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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도 잘하는 놈이 잘한다-126화 (126/267)

126화 선우진이 택했던 사나이

Whoooooaaah-!

맨유와의 경기는 초반부터 크리스탈 팰리스가 압도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루이 반 할의 맨유는… 쓰레기였다.

아니, 반 할의 맨유라기보다는 내 옆에 있는 퍼거슨 감독이 떠난 이후의 맨유가 모조리 쓰레기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지금 맨유의 실패를 모두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에 이어 반 할 감독의 전술적 역량이 부족해서라고 말하겠지만… 글쎄.

적어도 앞으로 5년 후의 미래까지를 알고 있는 나는 그게 사실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

모예스도 그러했고, 지금의 반 할도 마찬가지고, 이후에 지휘봉을 잡게 될 무리뉴도, 그다음에 맨유를 맡은 솔샤르 또한 맨유를 성공으로 이끌지 못했다.

그동안 그들이 얻은 유의미한 성적이라고는 유로파리그의 우승컵과 1위와의 큰 격차로 리그 2위를 두 번 정도 차지했다는 게 전부였다.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맨유의 모습은 솔샤르가 이끌던 21-22 시즌의 맨유였는데.

바로 전 시즌에 리그 2위를 달성했던 그들은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리버풀과의 홈경기에서 0 대 5로 굴욕적으로 패배하며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아마 시즌이 끝나면 솔샤르 감독 또한 경질되지 않았을까.

여하튼.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런 거다.

질겅- 질겅질겅-

지속적으로 우측에서 들리는 껌 씹는 소리.

“흠.”

그리고 그 반대쪽에서 들려오는 불만 가득한 비웃음 섞인 콧숨 소리.

지금도 그렇고, 내가 있던 미래에서도 많은 사람이 맨유의 실패 이유를 내 왼쪽에 있는 우드워드에게만 전가하려 했었지만…….

모르겠다.

EPL 구단을 인수한 후, 그 구단을 이끈 지도 벌써 3년차가 된 지금의 나는 조금 다른 소리를 하고 싶다.

그건 하나의 클럽이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나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였다.

Ohhh-! Oh-!

We love you- We love you-

When you play, we follow!

We support the palace- the palace-

And that’s the way we like it-

지금 셀허스트 파크를 가득 수놓는 크리스탈 팰리스의 응원가, ‘we love you’.

저걸 목 놓아 부르는 저 이글스들이 팰리스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물론, 맨유의 서포터들 또한 그럴 것이다.

그들이 맨유를 응원하는 이유는 맨유를 사랑하기 때문이고, 그렇기에 팀이 이기고 있을 때에는 엄청난 환호를, 보기 힘든 경기력을 보여 줄 때는 비난에 가까운 비판이 쏟아지는 거였다.

하지만 과연.

맨유의 서포터들이 그러는 것처럼 맨유에 속한 모든 이들이 구단을 사랑한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구단주부터 시작해 단장, 이사회를 비롯한 운영진, 풋볼 디렉터, 스카우트 팀과 의료진.

그리고 감독과 그의 코칭스태프, 필드 위에서 뛰는 선수단까지.

그들 모두가 맨유라는 구단의 성공을 위해 한마음 한뜻으로 노력하고 있을까?

단언컨대, 아니었다.

당장 내 양옆의 두 사람이 맨유 내에서 벌이는 권력 싸움부터 시작해서.

팀의 승리보다는 자신의 개인 기록이 더 우선인 선수들.

앞으로의 시즌 계획보다는 자신의 경질 여부가 더 중요한 감독 등.

맨유라는 구단에는 균열이 있다.

그것도 여러 개의 균열이.

아마 퍼거슨 감독의 은퇴 이전에도 있었을 것이다.

다만, 한 명의 위대한 감독과 그가 오랜 시간 쌓아 올린 빛나는 명성으로 인해 보이지 않았을 뿐.

[워후-! 더 브라위너의 기습적인 슈팅! 골대 옆을 스쳐 지나가며 원정 팬의 가슴을 서늘하게 합니다!]

[위험한 상황이었어요. 슈바인슈타이거가 더 브라위너의 마크를 놓쳤거든요? 제대로 견제하지 못한 더 브라위너는 언제 어디서든 유효 슈팅을 때릴 수 있는 선수입니다!]

하지만 크리스탈 팰리스는 다르다.

내가 구단을 인수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재밌게도 구단 스태프들의 뒷조사였다.

셜록 홈즈의 나라답게 영국에는 엄청나게 많은 합법적 탐정과 사설 정보 기관이 존재했는데.

나는 막대한 돈을 들여 구단에 속한 모든 스태프를 전수조사 했다.

그 과정에서 꽤 많은 스태프가 일자리를 잃었다.

누군가는 과거의 비리를 이유로, 누군가는 위약금을 동반한 서로 간의 상호 해지로.

그렇게 구단에 헌신할 생각으로 가득한 몇몇 정도만이 팰리스에 남게 됐고, 나는 남은 자리를 팰리스에 대한 열정 가득한 스태프들로 채워 넣었다.

