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화 오랜 우정의 끝
“아직은 감기나 설사, 폐렴 증상 등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들이 늘어난 것 정도라고요?”
[예, 맞습니다. 하지만 우한시 내 병원 한두 곳만 그런 게 아니라, 5곳 전부 환자 수가 30~40% 가량 늘어나 있습니다. 대표님께서 주의하라 여러 번 강조하신 만큼 혹시나 싶어서요.]
“네. 잘하셨어요.”
[조금 더 파악되는 대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예. 수고 부탁드립니다.”
사실 코로나가 정확히 언제 발발했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대략적으로 기억하는 건 내가 20년도 1월에 친구들과 동남아로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그때가 당시에는 우한 폐렴으로 불리던 코로나19가 막 유행할락 말락 하던 때였다는 것.
분명 그때는 국내외 모두 마스크를 쓰지 않고 돌아다닐 수 있던 거로 기억한다.
그렇기에 그런 기억에 의존해 아마 19년도 11~12월 사이쯤에 발발했겠다 추측을 했었다.
‘내 기억이 잘못됐던 걸까.’
두세 달 정도의 차이.
오랜만에 회귀자 노트를 꺼내 쭉 살펴봤다.
내 회귀 이후 여러 분야에서 나비효과가 발생한 탓에 한동안은 찾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회귀자 노트에도 이렇다 할 답은 없었다.
‘결국 셋 중 하나인 건데.’
내 기억에 기반한 추측이 틀린 거였거나.
아니면 예상보다 빠르게 코로나가 발발한 것이거나.
혹은 아예 코로나와 관계 없이 그저 우연으로 인한 폐렴 환자 발생이라거나.
지금의 생각으로는 두 번째가 아닐까 싶었다.
만약 진짜로 코로나19가 내 기억보다 두세 달 이전에 발생한 거라면, 해외 여행을 떠났던 그 당시에 이미 유행하고도 남았을 테니 첫 번째는 아닐 테고.
그렇다고 세 번째라고 보기에는… 우연이 그렇게 공교로울 수 있으려나 싶어서.
‘뭐… 어느 쪽이건 상관없지.’
그간 바이오 산업 쪽에 적잖은 투자를 해 왔다.
특히 신종 인플루엔자나 코로나 바이러스 등에 특화된 연구를 지시해 놨었는데.
그것도 벌써 2년 가까이나 된 일이었다.
그런 만큼 코로나19 백신 개발과 관련해서 다른 제약사들보다 수월하게 대처가 가능할 터였다.
* * *
[중국 우한에서 ‘원인 불명’ 폐렴 환자 속출… 당국 긴장.]
[우한 폐렴 사태? 원인 불명의 폐렴 증상자 중국뿐만 아니라 홍콩에서도 확산.]
[27명 폐렴 환자 중, 7명은 벌써 위중한 상태… 바이러스 감염 가능성도.]
10월 중순이 되자 사태가 더욱 심각해졌다.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사태가 더욱 심각해지자 나도 이번 사태가 내가 알고 있는 그 코로나가 맞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는데.
“마이크, 잘 지내지?”
[요, 무슨 일이야. 혹시 <황혼의 기사> 초고를 내게 보여 주려고?]
“하하. 그랬다가는 출판사에서 날 죽이려고 들 거야. 아무리 내 회사라고는 해도 글을 쓸 때는 일개 작가라고.”
[흐흐. 혹시나 싶었지. 기대하고 있으니 빨리 써 달라고. <황혼의 기사> 소식 나오고 나서 다들 난리인 건 알지?]
“음… 최종장인 만큼 완결까지 다 써 놓고 수정을 여러 번 거칠 거라, 꽤 기다리긴 해야 할 거야. 아무튼 오늘 연락한 이유는…….”
마이크에게 전화해 우한시의 폐렴 환자 발생 사태를 알렸다.
