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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도 잘하는 놈이 잘한다-101화 (101/267)

101화 배우란 무엇인가

“하시죠! 그거!”

“정말이십니까?”

“네. 재밌어 보이는데요? 할 수 있으면 내일부터 바로 촬영에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요.”

그렇게 말하자, 최 PD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내가 SW 프로덕션의 오너인 만큼 출연 제의를 하는 게 조심스러웠던 것도 있겠지만, 내 출연 여부에 따른 다큐멘터리의 성공 가능성 때문도 있을 거다.

일단 축구 다큐멘터리의 주된 공략층인 이삼십 대 남성들 사이에서의 내 인지도 및 호감도.

저번에 있었던 500억 원의 기부 이후, 최근에도 추가적인 기부를 진행하면서 고공 행진을 달리고 있었다.

심지어 내 인수 이후 EPL에서 제대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크리스탈 팰리스에 대한 관심도도 최상이었으니.

적어도 국내에서의 화제성은 이미 따 놓은 당상이었다.

게다가 계속 이러니 너무 내 자랑 같지만, 내 인기란 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터라.

축구 다큐의 주 시청층이 아닌 연령대 및 성별에서도 꽤 인기를 끌 가능성이 컸다.

‘대중들이 관심을 가지는 건 내 사생활보다 내 사업 활동 쪽이니까…….’

내가 어느 정도의 자산을 가지고 있는지 언론에 정확히 공개된 적은 없지만.

그래도 내가 갖고 있는 사업체들의 추정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는 이미 잘 알려진 상태였다.

국내의 경우 비상장사일지라도 몇 가지 기준 중 하나를 충족하면 외부 회계감사를 받아야 했는데.

SW 프로덕션도 그런 회사 중 하나였다.

즉, 금융감독원 전자 공시 시스템에 들어가면 SW 프로덕션의 재무제표를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것.

물론 미국 법인인 써밋 엔터나 윅슨 출판사 같은 경우는 그런 의무가 없기는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영화나 책을 판다는 게 매출이 훤히 보이는 사업이인지라.

모두 포브스 등 경제 잡지에서 추정 기업 가치가 어느 정도쯤 될지 여러 번 분석됐었다.

특히 이번 마션의 경우처럼 내가 제작한 영화가 크게 흥행하고 나면, [마션의 써밋 엔터를 포함한 선우진의 보유 기업 가치는?] 따위의 기사로 판매 부수 뽑아먹는 게 어느새 잡지사들 사이에서 단골 루트가 됐는데.

그런 기사들의 반응을 보다 보면 이런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쟤는 대체 뭘 어떻게 했기에 저렇게 많은 돈을 번 거지?

글이야 기막히게 잘 쓰니 그건 그렇다 쳐도, 손대는 사업마다 다 성공시키는 이유가 뭐야?

이런 궁금증을 가지는 거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예로부터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게, 돈 많이 버는 방법 아니겠는가.

이번 다큐가 비록 내 주력 분야인 문화 예술 쪽은 아닐지라도, 내가 축구 구단을 어떻게 운영하는지에 큰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컸다.

‘흠흠. 사실 크팰의 경우는 단장 고용해서 일은 다 맡기고, 나는 중간중간 이적 활동만 참여하는 거긴 한데…….’

뭐, 중요한 건 아니었다.

여하튼.

‘내 위주가 아닐지라도, 이번 다큐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엄청나게 흥행하겠지.’

그리고 또… 이게 표면상으로는 축구 다큐멘터리지만, 자세히 보면 국뽕 다큐멘터리나 다름없없다.

무려 세계에서 한국을 빛내는 자랑스러운 한국인 TOP 1에 선정된 나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키워드들이 여럿 있는데.

그중 하나가 국위선양, 국뽕, 세계 속의 한국인 뭐 이런 거다.

그렇지 않아도 나와 친분 있는 할리우드 배우나 영화감독들에게서 내 언급이 나오면, 그게 1.5배 정도 과장돼서 보도되고는 하던데.

만약 내가 런던에 가서 크리스탈 팰리스 서포터즈들에게 엄청난 환호와 찬사를 받고.

‘구단주 썬이요? 위대하신 태양! 태양을 찬양하라! 아이 러브 코리아!’ 따위의 멘트가 길거리 팬들한테서 들려온다?

2020년대라면 몰라도 지금 2010년대에는 그보다 좋은 장면이 또 없었다.

* * *

“와, 씨! 그거 대박인데? 네가 다큐에 나온다고? 주제는 축구고?”

“네.”

“와, 다른 건 안 부러워도 이건 진짜 부럽네.”

최 PD의 제의를 받아들이고, 다음 날.

서로 친구도 없고 약속도 없는 사람들끼리 오늘 만나게 됐는데.

내가 다큐를 찍는다는 소식에 눈에 띄게 부러워하는 강주원이었다.

“지인 찬스로 나도 따라가면 안 되냐? 아니, 출연은 바라지도 않으니까, 가서 구경만 할게. 바디 사인 유니폼도 좀 받고.”

