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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도 잘하는 놈이 잘한다-156화 (156/267)

156화 돈나무를 찾아서

“다음에 또 봅세. 시간을 많이 못 내서 미안하군.”

“아닙니다. 한창 바쁘실 때인데요.”

2시간가량의 만남.

트럼프가 시간을 못 내 미안하다고는 하지만, 이제 막 미합중국 대통령이 된 그에게 있어 방금의 2시간이 얼마나 빼기 힘들었을 시간이었는지는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트럼프와 헤어지기 전, 그의 수행원들이 나를 보는 표정이 꽤 묘했는데.

이제 막 대통령이 되어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된 트럼프와 2시간이나 독대한 상황이 그들에게는 신기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것도 미국인이 아니라 외국인인 나였으니 더욱 그랬을 테고.

‘대놓고 트럼프와 내가 친하다는 게 알려지는 건 그리 좋을 게 없지만… 그래도 저렇게 알게 모르게 소문이 퍼지는 건 나쁠 게 없겠지.’

중국에서처럼 대놓고 ‘느그 서기 광둥성 살제?’ 같은 걸 시전할 수는 없겠지만.

‘흠흠, 들리는 소문으로는 대통령 각하와 친한 관계시라던데……?’

‘도날드… 아! 이런, Mr. 프레지던트와 제가요? 하하. 글쎄요.’

그래도 뭐 저런 것 정도쯤은 가능하게 될 테니 말이다.

‘4년짜리 시한부 권력이긴 하지만…….’

또 모를 일이다.

내 기억상에서 다음 대 대통령이 되는 건 민주당의 조 바이든.

당연히 몇 년 내로 그에게 끈을 대어 놓는 건 필수적으로 해야 할 일이긴 했다.

하지만 지금껏 봐 왔다시피 내가 아는 미래대로 전부 그렇게 되는 건 아닌 터라.

물론 미합중국 대통령과 같은 것은 내가 일으키는 나비효과 정도로는 영향을 끼치기 힘들 만큼 굵직한 흐름이었지만… 글쎄.

누가 또 아는가.

4년 후의 내가 혹시 미국 대통령 선거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만한 거물로 성장해 있을지?

가령, 민주당에게 대권을 빼앗길 위기의 트럼프(혹은 공화당)를 구원해 줄 수 있을 만한 그런 거물로.

뭐… 사실 그러는 것보다 적당히 바이든으로 방향을 돌리며 철새 짓하는 게 더욱 쉽고 편하긴 하지만 말이다.

아직 먼 미래의 일이니 지금으로서는 그저 생각만 해 볼 뿐이다.

여하튼.

“오랜만입니다.”

“보스!”

써밋-MGM 엔터.

오랜만에 와서 그런가, 모르는 얼굴들이 한가득했는데.

‘커지긴 엄청 커졌네…….’

이렇게 보니까 써밋-MGM 엔터의 규모가 엄청나게 성장했다는 게 확 실감이 났다.

예전 써밋 엔터 시절에 인수할 때만 해도 총직원들이 다 합쳐서 5~60명 정도였었는데.

지금은 거의 그 6배가 넘었다.

MGM을 인수한 데에다, 추가적으로 확보한 인력들이 많다 보니 어마어마한 규모가 되어 버린 것.

물론, 그렇게 커진 만큼 써밋-MGM의 자체적인 역량 또한 늘어났다는 게 고무적인 점이었다.

“영화 잘 봤어요. 한국에서도 흥행이 엄청났던 거 아시죠?”

“하하. 모두 보스 덕분이죠. 들으셨죠? 브라이언 그놈이 보스 이름 대니까 꼼짝도 못 하고 촬영에만 집중했던 거.”

트렌트가 말한 브라이언은 유주얼 서스펙트와 엑스맨 시리즈 등의 감독을 맡았던 브라이언 싱어를 말하는 거였는데.

촬영 초기에는 잦은 지각으로 제작진들과 마찰이 여러 번 있었다고 한다.

