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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도 잘하는 놈이 잘한다-86화 (86/267)

86화 귀인 등장

줌과 에어비앤비에서 끝이 아니었다.

누군가 그랬던가.

아메리카야말로 진정 기회의 땅이라고.

그 말이 참으로 맞는 말이었다.

실리콘밸리는 정말로 기회의 땅이었다.

‘언젠가 그런 영화를 본 적 있던 것 같은데…….’

19세기 미국에 있었던 골드러시를 다뤘던 영화.

제목은 기억 안 나지만, 캘리포니아에서 사금이 발견됐다는 소식에 서부로 향하는 동부인들의 이야기였다.

새벽 시간대에 케이블 영화 채널을 돌리다가 봤던 거로 기억한다.

아무튼.

지금 갑자기 그 영화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이곳 실리콘밸리가 스타트업이라는 이름의 돌덩이로 둔갑한 황금이 굴러다니는 곳이어서일까?

“와우… 이게 전부 투자 유치를 진행 중인 회사들이라는 거죠?”

물론 아무리 황금이 곳곳에 있다고는 해도, 골라내야 할 돌덩이들이 산처럼 쌓여 있기는 했다.

“네. 이것도 너무 허무맹랑한 것들은 거르고 골라 가져온 겁니다, 보스.”

“으음. 고생 많으셨어요.”

시그마 캐피탈을 통해서 건네받은 여러 회사의 보고서.

서류가 얼마나 많았는지, 꽤 널찍한 책상 전부를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허투루 볼 수 없는 법.

‘오. 우버가 이때는 기업 가치가 4조밖에 안 해? 분명 나중에는 100조 가까이 되는 거로 알고 있는데.’

“우버가 시리즈 C 투자를 받는다고요?”

“네. 총 2억 5천만 달러의 규모입니다.”

“우리 회사에서도 참여해 보죠. 물론 그렇다고 2억 5천만 달러를 전부 소화하려고는 하지 마시고요.”

“알겠습니다.”

우버처럼 대놓고 반짝거리는 금덩이들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에어비앤비와 비슷한 기업 가치라 평가 받고 있는 지금의 우버.

미래에도 그 가치가 거의 비슷했으니.

즉, 이것도 최소 수십 배나 뛰게 될 투자라는 소리였다.

어쨌거나.

‘확실히 게임 관련 회사들이 눈에 잘 들어오기는 하네.’

다른 분야는 몰라도 게임은 영화, 드라마 못지않게 내가 잘 알고 있는 분야.

내가 웹 소설 작가로 살아오면서 남는 시간에 플레이 했던 스팀 게임들만 몇 개던가.

덕분에 알짜배기 회사들을 쉽게 고를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게임 제작사들에 투자한 건 아니었다.

‘게임 제작사들은 이미 덩치가 크니까.’

사실 게임이라는 게 대부분 자본 싸움이다 보니,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게임사들은 지금도 상당한 회사 규모를 자랑했다.

지금 시점에서 투자해 봐야 그리 수익률이 높지 않을 거라는 뜻.

그렇기에 내가 주목한 건 게임을 만드는 제작사들이 아니라 제작을 하는 데에 쓰이는 게임 엔진이었다.

‘아… 언리얼은 이미 임자가 있네.’

게임 엔진계의 양대 산맥 언리얼과 유니티.

안타깝게도 언리얼 엔진에 있어서는 내가 한발 늦었다.

나와도 관계가 깊은 텐센트가 언리얼 엔진의 개발사인 에픽 게임즈의 지분을 이미 48%나 들고 있었던 것.

그래도 다행이라면 다행인 게 유니티 엔진에 있어서는 미리 선점할 수가 있었다.

‘유니티 엔진의 경우는 우선은 지분만 최대한 확보하는 거로 하고, 나중에는 아예 인수하는 쪽으로도 노려봐야겠어.’

다른 회사들은 기업 가치가 오를 때 즈음 전부 지분을 팔아 치워 시세 차익만 노릴 생각이다.

하지만 유니티의 경우는 아예 제작사를 통째로 사들이는 것도 괜찮은 선택일 것 같았다.

유니티 엔진을 단순히 게임 엔진으로만 활용하는 게 아니라, 여러 분야의 기술들과 결합해 스웜에도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왜, 미래에는 <블레이드 러너 2049>가 유니티를 통해 시각화 작업을 완료해 화제가 되기도 하지 않나.

그 외에도 유니티 엔진을 통해 제작을 한 영화들이 여럿 더 있었고.

