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새로운 투자처
모든 것에는 끝이 있기 마련이다.
당연하게도 코인이 보여 주던 폭발적인 상승에도 끝은 있다.
코인을 산 투자자 중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을 거다.
1년 사이에 수십, 수백 배가 오른 코인이 부지기수. 가장 덩치가 큰 비트코인마저도 연초 대비 2,000%가 넘게 올랐으니.
언젠가는 이 버블의 끝이 오리라는 건 모두가 예상했을 것이고, 그랬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 중 대부분이 예상하지 못하는 건 그런 버블의 끝이 이렇게 갑작스러울 거라는 것.
그도 그럴 것이, 꺼질 줄 모르고 활활 타오르던 코인 열풍이었다.
가끔 주춤할 때도 있었지만 그건 아주 잠깐.
자고 일어나면 올라 있고, 밥을 먹고 다시 보면 올라 있고.
쭉 우상향만 반복했던 비트코인과 알트코인들.
가격이 잠깐 내리더라도 모든 투자자가 저점 매수 찬스로 생각했을 뿐이었다.
[1BTC = 14,234.22$]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지금까지와의 폭락과는 그 규모에서부터 다른 대폭락.
순식간에 30% 이상이 빠져버린 비트코인.
알트코인 중에서는 며칠 전 대비 -50% 수준인 거면 선방한 거나 다름없었다.
특히 고점에서 알트코인을 매집했다가 -80~90%를 찍은 이들이 수두룩했다.
모두가 어렴풋이나마 지금의 폭락이 위험하다 짐작하고 있었다.
-한강 물 지금 따듯한가요……?
-아… 시발… 아니 왜… 왜 내가 사니까 떨어지냐고… 제발…….
-제발요 ㅠㅠ 반등 기회 있나요?
-여기가 코인 갤러리냐? 아니 이제부터 여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갤러리다!
-ㅋㅋㅋㅋㅋ코인충들 ㄹㅇ 꼬시네.
-일 왜 하냐면서 평범한 회사원들 조롱하던 새끼들 어디 갔누?
-코인따리 코인따~ 신나는 노래~ 나도 한번 불러본다~
[1BTC = 15,122.84$]
그러던 때에 다시 소폭 올라 버린 비트코인.
잔인하게도 일시적으로 반등까지 하면서 투자자들에게 헛된 희망을 불어넣어 버리는 것.
이성적으로 판단하자면 잠깐의 반등이라 생각하겠지만, 이미 그간의 광기에 물들은 투자자들의 태도는 달랐다.
-어? 어? 반등한다!
-형이 분명 말했다 저점 매수하라고.
-내가 다시 오른다 했제~
-ㅋㅋㅋㅋㅋ기회 줄 때 안 먹은 흑우 있냐?
-가즈아!
-영!
-차!
-영!
-차!
다시 오를 것이다.
이렇게 무너질 리 없다.
그런 근거 없는 희망이 투자자들 사이에서 가득했다.
그 결과, 1만 4천 달러에서 지지선을 형성했던 비트코인이 다시 1만 5천 달러를 뚫었다.
비트코인의 추세를 따라가는 알트코인 중에서도 저점 대비 +30~40%가 상승한 것도 여럿 있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꿈은 결국 끝이 나기에 꿈인 법이다.
“야옹거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네요.”
“스읍.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한국 투자자들은 지금이라도 정신 차렸으면 싶은데… 아마 반대겠죠?”
“예, 아무래도 열풍이 가장 거셌던 곳이다 보니… 정부의 태도도 제일 완강한 편이고요.”
데드 캣 바운스.
주식시장에서 유래된 용어로, 죽은 고양이가 꿈틀하는 것처럼 급락한 주가가 임시로 소폭 오르는 것을 말했다.
움찔거리는 모습에 ‘혹시 부활하나?’ 싶은 것.
하지만 예로부터 죽은 시체가 부활한 전례는 없었다.
죽은 것은 죽은 것일 뿐이다.
부활이란 건 소설 속에서나 나오는 얘기였다.
-어?
-어라라?
-ㄱㅊㄱㅊ 잠깐 흘렀다 다시 오를 거.