브라이언 싱어는 그냥 해 오던 대로 해 온 거였겠지만, 나의 영향으로 빨리빨리 문화가 정착된 써밋-MGM 엔터의 입장에서는 그 모습이 달갑지 않을 수밖에 없었던 것.

뭐, 그래도 해고까지 가지 않고 잘 해결됐다던데.

그 과정에서 내 이름을 대도 되겠냐는 트렌트의 물음이 있어 그래도 좋다고 했었다.

처음에는 아무리 내가 미니 메이저 영화사의 오너라고는 해도 브라이언이 자신도 할리우드의 오랜 거물이라며 코웃음을 쳤었다던데.

마침 그때쯤 브렉시트가 터지면서 갑자기 태도가 뒤바뀌었다고 한다.

내가 투자 한 번에 수백억 달러를 벌어들였다는 건 미국, 특히 내 주요 무대 중 하나인 할리우드에서 엄청난 뉴스거리였으니 말이다.

거기에 내가 추가적으로 MGM을 인수해 써밋-MGM 엔터로 합병시키면서 회사 또한 메이저 영화사 반열에 올라 버리기까지 했으니.

그때부터는 브라이언의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더라.

지각은커녕 촬영장을 일찍 찾아 밤샘 촬영까지 하면서 제작 기간을 최대한 짧게 가져가려고 했다던데.

트렌트가 과연 내 이름을 대면서 어떤 말을 한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에이, 월드 박스오피스 10억 달러를 넘기는 게 어떻게 모두 제 덕분입니까? 다 트렌트를 비롯한 써밋-MGM의 모두가 고생해 준 덕분이죠.”

그렇게 브라이언 싱어가 감독을 맡아 세상에 나온 <보헤미안 랩소디>.

내가 기억하는 원래의 성적인 9억 달러보다 더 높은 11억 달러의 월드 박스오피스를 달성했는데.

그중 1억 달러가 모두 한국 박스오피스일 정도로 국내에서도 높은 흥행을 기록했다.

제작비에 4,500만 달러, 홍보비에 1억 달러를 썼으니 영화 하나로 10억 달러 조금 안 되는 돈을 벌어들인 것.

‘게다가 내 기억보다 높은 흥행을 기록했다는 건…….’

써밋-MGM의 제작 및 배급 역량이 기존 <보헤미안 랩소디>를 프로듀싱 했던 당시의 20세기 폭스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했다.

특히 CG 기술만큼은 할리우드 최고라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었는데.

써밋-MGM이 거느리고 있는 VFX 스튜디오가 받은 아카데미 시각효과상만 벌써 3개가 넘었다.

그러다 보니 경쟁사인 파라마운트나 소니 등에서도 가끔 외주 형식으로 우리 스튜디오의 VFX 의뢰를 넣어 올 정도.

잘은 모르지만 특히 국내 출신의 많은 기술자가 써밋-MGM의 VFX 스튜디오에서 활약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투입 자본 및 인력 대비 결과물이 훌륭해 가성비 좋다고 소문난 국내 출신 기술자들이었는데.

그런 이들이 국내의 SW 프로덕션을 통해 영입되고, 그중 선별된 몇몇이 할리우드로 넘어와 써밋 엔터의 자본과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기존 기술자들과 협업하면서 시너지를 낳고 있다고 한다.

특히 한국 출신 기술자들의 엄청난 열의와 노력에 기존 인력들도 큰 자극을 받고 있다던데.

‘하긴… 한국 다른 회사에서는 월 3~400에 추가 수당 없이 밤낮으로 갈리던 사람들이… 미국 와서는 시간당 임금으로 대충 계산해도 3~4배 더 많이 받아 가고 있으니. 눈 돌아가서 열심히 할 만하지.’

가끔 얘기를 들어 보니 그 덕에 국내 업계 관련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런 얘기도 도는 모양이었다.

선우진 따라 미국 가면 바로 돈방석이라고.

사실 미국의 기준에서는 정당한 대가일 뿐인데도 말이다.

