 찾아보니, 1만 개 주고 피자 한 판 사 먹었네… 근데 지금은 비트코인 하나에 10만 원 넘고.
└오? 가격이 오르기도 함? 조금 사 볼까?
-와, ㅆㅂ! 개꿀ㅋㅋㅋㅋ 나 예전에 야동 보려고 저거 사서 결제한 적 있는데, 그새 30배 올랐네. 이거 덕분에 까먹고 있던 거 찾음 ㄳㄳ
└30배? 얼마 사 놨는데?
└2만 원어치 ㅋㅋㅋㅋ 오늘은 닭다리 뜯어야겠다.
전 세계는 물론 한국에도 실크로드와 관련된 뉴스들이 대서특필되고 있다.
그 반응을 살펴봤는데, 꽤 안타까운 댓글도 하나 보였다.
‘아… 30배? 그거 안 팔고 몇 년 더 버티면 30배가 아니라 3,000배가 넘을 텐데…….’
문득, 언젠가 100일 휴가 때 만났던 친구 한 명이 떠오른다.
미국에서 유학을 하던 친구였는데, 그때문인지 비트코인을 그 시점부터 몇 번 산 적이 있던 친구였다.
아무튼 그 친구가 최근 비트코인이 올라 그거 팔아서 타투를 했다며 보여 줬던 적이 있었다.
원래 50만 원어치였던 게 3배 올라서 150만 원에 팔아치웠다며 자랑을 하더라.
그때는 ‘와, 돈 벌었으니까 네가 술 사라!’, 뭐 이런 얘기를 하면서 그냥 넘어갔었는데.
휴가에서 복귀하고 몇 달 지나니까 그 친구 생각이 안 날 수가 없더라.
왜냐, 내가 군대를 조금 늦게 간 편이라 100일 휴가를 나왔을 때가 2017년도 중순쯤이었기 때문이다.
친구가 자기 타투를 자랑하고 딱 6개월이 지났을 때쯤, 비트코인의 가격이 2만 달러 가까이를 찍게 되더라.
그래서 그때 이후로 그 친구를 만날 때면 항상 ‘야, 몇천만 원짜리 타투 잘 있냐?’ 이렇게 놀려 먹고는 했었는데…….
나중에 만나게 되면 팔아서 타투 하지 말고 꼭 갖고 있으라고 말해 줘야겠다.
‘오늘 닭다리 뜯는다고 좋아하는 저 사람 보니까, 그놈 생각이 나네.’
언젠가 오늘을 떠올리며 땅을 치고 후회할 저 사람을 위해 잠깐 기도했다.
아무튼.
[1BTC=119.67$]
[1BTC=119.13$]
[1BTC=120.17$]
[1BTC=122.45$]
며칠이 더 흐르자, 점차 내려가기 시작하던 비트코인의 가격이 반전을 시작했다.
최저점 119$를 찍고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 것.
[1BTC=139.08$]
실크로드 폐쇄가 있기 전 가격인 139$를 회복하는 데에 3일도 걸리지 않았다.
[1BTC=142.81$]
[1BTC=147.59$]
[1BTC=153.82$]
그리고 그 이후로는 쭉 상승세를 달리기 시작했다.
‘사실 이때야말로 비트코인의 첫 번째 광풍이 부는 시기지.’
대부분은 2017년도를 비트코인의 첫 광풍으로 생각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첫 번째 비트코인 붐은 바로 이때였다.
아무튼.
이 말을 다시 한번 외칠 때가 돌아왔다.
‘깝치지 마. 나는 무적이다! 비트코인은 신이고!’
마치 그런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위잉- 위잉-
복사기 돌아가는 소리.
…돈이 복사되고 있었다.
* * *
[비트코인, 400달러 돌파]
[마약 암거래 사이트가 만들어 낸 나비효과.]
[문제를 풀면 돈을 준다고? 비트코인이란? 비트코인 투자 열풍을 알아보다!]
‘순조롭네.’
하루가 다르게 비트코인의 가격이 오르고 있다.
심지어 이전까지의 최고점이었던 268$를 넘어서며 매일 최고점을 경신하고 있었다.