‘영화를 찍을 때 기존 방식처럼 먼저 촬영 후 후작업으로 CG를 입히는 게 아니라, 마치 게임을 만드는 것처럼 실시간 렌더링으로 영화를 만든다면… 분명 시간을 획기적으로 아낄 수 있을 거야.’

써밋 엔터를 인수하고 알게 된 사실인데, 영화 제작 현장에서는 시간이 곧 제작비로 직결된다.

그런 만큼, 시각 특수 효과(VFX) 작업에 소요되는 시간을 유니티 엔진을 통해 확 줄일 수 있다면 제작비도 훨씬 절감할 수 있을 터.

써밋 엔터는 물론 SW 프로덕션의 미래에 있어서도 필요한 회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

“알버트, 이 회사에도 투자해 줘요. 이쪽은 가능한 많이 지분을 확보해 주시고요.”

뭐, 유니티 인수는 차차 생각하기로 하고.

서류들을 살피다 발견한 또 하나의 금덩이 회사.

바로 마인크래프트를 제작한 모장 AB라는 회사였다.

게임 제작사에는 투자할 생각이 없었지만, 그래도 이건 놓칠 수 없는 노릇.

심지어 아직 설립 4년차에 불과해서 기업 규모도 그리 크지 않았으니.

곧바로 관련 투자를 알버트에게 지시했다.

‘온라인, 모바일 결제 플랫폼? 이름을 들어 본 회사는 아니긴 한데…….’

이후로도 서류들을 쭉 읽어 봤는데, 그러다 발견하게 된 스트라이프라는 회사.

보고서를 살펴 보니 기업들한테 간편하게 결제 시스템을 제공하는 회사라는데.

API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덕에 오직 코드 몇 줄만으로 기업들이 자사 홈페이지에 결제 시스템을 설치할 수 있다고 한다.

심지어 일론 머스크는 물론, 같은 페이팔 창립자인 피터 틸도 엔젤 투자자로 참여해 있는 회사.

“으음. 스트라이프… 그리고 간편 결제라…….”

분명 내 기억에 있는 회사는 아니다.

하지만 꼭 투자해야 한다는 강력한 예감이 들었다.

예감을 넘어서 확신에 가까울 정도.

“과거로 오고 나서 가장 불편했던 점 중 하나가 이거였지.”

인터넷이나 모바일로 뭐 하나 사려면 그냥 지문 인식만 띡- 하면 됐던 미래와는 달리.

지금은 일일이 카드 번호를 입력하는 둥 여러 귀찮은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게 얼마나 불편했던지, 한동안은 적응이 힘들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걸 또 반대로 생각해 보면, 그만큼 미래에는 간편 결제 시스템이 보편화된다는 뜻.

즉, 스트라이프라는 회사에는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소리였다.

“음.”

‘내가 가진 무기는 회귀자 노트에 적었던 미래 정보들뿐만이 아니었구나.’

이렇게 보고서들을 보다 보니 느끼게 된 게 있었다.

분명 나는 이런 스타트업 투자의 전문가가 아닌데도, 보고서를 보는 것만으로도 사업이 성공할지 실패할지를 알 것만 같다는 것.

‘나는 미래를 보고 왔으니까.’

모두 내가 회귀자인 덕분이었다.

단순히 A기업은 미래에 기업 가치가 10배가 뛰고, B기업은 20배가 뛴다거나 하는 정보를 모르더라도, 어떤 기업이 수익성과 미래 가치가 있고 어떤 기업이 없는지를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회귀자의 진정한 가치는 그런 미래 정보가 아니라 직접 미래를 경험했다는 것에 있는 게 아닐까.

지금은 세상 사람들 모두가 혁신이라 생각하고, 과연 실현이 가능하긴 한 건지 확신하지 못하는 사업들.

당장 1, 2년 후의 미래도 확신할 수 없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런 사업들이 10년 후에는 어떻게 되는지 나는 모두 이미 한번 경험해 봤다.

‘내가 미래에서는 당연하게 썼던 어플이나 소프트웨어들이… 지금 시점에서는 아직 먼 미래의 기술로 취급받고 있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계획했던 것과는 달리 실리콘밸리에서 10억 달러를 쓰고 가는 건 힘들겠다 생각했는데.

새로운 시각을 깨닫고 나니, 정반대의 상황이 되어 버렸다.

스트라이프 같은 핀테크 기업들부터 시작해서… 메타버스, 인공지능, 배달 서비스, AI, 빅 데이터, 자율 주행 등등.

이름을 들어 본 적은 없더라도 유망해 보이는 기업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것.

‘10억 달러… 생각보다 적은 돈이었네.’

* * *

며칠 후.

