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화 여우 사냥
[글로벌 금융시장, 뉴욕 증시 상승세 타고 동반 상승.]
[작년 최고점이었던 26,000 달성한 다우존스 지수. 벌써 4천이나 올라.]
“절반 정도의 포지션은 모두 정리했습니다. 나머지도 5월을 기한으로 모두 매도할 예정이고요.”
미국 증시의 오랜 격언이 하나 있다.
바로 ‘5월에 매도하고 떠나라’.
여름 휴가철이 오기 직전이 되면 매번 가격 약세를 보이는 미국 증시의 패턴으로 인해 생긴 말이었다.
일종의 계절에 따른 역사적인 패턴인 것.
하지만 내가 제이슨과 윌리엄 등에게 5월을 기한으로 현재의 포지션을 모두 정리하라 한 것은 단순히 저 오랜 격연 때문이 아니었는데.
‘트럼프 생일이 6월 초중이었지…….’
저번 달 트럼프가 내게 해 줬던 말.
그것에 기초해 내린 결정이었다.
생일이 조금 지나서라 했으니, 6월 말이나 7월 초쯤 미중 무역 전쟁이 다시 발발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걸 대비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한 달쯤 앞서 포지션을 정리하고 현금을 쟁여 놓으려는 것.
“SW 인베스트먼트와 퓨쳐 인베스트먼트의 포트폴리오에서 암호 화폐 비율을 높일 생각입니다.”
“나쁘지 않네요. 미중 무역 전쟁이 재차 발발하면서 글로벌 거시 경제가 불안해지면, 암호 화폐가 대체 투자 수단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니까요. 음… 알트코인들은 건들지 말고 비트코인 위주로 매집하는 게 좋겠어요.”
암호 화폐에 대한 대비도 빼놓을 수 없었는데.
올해 1월 1일자로 약 520만 원에 거래되고 있는 비트코인.
지금도 그와 비슷한 시세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한동안 꽤 오를 가능성이 커.’
물론 내가 지금 시점의 비트코인 가격을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대략적으로나마 어느 정도 상승한다는 것만 알고 있지 얼마 만큼의 상승을 이뤄 내는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래도 기억하고 있는 재밌는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
‘만우절 가짜 뉴스…….’
조만간 있을 만우절.
그걸 기념하는 의미로 한 글로벌 경제매체에서 가짜 뉴스를 하나 내놓게 된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 관련 자산 운용사와 투자회사의 ETF 신청서를 승인한다는 가짜 뉴스인데.
그게 일부 미국 매체와 한국 매체를 통해 만우절 뉴스라는 걸 빠뜨리고 보도되면서, 하루 만에 비트코인 시세가 20~30%가량 뛰게 되는 이상 급등이 발생하게 되는 것.
그리고 그 사건이 계기가 되어 기관 투자자를 비롯해 여러 투자자의 암호 화폐 수요가 증가하게 된다.
‘사실 지금도 그런 조짐이 있지.’
금융업에서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정보다.
그런 만큼 SW 인베스트먼트와 WS 매니지먼트, 퓨쳐 인베스트 모두 리서치 사업부를 두고 있는데.
월 스트리트와 같은 금융권의 정보들은 물론, 소셜 미디어와 같은 인터넷 내 데이터를 추출해 활용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업부들을 통해 최근 들어온 암호 화폐 관련 정보들.
“최근 암호 화폐 쪽에 관심을 가지는 기관 투자자가 여럿이라죠?”
“예, 맞습니다. 아무래도 보스께서 예전 하신 말씀이 있다 보니…….”
[선우진, “비트코인에는 최소 1만 달러의 가치가 있다”]
과거 내가 비트코인 폭등이 시작 될락말락하던 때 했던 인터뷰였다.
당시 비트코인 시세가 2만 달러를 찍고, 이후 8천 달러 선까지 떨어지자 주목을 받기도 했던 인터뷰였는데.
결국 2018년 한 해 동안 비트코인 시세가 완만한 하락세를 그리며 현재의 500만 원 수준까지 하락한 상황.
그러다 보니 저때 내가 했던 인터뷰가 기관 투자자들 사이에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었다.
“이번 뉴욕 증시 투자를 통해 보스께서 제대로 보여 주셨지 않습니까. 보스의 예언과도 같은 예측은 틀리는 법이 없단걸요. 하하, 사실 제가 암호 화폐 쪽 포트폴리오 비율을 늘리는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입니다.”
제이슨이 그런 것처럼 예전 내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암호 화폐 쪽 투자를 생각하는 금융사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었다.
재밌는 점은 그간 나와 여러 번 의견이 상충한 적이 있었던 모건스탠리 또한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
[모건스탠리, 암호 화폐 쪽 투자 늘리나?]
