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도 잘하는 놈이 잘한다-216화 (216/267)

216화 롤러블폰

많은 사람이 김지환 차장에게 말한다.

GL전자 정도의 대기업에 입사했고, 거기서 십 년을 넘게 버텨 차장까지 달았으니 걱정 하나 없겠다고.

‘걱정이 없긴, 개뿔.’

물론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는 했다.

그러니까, 한 2010년대 이전에는 말이다.

스마트폰 시대의 이전.

GL전자의 피처폰이 오성이나 모토로라 등 여러 기업들과 경쟁하던 때에는 말이다.

그때는 GL전자에 속해 있다는 게 자랑스러웠고, 언젠가 세계 무대에서 모토로라와 노키아와 싸워 이기겠다는 꿈까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김지환 차장이 속한 곳은 GL전자 내의 계륵으로 불리는 모바일 커뮤니케이션즈 사업부, 즉 MC 사업본부였다.

“오셨어요, 차장님.”

“어. 한 대리 아침부터 표정이 왜 그래?”

“어후… 왜긴요. 요즘 저희 사업부 철수다 뭐다 루머가 많잖아요. 이러다 지방 내려가야 하는 게 아닌지 걱정돼서요.”

부하 직원인 한 대리의 말에 김 차장의 얼굴도 어두워졌다.

회사에서 잘리는 걸 걱정하는 건 아니다.

GL전자가 어디 구멍가게도 아니고, 요즘 같은 시대에 사업본부를 철수시킨다고 해서 직원들을 내보내지는 않는다.

그들도 나름 연구 개발과 관련된 고급 인력이니 GL그룹 내부에서 전환 배치 되는 둥 계열사로 이동하게 될 거다.

‘재배치면… 100명 중 90명은 다 가전 사업부일 텐데…….’

바로 그게 문제였다.

GL전자의 생활 가전 본부는 물론 좋은 곳이다.

GL전자 내의 여러 사업본부들 중 가장 사업 실적이 좋기도 하고, 그룹의 핵심 역량이 집중되는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위치가 문제다.

연구소와 사업본부 모두 경상남도 창원에 위치해 있기 때문.

지금까지 서울 근무만 하던 김 차장이 창원으로 배치된다면 어떻게 되겠나?

‘와이프는… 따라갈 리가 없겠지.’

무슨 핑계를 댈지 벌써부터 눈에 선했다.

창원으로 내려가면 애들 다니던 학교는? 학원은? 이제 애들 대입도 준비해야 하는데 서울에 있어야지!

그다음 나올 말이 무엇인지도 벌써 알 것 같다.

우리 집 대출도 한참 남았는데 팔고 내려가라고? 그냥 자기 혼자 가. 내가 시간 날 때마다 반찬 해서 갖고 갈 테니까.

물론 처음 몇 달은 그 말대로 자주 내려올지도 모른다.

타지에서 고생하는 남편을 위해 김 차장이 좋아하는 반찬들도 여럿 싸 들고 말이다.

하지만 그게 두 달, 세 달이 되고… 반년, 1년… 나아가 몇 년이 더 지난다면?

‘아니, 자기는 나이가 몇인데 밥도 혼자 못 해 먹어?’

‘서울에서 창원이 얼마나 먼데. 나도 좀 쉬자. 애들 학원 데려다주는 것도 벅차다고.’

‘그렇게 반찬이 필요하면 올라와서 싸 들고 가든가! 내가 뭐 식모야?’

“…한 대리, 담배나 한 대 피울까?”

“네, 가시죠.”

문득 그려지는 미래에 우울해진 김 차장이었다.

물론 요즘 같은 시대에 저렇게 해서라도 고용 승계를 해 준다는 게 얼마나 감지덕지겠냐만은, 우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진짜… 철수하려나?’

그래도 아직 한 가닥 희망은 있었다.

GL전자가 조만간 스마트폰을 포기할 거다, 뭐다 하는 루머가 돌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뜬소문에 불과했다.

게다가 요즘 MC사업본부서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개발에 집중하고 있는 건도 있지 않나.

바로 세계 최초의 롤러블폰, 망해 가는 GL전자의 휴대전화 사업을 혁신하기 위해 GL의 기술 역량을 집중해 투자하고 있는 신제품이다.

‘설마 이미 일을 벌여 놓을 대로 벌여 놓은 상황에서 철수하겠어?’

