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화 스케일의 차이
“자,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국내 통신업계에서 그래도 잔뼈가 굵은 이상기 대표.
그가 주관하는 SW 텔레콤의 제4 이통 도전 관련 회의였다.
사실 제4 이통에 지금까지 대기업들이 도전하지 않은 건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첫째. 수익성이 불분명하다.
‘이미 통신 3사가 꽉 잡고 있는 시장이니까.’
국내 이동 통신 가입률은 몇 년 전에 100%를 돌파했고, GL U+가 흑자 전환 된 지도 4년밖에 안 됐을 정도로 포화한 통신 시장이다.
이미 통신 3사가 건재한 상황에서 신규 사업자가 그 점유율을 빼앗아 올 수 있을지 부담되는 것.
하지만 내 경우는 얘기가 조금 달랐다.
-그래서 SW 텔레콤 요금제 언제 나옴?
-아ㅋㅋ 나 약정 일주일 전에 끝났다고ㅋㅋ 딱 대라고
-선우진 통신사 나올 때까지 숨 참음… 흡!
-정부가 빨리 사업자 선정 해줘야지
-지금 선우진도 간 보는 단계일 듯? 이게 이통사라는 게 정부 도움 없으면 돈이 무지막지하게 깨지는 사업이라… 어떤 혜택 내놓을지 지켜보고 있는 듯
-다른 통신 3사도 정부 도움받았었음?
-걔네는 베이스가 원래 국영 기업이었어ㅋㅋㅋ 국민들 돈으로 망 깔아 놓고 지금은 돈 빨아먹는 거 ㅇㅇ
-? 그거 완전 개새끼들이네?
-몰랐음?
전 국민… 은 아니고, 과장 살짝 보태서 전 국민의 반쯤은 SW 텔레콤의 제4 이동 통신사 선정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
물론 이건 인터넷에 밝은 1-30대까지의 상황이긴 하겠지만, 나에게는 또 다른 치트키가 하나 더 있었다.
[이번에도 또 완판, 판매량 510% 상승… ‘트로트 시대’ 개막하나?]
[매진 또 매진, 요즘 가장 효도는 송가인 or 임영웅 콘서트 티켓?]
[어르신 팬들의 구매력에 광고 업계 놀랐다! 중장년 팬덤 잡아라!]
내 자랑 같지만, 내가 그래도 나름 국민 호감남 소리를 몇 년째 들어 온 사람이다.
유느님이랑 함께 연령별 호감도 수치에서 1, 2위를 계속 다퉈 온 인물.
하지만 그 순위가 최근 중장년층에서 두 단계씩 하락하게 됐는데.
바로 송가인과 임영웅이라는 두 트로트 스타 때문이다.
SW 프로덕션이 제작 및 연출을 맡았던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에서 탄생한 대스타들.
당연하게도 소속사 또한 SW 엔터다.
‘통신사 이동 특별 이벤트로… 다음 앨범 SW 텔레콤 한정 포토북이면 되지 않을까?’
포토북 표지에 [To. ㅇㅇㅇ]까지 박아 버리는 거다.
스읍.
이거 내가 떠올렸지만 진짜 사기급 치트키 같은데.
뭐, 아무튼.
이걸로 첫 번째 이유는 깔끔하게 해결.
남은 건 두 번째 이유인데.
“그러면 투자 비용에 대해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돈이 무척이나 많이 든다는 것.
“우선 정부에게서 주파수를 할당받아야 합니다.”
당연하게도 저 주파수는 무료가 아니었다.
“보통은 경매 등의 경쟁 입찰을 통해 할당됩니다만… 이번 경우에는 경쟁 수요가 없기 때문에 정부가 대가를 기존 통신 3사의 입찰가보다 싸게 산정해 할당하게 될 겁니다. 참고로 작년 미래 창조 과학부에서 제4 이통사에 대한 할당 대가로 발표한 건 와이브로인 2.5GHz가 228억 원, FDD 방식의 이동 통신은 2.6GHz가 1,646억 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저기에 플러스 알파로 실제 매출액의 2% 정도를 추가로 내야 한다고 덧붙이는 이상기 대표.