[새롭게 암호 화폐 담당 데스크를 신설한 모건스탠리, 암호 화폐 프로젝트에 많은 돈 투자할 것이라 밝혀.]
며칠 전 나온 기사들이었다.
다른 투자은행들보다 한발 빠르게 암호 화폐 쪽 투자를 늘리기 시작한 모건스탠리.
원역사에서도 저랬으려나?
아니면… 왠지 모르게 내 영향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건 너무 자의식 과잉일까?
여하튼.
톡, 토독-
제이슨을 보내고 크레이그에게 연락했다.
최근 바이비트의 CEO 자리에만 집중하며, 기술 개발에서 손을 뗀 크레이그.
생각보다 경영 능력이 괜찮더라.
물론 날고 기는 전문경영인들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괜히 예전부터 암호 화폐의 미래를 꽤나 정확하게 예측한 게 아닌 듯, 가상 화폐 거래소의 CEO로서는 흠잡을 구석이 없었다.
실제로 크레이그의 주도하에 바이비트가 몇 달 전 전 세계 1위 거래소가 되는 데에 성공했었다.
이참에 그 지위를 확고히 할 생각이었는데.
[나 - 크레이그, 바이비트에 대한 1분 짜리 광고 영상 준비해 주세요.]
‘원래는 스웜만 홍보할 생각이었지만… 1분 더 사지 뭐.’
조만간 있을 미국 최대의 스포츠 행사, 슈퍼볼.
슈퍼볼 경기의 하프타임 광고에 스웜과 함께 바이비트를 올릴 생각이었다.
1분에 1,300만 달러의 금액.
‘음. 저렴하네.’
왠지 요즘 들어 돈의 단위가 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 * *
[제이슨 - 현재까지의 수익은 약 380억 달러입니다.]
다음 날 제이슨의 보고.
5월까지 전 포지션을 정리한다면 최소 저 두 배는 될 거다.
700억 달러가 넘는 금액.
너무 쉽게 돈을 벌어 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돈을 벌 때 생기는 만족감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는데.
‘사람의 욕심은 끝도 없다더니.’
그것처럼 맞는 말이 또 없었다.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다고.
하루에 10억 원씩 쓰더라도, 한평생 못 쓸 재산을 쌓아 놨는데도 벌 때마다 기분이 좋다.
아마 내 욕심이 모두 충족되는 때는 영원히 오지 않는 게 아닐까.
‘당장 지금만 봐도 그랬으니까.’
돈 욕심 말고 내 또 다른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오늘의 자리.
오늘의 만남을 위해 직접 영국 런던까지 온 나였다.
상대가 그럴 가치가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처음 뵙는군요. 선우진입니다.”
“하하. 하도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그런가, 처음임에도 처음이 아닌 것 같군요.”
“편하게 말씀하시죠. 제가 아드님 친구이기도 하니까요.”
많은 한국인이 영어에는 경어가 없다 생각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영어에도 나름의 높임 표현이 존재하는데, 표현이나 조동사 등을 통해 그 정도를 구분할 수 있었다.
특히 지금과 같은 비즈니스 관련 자리일수록 쓸 수 있는 표현이 한정되는데.
즉, 나는 그런 걸 생각하지 말고 아들 친구 대하듯 대하라고 말한 것.
‘나이 차이도 60살이 넘으니까.’
만 25세인 나와는 달리 상대는 80대 후반의 노인.
거기에 그의 아들인 래클런과의 친분도 있다 보니 딱딱하게 대화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루퍼트 머독, 머독 제국의 주인이라는 그에 대한 나름의 존경도 있었고.
“원한다면 그렇게 하겠네. 그런데 친구라… 내 아들에게 자네의 친구가 될 깜냥이 있던가?”
“친구 사이에 자격이 필요하던가요? 뭐, 그래도 굳이 답하자면… 아직은 몰라도 언젠가는 래클런에게도 자격이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하. 내가 내 제국을 래클런에게 모두 물려주면 그때는 자격이 생길 거라는 얘긴가? 그러면 나는 어떤가? 현재 머독 제국의 주인이자 그 제국을 주춧돌부터 만든 나는 자네의 친구가 되기에 충분한가?”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치긴 하는데… 다만 한 가지 결격 사유가 존재했다.
“흠. 그건 좀 힘들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나이 차이가… 사실 래클런과도 30살이 넘는 차이다 보니 가끔 버겁거든요.”
바로 나이 제한이라는 결격 사유.
아저씨 친구까지는 참아도 할아버지 친구는 조금 그렇다.
