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마지막 마법사> 촬영지
며칠간 마음고생을 좀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덕에 어느 정도 마음을 추스릴 수 있었다.
군대 가기 싫은 건 가기 싫은 거고, 일단은 할 일들에 집중하기로 했다.
입대 전 휴가를 즐기려면, 그만큼 지금은 빡세게 달려야 했으니까.
[SW 프로덕션, 케이블 채널 개국. 스웜만의 오리지널 콘텐츠 이제 TV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새롭게 개국한 스웜의 TV 채널. 채널명은 스워밍.]
최근 새롭게 케이블 채널을 개국했다.
스웜의 오리지널 콘텐츠나 써밋 엔터의 영화들을 방영할 예정.
물론 오리지널 콘텐츠의 경우는 스웜을 통해서만 최신화를 볼 수 있게 할 생각이었다.
최신화가 나오고 2주 정도는 돼야 TV를 통해 풀리는 것.
‘OTT보다는 TV에 훨씬 익숙한 40, 50대 시청층을 공략할 수도 있고, 아직 스웜을 구독하지 않은 시청층의 유입도 이끌 수 있을 테니까.’
그 외에도 아직 OTT 독점 유통을 주저하는 작가나 감독들을 설득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예전에도 드라마 채널을 인수할까 고민했던 적이 있는데.
자세히 알아 보니 굳이 인수까지 할 필요가 없더라.
어차피 내가 판권을 갖고 있는 작품들만 방영할 생각이었기에, 인력과 시설만 있다면 충분했던 것.
인력은 기존 SW 프로덕션의 직원들을 중심으로 새롭게 영입해 채워 넣었다.
시설은 뭐 돈만 있으면 됐고.
‘TVM을 넘어서는 채널로 키워야지.’
우선은 드라마와 영화만을 방영하는 드라마, 영화 전문 채널로 시작할 생각이지만.
후에는 예능 등의 여러 프로그램도 함께 방영하는 종합 버라이어티 채널로 키울 생각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 회사의 가장 큰 경쟁자는 TVM이 될 터.
아니, 따져 보면 TVM 하나가 아니라 그 모기업인 CM 그룹이 국내에서 내 최대 경쟁자라 볼 수 있었다.
영화 제작이나 배급, 콘텐츠 제작 등에서 SW 프로덕션의 사업 분야와 여러 가지로 겹치는 CM 그룹.
음악 콘텐츠 쪽이나 공연 사업 등에서는 경쟁할 생각이 없었지만, 그래도 TVM이나 영화 제작사처럼 겹치는 분야에서는 확실하게 CM을 이길 생각이었다.
‘먼 미래라면 몇 년 내로 따라잡기 힘들 만큼 TVM이 성장하겠지만…….’
아직은 꽤 상황이 널널했다.
TVM 드라마 중 성공한 작품이라고는 응답하라 시리즈와 파란거탑 정도가 전부.
심지어 파란거탑도 남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인 군대를 다룬 시트콤이라 인터넷에서나 화제가 되는 정도였지, 엄청나게 성공했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즉, 드라마로만 따지면 이미 스웜이 TVM보다 훨씬 앞서 있다는 뜻이었다.
이미 화제성으로는 우주남이 응답하라 시리즈보다 몇 배는 위였고, 프런트와 무전기는 비슷한 정도였으니 말이다.
물론 TVM의 예능 같은 경우는 꽃보다 시리즈나 지니어스 등 화제성 높은 작품들이 지금도 여럿 나오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스웜도 오리지널 예능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니까.’
그걸 위해 SW 프로덕션에 예능 전문 PD를 여럿 영입하기도 했다.
비록 OTT라는 플랫폼이 아직 대중은 물론 예능인들에게 익숙하지 않았던 터라, 드라마 제작처럼 빠르게 시작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이제는 스웜이 꽤 성공한 덕에 섭외도 훨씬 쉬워져 조만간 자체 제작 예능 프로들도 나올 예정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나 PD를 바로 데려오고 싶은데.’
그럴 수는 없었다.
올해 지상파를 떠나 CM E&M으로 이적한 나 PD.
사람을 통해 알아보니 계약 기간이 15년까지더라.
즉, 최소 2년은 지나야 영입 얘기를 해 볼 수 있다는 것.
‘2년이면… 전역까지 했겠네.’
뭐, 나 PD가 없더라도 괜찮기는 했다.
이 세상에 예능 PD가 한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고.
이번에 SW 프로덕션에서 공격적으로 영입한 예능 전문 PD 중 적어도 한 가지 프로그램만큼은 나 PD에게 꿀리지 않는 사람이 있던 것이다.
‘이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SW 프로덕션의 예능 제작 회의.
“…중요한 건 시청자들의 판타지를 프로그램을 통해 충족시키는 겁니다. 특히 남자 시청자들을요.”
