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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도 잘하는 놈이 잘한다-115화 (115/267)

115화 이병 선우진…?

“충성!”

그렇게 경례를 하고 육군훈련소장을 뒤로 한 채 방을 나섰다.

꽤 유익한 만남이었다.

육군훈련소장과 나눈 대화 흐름을 정리해 보자면.

‘불편한 건 없으신가요?’

‘아직 1일차인데 불편한 게 있을 리가요. 그런데 이젠 생길 수도?’

‘하하. 그런 일 없도록 알아서 잘 조치하겠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특혜를 바라는 건 아니고요. 사실 장병들 처우가 개선돼야 튼튼한 안보가 탄생하는 거 아니겠어요?’

‘옳으신 말씀입니다. 하하.’

대충 이러했다.

사실 훈련병이 첫날부터 투 스타를 만난다는 상황이 남들이 보기엔 위화감이 강한만큼, 마냥 달갑지만은 않은 만남이긴 한데.

그래도 꼬투리 잡힐 구석은 만들어 놓지 않았으니, 괜찮을 거다.

언론에 퍼질 가능성도 없겠지만,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하더라도 그때 가서 ‘특혜를 제안받았지만 군인 정신으로 거절하고 나왔다’라고 대답하면 되는 일이다.

실제로 그런 것이 맞기도 하고.

‘뭐, 그렇다고 이렇게 거절했는데도 굳이 특혜를 준다는 걸 사양하지는 않겠지만.’

원래 뭐든지 알잘딱이 중요한 법이다.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

군인 양반들이 군대라는 곳에 갇혀 있다고 해서 그 정도 눈치가 없지는 않을 거다.

특히 별까지 단 양반들이면 그때부터는 군인보다는 정치인에 가까워진다.

자고로 정치인들이라 함은 강약약강의 표본.

자신들보다 힘 있는 사람들한테는 바짝 기기 마련인데.

나 정도면 어디 가서 힘에서는 뒤지지 않는 편이다.

근력 운동을 열심히 했거든.

여하튼 간에.

‘오! 첫날부터 메뉴가 괜찮은데.’

생활관으로 돌아와 보급품 지급을 받고.

저녁 때가 되어 식당으로 향했다.

또다시 먹게 된 짬밥.

최대한 긍정적으로 예비군 온 것처럼 짬밥도 버텨 보자 생각했는데.

[소세지야채볶음, 맛김, 깍두기, 미역국, 쌀밥]

메뉴가 퍽 마음에 들었다.

“아, 이런 걸 매일 먹어야 한다고?”

“와… 군대 온 거 이제야 실감 나네.”

그런데 이걸 보고 불평불만을 뱉는 동기 훈련병들.

쯧쯧, 우매한 중생들아.

군대에서 세 달만 지나 봐라.

오늘의 메뉴가 특식이란 걸 알게 될 테니.

“형, 형은 밖에서 맨날 비싼 것만 먹을 텐데, 군대 식단도 입에 맞으세요?”

“나? 에이, 나라고 매일 비싼 것만 먹나. 남들 먹는 것처럼 먹는데, 뭘. 가끔 중요한 자리에서나 비싼 거 먹는 정도야.”

“와, 진짜 대단하다. 형, 형이 대한민국 부자 중에 제일 멋있는 것 같아요.”

“맞아. 그래서 우진이 뉴스 나올 때마다 엄마한테 괜히 눈치 보이잖아. 이거 얘기하면 선우진도 반찬 투정 안 하는데 너도 주는 대로 먹으라고 하시겠네.”

메뉴도 군필자 기준 특식이었고, 아까 논산 앞에서 호두과자를 제외하고 아무것도 안 먹은 터라 식판을 싹싹 비웠더니.

이게 예상외로 동기 훈련병들에게 호감작을 한 결과를 낳았다.

그나저나-

“김 상병님, 저기 보십쇼.”

“와아, 시발. 쟤는 군복에 빡빡인데도 저 비주얼이네. 저번에 왔던 아이돌 걔는 군복에 머리 깎아 놓으니 별거 없던데.”

주목을 받는다는 건 때때로 고달픈 법이다.

어딜 가건 상관없이 시선을 끌게 되는 나라는 존재.

병사 식당인 만큼, 훈련병들만 이곳에서 식사를 하는 게 아니었는데.

식사를 하고 있던 기간병들이 다들 내 쪽만 보고 있었다.

사실 아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간부들의 제지로 금방 흩어지기는 했지만, 아까 생활관을 배정받자 여기저기서 나를 구경하기 위해 기간병들이 떼거지로 몰려오더라.

“훈련병들, 조교의 안내에 따라 소대 단위로 샤워장에 들어갈 수 있도록! 총샤워 시간은 입장부터 25분이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가진 샤워 시간.

‘애매하게 25분이 뭐야, 25분이.’

사실, 이건 이번 생에서 달라진 변화 중 하나였다.

원래 육군훈련소에는 첫날 세면도구가 지급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샤워를 허용하지 않는데.

이번에는 첫날부터 세면도구 지급은 물론, 샤워까지 허용, 거기에 내가 알기로는 15분으로 제한되었던 시간도 25분으로 늘어나 있었다.

