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도 잘하는 놈이 잘한다-162화 (162/267)

162화 대충 개쩌는 거

한창 가상 화폐가 떠오르는 시기에 맞춰, AMD의 신제품이 출시됐다.

리사 수와 짐 켈러 모두 AMD는 물론이고, CPU 역사에 길이 남을 시리즈라 자신한 Ryzen 시리즈.

“오늘은 AMD에게 있어 무척이나 중요한 날입니다. 사실 AMD뿐만 아니라 모든 PC 게이머, 콘텐츠 제작자 그리고 고성능 프로세서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날이죠.”

내가 지금 와 있는 곳은 AMD Ryzen 시리즈 1세대 발표 현장.

당연하게도 CEO인 리사 수가 발표를 맡았는데, 나는 짐 켈러와 함께 맨 앞자리에서 그걸 직관 중이었다.

“연산 성능에만 집중한 그래픽 칩셋을 출시하라 했던 이유가 있으셨더군요.”

“하하. 짐이 자신한 것처럼 Ryzen은 AMD 역사상 최고의 CPU가 되겠죠. 하지만 한동안 저희 매출의 일등 공신은 Ryzen이 아닐 수도 있을 겁니다.”

내가 저번에 지시했던 채굴용 그래픽 카드의 출시.

출시 초기에만 해도 대체 AMD가 왜 이런 미친 짓을 하는 건가, 퓨쳐 인베스트먼트에 인수되더니 이상한 시도를 하고 있다는 여론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채굴용 그래픽 카드들의 매출이 생산 공장에서 나오는 족족 모조리 팔려 가고 있었으니.

“우진의 혜안은 볼 때마다 놀라운 것 같습니다. 아마 칩셋 엔지니어가 됐었어도 엄청난 역사를 썼었을 거예요.”

짐 켈러가 갖고 있는 나에 대한 콩깍지가 한층 더 두꺼워지는 결과나 나오고 말았다.

…이거 참.

정작 본인이 현존하는, 아니 역사상 가장 뛰어난 칩셋 엔지니어에 가까운 사람이면서 내게 저런 금칠을 해 주고 있었으니.

정말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회귀 이후 점점 얼굴 가죽이 두꺼워지고 있는 나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회귀자도 양심이 있단 말입니다.

“설마요. 저는 이번 Ryzen 시리즈가 얼마나 혁신적인 제품인지 이해하는 데에도 벅찼는데요.”

“그거야 관련 공부를 아직 하지 않으셔서 그렇죠. 우진에게 몇 년 정도의 시간만 주어진다면 충분히… 아, 그렇다고 엔지니어가 되시라는 말은 아닙니다. 하하. 저도 양심이 있지. 세상에서 돈 버는 재주로 첫째가는 우진에게 공학 공부를 요하는 건 말도 안 되니까요.”

“…하하.”

이래서 천재라는 것들이란.

자기들이 너무 뛰어나다 보니 다른 사람들도 그럴 거라 생각한단 말이지.

아무튼, Ryzen 시리즈가 얼마나 혁신적인 제품인지 이해했다는 말은 사실이긴 했는데.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Zen 마이크로 아키텍쳐 성능 향상 보고서-

몇 주 전 리사 수에게 건네받은 보고서.

전달과 함께 짐 켈러를 AMD로 합류시킨 내 노력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그녀였는데.

짐 켈러의 합류 이후 그가 설계 팀을 다시 주도해 원래의 계획보다 더 훌륭한 성능의 칩셋이 탄생했다고 한다.

심지어 몇 개월의 시간이 주어진 덕분에 최적화 문제도 완벽히 잡을 수 있었고.

그리고 그런 보고서의 결론 부분에 적혀 있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SPECInt_base2006 기준 정수 연산 향상률: 엑스카베이터 대비 74% 상승.]

[Cinebench R15 단일 스레드 실행 기준 벡터 연산 향상률: 엑스카베이터 대비 71% 상승.]

[전체적으로 엑스카베이터 대비 IPC 67% 향상. 목표치 초과 달성.]

엑스카베이터라는 건 AMD가 2년 전 출시했던 바로 직전의 마이크로프로세서.

IPC라는 건 한 번의 클록 사이클당 명령어 처리 횟수로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성능 척도 중 하나라는데.

솔직히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건지 자세한 건 모른다.

짐 켈러의 착각과는 달리 나는 문돌이 of 문돌이, 평범한(?) 웹 소설 작가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대충 봐도 67%라는 수치가 보통이 아닌 것만은 잘 알고 있다.

당장 써밋-MGM의 경우로만 따져 봐도 <마지막 마법사> 최신 시리즈가 전작 대비 67% 상승한 박스오피스를 기록했다면… 바로 그날이 스태프 모두가 최소 수만 달러의 성과급을 받아 가는 날일 테니까.

즉, 저 내용을 문돌이식으로 바꿔 보자면 이러했다.

‘대충 개쩌는 게 나왔음 ㅇㅇ. 짐 켈러랑 리사 수 둘 다 괴물임.’

자세하게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번 Ryzen 시리즈가 AMD 역사상 최고의 제품이 되기에 충분하다는 것.