[흠. 얘기를 들어 보면 사스일 수도 있겠는데?]
“거기 지사에 일하는 사람 중에 학부 때 관련 분야를 전공한 사람이 있는데, 신종 바이러스 가능성도 있다고 하더라고. 물론 학부 수준의 지식이라 전문 인력이 파견돼서 검증할 필요가 있긴 하지만.”
[알겠어. 바로 지시할게.]
사실 코로나 백신에 대해서 내가 아는 건 그리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한국에서는 화이자나 아스트라제네카가 만든 백신이 접종되는 경우가 제일 많았고, 그다음이 모더나라는 정도?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걱정할 거리는 아니었는데.
[일단 검체를 입수하고 나면 분석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SCP에서 자원하는 클라우드 자원이 있으니까, 흐흐.]
“아이고. 우리 고객이셨구나.”
마이크의 우스갯소리처럼 SCP의 고객이기도 한 SW 바이오.
일전 마이크가 차렸던 AI와 바이오를 결합한 사업체를 내가 인수한 이후 더욱 키워 나간 이 회사는 어느덧 그 자체만으로도 수백억 달러의 가치를 지닌 바이오테크놀로지 기업이 되어 있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야기될 전 세계 경제의 변화는 내가 갖고 있는 미래 지식 중 가장 큰 줄기의 하나였다.
브렉시트, 미국 대선 등 내가 그동안 큰 소득을 얻었던 여러 일조차도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줄기.
전 세계의 경제 흐름을 한순간에 뒤바꿀 정도로 커다란 일이었으니.
내가 그것과 관련된 대비를 소홀히 하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SW 바이오의 주력 분야는 세포ㆍ유전자 치료와 암 치료제 개발이었지만, 나의 지시로 그간 신종 인플루엔자나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전염병 쪽의 연구도 집중해 왔다.
이번 우한 폐렴으로 발발되는 전염병 사태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변종인 만큼, SW 바이오에서 잘 대응할 수 있을 터.
‘지금 화이자나 모더나 같은 회사들은 우한 쪽에 아무런 신경도 안 쓰고 있을 테지.’
거기에 다른 제약 회사들보다 훨씬 더 빠르게 백신 개발에 돌입할 수 있었으니.
그들보다 몇 배는 빠르게 백신을 개발해 낼 수 있을 거였다.
* * *
[WHO, 우한시 원인 불명 폐렴 경고… 신종 바이러스 가능성 높아.]
[최초 전파 루트 추정, 화난(华南) 수산물 도매시장을 폐쇄 및 소독 결정한 우한시.]
며칠이 더 지났다.
그사이 수십 명에 달하는 우한 폐렴 감염자가 발생했는데.
하지만 그렇다고 아직까지는 그리 큰 사태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우한 폐렴으로 인한 사망자가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최근 20년간 전 세계를 괴롭혔던 급성 호흡기 질환은 크게 두 가지였다.
사스 그리고 메르스.
두 질환 모두 이번 우한 폐렴과 비교할 수 없는 치사율을 지닌 질병이었다.
사스의 치사율만 해도 10%, 메르스는 20~40%에 달할 정도였다.
하지만 우한 폐렴의 치사율은 그 두 질병보다 현저히 낮은, 2~5% 내의 치사율로 추정되고 있었으니.
[中 우한시 폐렴 환자 집단 발생… 질병 관리 본부, 입국자 검역 강화.]
[중국 ‘원인 불명 폐렴’에 ‘사스 우려’ 교민 주의보.]
신종 감염병이니 만큼 우한 폐렴 또한 무서운 질병이겠지만, 치사율을 감안했을 때 사스나 메르스 때처럼 심각하게 발전할 것 같지는 않다는 인식이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현재까지 파악된 감염자 수도 고작해야 수백 명 남짓이었으니.
