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안 알려 줬는데 어떻게 알아요
먼저 북미에서 마션이 정식으로 개봉했다.
전야제 상영에서 예상한 것처럼 꽤 좋은 출발을 했는데.
하루 동안 벌어들인 게 무려 2,125만 달러였다.
그리고 목요일 개봉해 주말까지의 성적이 총 6,300만 달러.
북미에서 역대 2월 개봉 영화 중 3번째로 높은 첫 주 개봉 성적이었다.
하지만 재밌게도 역대 2월 개봉 영화 중 2위 흥행 성적의 영화가 바로 1월에 있었는데.
그게 워너 브라더스의 레고 무비였다.
[하하! 보스, 잘 지내셨죠? 마션의 흥행과 관련해 보고서를 보냈는데, 읽어 보셨나요?]
트렌트와의 통화.
마션의 첫 주 성적 덕분에 텐션이 제대로 올라간 그였다.
[물론 운이 좋기도 했어요. 마션의 흥행 성적도 물론 대단하긴 하지만… 레고 무비와 정면으로 맞부딪혔으면 두 작품 모두 고전을 면치 못했을 거예요. 뭐, 서로 파이 하나 놔두고 싸우는 꼴이라 워너 측에서 정면 싸움을 피하기는 했지만요.]
‘후. 워너 이 자식들이 확실히 영화를 잘 만들긴 한단 말이지.’
저번 년도 하반기에 라라랜드 이전 극장가를 점령했던 그래비티도 그렇고.
1월에 개봉해 첫 주 성적이 무려 6,900만 달러였던 레고 무비까지.
써밋 엔터와 번갈아 가며 연타석 홈런을 치고 있는 워너 브라더스였다.
“확실히 레고 무비 흥행이 대단하긴 했죠. 지금까지 월드 박스오피스가 4억 달러가 넘는댔죠?”
[네. 그중 북미가 2억 2천만 달러고요. 북미 비중이 상당하죠.]
뭐, 그래도 비롯 첫 주 수익에서는 밀렸지만 최종 수익에서는 마션이 레고 무비를 이길 거라 예상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레고 무비의 흥행 수입 중 북미에서의 것이 50% 이상을 차지한단 거였다.
나도 경쟁사의 작품인 만큼 저번에 미국을 떠나오기 전 영화를 챙겨 봤는데.
해외에서는 북미보다 흥행이 덜한 이유가 있었다.
‘양키 센스가 너무 들어갔어.’
누가 대본을 쓴 건지는 모르겠지만 애초부터 내수 시장을 타깃으로 잡고 쓴 것 같았다.
나도 영어라면 준 원어민 수준으로 하는 편인데.
그런 내게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장면들이 몇 있더라.
영화가 끝나고 찾아보니, 모두 미국인이 아니고서는 이해하기 힘든 아메리카 조크였던 것.
이걸 보면서 한 가지 배울 수 있었다.
‘스웜에 들어갈 작품들은 최대한 이런 지역적 색채를 빼게 만들어야겠어.’
레고 무비를 보면서 중간중간 이해가지 않는 유머 신이 등장할 때마다 영화에 집중이 안 되는 느낌을 받았었다.
글로벌 마켓을 타겟팅 하는 만큼 어디 지역 하나에서만 통하는 것은 최대한 지양하는 게 맞았다.
아무튼.
[마션, 국내 개봉 하루 만에 37만 관객 동원 성공!]
[개봉 첫날 박스오피스 1위 달성한 마션, 다음 날 예매율도 25만 명에 달해 무난히 흥행 성공할 것으로 보여.]
[선우진이 또 선우진했다. 전국 1,000만 관객까지 청신호 불 켜져!]
다음으로는 마션의 국내 개봉.
1,400개 정도의 스크린을 확보해 놨는데, 지금 한국의 영화 시장 전체 스크린 수가 2,200여개 정도였으니, 60%가 넘는 것이었다.
사실 마음만 먹었으면 더 많은 스크린을 확보할 수 있기도 했다.
‘스웜이 성공하고 나서 다른 영화사들이 호의적으로 변했으니까.’
SW 프로덕션이 처음 출범할 때만 해도, CM 엔터를 비롯한 한국의 메이저 영화사에서 SW 프로덕션을 견제하는 움직임이 꽤 있었다.
한국 영화 제작업계는 넥스트 엔터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벌 그룹 산하의 영화사들이 모두 쥐고 있다시피 했는데.
그런 곳에 새로운 경쟁사가 등장해 버린 것이었으니, 처음에는 경쟁자가 출현했다 여긴 것.
하지만 스웜의 성공 이후로는 그런 모습이 덜해지다 못해 아예 사라졌다.
자체 제작 콘텐츠들의 연이은 성공으로 SW 프로덕션의 제작사로서의 체급이 커진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OTT 시장을 꽉 잡고 있는 스웜이라는 플랫폼의 중요성을 다른 영화사들도 인지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보통 영화계에서는 이번에 우리 영화 밀어주면, 다음에는 너희 영화 밀어준다는 식으로 영화사들끼리 합의를 한다던데.