그건 당장 지금 회장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었다.

“2017년은 정말 놀라운 한 해가 될 겁니다. 저희 AMD에게도, PC 시장의 모든 분에게도요. 감사합니다.”

찰칵! 찰칵!

리사 수의 프레젠테이션이 끝남과 동시에 쏟아지는 카메라 세례.

회장의 청중들이 일제히 치는 박수 소리 또한 들려왔다.

슬쩍 고개를 돌려 반응을 살펴봤는데.

‘와우.’

그중 가장 눈길이 가는 곳은 저기 저 한편에 모여 있는 일단의 무리.

체크무늬 남방을 입은 사람들이 절반, 그래픽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절반.

한 가지 재밌는 점은 무리의 7~80% 정도 되는 사람들이 모두 안경을 쓰고 있다는 거였는데.

영어로는 IT 너드 혹은 긱(geek)이라고 불리우는 이들이었다.

물론 차림새가 저래서 그렇지 저들 대부분이 이곳에 초대받을 정도로 실리콘밸리에서 잘나가는 개발자들이거나 PC 산업 관련 종사자들이었다.

달리 말하면, 저들이 바로 우리들의 주요 고객층이라는 것.

그리고 그런 그들의 반응을 종합해 보자면…….

“저 성능이 가능하다고? AMD가 사기를 치는 건 아니겠지?”

“설마 그러려고. 잠깐만… 엑스카베이터 대비 67%면 인텔보다… holy… 출시가 정확히 언제랬지?”

“하하! 역시 짐 켈러와 리사 수는 천재야!”

“장담하는데 올 한 해는 AMD의 해가 될 거야.”

말해 뭐하겠나.

저런 얘기를 주고받는 그들의 볼에 떠 있는 열띤 홍조.

대체 어째서 CPU의 뛰어난 성능이 그들에게 저런 흥분감을 안겨 주는 건지 문돌이인 나는 잘 이해할 수 없지만…….

아무튼, 라이젠 시리즈가 개쩐다는 건 틀림없는 것 같았다.

* * *

[‘무서운 프로세서’ AMD 라이젠, 2010년대 가장 혁신적인 컴퓨터 프로세서.]

[또 한 번 ‘선우진 매직?’ 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AMD의 신형 프로세서.]

[몰락한 AMD를 살려 낸 구원투수, 리사 수… 짐 켈러 그리고 선우진!]

[역사적인 컴백. 떠들썩했던 기대에 정확히 부응하는 라이젠 7 1800x, 고작 $499로 $1,050인 인텔의 i7-6900k와 맞먹는 퍼포먼스 선보여.]

라이젠이 출시된 이후, 온갖 곳에서 긍정적인 평가들이 쏟아졌다.

특히 그간 경쟁력을 상실해 왔던 AMD가 화려하게 부활했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는데.

라이젠의 성공 덕분에 AMD는 출시 후 고작 두 달도 지나지 않아 CPU 시장 점유율을 무려 15%나 증가시킬 수 있었다.

40%가 넘는 시장 점유율로 말 그대로 인텔과 한때 시장을 양분했던 AMD는 2005년 이후로는 쭉 점유율이 하락하기만 했었는데.

그 결과, 저번 분기까지만 해도 인텔에게 시장 점유율을 무려 80%나 내주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라이젠의 출시를 통해 그런 시장 상황에 유의미한 변화가 나타난 것.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런 상황을 불만스럽게 바라보는 이들이 있었는데.

“빌어먹을. 두 달 만에 벌써 15%를 빼앗겼다니.”

“당장에라도 임원진 회의를 소집해야 하는 거 아니야?”

바로 CPU 시장에서 AMD와 경쟁하고 있는 인텔, 그들이었다.

사실, 아이러니하게도 퓨처 인베스트먼트… 정확히는 선우진이 AMD 인수를 노리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에는 그 소식에 쌍수를 들고 환영했던 인텔이었다.

자신들의 경쟁사인 AMD를 세계 최고 부자 중 한 명이 사들인다는 걸 막으려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반겼던 것.

그 이유는 모든 미국 대기업의 골칫거리인 반독점법 때문이었는데.

CPU 시장은 사실상 인텔과 AMD 오로지 두 기업이 모든 파이를 차지하는 산업이었다.

즉, AMD가 망해 사라진다면 인텔은 시장의 독점적 지배자가 되고, 곧바로 반독점법의 철퇴를 맞게 된다는 뜻.

자칫하면 34개 기업으로 쪼개진 록펠러의 스탠다드 오일이나 8개로 쪼개진 AT&T와 같은 꼴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더 이상 인텔이라는 기업이 아니라 인/텔… 아니, ㅇ/ㅣ/ㄴ/ㅌ/ㅔ/ㄹ이 되어 버릴 수도 있는 노릇.

그렇기에 그들은 선우진의 등장을 반겼던 것이다.

‘아무리 맨날 삽질하는 AMD라고는 해도… 선우진처럼 든든한 자금원이 생기면 그래도 명줄은 쭉 붙어 있겠지. 뭐, 그런 만큼 시장 점유율을 조금 빼앗기기는 하겠지만.’