어쩌면 롤러블폰이 무너진 GL폰의 경쟁력을 다시 일으켜 세워 줄 돌파구가 되어 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비록 경영진들의 연이은 병크와 그놈의 ‘오성 반만큼만 하자’식의 2등주의 문화로 무너진 GL의 스마트폰 사업이지만, 그래도 한때 피처폰 시대에서는 초콜릿폰, 롤리팝 등으로 무척이나 잘나가던 GL전자가 아닌가.

회생의 여지는 아직도 남아 있을 것이다!

“차, 차장님!”

…라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울적한 마음으로 출근한 지 얼마나 됐다고 한 대리와 함께 흡연을 하고 온 김 차장은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부하 직원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여기 계신 분들은 어디서 오신……?”

그들 옆에 함께하고 있는 사내들도 같이 말이다.

낯선 얼굴들이었지만 오다 가다 한 번쯤은 봤던 것도 같은 게 분명 같은 GL전자의 직원들일 터였다.

“안녕하십니까, 김지환 차장님. 인사팀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말.

아침 일찍부터 인사팀 직원들이 사무실에 와 있는 게 좋은 상황일 리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직원들에게 서류 한 부씩을 건네는 인사팀 직원들이었는데.

“이직 동의서요?”

“예. MC사업본부가 통째로 영업양수도 방식으로 매각되는 거라 동의가 필요해서요. 읽어 보시면 아시겠지만 회사 차원에서 적잖은 위로금도 지급될 겁니다.”

“…….”

“하하. 이걸 위로금으로 봐야 하는 게 맞는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뭐? 지금 누구 놀려?

인사팀 직원의 말에 김지환 차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어찌할 바를 모르게 변했다.

인력 재배치가 최악의 시나리오라 생각하던 와중 사업부 매각이라니.

심지어 십중팔구 그 기사에 나왔던 베트남 빈 그룹인가 거기일 텐데.

지하실 밑에 더 지하실로 처박힌 상황 아닌가.

그런데 자신보다 연차가 5~6년은 낮아 보이는 직원이 와서 위로금으로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러고 앉았으니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 무슨 말씀 하시는 겁니까? 아니, 그걸 떠나서 GL전자가 저희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이렇게 뜬금없이 매각이라뇨. 우리가 여기에 바쳐 온 세월이 대체 얼마인데……!”

그러니 그런 분노를 곧바로 토해 내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평소 조용한 성격의 김 차장이었지만, 어차피 이대로 다른 회사로 넘어가게 될 거 남들 눈치 볼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어딘가 아주 많이 이상했다.

“……?”

“차장님? 왜 그러세요?”

이 사람 왜 이래, 싶은 얼굴로 자신을 보는 인사팀 직원.

거기에 사무실에 있던 MC사업본부 직원들도 뭐 하시냐는 듯한 얼굴로 보고 있었다.

그런 모습에 김 차장도 당황하려는 찰나.

“차, 차장님… 저희 SW 모바일로 옮긴답니다!”

조금 전까지 그와 담배를 같이 피웠던 한 대리의 말.

“SW 모바일? 대체 거기가 어디… 뭐?! SW?”

내가 아는 그 SW? 거기가 모바일 쪽도 하고 있었어?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김 차장이 빠르게 이직 동의서를 훑었다.

‘뭐야 이거… 진짜잖아?’

SW 모바일이라는 회사가 따로 있는 건 아니었다.

일종의 가칭으로, 우선은 GL전자의 MC사업본부가 그대로 선우진의 SCP에 귀속되는 형태라 임시로 그런 이름을 붙여 놓은 거였다.

SCP라면 김 차장 또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당장 GL전자의 사내 클라우드도 몇 년 전 SCP 시스템으로 바뀐 지 오래였기에.

거기에 SCP의 연봉 조건이 아주… 아주아주 후하다는 사실도 말이다.

“볼펜, 볼펜 어딨어!”

결국 조금이라도 빨리 동의서에 사인하기 위해 볼펜을 찾기 시작한 김 차장.

지금 보니 한 대리는 한참 전에 사인을 마치고는 그에게 볼펜을 건네고 있었다.

그런 김 차장을 보며 인사팀 직원이 부럽다는 듯 말했다.

“그거 보십쇼. 이게 ‘위로’금이 아니라니까요. 오히려 위로는 저희가 받아야 하지. 여하튼 축하드립니다.”

“…흐흐, 흐하하!”

물론 그런 말은 한창 신나 있는 김 차장의 귀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지만 말이다.

* * *

“롤러블폰이요?”