훈련소를 끝마치기 전, 육군훈련소장에게 한번 말을 해 봐야겠다.

‘이게 제가 있어서 생긴 특혜가 아니라, 앞으로도 이러는 거 맞죠?’ 하고.

그러고 보니 육군훈련소에는 수십 년 전에 지어진 구막사와 최근 지어진 신막사가 있는데, 내가 그중 신막사에 배정받은 것도 우연은 아닐 거다.

예전 입대했었을 때에는 하필 신막사 바로 옆의 구막사라 신막사가 참 부러웠었는데 말이지.

“…….”

“…….”

샤워장 안으로 들어가기 전, 옷을 벗는 시간이 다가오자 왠지 모르게 주위가 조용해진다.

인간도 역시 동물이긴 한 건가.

내 동물적 감각이 지금 모두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고 있다고 말해 주고 있었다.

훅-

그렇다고 뺄 수도 없고.

그냥 당당하게 옷을 벗었다.

우선은 상의부터.

“오! 형, 운동 얼마나 하셨어요?”

“몸 미쳤네…….”

그러자 집중되는 시선.

사실 이걸 위해 입대 전 몇 주 동안 웨이트를 빡세게 조졌다.

3대 500쯤은 가볍게 치는 헬창들이 경호 팀에 한가득이라 트레이너도 필요 없었다.

살짝 배에 힘을 줘 복근을 선명하게 한 후.

그리고…….

훅!

아래까지 벗었다.

안 그러는 척 힐끔거리기만 하던 시선들이 이제는 아예 대놓고 나를 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당당했다.

“…와, 시발.”

“미친.”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감탄사들을 뒤로 한 채.

샤워장 안으로 향했다.

* * *

입대를 가장 실감 나게 하는 건 역시 첫날의 불침번이었다.

다행히 가장 편하다는 초번초로 배정받았는데.

사실 편하고 말고가 뭔 상관이 있겠나.

뭣 같은 건 여전히 뭣 같은 것일 뿐.

‘…….’

게다가 자대에서의 불침번과는 달리, 훈련소에서의 불침번은 가만히 선 채 하염없이 생활관 문만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 터라.

지루함은 더 컸고, 떠오르는 잡생각은 몇 배나 더 많았다.

내 총복무일은 639일.

원래 입대했을 때는 날짜가 좋아 638일이었는데.

두 번 가는 것도 모자라 하루 늘었다는 생각에 억울함이 배가 됐다.

“아저씨, 일어나요. 불침번 교대.”

“…아, 네. 감사합니다.”

그래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지루했던 훈련소 불침번 시간이 어떻게든 끝이 났고.

다음 번 초 훈련병을 깨운 후 교대를 완료했다.

그리고 마침내 누운 침상.

아무리 신막사라지만 침상형 생활관인 터라 누운 자리가 편할 리가 없었다.

보급품 3단 매트리스야 당연히 퀄리티가 좋지 않았고.

‘예전엔 이런 곳에서도 잘 잤었는데.’

확실히 내 삶이 여러모로 풍족해졌다는 게 실감 났다.

원래 모니터나 스피커, 침대 같은 것들이 역체감이 심하다고들 하지 않나.

예전에는 분명 딱딱한 바닥에서 대충 이불 깔고 잠들어도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었는데.

회귀한 이후부터는 수천만 원짜리 침대에서 자다가 침상 + 군대 매트리스에서 자려고 하니… 이거 원.

불편한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뚜벅-

딱딱한 바닥.

남자들 모인 곳 특유의 냄새.

그 사이로 들리는 군화 소리.

드르릉- 푸우-

아드득, 드득!

그래… 시발, 이게 군대지.

누군가는 이를 드극드극 갈아 대고, 누군가는 우렁차게 코를 골고.

어디선가는 계속해서 뒤척이는 소리가 들려오고.

라디에이터 관에서 박자 맞춰 들려오는 따닥거리는 소리가 거기에 어우러지니.

언젠가의 입대 첫날밤을 떠올리게 하는 지금이었다.

그때는 천장을 보며 앞으로의 막막함에 남몰래 눈물 한 방울을 흘렸었는데.

이번에는 그래도 눈물이 나오지 않으니, 발전했다고 봐도 되는 걸까.

‘발전은 개뿔.’

이딴 곳에 예전보다 조금 더 적응 잘한다고 발전은 무슨.

아… 내가 왜 그랬지?

갑자기 확 밀려오는 뭣 같은 기분.

과거의 선우진 개새끼야!

그냥 군대 뺐어야지!

진심 인터스텔라 마렵네.

.

.

.

딴- 딴- 따따따- 따따다다- 따다다다딴- 딴따따- 다다다다-

…아, 제발.

지겨운 기상나팔 소리.

군필자라면 PTSD를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는 그 소리에 절로 눈이 떠졌다.

하지만 어제 늦게 잠에 든 터라, 몸은 여전히 취침을 원하고 있었으니.

난 얼굴을 침대 깊숙이 파묻으며 더 잠을 청했다.

‘…으어.’