월드컵 특집 프로에 초대될 정도로 유명한 축구광인 강주원.

사실 내가 그와 이렇게 친해질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그가 축구, 그것도 EPL의 엄청난 팬이라는 것에 있었다.

다만, 특이하게도 어느 한 팀을 응원하던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두루두루 해축을 즐기던 편이었는데.

이번 시즌을 계기로 서서히 크리스탈 팰리스에 입덕하는 중이었다.

특히 올 시즌 벌써 15골을 넣으며 EPL 득점 순위 2위에 랭크된 제이미 바디를 엄청 좋아하더라.

8부 리그부터 EPL까지 올라오고, 그 이후 돌풍을 일으키는 스토리가 극단에서 오랜 무명 시절을 보낸 끝에 성공한 자신과 비슷하다나 뭐라나.

‘내가 알기로는 무명 시절이 그리 길지는 않았던 거로 아는데.’

기껏해 봐야 2~3년 남짓.

저 양반은 마스크도 괜찮고 연기 재능도 뛰어난 터라 처음에만 조금 힘들어했지, 작품 하나 터지고 난 이후로는 쭉쭉 승승장구했었다.

그래서 강주원이 그런 말을 하는 걸 듣고 그게 무슨 오랜 무명 시절이냐고, 진짜 오랜 무명 시절은 7년 넘게 배우 지망생 생활만 하다가 첫 드라마에서 PD한테 배우 때려치우라는 소리 듣고 배역에서 잘린 나 같은 사람이 할 얘기라고 쏘아붙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물론 그런 말을 했다가는 군대 갈 생각에 미친 거냐는 소리를 들을 테니 참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조만간 작품 들어가잖아요. 시기가 겹칠 텐데?”

“으으. 마음 같아서는 촬영 펑크 내고 런던 따라가고 싶은데…….”

“응. 경호원들 시켜서 바로 돌려보낼 거야.”

“와… 너만 경호원 있냐? 우리 기획사 사장님도 경호원 있어!”

“응. 그거 나임.”

사실 말은 저렇게 했지만 강주원이 촬영을 펑크 낼 사람은 아니다.

게다가 이번에 들어가는 작품은 그렇지 않아도 말들이 많은지라.

“그거 200억 원짜리 프로젝트인 거 알죠? 뭐 할리우드에서 영화 찍을 때는 몇억 달러 쉽게 쓰기는 해도, 한국에서 200억 원이면 진짜 대형 프로젝트입니다.”

“알아, 인마. 네가 안 쪼아도 충분히 언론에서 나 감시하고 있는 거 내가 모를까 봐. 방금 말한 건 농담이고, 나 이번 촬영에 진짜 제대로 이 갈았다.”

이번에 강주원이 들어가는 작품은 총제작비 200억 원의 좀비 블록버스터.

바로 서울행이었다.

제작사는 당연 SW 프로덕션.

저번 마션 시사회에서 보게 된 연 감독과 컨택하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시나리오가 바로 나와 있었어서 다행이야.’

내가 알기로는 먼저 부산역이라고 서울행의 프리퀄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그 이후 서울행을 제작하는 연 감독이었다.

그래서 서울행이 제작에 들어가려면 1~2년 정도는 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알고 보니 이미 두 작품 모두 시나리오가 완성된 상태였다.

데미언 샤젤 감독이 라라랜드를 만들기 위해 위플래쉬를 먼저 제작해 투자자들을 모으려 했던 것처럼.

연 감독 또한 한국에서는 첫 시도나 다름없는 좀비 블록버스터인 서울행을 제작하기 위해, 먼저 그 시초가 되는 부산역을 제작하려고 했던 것이다.

물론 굳이 부산역을 보지 않아도 서울행의 성공을 알고 있는 나는 바로 실사 영화 제작에 돌입하자고 연 감독을 설득했다.

연 감독도 실사 영화 제작이 원래의 목적이었기에 당연히 알겠다고 했던 거고.

그렇게 제작에 들어가게 된 서울행.

그 영화 주인공으로 뽑힌 게 바로 내 눈앞에 있는 강주원이었다.

‘가만 보면 이 양반도 작품 보는 눈이 엄청 좋단 말이지.’

최근 필모만 봐도 어마어마했다.

연기천재-최종 관객 수 700만 명짜리 액션 영화-프런트의 3연타 홈런.

거기에 이어서 서울행이라니.

내가 전역할 때쯤이면 지금의 한류 스타에서 벗어나 월드 스타가 될는지도 모른다.

‘사실 강주원 캐스팅 가지고 말들이 많았지.’

강주원이 아까 자기가 이번에 제대로 이 갈았다고 말한 이유가 있었다.

그의 서울행 캐스팅.

이걸 두고 몇몇 언론에서 선우진과의 친분으로 따낸 캐스팅이 아니냐는 기사들이 나왔던 것.

나와 강주원이 연기천재 이후로 꽤 친한 사이가 됐다는 건 대중들에게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는데.