비록 SW 프로덕션은 다른 한국의 메이저 영화사들처럼 상영관을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 대신 스웜이 있기에 너희도 파워가 좀 있다고 쳐 주는 느낌이 되어 버린 것.
그렇기에 만약 스크린 확보를 위해 협조를 구했다면 영화사들 모두 마션에 스크린을 몰아 줬을 것이다.
사실 최 대표를 통해서도 그런 역제의가 들어오기도 했다.
하지만 내 선에서 모두 거절하라고 지시를 내렸는데.
‘아마 <명량해전>이 스크린 독점으로 논란이 되는 게 올해 하반기였지.’
이미 작품 자체의 체급과 나와 봉 감독이라는 자체 마케팅이 되는 유명인들이 더해진 덕분에 해외 영화치고는 꽤 이례적인 수의 스크린을 확보할 수 있었는데.
여기서 더 나아가면 명량이 스크린 독점이라는 비판을 듣게 됐던 비율인 70%가 되는 거였다.
굳이 스크린을 최대한 확보하지 않아도 흥행에 자신이 있는 만큼, 괜한 오점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 * *
-캬! 마션 보고 왔다. 질문 받는다.
└잼남?
└ㅇㅇ 씹꿀잼.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걍 볼만하다 정도?
└볼만하다 ㅇㅈㄹㅋㅋㅋㅋ당장 미국에서도 흥행 대박 나고 한국도 바로 박스오피스 1위인데 평론가 납셨누.
-이번엔 <드래곤 워>랑 다르다. 제대로 국뽕 빨아도 됨 ㅇㅇ
└ㄹㅇ 미국에서도 흥행 분위기 심상찮다던데 월드 박스오피스 벌써 1억 달러 넘겼대.
└씹; 개봉 1주도 안 됐는데 제작비 다 메웠네.
└마케팅 비용도 추가로 들긴 했을 텐데… 뭐 그거 고려해도 며칠이면 손익분기점 넘길 듯 ㅋㅋㅋ
-봉 감독은 전설이다; 영화 수준 실화냐;
-자칭 영잘알임. 확실히 <마션>은 추천할 만한 수작. 좋은 원작이 좋은 감독과 좋은 제작자(돈을 겁내 퍼 준다는 점에서)를 만나 제대로 터졌음. 특히 인상 깊었던 건 봉 감독의 시그니처와도 같은 ‘삑사리’와 ‘날아차기’ 등이 마션에도 모두 등장했다는 건데. 할리우드에도 K-영화가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장문충 쳐내;
└댓글 창 혼자 쓰냐? 매너 보소.
└3줄 요약 좀 ㅡㅡ
-내가 선우진 믿고 보라 했제?!
└ㄷㄷㄷ 했제충 등판.
일주일 후.
국내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엄청난 흥행을 이어 가고 있는 마션이었다.
[K-영화가 전 세계에서 통한다! 할리우드에서도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는 마션!]
[맷 데이먼의 한국 사랑? “불고기 맛 있어요. 김치는 매워요.” 발언 화제!]
[쿠엔틴 타란티노, “나는 봉 감독의 광팬이다. 그는 1970년대의 스티븐 스필버그를 떠올리게 한다.”라고 밝혀.]
으음.
이게 어쩌다 보니 마션이 K-영화의 선두 주자처럼 되어 버렸는데.
사실 내 입장에서는 조금 의문이 따르기는 한다.
비록 내가 판권을 사와 내 회사에서 봉 감독을 통해 제작한 영화이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과거의 기억이 있는 내게 마션은 외국 영화라는 확고한 인식이 있었는데, 국내 언론이나 인터넷 반응들을 보면 마션도 K-영화의 하나로 치고 국뽕 드링킹을 이어 가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생각보다 국뽕에 대한 거부감이 덜하구나.’
나중 되면 이런 기사가 나올 때마다 오히려 인터넷에서는 조롱거리가 되고는 하는데.
여기서 몇 년만 더 지나면 사람들이 거부감을 가지게 되는 게 ‘국뽕’이라는 키워드였지만.
그래도 아직은 국뽕에 대한 반감이 덜한 상태.
그 때문인지, 언론의 연이은 국뽕 기사들에도 내 생각과는 달리 오히려 환호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뭐, 나로서는 나쁠 건 없는 일.
‘사실 K-영화라는 게 아예 틀린 말이 아니기도 하고.’
영화는 감독 놀음이라고 자주들 하는 만큼, 마션이 K-영화의 하나라는 것도 꼭 틀린 말은 아니었다.
게다가 할리우드의 제작사라고는 해도 써밋 엔터가 내 회사라는 인식이 국내에서는 너무 강렬하다 보니, 한국 영화사의 작품처럼 여겨지는 것도 있었고.
그냥 나만 조금 어색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빌보드를 침공한 싸이에 이어, 할리우드를 점령하기 시작한 코리안들.]
실제로 미국 현지에서도 이런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제목을 보고 궁금해서 내용을 살펴봤는데.