“기존에 진행하던 애니메이션 쪽은 이만 정리하는 게 좋겠어요.”

“으음. 역시 그렇게 되는군요. 알겠습니다.”

하지만 써밋-MGM이 마냥 승승장구하는 건 또 아니었는데.

제대로 된 애니메이션 제작사를 만들기 위해 수십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음에도, 여전히 이렇다 할 결과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기존 제작사들이 오랜 세월 동안 쌓아 온 역량과 노하우를 단순히 돈으로 따라잡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것.

어떻게 보면 써밋-MGM의 유일한 실패 사례라 볼 수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내게서 애니메이션 쪽 사업 철회를 통보받는 트렌트의 얼굴이 어두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얼굴은 이어진 내 말에 곧바로 괴상망측하게 변해 버렸는데.

“내년부터는 대신 드림웍스가 써밋-MGM에 편입될 겁니다. 배급 또한 써밋-MGM에서 맡게 될 거고요. 올해로 폭스와 맺은 드림웍스의 배급 계약이 종료되니까요.”

“…예? 드림웍스요? 제가 아는 그……?”

애니메이션 쪽 사업을 철회하라는 통보를 받자마자, 드림웍스가 써밋의 것이 될 거라는 소리를 들어 버린 것.

“예. 조만간 인수 협상 보도가 언론에 발표될 겁니다. 협상이 며칠 전에 끝났고, 불발 가능성도 있었던 터라 미리 말씀드리지는 못했네요.”

사실 컴캐스트에 빼앗길 뻔도 했다.

내가 브렉시트 건에 집중한 사이, 컴캐스트가 기습적으로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인수를 시도했던 것.

다행이 예전 박 부회장에게 사들였던 1.5억 달러 어치의 지분이 내게 있어, 그것과 몇 명의 이사회 임원들을 설득한 끝에 컴캐스트의 인수를 저지하기는 했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이번 인수에서 조금 더 높은 금액을 쳐줘야 했었으니.

최종적으로 주당 50달러, 총 46억 달러(약 5조 원)에 인수하기로 합의를 마칠 수 있었다.

‘요즘 돈 쓸 일만 엄청 많은 것 같네.’

이렇듯 사람 마음이란 참으로 간사했다.

브렉시트에서 900억 달러 정도, 미국 대선 여파를 통해 160억 달러.

그리고 미래차 공매도 건에서 지분은 지분대로 챙기고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인 게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말이다.

이럴 때 쓰는 격언은 아니겠지만,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이번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인수도 그렇고, 조만간 있을 AMD 인수, 1, 2년 후에 있을 21세기 폭스 인수에 나갈 돈을 생각하니… 이거 원.

아까워 죽겠단 말이지.

결국 그렇게 쓴 돈이 나중에 더 큰 이득으로 돌아올 것임을 알면서도 그렇게 느껴진다.

‘어디서 과일 대신 돈이 열리는 나무 같은 거 없나?’

물론 그런 게 이 세상에 있을 리가 없다.

…그러면 뭐 어쩌겠나.

그런 게 없으면 만들어야지.

“안녕하세요. Satoshiisgod… 맞죠?”

“아, 그러면 그쪽이 manfromthefuture… wait. 잠시만요. 얼굴이 너무 익숙한데?”

언젠가 비트코인과 관련된 영어권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다 누군가가 쓴 글에서 그 통찰력에 놀란 적이 있었다.

Satoshiisgod, ‘사토시는 신이다’라는 의미의 ID.

그때 이후로 그 ID를 팔로우 해 놓은 후 올라오는 게시글들을 쭉 확인했었는데, 가장 최근 게시글이 가상화폐 거래소를 만드려고 계획 중이라는 것이었다.

그걸 보고 내가 그 거래소에 투자할 수 있겠냐 문의를 보냈다.

지난 몇 년간 댓글 등을 통해 교류했던 터라 서로 간의 신뢰가 어느 정도 있던 상태였고.