새로운 예능 콘셉트를 들고 온 PD 한 명이 있었다.
“흠. 확실히 콘셉트가 캐치(catchy) 하긴 하네요. 다만 걸리는 건 요즘 나오는 서바이벌 프로그램마다 싸그리 다 실패한다는 건데…….”
“너무 많이 나왔으니까요. 슈스케, 위탄, 케이팝 스타, 보코 등등, 대중들이 피로감을 느낄 만도 하죠.”
“하지만 한 PD 기획은 좀 다른 거 같아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기는 해도 기존 것들하고는 차별화되는 콘셉트잖아요?”
“저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아까 그 남자 시청자들의 판타지 자극? 그건 확실히 될 것 같네요. 귀엽고 예쁜 여동생, 귀엽고 예쁜 조카. 모든 남성의 로망이잖아요?”
다른 PD들이 말하는 것처럼 서바이벌 프로그램.
하지만 기존의 서바이벌 프로들과는 그 궤가 다른, 획기적이면서도 화제성이 엄청난 프로그램.
전생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끌며, 오디션 프로들의 궤를 바꿔 버린 프로듀스 119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논란이 꽤 많을 것 같긴 해요. 어떻게 보면 잔인한 기획이잖아요? 출연자들을 너무 상품화시키는 거 같기도 하고…….”
“하지만 그럴수록 노이즈 마케팅은 엄청 되겠죠. 원래 구설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첫 시청률은 잘 나오는 법이잖아요. 남은 건 그렇게 끈 어그로를 충성 시청자로 전환시키는 거고.”
“연습생을 119명이나 뽑는 이유도 그 때문이고요?”
“그렇죠. 데뷔한 아이돌들이라면 몰라도 연습생들은 대중들에게 있어 베일에 쌓인 존재들이잖아요? 그런데 그런 연습생들이 119명이나 나와서 오디션 프로를 한다? 그것 자체만으로도 화제성이 엄청나겠죠.”
다른 PD들과 열띤 토론을 이어 가고 있는 한 PD.
저 말이 맞았다.
원 역사에서도 이 프로그램이 성공할 수 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노이즈 마케팅.
프로그램이 방영 전부터 많은 논란에 휩싸이면서 홍보는 확실하게 성공했었다.
우선 욕은 하더라도 욕하면서 보게 되는 분위기가 형성됐던 것.
이번에도 비슷한 반응이 나오게 될 터.
‘문제는 시청자 투표 조작인데… 그런 일은 이번엔 꼭 없도록 해야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한 PD의 모습을 살폈다.
얼굴만 보면 딱히 접대를 좋아하고 그럴 것처럼 생기지는 않았는데.
역시 겉만 보고 사람 속을 판단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양 PD랑 최 대표한테 말해서 잘 감시하라 해야겠어. 접대, 뒷돈, 조작 같은 건 절대 없도록.’
SW 프로덕션의 장점은 엄청난 성과급이다.
다른 회사의 PD들을 그리 어렵지 않게 SW 프로덕션으로 영입할 수 있었던 이유.
기본 연봉은 다른 제작사나 방송국과 비슷하지만, 작품 성공 여부에 따른 인센티브가 비교가 안 되게 높았다.
그런 만큼 한 PD는 프로그램만 성공 시킨다면 그에 따른 큰 대가를 받게 될 거다.
즉, 굳이 뒷돈이나 접대를 받을 이유가 없을 거다.
하지만 그럼에도 예전과 같은 일이 발생한다면…….
‘계약서에 적힌 엄청난 위약금. 그걸 그대로 받아 내야겠지.’
아무튼.
제작이 확정이 되면 여러 기획사를 돌아다니며 협력을 받아 내고.
촬영에 들어가면 내년 중순쯤이 될 터.
그러면 방영은 내년 연말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부대 TV로 시청하게 될 수도 있겠네.’
왠지 모르게 다시 우울해지는 기분이었다.
* * *
탁, 타다닥-
마음이 정리돼서일까.
“후우. 그래도 이젠 좀 써지네.”
꽉 막혔던 집필 속도가 서서히 탄력이 붙고 있었다.
빅터 3세의 이야기.
<마지막 마법사> 4부를 쓰면서도 매력적인 캐릭터라 생각했던 만큼, 쓸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았다.
“벌써 1권을 다 썼네.”
선왕의 사생아, 왕궁의 불청객인 유년기의 빅터 3세.
그 이야기를 다루는 게 퍽 재밌었다.
‘드라마로 만들면 좋을 것 같은데.’
전쟁이 메인이 되는 <마지막 마법사>와는 달리, 왕궁 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이 중심이었으니.
짧은 호흡의 영화로 만드는 것보다 긴 호흡의 드라마로 찍어 내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특히 정치적인 암투 등이 중요 서사인 만큼 영화로는 이야기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할 듯했다.