팰리스가 자리한 사우스 런던은 꽤 큰 지역이었다.

그곳에는 팰리스에 대한 마음과 그를 뒷받침해 줄 능력이 있지만, 그간 팰리스의 재정 상황으로 인해 채용하지 못했던 인력이 여럿 있었다.

물론 팰리스 또한 완벽한 구단은 아니다.

어딘가에, 내가 모르는 곳에 균열이 존재하리라.

하지만 지금의 맨유와 팰리스에 차이가 있다면, 위대한 퍼거슨 경이 그 균열들을 덮었듯, 나 또한 위대한(?) 돈의 힘으로 그것을 모두 덮었다는 것이었다.

[모하메드 살라-! 달려갑니다! 저번 시즌 세리에 A의 피오렌티나로 임대를 떠나 거기서 제대로 잠재력을 터뜨린 선수인데요.]

[비엘사 감독의 축구에 딱 맞는 선수죠! 엄청난 속도의 스피드 스타! 마이클 캐릭이 따라붙어 보지만 속도의 차이가 확연합니다!]

그렇기에 지금의 상황 또한 전혀 놀랍지 않다.

국내 스포츠란에서는 그런 뉴스도 나오고는 하던데.

[‘전통 강호’ 맨유 vs ‘신흥 강자’ 팰리스, 혈투 시작!]이라던가 뭐라나.

그 기사를 쓴 기자가 어떤 경기를 기대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다.

더 이상 맨유는 전통의 강호가 아니었다.

그저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하고 아직도 그때만을 좇고 있는 약팀일 뿐.

촤아아악-!

반면, 크리스탈 팰리스는 환상적인 전반기를 보내며 리그 2위와 승점 차를 8점으로 벌린 리그 1위의 클럽.

그런 강팀이 자신들의 홈에서 리그 6위의 팀을 상대하는 건…….

언제나 그랬듯, 쉬운 일일 뿐이다.

[루크 쇼가 발을 뻗어 봤지만, 살라의 크로스! 페널티 박스 안쪽으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와우-!]

[Goal, goal, goal, goal—! 환상적인 골입니다! 즐라탄의 전매특허죠! 몸을 비틀며 쏘아 낸 바이시클 킥이 그대로 2점차를 만들어 냅니다!]

“@#[email protected]#%-!”

옆에서 들려 온 알아듣기 힘든 소리.

2 대 0.

전반 17분의 스코어였다.

* * *

하프타임.

잔디 상황을 위해 피치에 물이 뿌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경기장 한편에서는 일단의 무리가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Whoooaaaah-!

그곳을 향해 쏟아지는 이글스의 환호.

말해 무엇하나.

크리스탈 팰리스의 또 하나의 자랑.

EPL 유일의 치어리더 팀이었다.

Phweeeeeeeee-!

한차례의 공연이 끝나고.

치어리더 팀을 향해 관중들이 휘파람 소리를 쏟아 내고 있었다.

선수들이 이제 피치 위로 올라와 몸을 풀기 시작했고.

아직 후반전이 시작하려면 시간이 꽤 남은 터라 장내 아나운서가 치어리더 팀에게 다가가 인터뷰를 시작했다.

오늘은 또 하나의 이벤트가 예약되어 있는데.

“워-!”

“헤이, 저기 봐.”

“오. Bloody hell! 저렇게 또 한 명의 친구가 지옥행을 자처하는군.”

“No! 하지 마! Bro! Trust me, Don’t do that(날 믿어, 하지 마)!”

그 이벤트의 조짐을 파악한 몇몇 관중이 입을 모아 무어라 떠들고 있었다.

장내 아나운서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치어리더 팀장, 에밀리.

그녀의 뒤로 양복을 입은 한 명의 남자가 몰래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뒤로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데.

그랬다, 바로 프로포즈였다.

저 남자의 이름은 해리.

구단에서 일하는 직원 중의 한 명으로 일주일 전 내게 하프타임 동안 이런 일을 해도 되냐 물었고, 당연히 나는 허락했다.

그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우선 구단의 직원들끼리 맺어지는 걸 구단주로서 당연히 축하해 줘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고.

“Oh, my…….”

저기 감격한 얼굴의 에밀리라면 몰라도, 현재 뒤에 숨겨 놨던 반지를 꺼내 보여 주고 있는 해리가 팰리스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라는 이유가 가장 컸다.

해리 호클리라는 풀 네임을 가진 저 남자의 전 직장은 PWC.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회계 법인으로 세계 최대의 수익 규모를 자랑하는 큰 회사였다.

해리는 그런 PWC 런던 오피스에서 무척이나 젊은 나이로로 파트너급 회계사가 되었던 사람으로, 현재 팰리스의 재정적 운영을 담당하는 재무 담당 이사였다.

팰리스가 위치한 런던 이남 지역에서 자란 그를 막대한 연봉을 주고 스카우트했던 것.

내 왼쪽의 에드 우드워드도 그렇고, 그전까지 맨유의 CEO 자리를 맡았던 데이비드 길 또한 회계사 출신이었는데.