마침 그가 사는 곳도 캘리포니아였던 터라, 이번 기회에 직접 만나 투자와 관련된 얘기를 나눠 보고자 했다.

그렇게 성사된 게 지금의 만남이었는데.

“잠깐… 잠깐… Holy fuck! 당신! 그 사람 아니에요? 우진, 우진 선! 맞죠?”

처음에는 날 보고 긴가민가하던 얼굴이 지금은 확신과 함께 놀람으로 가득했다.

“사람들이 그렇게 절 부르기는 하죠. 그게 제 이름이기도 하고요.”

“이런 미친! 잠깐만, 그러면 지금까지 나하고 쭉 얘기했던 게 당신이었다고요? 그럼 그 허세들이 모두 진짜였… OMG.”

“하하. 허세요?”

가끔씩 해당 비트코인 커뮤니티에서 놀다가 코인으로 큰돈 벌었다면서 남들 무시하고 돈 자랑질하는 종자들을 몇 번 참교육해 준 적이 있었다.

내 전세기 사진을 찍어서 보내 준다거나, 슈퍼카들이 즐비한 차고를 인증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입을 다물게 하고는 했다.

사실 내가 보기에도 그런 내 커뮤질(?)이 추하기도 해서 가끔 글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때나 하는 일이었는데.

아마 그걸 상대는 어떻게 사진을 구해 와서 허세를 부리던 것으로 여겼었나 보다.

실제로 커뮤니티 내에서도 내가 엄청난 부자인 게 사실이냐, 조작이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었고.

어쨌든.

“이름이 크레이그라 했죠?”

“네. 크레이그 넬슨. 젠장, 죄송해요. 손 떨림이 멈추지를 않네요.”

긴장한 건지, 크레이그의 떨리는 손과 악수를 마친 후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자 연신 나를 힐끔대면서 계속 ‘와, 와’거리는 크레이그.

“솔직히 투자를 하겠다고 해서 사기꾼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아니, 물론 우리가 몇 년 동안 서로 교류한 건 맞지만… 그래도 모두 인터넷 세상 속에서의 얘기였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제가 만들려는 거래소에 1,000만 달러를 투자하고 싶다고 하니까요. 저는 정말로 신종 사기인 건지 아니면 또다른 허세인 건지 고민했거든요. 그런데 그게 모두 진짜였다니…….”

흠흠, 사실 내 금전 감각이 남다르긴 했다.

1,000만 달러를 말한 것도 너무 많이 부르면 아예 안 믿어 버릴까 봐 최대한 축소한 거였는데.

여하튼.

내가 괜히 크레이그가 만들려는 거래소에 투자하려는 게 아니었다.

일단 그간 커뮤니티에 올린 게시글들을 통해 봐 왔던 통찰력도 그렇고, 코딩 실력 또한 엄청난 수준인 그였는데.

실제로 그가 만들겠다는 거래소의 코드(물론 핵심적인 부분은 제외된)를 받아 봐 휘하 개발자들에게 검토를 맡겼는데.

많은 부분이 지워져 있어 확신할 수는 없지만, 현재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실력의 코더임이 분명하다며 당장 영입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을 정도였다.

물론, 정확한 건 크레이그와의 계약이 성립되고 나서 여러 번 검토를 거쳐 봐야 알 수 있겠지만.

그래도 그가 단순한 어중이떠중이가 아님은 확실했다.

어쩌면 그가 이제 막 만들려고 한다는 거래소가 내가 있던 미래에서는 꽤 큰 규모의 거래소로 성장했었을 수도 있었다.

‘이름이… 바이비트였나? 흠 해외 거래소라고는 바이낸스랑 FTX밖에 몰라서 잘 모르겠긴 한데.’

뭐, 그게 아니더라도 내가 그렇게 만들면 그만이다.

아무튼, 이름은 나쁘지 않다.

바이비트라.

직관적이고 좋네.

거래소 이름은 바이비트로 하고… 거래소를 갖고 있는 모기업 이름은 뭐가 좋을까?

돈이 열리는 나무라는 의미에서 돈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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