<마지막 마법사> 영화가 예상대로 흥행하기만 한다면, 그 외전격이나 다름없는 빅터 3세의 이야기에도 관심이 상당할 터.
이걸 스웜에서 독점 공개한다면 그것 만으로도 가입자 수를 왕창 늘릴 수 있을 거다.
뭐, 아직은 먼 얘기니, 일단 나중에 생각하도록 하고.
타닥.
1권 분량을 엘레나에게 보내는 걸 끝으로 집을 나섰다.
행선지는 인천공항.
주연 캐스팅을 확정한 <마지막 마법사>가 며칠 전 막 촬영을 시작했는데.
피터가 메인 촬영지인 뉴질랜드로 구경을 오라 한 것.
물론 순수하게 구경이 목적은 아니고, 촬영 방향과 관련해서 촬영지를 보며 직접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뉴질랜드는 또 처음 가는 거네. 기대되는데?’
장장 11시간이나 걸리는 비행 시간.
이제는 일등석에서 대접받는 것도 꽤 익숙해졌다.
“우주남 너무 재밌게 보고 있어요.”
“저도 스웜 구독해서 보는 중이에요!”
“아, 감사합니다.”
대한항공을 이용하는 것도 수차례인데.
이용할 때마다 승무원들의 환대를 받는 것 같았다.
탁-
[010-XXXX-XXXX]
‘…음.’
가끔씩은 이렇게 연락처가 적힌 쪽지를 받기도 하고.
물론 연락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가급적이면 자만추로 만나는 게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도 있고, 사실 그리 눈에 안 차서도 있었다.
‘눈이 높아져도 너무 높아져 버렸어.’
스웜이나 써밋 엔터처럼 드라마, 영화 제작 사업을 시작하고 생긴 부작용이었다.
예전에는 아무리 배우 지망생이라고는 해도 톱급 배우들을 보는 경우가 손에 꼽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래도 영화사와 제작사 오너라고 자체 제작 작품들 촬영장에 최소 한 번씩은 얼굴을 비추는 터라 그럴 기회가 너무 많아져 버렸다.
그 탓에 웬만한 비주얼이 아닌 이상 예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래서 내가 연애를 못 하나?’
과거로 오고 나서 1년 반이 지났다.
여기서 또 문제 하나.
그 1년 반 동안 내가 만난 여성은 몇 명일까요?
답지를 확인할 필요도 없다.
0명, 0명이다.
…뭐, 아무튼.
[손님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오클랜드 공항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안전벨트를…….]
기내식을 먹고 눈을 붙였더니, 금세 도착해 버렸다.
뉴질랜드의 오클랜드 공항.
“우진, 오랜만이군. 그간 잘 지냈나?”
“아… 피터. 음. 솔직한 대답과 솔직하지 못한 대답 중 뭘 원해?”
날 맞이하기 위해 나온 피터와 인사를 나눴다.
“당연히 솔직한 대답이지. 그새 무슨 일이라도 있던 거야?”
“무슨 일이 있었다기 보다는…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 예정이지. Fuck. 조만간 군대에 가게 생겼어.”
“군대? 그게 무슨……?”
당황한 얼굴의 피터.
피터가 준비해 놓은 차에 타면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징병제 국가인 한국의 상황, 한국 남성들에게 군대가 어떤 존재인지 등등.
“왓? 그러면… 반년 후쯤에는 입대를 해야 한다고? 자네가?”
“그래. Private 선우진이 되게 생겼다고.”
“흐하하. 빌리어네어도 군대를 가다니. 한국은 꽤 공정한 나라로군.”
“꼭 그런 건 아닌데… 뭐, 어느 정도는 그렇긴 하지.”
그런 대화를 하면서 얼마나 차를 타고 갔을까.
오클랜드를 벗어나 두세 시간 정도를 달리니, 익숙한 풍경이 보였다.
“오.”
“알아보겠나? 저기서 반지의 제왕을 찍었었지. 저쪽으로 좀만 더 가면 호비튼이 나오고.”
호비튼은 호빗들의 마을.
추억에 잠긴 듯 호비튼이 있다는 방향을 바라보는 피터였다.
“크으. 내가 말했었나? 처음 반지의 제왕을 찍으면서 있었던 일인데…….”
그러면서 시작된 피터의 촬영 얘기.
그건 <마지막 마법사>의 촬영지에 도착할 때까지 끊기지 않고 이어졌다.
덕분에 피터에게도 투 머치 토커가 될 자질이 충분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쨌거나-
“도착했군! 저곳이 바로 나우루호에 화산이네.”
반지의 제왕에서는 운명의 산이었던 곳.
<마지막 마법사>에서는 마법사의 산 역할을 할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