나는 해리를 그들처럼 구단의 CEO로 키울 생각이었다.

지금이야 구단이 굴러가는 대부분의 것에 내가 관여하고 있다지만, 언제까지나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Phweeeeeeeee-!

다시 쏟아지는 휘파람 소리.

에밀리가 해리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였다는 뜻이었다.

서로를 껴안으며 기뻐하는 둘.

해리도 그렇고, 에밀리도 구단 내 평판이 참 훌륭한 좋은 사람들이다.

다만 해리의 경우는 저런 능력에도 작은 키와 썩 뛰어나지 않은 외모로 30대 후반인 지금까지 결혼을 못 하고 있었는데.

으음, 일부러 구단의 일정을 조정해 해리와 치어리더 팀들이 마주칠 기회를 많이 만들었다는 건 나만의 비밀로 간직해 놓자.

그래도 그중 가장 성격이 좋은 에밀리와 맺어졌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인 일이었다.

어쨌거나.

[멤피스 데파이가 몸을 풀고 있습니다! 교체 명단에만 이름을 올렸던 그인데, 반 할 감독이 교체 카드를 빼들었군요!]

[소문이 무성한 선수죠? 맨유의 새로운 7번입니다. 일명 ‘선우진이 택했던 사나이’! 무려 총 4,800만 파운드의 금액에 맨유로 이적해 온 데파이입니다.]

우우우우-!

장내 아나운서가 멤피스 데파이의 출전 예정을 알리자, 경기장 곳곳에서 야유가 쏟아졌다.

데파이에게 달려들었던 맨유와 맨시티, 첼시가 그렇듯이.

아직도 크리스탈 팰리스의 서포터들 또한 내가 그를 원했다고 알고 있었다.

그를 사들이지 못했기에, 더 싼 가격이면서 비슷한 롤을 일부나마 소화할 수 있는 같은 한국인인 손흥민을 사 온 거라 생각하는 이들도 여럿 있던데.

이미 그에 대한 대답을 아까 전 촬영해 뒀다.

<웬 이글스 데어>에 방영될 장면으로, 경기 시작 전 구장의 준비 과정을 함께 찍어 오늘 경기가 있기 전의 내용이란 걸 확실히 해 뒀다.

[과연 그 값어치를 해낼 수 있는 선수일까요? 반 할 감독은 물론, 데파이 본인도 자신감에 차 있습니다마는… 그래도 4,800만 파운드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죠!]

[맞습니다. 지난 시즌 EPL 리그 베스트, 발롱도르 23위에 랭크됐던 더 브라위너의 이적료가 4,000만 파운드였죠. 그보다 더한 활약을 네덜란드의 어린 청년이 해낼 수 있을는지!]

[더 브라위너의 이적료는 당시 그의 시장가치를 생각하면 꽤 과한 금액이었죠. 물론 그 이상의 가치를 더 브라위너가 보여 줬지만요.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시면 어떨까요? 4,800만 파운드의 7분의 1. 700만 파운드. 팰리스는 제이미 바디, 리야드 마레즈, 안토니 마샬을 사 오는 데 그만한 돈을 썼습니다. 데파이가 그들 개개인보다 20배 더 비쌌다는 소리죠!]

그리고 또 하나.

아까 막간을 틈타 박지성 선수를 통해 퍼거슨 감독에게 한마디 말을 전달해 달라 했는데.

질겅질겅-

“멤피스를 자네가 원했다는 게 사실인가?”

“으음, 글쎄요. 스카우트 보고서를 받아 본 적은 있습니다. 제 스카우트 팀 중 한 명이 말하길 쓸 만한 영입이 될 거라더군요.”

“…쓸 만한? 그러면 이적 제안을 직접 넣었다는 얘기는 뭐지? 우드워드 저놈이 그러던데.”

“하하. PSV 에인트호번에서 제가 그랬다던가요? 그것참 몹쓸 구단이네요. 남의 정보를 막 팔아 버리고.”

“흥!”

내 말에 돌아온 퍼거슨 감독의 코웃음 소리.

뭐, 나도 말을 저렇게 했지만 이적 제안을 받은 구단이 그 제안을 빌미로 다른 구단과 협상에 들어가는 게 축구계에서 흔하다는 건 잘 알고 있다.

아무튼.

“말씀하신 대로 이적 제안을 넣은 건 사실입니다. 잠재력이 꽤 있다고 봤거든요. 하지만 지금 당장 4,000만 파운드 이상의 가치가 있냐고 봤냐면은… 글쎄요. 오늘 직접 경기를 보시면 아시게 되지 않을까요?”

박지성 선수에게 전해 달라고 한 말은 그거였다.

오늘 우드워드를 통해 맨유와 맺은 계약은 연장 타임까지 빠짐 없이 퍼거슨 감독과 우드워드, 박지성 선수가 경기를 관람하는 것.

그런데 그건 생각해 보니 너무 잔인할 것 같아서.

후반전이 시작되고, 퍼거슨 감독의 혈압 수치가 위험 수준이 되기 전에 언제든 경기장을 미리 빠져나가도 좋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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