국내 언론과 당국에서도 우한 폐렴에 대해 경고만 할 뿐, 그리 심각하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나만큼은 우한 폐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얼마나 심각한 바이러스인지 잘 알고 있었다.
즉, 사태가 심각해지기 이전부터 미리 대비를 하는 게 당연하다는 뜻.
“모두 SW 바이오에서 제공한 자료 읽어 보셨죠?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이번 우한 폐렴은 그리 가벼운 감염 질환이 아닙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일뿐더러, 전파력도 최소 사스 수준으로 예상되고 있죠.”
제이슨과 윌리엄에게 이번 유행병 사태가 세계 증시에 미칠 여파를 대비할 것을 당부했다.
“게다가 중국 당국의 태도가 심상치 않아요. 위험성을 적극 알리고 진압에 나서는 게 아니라, 사태를 축소하려고 하는 둥 초기 대응에 미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음… 보스께서는 이번 감염병이 사스 때보다 더 심각해질 거라 보시는 건가요?]
“네. 질병의 근원지가 바로 우한시이니까요. 우한시는 중국 내 내륙 교통의 요지죠. 꽤 큰 대도시이기도 하고요. 하루에만 우한시를 지나쳐 가는 국내 이동자와 해외 여행객이 수만 명은 될 겁니다.”
[그러면 최소한 중국 내에서는 엄청난 대유행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겠네요.]
[으음. 범세계적으로 사태가 커질 가능성도 빼놓을 수 없겠죠. 우선 예방전 차원에서 그간 사들였던 주식들을 처분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비슷한 생각이예요. 음, 저번처럼 중국 증시에 대한 풋옵션을 일부 사들이는 것도 좋을 테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브렉시트 때나 미국 대선처럼 앞으로 있을 결과에 대해 확신하는 모습까지는 보이지 않았다.
나의 존재로 인해 발생한 나비효과들이 그간 적지 않았다.
어쩌면 이번 경우에도 비슷하게, 코로나19 사태가 내 기억 속처럼 크게 번지지 않을지도 몰랐다.
‘게다가 실제로 그렇게까지 큰 사태로 이어지길 바라지 않기도 하고.’
내 기억 속에서만 수백만 명, 어쩌면 이후에는 천만 명이 넘는 사망자를 냈을지도 모르는 코로나19 대유행이었다.
그로 인해 내가 아무리 큰돈을 벌 수 있을지라도, 이번에는 그 정도로 심각한 사태가 되지 않길 바라는 게 지금의 내 솔직한 마음이었다.
톡, 토독-
[나 – 마이크, 가용한 모든 자원을 써서라도 최대한 빨리 백신을 개발해 줘. 어쩌면 저번에 네가 보고서에서 말한 최악의 사태보다 몇 배는 심각해질 수도 있을 것 같아.]
SW 바이오에 하루빨리 백신을 개발할 것을 촉구하는 것은 물론.
[선우진의 SW 바이오, ‘우한 폐렴’ 위험 경고… “사스나 메르스와 비교할 수 없는 유행병 사태 될 수도.”]
[중국 당국에 당장 우한시를 봉쇄해야 한다 조언한 SW 바이오?]
[“중국 지사의 보고로 우한 폐렴에 대해 바로 알 수 있었다. 자체 조사 결과, 무척이나 위험한 전염병인 걸 파악. 하루빨리 대처에 나서야. 그렇지 않다면 걷잡을 수 없이 번질 것. 글로벌 대유행 사태가 될 수도” 직접 발언에 나선 선우진.]
직접 나서서 우한 폐렴의 위험성에 대해 밝히기도 했다.
언론에 인터뷰를 내기도 하는 한편, SW 인베스트먼트와 WS 매니지먼트 등에게도 관련 리포트를 작성하라고 말한 것.
광둥성 당서기인 후싱루이에게 연락하는 것도 잊지 않았는데.
다음 날, 후싱루이 라인의 바로 윗사람이라 볼 수 있는 황밍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의 전화를 받았다.