‘와이브로는… 이미 몇 년 전에 사장된 방식이니 필요가 없을 테고. 2.6GHz가 1,600억이라.’
작년 기준이 1,600억 원이었지만, 당시 신규 사업자가 아무도 나서지 않은 걸 감안하면 조금 깎을 수 있을 거다.
1,400억에서 1,500억 원 정도?
거기에 SW 텔레콤이 기간 통신 사업에 도전하는 걸 적극 환영하는 여론을 생각해 보면, 거기서 또 추가적으로 1-200억 원 정도는 깎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1,000억 원이 조금 넘는다는 건데.
사실 이 정도 금액은 나한테야 당연히 그러했고, 다른 대기업들한테도 전혀 부담되는 액수가 아니었다.
‘진짜 돈 드는 건 따로 있지.’
“LTE의 경우 신규 망 구축비만 2조에서 3조 원가량이 듭니다. 그리고 전국에 기지국만 20만 개 이상이 깔려야 합니다. 3G를 제외하고 LTE에만 집중하신다고 해도… 10만 개는 필요할 테고요.”
2조 원에서 3조 원이 든다는 건 최소 3조 원은 써야 한다는 소리다.
SW 텔레콤은 기존 통신 3사와는 달라도 제대로 다를 거라는 기대가 팽배한 상태.
그런 기대감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망 구축 비용에 돈 아껴서는 안 됐다.
다만, 뒤에 건 좀 아낄 수 있어 보였는데.
“무선 기지국 장치를 제조하는 글로벌 회사는 크게 다섯 곳입니다. 에릭슨과 노키아, 오성전자, 화웨이, ZTE. 말씀드린 순서대로 납품가가 비싸고요.”
우선 뒤의 두 곳은 제외였는데.
단순히 중국산이 못 미더워서는 아니었다.
‘슬슬 트럼프가 화웨이를 저격할 때 아닌가?’
이건 나도 잘 알고 있을 정도로 크게 이슈가 됐던 사건.
보안 위협 등의 이유로 트럼프가 화웨이 및 그 밑의 계열사를 제재 대상에 올리게 되는 게 조만간이다.
그 여파로 저렴하다는 이유로 화웨이의 장비를 사용했던 세계 여러 이통사들이 철거하게 될 텐데.
아마 GL U+도 포함되어 있는 거로 알고 있다.
“중국 제조사들은 모두 제외해 주세요.”
그러면 남게되는 게 3대 글로벌 무선 통신 장비 제조사로 불리는 에릭슨과 노키아, 오성전자.
처음에는 모두 오성전자에 제조를 맡길까 했다.
하지만 곧바로 이어진 이상기 대표의 말.
“이렇게 세 곳으로 한정시킨다면 구획을 나눠 입찰을 통해 제조사 별로 할당하는 게 좋습니다. 첫째는 입찰 방식이 비용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통신 사고에 대응하기 위함입니다.”
나와 관계와 관계인 만큼 여러 제조사에게 입찰에 참여하게 하는 것보다 오성전자에게 전부 설치시키는 게 나을 수도 있겠지만.
두 번째 이유를 듣고 생각을 접었다.
제조사 이슈 등으로 통신 사고가 날 경우, 한 곳을 쓰다 보면 전국의 통신망이 모두 먹통이 될 수도 있다는 것.
결국, 오성과 노키아, 에릭슨을 모두 입찰에 참여하게 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는데.
“잠깐만요. 기지국에 들어가는 반도체가 FPGA라고 하셨죠?”
“예, 맞습니다.”
FPGA란 프로그램이 가능한 집적 회로 반도체.
통신 장비 업체들은 보통 FPGA 기업으로부터 변형 가능한 표준 칩을 사다가 용도에 맞게 회로를 그린다고 한다.
그리고 그 반도체를 자사 통신 장비에 집어넣는 것.
