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선물이 그저 그럼
“스읍.”
혹시 박 부사장이 말한 절대 싫어하지 않을 선물이 이거였던 건가.
달칵-
게시글들을 쭉 읽었다.
여러 개의 게시글이었는데, 읽어 보니 다들 대충 논조는 비슷했다.
예술 체육 요원.
현역병으로 복무하는 대신 2년 10개월간 예술 체육 분야에 종사하여 해당 분야 발전에 기여하는 복무 제도.
올림픽 등의 체육대회에서 호성적을 올려 국위를 선양한 자나 국제/국내 대회에서 입상한 예술 영재들이 주된 대상자인데.
선우진, 즉 나도 이 예술 체육 요원에 해당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
문학이 예술의 한 분야라는 걸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고.
대부분의 예술 체육 요원보다 내가 국위 선양에 더 기여를 하고 있는 것도 당연한 사실이었으니.
원론적으로 따지자면 틀린 얘기는 아니었다.
-근데 ㄹㅇ 맞말 아님? 솔직히 선우진 만큼 국위 선양 하는 사람이 있음? 해 봐야 박지성? 류현진은 아직 부족하고 ㅇㅇ
-사실 해외에서 성공한 거로 따지면 지성이 형님도 밀리지… 2000년 이후로 나온 소설 중 제일 많이 팔렸는데 ㅋㅋㅋㅋ
-솔직히 웬만한 콩쿨 우승자보다 선우진이 국위 선양 훨 많이 하긴 함 ㅇㅇ
-찾아보니까 뭔 사습놀이? 그런 거 대회 우승해도 예술 체육 요원 되네 ㅋㅋㅋㅋㅋ
-근데 문학은 왜 없냐, 진짜? 노벨 문학상 타도 군면제 ㄴㄴ임?
└규정상 노벨상, 필즈상 같은 거 타도 면제 해당 안 됨 ㅋㅋㅋ
└그래도 실제 한국에서 노벨상 수상자 나오면 면제시켜 주긴 할 듯.
└대부분 5, 60대나 돼야 받는 게 노벨상이라 상관없긴 함.
-암튼 아무리 선우진이라도 판타지 소설로 노벨상은 씹오바고… 휴고상이나 네뷸러상은 솔직히 비빌 만하지 않음?
└ㅇㅇ 안 그래도 <마지막 마법사> 완결 나면 최우수 장편상 수상 반 확정임.
└휴고상이나 네뷸라상 정도면 위상으로 웬만한 국제 콩쿨 씹어먹지 ㅋㅋㅋㅋ 심지어 말이 국제 대회지 90%가 한국인들만 나와서 상 자기들끼리 돌려먹는 대회랑 비교하면…….
실제로 대체적인 반응도 그런 의견에 동조하고 있었고.
‘내가 회귀하고 난 이후 잘 살긴 했나 보네.’
모두 합치면 수천 개에 달하는 댓글을 읽어 봤는데.
내게 군면제를 줘야 한다는 의견이 90%가 넘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처럼 내가 국민 호감남이란 걸 실감한 건 처음이다.
다만, 그래도 여전히 걸리는 점이 있었는데.
‘음. 이거 돌아가는 상황이 꼭 그때랑 비슷한데?’
내가 있던 미래에서 지금의 상황과 비슷한 일이 있었다.
동남아나 일부 서양 매니아들에게 먹히는 수준의 한류가 아니라, 말 그대로 전세계를 뒤흔들며 K-POP을 널리 알린 한 남자 아이돌 그룹.
내는 노래마다 빌보트 차트에 랭크 인 했음은 물론, 2년 연속 그래미상에 노미네이트 됐었으니 그들의 대단함이야 말할 필요도 없었다.
2년 전 전 세계를 휩쓸었던 강남 스타일의 싸이야 아쉽게도 글로벌 무대에서는 원 히트 원더로 남고 말았지만, 그 남자 아이돌 그룹은 진짜 글로벌 스타가 됐던 것.
그리고 그런 글로벌 스타 아이돌 그룹에게도 한국 남자라면 피할 수 없는 병역 문제가 다가왔는데.
‘그때도 초기에는 이런 반응이었지.’
-얘네 정도면 국위 선양 지리게 하는 건 팩트 아님?
-솔직히 콩쿨 수상자는 되는데 얘네는 왜 불가능한 거? 한국이나 서양이나 클래식은 그들만의 리그인데… 쇼팽 콩쿨 수상했다고 한국을 알게 된 사람들이 많겠음, 얘네 때문에 K-POP 접하고 한국 알게 된 사람들이 많겠음?