[후우. 대표님, 이번 일은 선을 넘으셨습니다.]
“상무위원님, 제가 직접 인터뷰까지 한 건 제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실제로 SW 바이오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중국 내에서만 최소 수백만 명의 감염자가 발생할 수도 있는 일이고요.”
[하하. 수백만 명이라… 물론 대표님의 본질이 작가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만, 너무 소설을 쓰는 데에만 심취하신 게 아닙니까? 당국의 초기 대응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이번 사태에 완벽히 대응하고 있어요! 아니, 설령 그게 아니더라도 대표님이 신경 쓰실 문제는 아닐 테고요!]
“…….”
[그간 후싱루이와 대표님이 여러 해 동안 긴밀한 관계를 맺어 온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자제하시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지금까지는 그 관계가 저희 당에 도움이 되었으니 넘어간 거였지만… 앞으로는 그러기 힘들 것 같으니까요.]
사실 황밍 상무위원은 나와도 몇 번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그의 정치적 후계자인 후싱루이의 주선으로 함께 얼굴을 본 적이 있는 것.
다만 그때의 태도는 조금 전의 통화와는 천지 차이였는데.
‘어쩔 수 없지.’
그의 말처럼 중국 당국의 대응을 외국인인 내가 지적하는 게 선을 넘는 행동이긴 했기 때문.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면 그간의 관계를 고려했을 때 조금 전의 통화에서 황밍이 저 정도까지의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을 거다.
아마 후싱루이를 통해 에둘러 좋게 말했겠지.
즉, 다른 이유가 또 있다는 뜻이었는데.
지금 그의 태도가 뒤바뀐 다른 이유를 짐작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스읍. 이제는 다 알았나 보네.’
내가 지금까지 중국 증시에서 차이나 머니를 빨아먹은 것도 여러 차례.
나름 눈치를 보긴 본다고 숨긴다고 숨겨 왔지만, 꼬리가 길면 밟힐 수밖에 없는 법이다.
황밍의 태도를 보면 최근 미중 무역 전쟁이 재차 발발할 때 중국 증시에서 엄청난 자금을 꽁으로 챙긴 외자 자본이 내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된 게 틀림없었다.
‘뭐, 언젠가는 알게 될 거였으니.’
물론 그렇다 해서 큰 부담이 되지는 않았다.
몇 년 전이었다면 내 여러 사업체가 중국 시장에 크게 의존하고 있던 만큼, 중국 당국이 내 적으로 돌아섰을 때 엄청난 부담이 됐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의 내 사업체들은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성장해 있었고, 혹시나 이후 중국 내 사업이 흔들린다면 다른 기업들에 통째로 팔아넘겨도 될 일이었다.
나와 사이가 좋은 텐센트도 있었고, 그 외 알리바바, 바이두 등 좋은 가격을 쳐줄 곳이 한둘이 아니다.
게다가 무엇보다, 어차피 앞으로의 중국은 중국에서 발발한 코로나19 때문이라도 한동안은 전 세계의 적이 된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서로 데면데면한 관계가 되는 게 오히려 내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심지어 내게는 중국보다 든든한 트럼프라는 뒷배도 있었고.
뭐, 어쨌거나-
‘최대한 막아 보긴 하겠지만… 저런 태도를 보면 우한 폐렴이 중국 내에서 급속도로 퍼지는 것만큼은 막을 수 없겠지.’
세상엔 영원한 게 없다고.
중국과의 우정은 이렇게 멀어지고 말았지만, 그게 그렇다고 차이나 머니와의 우정까지 멀어졌다는 뜻은 아니었다.
사람은 쉽게 사라져도 돈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법.
“결국 중국의 대응은 예상대로네요. 홍콩과 중국의 주식시장 모두 사나흘 내로 최소 10%는 떨어질 겁니다.”
갈 땐 가더라도 챙길 건 챙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