-시발, 고래 새끼들 다 팔아 제끼는데?
-와 이 지갑 주인 누구냐? 어떤 미친놈이 500BTC를 다 팔아 버렸네;;
-내가 팔로우하던 고래도 전량 매도함… 아 놔… 진짜 끝인갑다…….
[1BTC = 14,321.74$]
1만 5천 달러를 뚫으며 상승 기세를 보였던 비트코인이었지만, 결국 그게 끝이었다.
예전이었다면 혹시 몰랐을 것이다.
‘이번에도 또 오르나?’ 싶은 생각에 대부분 쭉 들고 있었을 테니.
하지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30%가 떨어졌던 경험으로 인해 이제는 비트코인이 무조건 우상향한다는 신뢰도 사라져 버린 상황.
게다가 추가적으로 유입되는 자금도 거의 전무했다.
이미 살 사람은 전부 사 버린 탓이었다.
‘우리 엄마도 그렇고 집안일 도와주시는 아주머니까지 거래소 지갑을 만들었을 정도니 말 다 했지.’
2017년 한 해 동안 가상 화폐들이 떡상에 떡상을 거듭하면서 전 국민이 가상 화폐의 존재를 알게 됐다.
회사원들은 식사 시간이나 흡연을 할 때마다 코인이 얼마 올랐네, 그래서 내가 얼마를 벌었네에 대해 떠들었고.
그건 회사원뿐만 아니라 대학생, 주부, 프리랜서 등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미성년자 가상 화폐 거래가 금지되기 전에는 소위 말하는 급식들 사이에서도 코인은 엄청난 화젯거리였다.
그야말로 전 국민이 코인 투자를 했을 만큼 미친 열풍이었다는 것.
달리 말하면, 이제 더 이상 코인 시장에 투입될 유동성은 없다는 뜻이었다.
[워렌 버핏, “가상 화폐 결말 좋지 않을 것… 5년짜리 풋 옵션을 매수할 수 있다면 바로 투자할 것.” 비관 전망.]
[노벨경제학상 로버트 실러, “이건 시작에 불과. 비트코인 완전히 붕괴할 것.” 경고.]
[경고들이 옳았다……! 하루 만에 –35%가 되어 버린 비트코인. 리플, 이더리움 등은 반토막돼.]
거기에 온갖 언론에서 연일 가상 화폐 폭락을 다루기 시작했다.
언론들에게 있어서 이만한 뉴스거리도 없었으니 당연한 일.
이런 상황이니 코인 시장에 신규 진입하는 투자자들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 결과.
[1BTC = 13,551.41$]
[1BTC = 12,628.78$]
[1BTC = 11,452.34$]
-아… 진짜… 꿈이지 이거?
-ㅋㅋㅋㅋㅋ아 ㅋㅋㅋㅋㅋ시발ㅋㅋㅋㅋ걍 웃음만 나오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계좌에 5억 있었는데… 와… 얼굴 시뻘개지네.
-아… 왜 자꾸 흘러내리냐… 2,200층 사람 살아요ㅜㅜ
-2,200층이면 다행이지; 2,650층도 있다…….
-결국 존버가 답임… 존버는 지금껏 한 번도 배신한 적 없음.
-내 돈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맘 편해요
-진짜 제 돈이 아니어서 그래요… 제발…….
-신촌 S병원 화재, 소방당국…….
-호재인가요?
-화재예요…….
-정신 차리세요 ㅋㅋ
온갖 밈이 될 짤들이 실시간으로 탄생하는 상황.
며칠 전만 해도 손쉽게 수억 원을 벌었다며 기뻐하던 이들의 얼굴이 모조리 울상이 됐다.
그래도 초기에 투자해 떨어진 가격에 팔아도 이득인 사람들은 사정이 나았지만, 뒤늦게 고점에 물린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남들은 잘만 돈 벌었다던데.
누구누구는 저번 주에 다 팔아서 수십 억 벌었다던데.
왜 하필이면 내가 샀을 때 이런 일이…….
파랗게 물든 계좌 창에서 생긴 허망함은 이내 분노가 됐다.