“…잠시만요.”
회의 중이지만 스마트폰을 꺼내 며칠 전 받은 문자를 확인했다.
리사 수가 보냈던 것이었는데.
[리사 수 - 말씀하신 대로 데이터 센터 칩과 AI 기술에서 인텔과 엔비디아보다 앞서가기 위해서는 FPGA 기업이 필요합니다.]
[리사 수 - 인텔은 2015년에 이미 알테라를 인수해 시너지를 노리고 있고, 엔비디아 또한 ARM을 인수하려 한다는 소문이 업계에 돌고 있습니다.]
역시 반도체란 IT 산업의 핵심인 게 틀림없다.
이게 이렇게 또 연결이 되어 버리네.
어차피 AI 반도체 시장에서 패권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M&A인데.
해야 할 이유가 또 하나 더 늘었다.
‘리사 수가 요청한 게 FPGA 업계 1위라는 자일링스였지. 추정 인수 금액은 300억 달러 정도. 조금 크긴 하지만 부담 가는 정도는 아니야.’
잠깐만.
그러면 어디 보자.
내가 자일링스를 사게 되면…….
‘거기서 만든 칩과 기술이 AMD에 쓰이고.’
또 통신 장비 업체들에 쓰이게 되는 거잖아?
오성이나 노키아, 에릭슨은 내게 통신 장비를 팔기 위해 내 다른 회사에서 칩을 사야 하는 거다.
으음. 이게 그거던가?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 * *
MK 그룹의 회장실.
비서실장을 비롯해 MKT의 안석진 대표, MK하이닉스의 이희석 사장 등이 모여 있었는데.
가장 먼저 이희석 사장의 보고가 있었다.
“AMD에서 DRAM 공급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 통보해 왔습니다.”
“예상했던대로군.”
보고를 듣는 최원태 회장의 얼굴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그 정도야 공격다운 공격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반도체 대호황 시대.
DRAM과 NAND 플래시 모두 없어서 못 파는 요즘이다.
커다란 고객을 잃은 건 안타깝긴 했지만 그뿐.
AMD가 아니더라도 인텔이, SCP가 아니더라도 구글, MS, AWS 등의 D램 수요는 여전했다.
“자네는 어떻게 됐나?”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그룹의 또다른 핵심 계열사인 MKT였는데.
“죄송합니다. 청와대에서는 답변을 거부했습니다. 아무래도… 가장 윗선의 의지인 것 같습니다.”
“…후우. 고생했네. 그 빌어먹을 놈들.”
이번에는 표정이 굳는 최원태 회장이었다.
다른 두 통신사에게 들은 것도 비슷했다.
VIP의 의지가 확고하다는 것.
이유야 뻔했다.
‘어떻게든 한 줄 적고 싶은 거지.’
그간의 정부들이 수차례 시도했지만 매번 엎어지고 말았던 ‘제4 이통’.
그걸 이번 정부에서 성공한다면 그것만으로도 그들의 성과가 되는 거다.
물론, 고작해야 한 줄이다.
현 정부의 임기 내에 최초로 제4 이통을 출범한다는 한 줄.
하지만 최원태 회장은 정치인들이란 족속들은 저 한 줄을 위해 많은 걸 희생하는 이들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선우진의 이동 통신 사업 진출 선언 이후로 대중들한테서도 긍정적인 반응이 연신 나오고 있으니.
지지율이 오르는 데에도 적잖은 도움이 될 터.
“제4 이통은 통과라고 봐야겠군.”
“그렇습니다.”
“쯧. 이렇게 될 줄이야.”
작게 혀를 차는 최원태 회장.
통신 3사의 인터뷰를 주도했을 때만 해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기껏해야 AMD를 통한 압박이나 지분을 한번 찔러 볼 줄이나 알았지.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겹치는 사업 영역이 몇 개 되지 않아 안심했던 게 실수였다.
케케묵은 제4 이통을 꺼내 들고 달려들다니.