봉 감독의 그간 필모와 이번 마션에 대해 짤막하게 설명하고, 내가 인수한 이후 써밋 엔터에서 나온 흥행작들 그리고 현재 촬영에 들어간 <마지막 마법사> 영화에 대한 기대 등이 적힌 기사였다.
기자 본인의 사견으로는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을 뛰어넘는 흥행을 거둘 거라 보고 있다던데.
그거 보로 바로 라이크 버튼을 눌렀다.
아무튼.
“야, 우진아, 이거 봐 봐.”
강주원의 집.
돈 잘 버는 양반답게 혼자 사는 그의 집 한편에는 남자라면 모두가 좋아할 만한 공간이 조성되어 있었는데.
최고 사양으로 무장된 PC 5대, 각종 게임 콘솔들, 안마 의자, PC방을 떠올리게 하는 쇼케이스 냉장고 등이 갖춰진 게임 룸이었다.
한번 놀러 왔다가 내 마음에 쏙 들어서 요새 가끔씩 찾는 중이었다.
게다가 강주원도 작품 끝나고 한가한 터라 같이 놀기도 좋았고.
알고 보니 30대 된 거치고 롤을 꽤 잘하는 강주원이는데, 티어도 꽤 높았다.
나와 같은 다이아 5, 자랑스러운 예티.
덕분에 이렇게 놀러올 때마다 다이아 4로 올라가 보겠다고 같이 듀오 중이다.
“뭔데요?”
“너 나온 기사인데. 네가 자랑스러운 한국인 1위라는데? 흐흐.”
[세계에서 한국을 빛내는 자랑스러운 한국인 TOP 5!]
강주원이 보내 준 건 제목부터 오그라들게 만드는 웬 국뽕 기사.
내용을 보니 싸이, 김연아, 봉 감독, 박지성 등과 함께 내가 국뽕 제조기 랭킹에 들었다는 기사였다.
“으으. 심지어 1위라니.”
아무래도 사람들한테 가장 직관적으로 보이는 건 돈인 터라.
내 소설 수입이 대략적으로 알려지고 나서는 이런 랭킹에서 1위 자리를 내줄 생각을 안 한다.
하긴 나 같아도 해외에서 소설과 사업으로 수십억 달러 버는 사람 있으면 비슷하게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그건 내 얘기가 아닐 때 그런 거고.
내가 직접 국뽕의 당사자가 되니, 왠지 모르게 드는 이상한 기분.
“넌 또 그러네. 이런 기사 나올 때마다 맨날 싫어하더라? 나 같으면 내가 이렇게 세계에 한국을 알리고 있겠구나 하고 자부심 들 거 같은데.”
강주원을 저렇게 말하고 있지만… 나는 모르겠다.
나야 그냥 돈이 좋아서 열심히 번 건데, 거기에 치트키나 다름없는 미래 지식을 활용한 것도 있고.
이렇게 빨아(?) 주면 왠지 모르게 내가 다 부끄러웠다.
아무튼.
“아, 맞다. 그리고 너 예능 하나 안 할래?”
“네? 예능이요? 나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하는 거 알잖아요. 저번에 한번 나가 보니 너무 기 빨려서…….”
이 사람은 갑자기 웬 예능이래.
“아니. 이거 그런 거 아니야. 얘기 들으면 너도 좋아할걸? 네가 평소에 관심 있는 분야기도 하고.”
“관심? 뭔데요?”
“축구! 이제 곧 월드컵 시즌이잖아. 너도 내가 축구 광팬인 거 알지? 그래서 월드컵 관련해서 예능 프로 섭외 들어왔는데, 그쪽에서 혹시 네 출연도 가능하냐 묻더라고. 뭐 부담 주는 건 아니고 너도 어차피 브라질에 축구 보러 갈 거잖아? 따로 가면 심심한데 같이 가면 좋을까 싶어서.”
몇 달 뒤에 있을 2014 브라질 월드컵.
전문 MC랑 축구 팬으로 유명한 연예인 몇 명이 껴서 대표 팀 경기를 관람하는 그런 예능인가 보다.
사실 내가 EPL 구단주가 된 이후, 한국 축구 팬들 사이에서 나에 대한 관심도가 엄청나게 높아졌는데.
아마 그 때문에 내가 출연하길 원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브라질 월드컵이면 6월 아닌가?
“그걸 제가 어떻게 가요?”
“하기 싫어? 그러면 그렇게 전달하지, 뭐. 그래도 숙소는 나랑 가까운 데서 구해라. 이게 외국 나가면 겁나 심심해져서…….”
“아니, 아니. 월드컵 6월이잖아요.”
“응. 6월이지.”
“6월에 내가 해외여행을 어캐 감? 부대에서 빡빡이 상태로 열심히 작업하고 있을 텐데.”
이 사람 뭐 잘못 먹었나?
아까 시켜 먹은 피자가 상했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부대? 빡빡이? 그게 대체 뭔 소… 어?! 너 군대 가? 올해?”
…아.
내가 말 안 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