“예. 처음엔 또 GL이 이상한 거 만들고 있었네 싶었는데, 이게 보니까 생각보다 괜찮아서요.”

그러고 보니 그런 게 있었지.

뭐더라, 상소문 에디션?

GL전자의 MC사업본부가 아예 철수하고, 1,000대만 따로 만들어져 상소문과 함께 배포되었다는 커뮤니티 글을 본 적이 있었다.

그걸 보고 꽤나 신기하게 느껴져 나중에 한 유튜버가 올린 사용기 영상도 찾아봤었고.

‘음. 진짜 스마트폰 사업을 해야 하는 걸까.’

정말로 별생각이 없었는데.

마냥 이대로 롤러블폰을 썩혀 두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출시된 오성전자의 폴더블폰들, 플립과 폴드.

꽤 인기를 끌며 아이폰에 대한 오성의 새로운 대항마 소리를 듣고 있다고 한다.

품질 측면에서 문제만 없다면 롤러블폰이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대신하는 걸 넘어 속된 말로 아이폰과 맞다이도 가능할 거다.

“음. 우선 이번에 인수한 모바일 사업부를 맡길 사람이 있을까요?”

“예. 최근에 애플에서 빼 온 핵심 인력들 중에 스마트폰 관련 담당을 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선 그분께 모바일 사업부 검토를 맡기는 거로 하죠. 모바일 쪽으로 진출할 여지가 충분할지 한번 보려고요.”

“알겠습니다.”

물론, 롤러블폰이라고 해서 만능 치트키는 되지 못할 거다.

당시 나도 관심 있게 봤던 상소문에 따르면 롤러블폰 1,000대는 GL의 연구원들이 일일이 조립해 생산했던 것들이었는데.

그렇게 소량 생산이라면 몰라도 대량 생산 체제로 갔으면 품질관리 측면에서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몰랐다.

‘처음 내놓는 스마트폰에 품질 이슈가 생기면… 그대로 브랜드에 치명적인 영향이 가겠지.’

게다가 제품의 하드웨어적 품질만 잡는다고 해서 GL폰의 문제점이 한두 개가 아닌데 그것들이 다 해결되겠나.

소프트웨어적 역량, 관련 UX 및 UI 등.

지랄폰이 괜히 지랄폰이 아니었다.

‘신경 써야 할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겠지.’

게다가 스마트폰이란 건 온갖 기술의 집약체다.

GL에서 통째로 인수해 오면서 새롭게 가지게 된 특허들이 물론 적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스마트폰에 필요한 특허가 전부 있는 건 아니다.

피처폰 시대에서부터 여러 기술을 개발해 온 세계의 유명 제조사들.

그들의 특허들 중 직간접적으로 이용해야 할 게 한 트럭이었다.

물론 그걸 손쉽게 해결하는 방법이 하나 떠오르기는 했는데…….

‘내가 처음 썼던 스마트폰이 노키아 거였지.’

오성전자에서는 한창 옴니아를 만들고 있던 시절, 아이폰은 너무 비쌌던 나머지 노키아에서 냈던 스마트폰을 처음으로 썼던 기억이 났다.

아마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도 사용하지 않던 스마트폰으로 기억난다.

그러다가는 블랙베리의 쿼티 자판이 너무 멋있어 보여 블랙베리로 갈아탔었고.

‘가만 보면 나도 어느 정도 홍대병이 있었단 말이지.’

남들은 모두 아이폰, 아니면 오성전자 제품을 쓸 때 그런 마이너 한 걸 고집했었다.

여하튼.

생각난 김에 물어봤는데.

“지금 노키아의 기업 가치가 얼마죠?”

“음, 어제자 기준으로 133억 유로 정도 됩니다.”

“…와우. 그러면 블랙베리는요?”

“25억 달러 정도입니다.”

그러면 둘이 합쳐서 대충 200억 달러인 건가?

뭐지, 이거 왜 이렇게…….

“저렴하네요?”

“예. 두 기업 모두 스마트폰 개발을 중단한 상태이니까요. 현재는 특허 자산에 의존해 연명하는 기업에 가깝죠.”

“좋네요.”

“……?”

두 기업 모두 인수하는 데에 프리미엄까지 쳐서 대충 300억 달러.

그리고 롤러블폰 개발에 어디 보자… 한 50억 달러 연구비면 되겠지?

“두 기업 모두 인수하는 거로 하죠. 바로 가능한지 알아봐 주세요.”

합이 350억 달러.

대충 따져 보니 저번 주 동안 번 금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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