물론 최원태 회장으로서도 할 말이 없지는 않은 게…….
‘통신 사업이 얼마나 큰 돈이 들어가는 사업인데.’
설마 겹치는 게 없으니 일부러 겹치는 사업 영역을 만들어 버릴 줄 누가 알았겠나.
그것도 통신사처럼 큰 돈이 드는 사업을 말이다.
오로지 초기 투자만으로도 수조 원……. 어쩌면 10조 원까지도 쓰일 수 있는 사업이다.
그런데 그만한 투자 비용이 드는 사업을 이렇게 갑자기 정해 버려?
그것도 망 사용료로 몇천억 원 내라 했다고?
통신 사업에 쓰일 초기 투자 비용만 해도 요구한 망 사용료를 수십 년은 족히 낼 돈인데.
최원태 회장이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아니, 잠깐만. 설마 그 정도의 미친놈일 리가.’
최원태 회장이 미간 근처를 꾹 눌렀다.
고민에 빠질 때 가지는 그의 버릇이었다.
그러길 몇 분.
“갑자기가… 아니었던 거로군. 예전부터 준비했던 거야.”
“예?”
“선우진, 그놈 말일세. 자네 같으면 이만한 스케일의 사업을 사전 계획도 없이 추진할 수 있겠나?”
이제야 제대로 파악이 되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이상했다.
마치 물 흐르듯 갑자기 시작되어 버린 제4 이통 사업 추진.
그럼에도 곧바로 호응하던 국회 의원들부터 시작해 정부까지.
‘통신 사업이 선우진에게 도움이 되긴 할 테지.’
게다가 생각해 보면 통신 사업과 선우진의 다른 사업들이 만들어 내는 시너지도 만만찮다.
우선, SW 텔레콤의 전신인 SW 헬로비전이 케이블 TV가 주력이었던 만큼, 다른 통신사들처럼 결합 상품도 내놓을 수 있는 건 기본이고.
심지어 선우진은 거기에 스웜 구독까지 결합할 수도 있었다.
다른 통신 3사와는 차별화되는 선우진만의 강점.
거기에 통신 사업자에게는 필수적인 데이터 센터도 어차피 SCP를 위해 건설해야 했으니 시설 투자 비용도 절약할 수 있었고.
‘음, 그랬던 거군.’
생각하면 할수록 제 생각이 맞는 것 같다 느끼는 최원태 회장이었다.
선우진은 애초에 처음부터 제4 이통을 노리고 있었던 거다.
그저 그 타이밍이 우연히 망 사용료와 겹쳤던 것일 테고.
‘그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세상에 돈 좀 내라고 해서 열받는다고 10조 원짜리 사업을 결정하는 놈이 어디 있겠어?’
그렇게 최원태 회장은 문득 들었던 추측 하나를 머릿속에서 지웠다.
만약 선우진이 알았다면 반 정도는 정답이라고 말했을 추측을 말이다.
반쯤 정답인 부분은 선우진이 통신사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이유에 대한 추측이 사실에 가깝다는 것.
그리고 반쯤 오답인 부분은… 선우진이 생각한 통신 사업의 스케일이 고작 10조 원이 아니라는 것.
며칠이 더 지나고, 언론들이 일제히 기사를 쏟아 냈다.
[선우진, 승부수 띄우나? 해저 케이블 투자 선포… 아마존, 구글, MS 등의 빅테크 행보 따라가려는 듯]
[통신 3사는 아무도 없는 해저 케이블… 정작 가장 먼저 설치하는 건 선우진?]
[해저 케이블로 전 세계 잇고자 하는 SCP… SW 텔레콤과 결합 시 한국 최소의 1티어 통신사 탄생할 수도? 기존 통신 3사가 오히려 후발 주자인 SW 텔레콤에게 사용료를 내야 할지도 몰라]
[다가올 5G 시대, “귀찮게 LTE를 거치지 않겠다. 곧바로 5G 망 구축해 소비자들에게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할 것.”이라 밝힌 선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