-씨이발… 정부 새끼들 진짜 개새끼 아님? 저 새끼들만 아니었으면 2만 5천 뚫고 3만 달러 가는 건데!
-원화로는 3천만 원이 코앞이었음… 거기만 뚫었으면 김프고 뭐고 바로 떡상이었는데…….
-전 정부 병신 같아서 뽑아 놨더니 이딴 똥을 쳐 뿌리네.
-정부가 생각 다시 해야 함… 암호 화폐와 블록체인이야말로 4차 산업혁명의 최고 핵심임… 암호 화폐 선진국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이렇게 차 버린다고?
특히 규제책 발표로 인해 폭락의 스타트를 끊었던 정부 당국을 향한 원성이 상당했는데.
그럴수록 반대로 민심이 떡상 하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21세기 노스트라다무스? 선우진의 경고, 결국 현실이 되다…….]
[유일한 실패? 애초에 실패가 아니었다. 결국 선우진의 예언대로 1만 달러로 회귀한 비트코인.]
[비트코인 버블 붕괴를 몇 달 전부터 경고했던 선우진과 워렌 버핏.]
바로 몇 달 전부터 버블 붕괴를 경고했던 나.
-와 씨발… 돈 겁나 많은 부자들은 부자인 이유가 있구나…….
-워렌 버핏은 그래도 계속 코인 잘 모르겠다 해서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선우진 이 새끼는 대체 뭐임? ㄹㅇ 예언자임?
-우진아, 딱 말해라. 너도 진도진처럼 회귀자 맞지? 그런 거면 비트코인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 인터뷰 좀 제발… ㅠㅠ 이번엔 무조건 믿을게.
-이미 사인 줬잖아, 1만 달러의 가치는 있다고. 난 그냥 앞으로 선우진 신봉자 하기로 했음 ㅇㅇ 이미 -60%긴 한데 손절하고 1만 달러 밑으로 떨어지면 그때 다시 매집할 거.
-후. 저도 그래야겠네요… 그냥 대깨선 할랍니다.
결국 지금까지 내 투자 선택이 단 한 번도 틀리지 않은 게 되어 버렸으니.
투자의 신을 넘어 예언자 소리도 듣고 있었다.
우스갯소리이긴 하겠지만 내가 회귀자가 아니냐는 진실된 추측을 하는 이들도 있었고.
‘1만 달러에 매집한다고 댓글 쓴 사람이 정말 저 말대로 하면 나중에 꽤 벌게 될 텐데…….’
그럴 수 있을까?
나도 한때 상남자식 투자를 일삼는 사람이었기에 잘 알고 있다.
오늘은 아무리 굳게 다짐했더라도, 다음 날 조금만 차트가 흔들려도 그게 모두 물거품이 된다는 것을.
얼마가 되든 절대 안 팔 거라 결심하더라도 진짜 반토막이 나 버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바로 손절하게 되는 게 사람의 심리였다.
뭐, 개인적으로는 저 사람이 그러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예전이었다면 남들 돈 버는 얘기가 배 아팠겠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았으니까.
여하튼, 내가 예전에 했던 인터뷰 때문일까.
[1BTC =9,414.14$]
[1BTC =9,614.14$]
[1BTC =9,814.14$]
1만 달러 밑으로 떨어지자 그곳에서 새로운 지지선이 형성됐다.
‘원래는… 훨씬 더 폭락했었지?’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거의 4~5천 달러 수준이 됐던 거로 기억한다.
뭐, 2018년 말이 되면 내 기억처럼 그렇게 떨어질 수도 있겠지만… 확신은 금물이다.
이제 코인 같은 경우는 내 기억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없었다.
나로 인해서든, 나로 인한 나비효과 때문이든.
이미 바뀐 것이 너무나도 많은 탓이다.
어떤 가격이 저점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을 거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몇 년 후 블록체인 등의 가치가 재발굴되면서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 화폐들이 재떡상하는 건 시대적인 흐름.
나는 그저 차분하게 언젠가 다가올 시즌 2를 기다리면 될 뿐이었다.
물론 시즌 2가 다가오기 전, 프리 시즌 동안 자본을 가만히 놀릴 수는 없으니, 새로운 투자처를 찾아야 하겠지만.