탁, 타다닥-

오늘은 오랜만에 가진 집필 데이.

우선 가제로 <빅터 연대기>라 이름을 붙인 빅터 3세의 이야기.

그 2권을 쓰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막히는 부분이 많네.’

1권을 쓸 때만 해도 쭉쭉 써졌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2권의 중반부터는 내용이 꽉 막혀 버렸다.

1권이 유년기의 빅터 3세를 다루는 권이었다면, 2권부터는 소년이 된 빅터 3세의 이야기였다.

주머니 속의 송곳은 가만히 있어도 뚫고 삐져 나오게 된다고.

어린 시절부터 자신도 모르게 제 자질을 드러내 버린 빅터 3세.

그가 왕궁 내에서 받게 되는 견제와 핍박 그리고 그에 대처하는 빅터 3세의 모습이 중심이었다.

그런데 왕궁 내의 암투 같은 건 처음 써 보는 내용이어서 그런가.

잘 써지던 글이 점점 느려지더니, 요 며칠은 썼다 지웠다만 반복하게 될 뿐이었다.

‘윅슨 출판사에서 실제로 중세 시대 있었던 사례들을 보내 줘서 어느 정도 감이 잡히기는 했는데… 그래도 아직 뭔가 팍! 하고 와닿는 전개는 안 떠오른단 말이지.’

조금 더 전개를 고민해 보다가 노트북을 닫았다.

출판 일정이 나온 것도 아니고.

<빅터 연대기>의 집필에는 여유가 꽤 있었다.

애초에 <마지막 마법사>처럼 엄청난 장편으로 계획한 소설도 아니었고, 아마 7~8권 내외의 소설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군대에 입대하기 전에만 완결을 내면 될 일이니, 시간적으로는 꽤 널널했다.

‘내용이 막혔을 때에는 시간이 약이지.’

글이라는 게 그렇다.

하루 온종일 붙잡고 고민을 해도 떠오르지 않던 전개가 다음 날에는 집필을 시작한 지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떠오르곤 한다.

심지어 왜 어제는 이런 생각을 못 했던 거지 싶을 정도로 쉬운 방향의 전개인 경우도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시간을 넉넉하게 가지고 다음 내용을 구상해 볼 생각.

게다가 내 평소 글 쓰는 스타일도 이야기에 몰입해서 쓰는 방식인 터라, 지금은 글 쓰는 걸 잠시 멈추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외출하시게요?”

“네. 가볍게 산책 좀 하고 그러려고요.”

머리도 조금 식힐 겸 커피를 마시러 밖에 나가려 했는데.

호텔 방을 나서자 따라붙는 경호원들.

아무리 미국이라 해도 경호원을 데리고 다니는 건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었다.

괜한 시선이 끌리는 게 싫어 조금 떨어진 상태에서 나를 따라다니게 하고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실리콘밸리 근처 카페.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헤이. 당신, 한국에서 왔죠?”

“……?”

웬 덩치 큰 남성이 나타나 내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한국에서 온 작가 맞죠? 저번에 지미 키멜 라이브에 나온 걸 봤어요.”

“…허어. 예, 뭐. 맞긴 합니다.”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눈이 절로 크게 뜨였다.

내게는 꽤 익숙한 얼굴이었기 때문.

남자의 말에 답을 하면서도 나는 몰래 손짓으로 옆 테이블에 신호를 보냈다.

무해해 보이니까 엄한 짓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옆 테이블에 평상복 차림의 경호원이 앉아 있었는데, 가만히 있다가는 당장에 달려들어 앞의 남자를 제압할 것 같아서였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그렇게 만들고 싶기는 한데…….’

“와우! 반가워요. 하하. 당신 나온 TV 쇼가 재밌어서 소설들도 읽어 봤었는데, <마지막 마법사>는 내 취향이 아니더라고요. 아, 대신 언에이징 헌터? 그건 재밌었어요.”

“…우진 선입니다.”

마주치게 된다면 조금 더 이후가 되지 않을까 했는데.

여기서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악수를 건네는 손을 맞잡았다.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가는 느낌.

하지만 애써 참았다.

생각해 보면 얘가 뭔 잘못이 있었다고.

‘트윗질을 하도 해 대는 탓에 짜증이 나긴 했었지만… 이 친구 잘못은 아니었지.’

“오, 선우는 펜네임이었군요. 저는 일론, 일론 머스크예요.”

예전에는 짜증나는 관종련.

근데 지금 생각해 보니… 앞으로 내게 수십억, 어쩌면 수백억 달러를 벌게 해 줄지도 모르는 귀인.

바로 일론 머스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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