심지어 프런트의 방영이 시작되고 나서 SW 프로덕션이 강주원의 소속사를 인수하기도 했었고.

프런트에 이어 이번 서울행까지 SW 프로덕션이 제작을 맡은 작품의 주연을 맡다 보니, 그걸 가지고 논란이 됐던 것이다.

[이번에도 강주원? 자신만의 페르소나를 갖고 있는 건 제작사 오너도 포함이었나?]

[대표 절친인데 어떻게 안 뽑아요. 익명 관계자가 밝힌 뒷이야기.]

[연성호 감독, “캐스팅 과정에서의 외압? 그런 건 맹세하건대 하나도 없어. 오히려 모든 걸 감독에게 맡기는 회사.”]

-쟤는 확실히 선우진이랑 친하긴 한가 보다 ㅋㅋ

-또 강주원? 잘나가는 남자 배우 한 트럭인데 쟤만 캐스팅되는 이유가 뭐지?

└한 트럭은 무슨ㅋㅋㅋ 강주원만 한 배우 10명 뽑아 봐라. 뽑아지나

└왜 못 뽑음? 앉은 자리에서 30명도 뽑겠고만 ㅋㅋㅋ

└ㅇㅇ 해 보셈.

-얘네 뭐임? 연 감독 해명 안 봄?

└ㅋㅋㅋㅋ너는 그걸 믿냐.

-해명이 사실일 수는 있음. 선우진의 그간 행보를 보면 누구 뽑으라고 압력 넣을 사람도 아니고. 근데 그 밑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너 같으면 너희 회사 오너 베프인데 떨어뜨리겠음?

└이 말이 맞음 ㄹㅇㅋㅋ

물론 내가 연 감독에게 강주원을 추천했다거나 그런 건 절대 아니었고, 연 감독의 픽이었다.

다만 1순위였던 건 아니고 3순위 정도.

1순위는 몇 년 전 셀프 이발이라는 전설적인 장면을 남기고 스크린에서 사라져, CF만 찍고 계신 그분…….

연 감독이 혹시 작가님이라면 설득이 가능하시지 않겠냐며 꼭 좀 부탁드린다 하기에 ‘억!’이 아니라 ‘억!억!억!억?!?!’소리 나는 출연료를 제시했는데.

그랬음에도 출연을 고사하시더라.

그다음 2순위는 내가 알던 서울행의 원래 주연 배우, 안타깝게도 지금 다른 영화를 찍고 있는 건 물론 내년까지 스케쥴이 차 있었다.

그렇게 남은 후보 중 4순위였던 배우와 치열한 각축을 벌인 끝에 뽑힌 사람이 바로 강주원.

‘하지만 원래 사람 까는 데에 진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까.’

진실이 뭐가 됐건.

흠이 있는 것 같으면 물어뜯고 보는 게 대부분 사람의 심리였다.

게다가 강주원의 첫 스크린 도전이었던 700만 명짜리 액션 영화, 이게 참 안타까웠던 게 흥행 성적은 좋았지만 강주원은 별로 돋보이지 않는다는 평을 들었었다.

단독 주연이 아니라 다른 잔뼈 굵은 남배우 한 명과 더블 주인공 체제로 이끌어 가야 했던 영화였는데.

안 그래도 연기력으로는 정평이 나 있던 상대 주연배우가 이번에는 시나리오도 찰떡이었던 건지 그냥 영화를 씹어 먹어 버리고 만 것.

미친 연기력과 미친 몰입도.

사실 700만 명의 흥행 성적의 반 이상은 그 배우의 연기력 때문이었을 정도였다.

그 결과 강주원은, 영화는 흥행했지만 상대 주연배우에게 속된 말로 제대로 발렸다는 소리만 들어 버리고 말았다.

연기력만 놓고 보면 누구한테도 그리 꿀리지 않는 강주원인데.

그간 드라마만 찍다가 처음 도전하는 영화였던 만큼 ‘쪼’가 남아 있었던 것.

거기에 상대 배우는 물 만난 고기처럼 미쳐 날뛰었으니.

둘이 비교되면서 대중들한테 강주원은 ‘드라마는 잘해도 영화는 좀…….’이라는 인식이 생겨 버린 거다.

즉, 대중들이 보기에는 드라마는 겁나 잘하는데 영화에서는 그저 그런 강주원이라는 배우.

그런 배우를 200억 원짜리 블록버스터 영화에 캐스팅했다고?

왜? 선우진네 회사가 제작하는 영화라서?

역시 팔은 안으로 굽네.

뭐, 대충 이런 분위기가 형성되어 버린 거다.

당연히 강주원으로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는 노릇.

“기다려 봐. 내가 강주원이라는 배우가 누군지 제대로 보여 줄 테니.”

그래서 그런 걸까.

지금 저기 거울 보면서 저러고 있는 건.

‘…역시 배우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거울에 비친 자기 자신을 보면서 저런 오글거리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직업인 건가?

아니면 배우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저렇게 되는 걸까?

정답이 뭐가 됐건, 그런 생각이 들었다.

후우. 배우 포기하기를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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