‘가상 화폐는 한동안 추이를 지켜보다가 재투자해도 되겠지. 그사이 집중할 투자처가 문제인데…….’
가상 화폐 투자에 집중하는 사이 한 해가 지났다.
2018년이 되어 버린 것.
그 말인즉슨 앞으로 내가 아는 미래를 써먹을 수 있는 게 4년 조금 안 되게 남았다는 소리였다.
그나마도 내 영향으로 바뀐 것이 많으니, 완전히 신뢰해서는 안 될 노릇이었고.
하지만 개중에 아무리 내가 나비효과를 잔뜩 만들어 놨다고 해도 바뀌지 않을 흐름들이 있었다.
몇 년 후 있을 비트코인 시즌 2처럼 말이다.
이제 내가 집중해야 할 건 바로 그런 것들.
“알버트, 시그마 캐피탈에 조만간 50억 달러의 자금을 투자할 생각입니다.”
[…50억 달러 말씀이십니까?]
약간이나마 당황한 듯 보이는 알버트.
그도 그럴 게 시그마 캐피탈의 현 운용 자산(AUM)이 50억 달러 내외였다.
내 인수 이전, 기존에 다루던 게 10억 달러. 내가 인수 이후 지금까지 시그마 캐피탈에 투입한 돈이 20억 달러가 조금 넘었으니, 합이 30억 달러.
그리고 그간 투자한 벤처 사업들이 성장하면서 가치가 올라 대략적으로 50억 달러가 된 것.
그런 상황에서 현 운용 자산만큼을 추가로 투자하겠다고 하니, 알버트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는 것.
‘스타트업 쪽은 그간 잘 몰라서 투자를 망설였었지…….’
아무리 내가 준비된 회귀자라고 해서 모든 걸 알 수는 없는 법이다.
특히 스타트업과 관련해서는 더욱 그랬는데.
앞으로 어떤 산업이 뜨게 될 거다 정도만 알았지, 특정 기업이 크게 성장할 거라는 정보는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줌이나 에어비엔비처럼 굵직한 유명 회사 정도라면 몰라도.’
그래서 사실 시그마 캐피탈 같은 경우는 내 사업체 중 수익성이 제일 떨어지는 곳이기도 했는데.
그간의 투자에서 실패한 것도 여럿 있는 탓이었다.
자율 주행 관련 스타트업이라 일단 투자하고 봤는데, 알고 보니 기술력이 형편없었다거나 하는 경우가 몇 번 있었다.
운용 자산이 고작(?) 50억 달러 정도인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
이 정도면 국내 기준에서라면 몰라도 전 세계 기준에서는 그리 명함을 내밀 정도가 아니었는데.
세콰이어 캐피탈처럼 글로벌 VC 전체에서도 톱 소리를 듣는 VC의 운용 자산은 수백억 달러를 가볍게 넘기기 때문이다.
물론 유한책임투자자(LP)를 모집해 펀드를 운영하는 다른 VC들과는 달리, 시그마 캐피탈은 95% 이상의 출자금이 내 것이기에 단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규모 면에서는 아직 시그마 캐피탈이 중견 VC 취급을 못 벗어나는 게 사실이었다.
여하튼.
“그중 20억 달러는 해 왔던 대로 블록체인, 자율 주행, 인공지능 쪽에 투입해 주시고. 나머지는…….”
그런 상황임에도 내가 50억 달러라는 나름의 거금을 추가적으로 투입하려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는데.
“바이오산업. 신약 제약 쪽에 투자할 생각입니다. 음… 집중할 방향은 인플루엔자나 코로나 바이러스 같은 호흡기성 전염병 쪽이 좋겠네요.”
회귀 후 초창기.
인공지능 기반 신약 개발 플랫폼에 이미 투자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호흡기성 질환이 아닌 다른 쪽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더라.
기업 가치는 당시 수천만 달러에 51%를 사 온 기업이 수억 달러로 평가되고 있어 큰돈을 번 거긴 하지만.
그래도 기대와는 사뭇 다른 성과.
뭐, 어쩔 수 있나.
그러면 다른 회사들을 사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