-대충 아시아권에서만 인기 좀 있다고 한류, 국위 선양 떠드는 거라면 몰라도, 얘네 정도면 인정 아님?
-까놓고 보내는 게 국가적 손해지. 얘들이 한국 이미지 올리는 이득이 천문학적 비용을 대신 하는데. 군대 가서 월 20만 원 받고 일하라는 게 웃길 지경.
정확하지는 않지만 기억을 최대한 떠올려 본 그때의 반응들이다.
지금 내 입대 문제를 놓고 그런 것처럼 호의적이었던 여론.
뭐라고 해야 하나.
언론은 물론이고, 국회에서도 병역법 개정에 대해서 떠들어 댔고.
각종 커뮤니티에서도 얘네 정도면 군대 빠져도 괜찮지 않냐는 여론이 생성됐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정작 진짜로 군대를 빼게 될 것 같으니까 한순간에 뒤집혀 버렸지.’
언제 그 아이돌 그룹을 옹호했냐는 듯.
커뮤니티를 비롯한 인터넷 여론이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국위 선양에 힘쓰고 K-POP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던 국민 호감 아이돌 그룹은 어느샌가 남의 나라 차트 1위했다고 군대 빼려는 어이없는 놈들이 되어 버리더라.
물론 여전히 그 아이돌 그룹의 군 면제를 바라는 이들도 존재하긴 했다.
하지만 군대 문제에 있어서 가장 핵심이 될 수밖에 없는 군필자들 사이에서의 여론은 급속도로 악화된 것이다.
‘놀라운 건 아니지.’
원래 여론이라는 게 사실 그렇다.
하루에도 몇 번씩, 손바닥 뒤집히듯 달라지기를 반복하곤 한다.
특히 군대라는 주제는 더욱 그런 면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한국 남자들의 역린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내가 국민 호감남일 때는 괜찮았다.
아마 지금은 군필들도 ‘선우진이라면 인정이지’ 따위의 말로 나를 응원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나 중요한 건 내가 실수나 잘못을 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냐다.
만약 내가 예기치 못한 일로 대중의 원성을 사게 될 일이 생긴다면, 그때도 내 군 면제에 대해 지금과 같은 반응일까?
장담하는데 그렇지 않을 거다.
언젠가의 아이돌 그룹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군대 간다고 어그로는 잔뜩 끌어 놓고, 정작 갈 때 되니 여론 움직여서 회피하는 놈’이 될 가능성이 컸다.
물론 어그로야 나는 원하지 않았던 걸 머스크 그놈이 폭로해 버린 거고.
여론을 움직이는 것도 내가 나서서 그런 게 아니라 알아서 그렇게 되어 버린 거지만.
대중의 입장에서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은 법이다.
특히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한테는 내가 그럴 수 있는 힘이 실제로 있다는 것만 눈에 들어올 거다.
여하튼.
무려 재벌집 딸이 대단한 선물을 준다고 해서 내가 기대를 너무 했나.
‘선물은 선물이긴 한데…….’
독이 든 성배에 가까웠다.
특히 가장 꺼려지는 건 만약 내가 이렇게 군대를 빠진다면, 내가 대중 예술에서의 성공을 통해 군대를 빠진 최초의 선례가 된다는 것.
이후로도 비슷한 케이스가 있으면 내 이름이 거론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선우진은 됐는데 얘는 왜 또 불가능?
뭐, 이런 소리가 나오는 게 싫었다.
결국.
톡, 토도독-
[나 - 통화 괜찮으신가요.]
저번에 받은 직통 번호로 박정후 부사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러자 오래 지나지 않아 걸려 오는 전화.
[선물은 어떠셨나요? 마음에 드시나요?]
이거 참.
이 군필 감수성 없는 재벌집 아주머니 보게.
* * *
[으음. 사실 저로서는 작가님의 생각이 괜한 걱정이 아닌가 싶기는 하네요. 아실는지는 모르겠지만, 바둑에서도 비슷한 케이스가 있었어요. 기존에 없던 병역법을 개정해서 예술 요원 혜택을 준 경우였죠.]
전 세대 바둑 최강자셨던 이창호 기사의 얘기다.
아무튼,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려나.
‘그건 그때 얘기고.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어요. 남들 흠 하나라도 더 찾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보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넘쳐난다고요.’
…라고 말하면, ‘그건 부사장님이 나이가 많아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고요!’라는 의미로 들리겠지?
그래서 대충 설명하고 넘어갔다.
선물은 고맙지만 정중히 거절하겠다.
예정된 대로 군 입대를 하겠다고.