안 그래도 인터넷에 심심찮게 ‘선우진 얘는 근데 틀딱 친구들밖에 없냐? 가만 보면 “우진은 나의 좋은 친구” 이러는 애들 다 최소 30, 40대임ㅋㅋㅋ’ 같은 글들이 올라오곤 하는데.
80대를 넘어 조만간 90을 찍으시는 분은 아무리 나여도 힘들다.
회귀 전 나이 + 회귀 후로 살아온 시간을 합쳐도 난 아직 30대 중반이다.
뭐, 아무튼.
“800억 달러. 제 최종 제안입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결국 나오게 된 본론.
오늘 루퍼트 머독을 만난 이유가 바로 21세기 폭스의 인수 때문이었다.
800억 달러로 최종 인수 금액을 제안한 것.
“흐음, 조금 더 쓰지 그러나? 자네가 최근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예. 폭스 뉴스에서도 관련 소식을 여러 번 방영해 줬죠. 개인적으로는 꽤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800억 달러면 충분하다 생각하는데요.”
현재 나는 골드만삭스를 M&A 주관사로 두고 있는데.
골드만삭스에서 분석한 20세기 폭스 영화 및 TV 스튜디오, FX 네트워크 및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 케이블 그룹을 포함한 21세기 폭스가 가진 모든 자산의 현재 가치가 약 574억 달러였다.
그런데 내 제안은 800억 달러였으니, 프리미엄을 무려 40%나 쳐준 것.
“충분? 글쎄. 디즈니와 컴캐스트 모두 21세기 폭스를 원하고 있지. 두 회사 모두 자네만큼은 아니어도 800억 달러 정도의 돈은 있고 말이야.”
“디즈니는 몰라도 컴캐스트는 절대 800억 달러를 내지 못할 겁니다. 인수 금액이 700억 달러인 것까지만 봐도 인수를 포기할 테죠. 아, 이건 제가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한 정보니 믿으셔도 됩니다.”
“인수 경쟁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라고?”
“예. 저는 Mr.머독과 달리 꽤나 솔직한 사람이거든요. 친구의 아버지께 거짓말하는 취미도 없고요. 뭐, 정 안 믿기시면 직접 확인하셔도 되고요.”
나는 컴캐스트가 21세기 폭스에 넣었던 제안도 이미 알고 있었다.
모두 현금으로 650억 달러, 컴캐스트의 최종 제안이었다.
분명 루퍼트 머독 또한 그걸 알고 있을 터.
‘그런데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모르는 척하는 거 봐.’
나와 달리 거짓말에는 꽤나 일가견이 있는 루퍼트 머독이었다.
“흠. 연기를 하는 것 같지는 않군. 아, 자네 연기 실력은 나도 잘 알고 있네. 래클런이 예전 보여 준 적이 있거든.”
“…….”
“좋아. 그래, 컴캐스트는 빠진다 치자고. 하지만 디즈니는? 디즈니는 자네의 강력한 경쟁자 아닌가. 디즈니가 과연 제 눈앞에서 21세기 폭스가 경쟁자의 손에 들어가는 걸 보고 있을까?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800억 달러가 넘는 금액을 지불할 생각은 충분할 텐데?”
맞는 말이다.
마블을 중심으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디즈니.
작년 영업이익도 150억 달러나 될 정도였는데.
나하고 비교하자면 빛이 조금 바래는 면이 있지만, 그래도 몇 년 동안 현금을 쭉 쌓아 온 덕분에 800억 달러 이상의 금액을 지불할 정도는 되었다.
아니, 현금이 충분하지 않더라도 지분까지 포함해 그 이상을 맞추는 방법도 있었고.
하지만 루퍼트 머독에게는 내 인수 제안을 받아들여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오너로서 주주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게 내 의무지.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자네의 제안을 바로 받아들이는 건 배임이 아닌가?”
“아뇨. 오히려 그 반대가 배임이 될 겁니다.”
“반대가 배임이 된다고? 그게 무슨 뜻인가?”
“제 제안을 거절하시면… 저는 뉴스코프의 적이 될 거니까요. 참고로 지금까지 제 적이 됐던 사람과 회사는 모두 좋지 못한 결말을 맞이했었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아마 Mr. 머독께서도 잘 아시겠죠?”
머독 제국이 왜 머독 왕국이 아니고 제국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겠는가.
다 경쟁자는 쓰러뜨리고, 적은 밟아 버리고 하면서 만든 제국이기 때문이지.
비록 거짓말과 연기에서는 가진 재주에 차이가 있었지만, 적을 밟아 버리는 거에서는 나와 루퍼트 머독 모두 다 가진 재주가 적지 않았다.
음, 그러니까… 지금 내가 한 말은 이런 거다.
‘저한테 안 팔면 그때부터 저랑 적인 건데…….’
자신 있으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