제발 저 기상나팔 소리가 멈췄으면 하는 기분.

30분만 더 잘 수 있다면 10억 원쯤은 낼 의향이 있었다.

딴따다다다 다다다다단-

하지만 애석하게도 기상나팔은 끊기지 않았고.

이제 정말로 눈을 떠야 한단 생각이 들 때쯤.

“선우진 이병! 뭐 하고 있어!”

“…으어?”

“으어? 이 자식이 빠져 가지고, 퍼뜩 안 일어나?! 여기가 아직도 사회 같아?!”

내 고막을 뒤흔드는 누군가의 호통 소리.

“네가 밖에서나 선우진이지. 여기서는 이등병이야, 인마!”

…시발, 좆 됐다!

그런 심정에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이, 이병! 선우진!”

당연히 관등성명도 함께했고… 어?

잠깐만.

“시발?”

나 이등병 아니잖아?

정신을 차리고 앞을 보니 보이는 상병 한 명.

계급장 옆에 있는 명찰에 써 있는 이세진이라는 이름.

“죽을래? 아오, 진짜 이등병 때로 돌아간 줄 알았네.”

내 말에 씨익 웃고는 실실거리기 시작하는 이세진.

나랑 동갑내기 맞맞후임으로 50일 전부터는 그냥 편하게 친구로 지내던 사이였다.

이세진이 부럽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전역 날이니 장난 좀 친 거지. 아, 개부럽다. 나는 전역 언제 하냐?”

“언제 오긴. 130일 남은 짬찌가 어디서 전역 타령이야?”

그랬다.

오늘은 바로 2016년 1월 9일.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날.

바로 나의 전역 날이었다.

전역자 대부분이 전역 날 시원섭섭한 감정을 느낀다던데.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마냥 기쁘지만은 않은 기분.

물론 1회차 때의 얘기였고, 지금은 전혀 아니다.

“흐흐. 형은 갈 테니 열심히 뺑이 쳐라.”

음하하하!

그냥 겁나 좋아.

이세진의 개떡 같은 장난으로 하루가 이상하게 시작됐지만.

그런 것따위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오늘은 회귀 첫날 이후로 두 번째로 기쁜 날이었으니.

전역-!

전역이다!

“흐하하하! 잘 있어라, 짬찌들아!”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않으며, 생활관 문을 열고 복도에 대고 크게 외쳤다.

* * *

“부대 차렷! 선우진 병장님께 대하여- 경례-!”

“추웅-성!”

S급 병장들만 받을 수 있다는 부대원들의 전역식.

“우진아, 잘 가라!”

“밖에서도 잘 지내고!”

“다음에 휴가 나가면 밥 산다는 약속 잊지 마라.”

배웅을 위해 위병소 앞까지 찾아온 그들과 인사를 나눴다.

“그래. 수천만 원짜리 위스키가 어떤 맛인지 알려 주마. 대신 군 생활 내내 선우진 병장님이 잘 챙겨 주셨다고 후기 남기고.”

“응. 악플만 겁나 달 거임.”

“어, 김앤장 애들 시켜서 바로 고소 때림.”

스쳐 지나가는 1년 9개월의 추억… 이야 물론 3초 만에 사라졌다.

위병소를 나와 조금 더 걸어가자 보이는 수많은 인파.

와아아아-!

나를 보고 환호하는 팬들이 보였다.

전역 날과 소속 부대가 알려진 만큼 전역식을 위해 찾아오신 것.

그래도 기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미리 엄포를 놔둔 덕이었다.

팬들이 오는 거야 막지 않겠다만, 기자들이 와서 번거롭게 했다가는 어찌 될지 한번 기대해 보라고 말이다.

여하튼.

“추웅-성!”

언제부턴가는 치읓과 시옷 발음만 대충하던 경례였지만.

오늘만큼은 제대로 각 잡고 충성을 외쳤다.

살면서 충성을 마지막으로 외치게 될 하루였으니까.

그러자 귀를 때리는 함성과 박수갈채.

잠깐의 팬 미팅을 가지며 찾아온 팬분들과 인사를 나눴다.

“고생 많으셨어요.”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는데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와 주셨는데.

생각보다 내 소설을 갖고 와서 사인을 받으려는 분들이 많아 놀랐다.

‘하긴. <마지막 마법사> 영화가 초대박을 쳤으니.’

덕분에 책 판매도 훌쩍 뛰었을 정도.

병장 선우진은 한 달에 149,000원을 월급으로 받았지만, 그와 동시에 작가 선우진은 한 달에 인세와 기타 등등으로 수백억 원을 벌던 재밌는 상황.

물론 그런 상황도 오늘로 끝이었다.

“오! Sergeant. 선!”

“에드, 잘 지냈어요?”

“그럼요.”

팬 미팅을 끝내고 올라탄 리무진.

전역 날이라 기분 좀 내라고 경호팀장 에드가 가져온 차량이었다.

안녕, 두돈반.

안녕, 레토나.

안녕, 코란도.

이제 너희를 탈 일은 없을 거야.

“바로 본가로 갈까요?”

“네. 그래 주세요.”

2회차 군필 선우진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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