“아마 부사장님이 여성분이셔서 잘 캐치하지 못하셨을 겁니다. 이건 군필들만 느끼는 그런 게 있거든요.”
[……?]
“흔히들 군필 감수성이라 부르는 그거죠.”
[저, 작가님도 아직 미필이시지 않나요……?]
“흠흠. 그런 게 있습니다.”
박 부사장은 여전히 납득하지 못한 것 같았지만, 받겠다는 사람이 싫다고 선물을 돌려보내겠다는데 뭘 어쩌겠나.
그래도 이대로 그냥 끝나면 섭섭할 것 같아 박 부사장에게 한 가지 질문을 했다.
[이동 통신 사업이요?]
“네. CM 헬로비전을 인수 후 아예 제대로 된 이동 통신사로 만들까 생각 중인데, 혹시 CM 측에서는 그런 시도를 하지 않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 해서요.”
내가 CM 헬로비전을 굳이 인수하려고 한 이유.
그건 바로 한국에 4번째 이동 통신사를 차리기 위함이었다.
다행히 제4이통사를 만드려는 건 내가 처음 하려는 것도 아니었는데.
이미 수차례나 제4이통사를 출범하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1조 원에 달하는 망 구축 비용을 충당할 재무 능력이 없다 판단되어 번번이 허가를 받지 못했다던데.
내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업계 내에서는 탄탄한 재정이 뒷받침하는 CM 헬로비전이 제4이통사가 되지 않을까 예측했다던데.’
결국 CM의 선택은 회사 매각이었으니.
그 이유가 궁금했던 것.
‘그런데 별다른 이유는 없고, 돈이 그렇게 크게 되지 않을 것 같아서라.’
이게 바로 박정후 부사장이 밝힌 이유였다.
뭐, 틀린 말은 아니었다.
현재 이동 통신사들의 매출 대부분은 가계 통신비가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정부의 통신 시장 개입으로 인해 관련 시장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어, 매출이 꽤 떨어지고 있다던데.
CM 입장에서는 그렇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사업 분야는 아니었을 거다.
다만, 내 경우에는 얘기가 조금 달랐을 뿐.
‘통신사가 필요해.’
스페이스 X에 투자하며 스타링크를 노린 것도 그렇고.
사업을 계속하면 할수록 통신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바로 망 사용료 때문이었다.
스웜이 발생시키는 트래픽이 점점 커지면서 한국의 통신사들에게 지불하는 사용료도 따라서 늘어나고 있다.
작년 기준으로는 50억 원 수준이었는데, 가입자가 점차 늘어나면서 올해에는 최소 100억 원대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것도 지금은 귀여운 수준인 게, 아마 수년 내로 스웜이 발생시키는 트래픽량이 지금의 10배는 우습게 뛸 거다.
‘10배가 뭐야. 수십 배는 되겠지.’
애초에 그러려고 시작한 사업이다.
여하튼, 그렇게 되면 망 사용료로 수천억 원을 지불해야 한다는 건데.
통신사들이 내 사업에 보태 준 게 뭐 있다고 내가 그 돈을 줘야 하나?
그럴 바에는 내가 통신사 차리고 말지.
‘그리고 시그마 캐피탈에서 물어온 이것도 있고.’
내가 저번에 인수한 미국의 VC, 시그마 캐피탈.
그곳의 대표인 알버트가 며칠 전 제안서 하나를 보내왔더라.
시장에 10억 달러 상당의 좋은 매물이 하나 나왔는데.
혹시 인수 생각이 있냐며 말이다.
그걸 확인해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미처 생각을 하지 못한 탓에, 내 회귀자 노트에는 적혀 있지 않았던 회사였는데.
대체 왜 잊고 있었나 의문이 들었을 정도였다.
알버트가 인수를 추천할 정도로 발전 가능성이 대단한 기업이자, 회귀자인 나한테는 훨씬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내가 여기 말고 경쟁사를 주로 이용해서 그런가? 아무튼. 얘네 때문에라도 제4이통은 꼭 출범시켜야지.’
분명 이 기업도 스웜처럼 미래에서는 한국 내에서 엄청난 트래픽을 생성시키게 될 거다.
실제로 한국에서만 이용자 수가 수백만 명은 족히 됐었으니.
그리고 내가 인수해 사업을 확장시키다 보면 수백만 명 수준에서 더욱 커질 거고.
‘트위치 TV. 인수 경쟁자가 구글이랑 아마존이라 이거지?’
듣기로는 구글과 아마존에서 원하는 인수 금액은 10억 달러 내외라던데.
나는 거기서 50% 정도는 더 쓸 의향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