이러한 생각을 가졌던 인텔 경영진들.

하지만 이게 웬걸?

까고 보니 시장 점유율을 ‘조금’ 빼앗기게 될 상황이 아니었다.

경쟁사의 제품인 만큼 그들 또한 라이젠의 출시와 동시에 제품에 대한 면밀한 분석에 들어갔는데.

대부분 과장했을 거라 생각한 신제품 발표회에서의 말들이 모두 사실이었던 것이다.

전작 대비 67%나 향상된 성능.

심지어 인텔의 비슷한 가격 제품군보다도 월등히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 주고 있었다.

고작해야 가벼운 반격일 줄 알았던 게 알고 보니 핵 펀치였을 줄이야.

“10년 동안 벌려 온 기술 격차가 이렇게 쉽게 따라잡힌다고?”

“젠장. 이게 대체 어떻게 가능한 거야? 고작 500달러짜리 프로세서로 i7과 맞먹는 퍼포먼스라니… 어디서 외계인이라도 납치해 온 거야, 뭐야?”

“외계인은 무슨. 외계인보다 더 외계인 같은 놈 있잖아. 짐 켈러. 선우진이 짐을 대체 어떻게 꼬신 거지?”

“짐이 AMD에 합류할 줄 알았다면 어떻게 해서든 퓨쳐 인베스트먼트의 인수를 저지했어야 했는데.”

게다가 짐 켈러가 AMD의 일원이 되어 버린 이상 앞으로 날아올 펀치들도 웬만한 맷집이 아니고서는 견디기 힘든 핵 주먹이리라.

분명 CPU를 만지작거리는 건 당분간 쉴 거라며 테슬라로 거취를 옮겼던 짐 켈러였는데.

대체 선우진은 어떻게 그를 설득해 낸 건지.

할 수만 있다면 그 비법을 사들이고 싶은 인텔의 경영진들이었다.

[승부수 던진 AMD. 정식 출시 이후 한 분기 만에 매출 120% 상승! 20억 달러에 가까워.]

[드디어 흑자 전환. 라이젠의 흥행으로 이번 분기 8,800만 달러의 수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져.]

그리고 그런 AMD의 소식을 들으며 인텔의 경영진들 이상으로 현 상황을 불만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이들이 있었는데.

“상장 상태였다면… 못해도 50%는 올랐겠군.”

“라이젠만 잘나가는 것도 아니지. 채굴용 그래픽 카드? 그건 없어서 못 팔 지경이라더군.”

“매수 희망자가 선우진이라는 걸 들었을 때 바로 거절했어야 했나? 아니… 그러기에는 조건이 너무 훌륭했었어.”

블랙록과 뱅가드 그룹, JP모건 애셋 매니지먼트 등.

기존 AMD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던 기관들이었다.

프리미엄이 붙어 원래 주가보다 몇십 퍼센트가량 높은 가격이었기에 어렵지 않게 협상을 끝냈던 그들이었지만.

지금 보니 아까워도 이렇게 아까운 게 또 없었다.

하지만 후회는 언제 해도 이미 늦은 법.

이미 AMD는 퓨쳐 인베스트먼트에 모조리 넘어갔고, 이제 와서 그걸 가져올 수도 없었다.

블랙록이나 뱅가드 그룹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다루는 최고의 자산 운용사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개인 재산이 1,000억 달러가 넘는 사람을 돈으로 꼬득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투자 천재라더니… 정말 미래라도 보는 건가?”

여하튼.

블랙록이나 뱅가드 그룹 같은 곳에 다닐 정도로 난다 긴다 하는 펀드 매니저들.

그런 그들이 보기에도 선우진의 투자는 경이로울 정도였다.

손만 댔다 하면 성공하는 마이더스의 손.

아직까지도 그런 선우진의 성공을 요행이나 행운, 플루크 따위로 생각하는 멍청한 이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생각이 또 다른 결과를 낳게 되었는데.

‘잠깐만…. 최근 선우진이 분명 가상 화폐 쪽에 주목하고 있댔지?’

‘가상 화폐… 코인. 여전히 그게 정말로 기존 화폐를 대체할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돈이 된다면야.’

‘지난 몇 달 동안 많이 오르기는 했지. 하지만 아직 충분한 여력은 있다고 생각해야…….’

적게는 수천만 달러부터 많게는 수십억 달러까지.

막대한 자금을 다루는 증권사의 펀드매니저들과 애널리스트 등 금융권의 발 빠른 몇몇이 움직이게 된 것이었다.

“이봐. 저번에 보내 줬던 리포트 한 번 더 받아 볼 수 있을까? 그래. 가상 화폐 관련 건.”

“퓨쳐 인베스트먼트 펀드들 현 상황 정리해서 나한테 좀 갖다줘.”

“벤! 저번에 했던 얘기 다시 해 보게. 이더리움의 잠재력이 어떻다고?”

여태껏 눈치를 보며 가상 화폐 시장에 뛰어들지 않던 여러 금융 회사.

비록 일부이기는 했지만 그런 그들이 생각을 달리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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