그 덕에 내 자산도 하루마다 늘어나고 있었다.
잠에 들었다 깨면 꽁돈 100억 원이 생겨 있는 거다.
‘이게 1,000달러까지 간다, 이거지.’
이번 불장에서의 최고점은 1,000달러 정도.
그렇게 되면 몇 달 만에 거의 9억 달러 가까이를 벌어들이게 되는 거다.
물론 모든 수량을 최고점에서 정리할 수는 없으니, 그거보다 적기는 하겠지만.
“작가님, 여기요.”
“아, 감사합니다.”
나는 엘레나가 건넨 커피를 받아들이며 감사를 표했다.
오랜만에 돌아온 미국.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윅슨 출판사였다.
“토크쇼는 지미 키멜 라이브에 나가시는 거로 결정하신 거예요?”
“네. 저는 미국인이 아니라 몰랐는데 컨택이 온 토크쇼 중 가장 시청률이 높은 게 지미 키멜 라이브더라고요.”
“그쵸. 저도 종종 챙겨 봐요.”
토크쇼는 지미 키멜 라이브에 나가기로 결정했다.
일단 제의가 온 것 중 가장 시청률이 높은 토크쇼였을뿐더러, 맷 데이먼의 추천이 있었던 것.
알고 보니 지미 키멜과 맷 데이먼이 엄청난 절친 사이라고 한다.
뭐, 미디어에서는 서로 앙숙인 관계로 묘사된다던데, 사실 그건 다 각본을 통한 연출이고 실제로는 엄청 친한 사이란다.
그래서인지, 지미 키멜 라이브에서 연락이 온 다음 날, 맷 데이먼에게서도 전화가 왔었다.
지미 키멜 라이브를 추천하는 한편, 봉 감독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눴다.
처음에는 자신을 캐스팅해 놓고 할리우드에서 증명한 감독이 아니라 동양의 감독에게 메가폰을 쥐어 주려는 것에 불만을 표하는 맷 데이먼이었는데, 몇 주 전 개봉한 봉 감독의 신작을 보고 납득했다는 연락이었다.
그리고 봉 감독의 신작에 출연한 크리스 에반스와 틴다 스윈튼 등을 통해서 봉 감독의 역량에 대해서도 전해 들었다고 하고.
뭐, 나로서는 다행인 일이었다.
‘마션도 이제 제작 준비를 해야지.’
사실 이번 미국행의 가장 주된 목적이 이거였다.
그간 알아봤던 제작사 인수를 확정 짓기 위해서.
인수를 끝내고 나면 바로 제작 준비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봉 감독이 신작 개봉으로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관련해서 의견을 보내 주고 있었다.
[…에서 알려 드립니다. 지난날 미 선거 위원회가 연방 선거운동의 후원금으로 비트코인을 허용하겠다는 의견을 내면서, 비트코인에 대한 청문회가 차주 열릴 예정입니다. 청문회에 참석하는 인원으로는 벤 버냉키 연방준비은행 의장, 법무부의 미틸리 라만 차관보 등 연방 행정당국의…….]
그러던 그때였다.
누군가가 틀어 놓은 듯한 출판사 사무실 TV에서 들려온 뉴스 소리.
내가 그것에 집중하고 있자 엘레나가 말했다.
“비트코인? 작가님도 비트코인에 관심이 많으세요?”
“음. 그냥 조금? 엘레나는 어떤데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사실 저게 왜 저렇게 비싼지 이해가 도무지 안 가서요. 실체가 없는 자산을 몇백 달러를 주고 사는 게 말이 되나요?”
으음.
그렇게 물으니까 나도 할 말이 없었다.
나도 비트코인이 엄청 오른다는 걸 아니까 사는 거지, 왜 오르는 건지는 모른다.
뭐, 내가 코인을 만들 것도 아니니, 사실 알 필요가 없기도 했고.
아무튼.
위잉- 위잉-
출판사 사무실답게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복사기 소리가 사무실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걸 듣고 있자니, 쓸모없는 생각 하나가 문득 들었다.
‘하루 동안 내 책이 인쇄되는 게 많을까, 내 돈이 복사되는 게 많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